시베리아 시골 마을 사람들은 마땅히 일할 곳이 없습니다. 교사는 특별히 배운 사람 몇몇에게 주어지는 기회이고 상점 점원, 이따금 있는 노동 일이 전부입니다. 집집마다 텃밭에 농사를 짓지만 자기 가족이 먹을 감자, 오이, 토마토 심어 추수하는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가 아프면 병원비 마련도 쉽지 않습니다. 평소 의료보험을 꾸준히 납부한 사람에겐 무료 진료의 혜택이 있지만 이또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겐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보한 교회를 지키는 성도는 불과 세 사람뿐입니다. 이 가운데 리더인 자매(한국 교회로 치면 봉사잘 하는 집사님이나 권사님 격- 러시아 교회는 여 집사나 권사 제도가 없음)와 딸입니다.
수년 전 가족이 병에 걸려 치료비가 20만원정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 돈은 이들에게 엄청난 액수입니다. 일이 있어도 한 달에 10만원 벌기 어려운데 평소 일할 곳이 없는 탓에 빚이 수년 째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저희가 빚을 대신 갚아 주었습니다. 신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베리아 원주민 마을에서 교회를 지켜온 모녀 성도를 위해 한국 교회와 후원자를 대신해 구제비를 지출했던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 척 스미스 목사님 선교회에서 발간된 러시아어로 된 두툼한 성경교제를 선물했습니다. 딸이 자매가 이 책을 받아들고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누가 빌려 달라 해도 혹시 잃어버릴까봐 교회 밖으로 일체 내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한 마을은 한국으로치면 군청 소재지 정도 규모입니다. 교회 건물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지도자가 없어 평소 세 성도가 모여 기도회를 가집니다. 이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이르쿠츠크 1번 교회와 셀레호프 교회에서 교대로 방문합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주하는 지도자가 오기까지 부흥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느 날 나이 든 자매 성도가 “너무 힘들어요. 수년 동안 저희들만 모이다 보니 저희도 지친답니다.”하는 말을 하기에 위로했습니다. 미하일 목사님은 (10여 년 전) “담임목사가 있을 때는 약 1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는데.....” 하면서 마음이 몹시 아픈 듯 아쉬워했습니다.
러시아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사역자가 너무 적어 이런 원주민 시골 마을까지 와서 헌신할 지도자를 찾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얼마전 이 마을 가까이에서 유전이 발견되었습니다. 혹 유전으로 인해 일감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개발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석유를 생산하자면 철로를 놓아야 하고 여러 가지 시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개발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사방에서 석유가 나는 나라라 유전을 발견하고도 방치하는 것이 부러워보였습니다.
가난한 시베리아 원주민 마을 출신인 일리야가 저희 후원에 힘입어 2년 간 신학교 수업을 받고도 미처 졸업하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2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학업을 지원할 겸 집안을 위해 제재소에 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학교에 복학할 마음이 있으면 우리가 오가는 교통비등 장학금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국에 머물면서도 러시아 교회들과 목사님,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11년 만에 갖는 안식년이지만 사역할 준비가 되면 언제라고 러시아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넓은 러시아 땅 어느 도시로 가게 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접 갈 수 없더라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면서 적절한 지원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멀리 성도들을 방문하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일자리가 없는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삶이 마음 아프게 생각되었습니다. 갑자기 도울 일이 있을 지 몰라 비상금과 먹거리를 챙겨 갑니다. 선교지를 떠나 있으면서도 이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에 살고 있는 여러 종족 선교를 위해 기도로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설명> 보한교회에서 온 모녀 성도와 자매 성도 세 사람이 빌치르 교회 기념 행사에 참석해 특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