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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교회 전도사님이 졸업반으로 있었던 성결교신학교(현 안양성결신대)를 입학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연단을 많이 받아서인지 전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학교 교정을 울려 퍼지는 찬송가 소리, 교수님들의 강의가 새롭게 나를 사로 잡았다.
  그 동안 비교적 일찍이 사회를 경험하고도 주초를 멀리할 만큼 훈련된 터였다.
  1학년 봄 야외예배를 갔다가 그만 비가 왔다. 1학년 대의원인 전태규 형제(현재 서광교회 담임목사)가 보물찾기를 하려던 것을 그냥 추첨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내겐 주어진 쪽지를 펴보니 ‘예수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그날의 1등을 의미했다. 영상으로 커다란 예수님 얼굴이 들어있는 액자를 받았다.
  집에다 걸어 놓으니 비록 하나의 그림이지만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자야, 난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신학 수업을 받으면서도  목회자로 사역보다 선교사가 더욱 마음이 끌렸다.
  또 미지의 땅에 복음을 심기 위해서는 자신이 충실한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학 수업을 받으면서도 나 자신이 다시 현지 지도자 양성을 위해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을 안고 공부해 나갔다.
  ‘분명히 어딘가 복음이 잘 닿지 않은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주님, 먼저 한 알의 잘 여문 밀알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혹 자갈 밭에 심기더라도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신학을 수업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자주 나오던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와 함께  중국이나 미지의 나라 선교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다졌다. 복음의 수원지가 되고 싶었다.
  ‘만일 그곳에 단 한 사람의 신자도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날 이런 부담이 엄습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하다면 기독교에 관계된 것은 모두 조금씩이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신학 수업을 받으면서도 나중에 이 과목들을 다시 미지의 땅에 있는 영혼들에게 가르쳐야 될지 모른다는 부담이 왔다.
  도서관을 비롯해서 책을 구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며 선교사로 나가게 될 것을 대비했다. 오랫동안 혼자 공부해 온 습관이 있어서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내게 직접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심취하기도 했다. 

  학교를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경종합고사’가 있었다. 이 시험은 신약 100문제와 구약 100문제를 내어 60분 안에 풀어야 하는데 졸업 전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1학년이면서도 시험에 참여해 제일 먼저 답안지를 냈음에도 합격이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성경을 열심히 읽은 탓인 듯-  어떤 신학 과목보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길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2학기가 다가오자 도저히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머니께,
 “어머니, 제가 좀 무리했나 봐요. 아무래도 학교를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못내 아쉬우신 듯 안타까워 했다. 이때 마침 어머니는 반지 계를 통해 석 돈 짜리 금반지가 하나 있었다. 아마 처음 이런 반지를 끼게 되셨을 것이다.
  빨래할 때면 따로 빼 놓을 정도로 아끼시던 것이다. 잠시 후 어머니가 돈을 구해와 내게 주시면서 말했다.  “이 돈으로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겠니” 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돈을 건네주시는 손에 금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새 나가서 팔고 오신 것 같았다.
 ‘어머니 고마워요. 나중에 반지는 꼭 다시 사 드릴께요.’ 하고 속으로 말했다.

  학교에 분납으로 등록을 하고 2학기를 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54세를 일기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그 많은 고생을 하시고 반지도 아직 채 갚아드리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고향 산에 묻혔다. 어려서 계모 손에 자라나느라 갖은 구박을 받으시고 시집 또한 가난한 집으로 와 한 생을 어렵게 보냈지만 참으로 자상하신 분이었다.
  그래도 가문에도 아직 없는 목사 아들이 태어난 것이 길이 남길 바랐다. 
  나는 이때 기도하며 다짐했다.  이웃을 사랑하는 종이 될 것을-  
  또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을 주님께 인도하겠노라고 -

  1975년 신학교 졸업반 선배 분이 개척한 남부성결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오라고 했다. 그래서 주일학교 지도교사로  있던 정든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로 나가 봉사하게 되었다. 집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인 방배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회로 격리되었던 광야에서 어린 동생을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부모를 졸라 서울로 가자고 한 지 10년 만에 부분적인 사역이지만 교회 일군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조그만 가정 집에서 시작된 이 교회는 나중에 비교적 큰 규모의 교회가 되었다.
  마침 이 교회에서 구입한 올겐으로 조금씩  반주 연습을 하면서 마땅히 다룰 사람이 없어 단음으로라도 반주를 시작했다. 이 또한 선교를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종일토록 교회 일을 하다가 밤에 집으로 걸어올 때면 허리가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1년 이상 계속된 교회 봉사가 신학 수업과 아울러 사역의 기초를 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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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를 입학하고 주일학교 지도교사를 맡다가 이듬해 교육전도사로 봉사를 시작한지 거의 35년이 훌쩍 넘어갔습니다.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신학 수업을 받으면서 목회자로 사역보다 선교사가 더욱 마음이 끌렸습니다 미지의 땅에 복음을 심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 거쳐 훈련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올겐으로 혼자 찬송가 반주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어딘가 복음이 잘 닿지 않은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부담이 엄습했습니다.’  “주님, 먼저 한 알의 잘 여문 밀알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혹 자갈 밭에 심기더라도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신학교를 입학하고 주일학교 지도교사를 맡다가 이듬해 교육전도사로 봉사를 시작한지 거의 35년이 훌쩍 넘어갔습니다.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신학 수업을 받으면서 목회자로 사역보다 선교사가 더욱 마음이 끌렸습니다 미지의 땅에 복음을 심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 거쳐 훈련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올겐으로 혼자 찬송가 반주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어딘가 복음이 잘 닿지 않은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부담이 엄습했습니다.’  “주님, 먼저 한 알의 잘 여문 밀알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혹 자갈 밭에 심기더라도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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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실천-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비추인 큰빛(예수님)을 전하는 삶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서 기도한 내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모두 기억하고 계십니다. 기도한 지 20년 후 태국과 러시아 선교지 답사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15년 이상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모두 서울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에서 전기와 난방의 혜택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뜻하지 않게 밀려나 러시아 시베리아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러시아 목사님들과 자주 시베리아 원주민 마을들은 순회했습니다. 시베리아 원주민 지역은, 주민 1000명 가운데 신자 1명 있을까 말까 하는 영적 어두움에 싸인 곳입니다.

진리의 빛을 어둠에 땅에 전하기 위해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원주민 마을 순회선교를 다녔습니다. 눈보라치고 미끄러운 길을 헤치며 달리는 날도 많았습니다(주로 미하일 목사님이 운전하는 차량을 이용해 먼 길을 오갔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15,16).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외진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지역에 큰빛을 비추셨습니다. 우리 또한 주님의 제자되어 빛을 두루 비추기 위해 영적 어둠에 싸인 마을들을 찾아가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겠습니다.

<사진설명> 시베리아에서는 달이 무척 크게 보이고 별빛도 선명합니다. 특히 석양의 아름다움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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