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홈 가족 여러분 추석 잘 보내세요.
좋은 만남 많이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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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왕따)가 주는 의미
성경은 두 가지 인간 소외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 하나는 창조자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요. 다른 하나는 인간들 상호간의 소외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인간관계의 와해보다 더 비인간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안락을 느껴야 할 이 세계에서 낯선 자들이 되며 시민들이기라보가는 외인들이 된다(죤 스토트 에베소서 강해 p. 112).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이해관계를 따라 한 사람 또는 일부를 소외시킬 때가 있다.
외로운 교지에 있다 보면 누군가와 대화가 하고 싶어진다. 한국 나이 오십 넷이면 적은 나이가 아니다. 더욱이 목사 임직 받은 지 21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정작 선교지에서 나보다 젊은 크리스챤들로부터 이른바 왕따를 당하고 있다.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어도 인사조차 없는 십수명의 젊은이들(선교사 또는 크리스챤)이 우리와 한 지역에 살고 있다. 참고로 이르쿠츠크는 공식 인구 60만명 정도 살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결코 거리가 멀어서 발생한 일이 아니다.
이르쿠츠크에서 수년 전 일어난 일이다. 이르쿠츠크에서 수개월 앞서 온 P가 우리에게 한 청년(러시아어 전공자로 러시아어 연수를 위해 러시아 땅에 온 자)을 가리켜 선교사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나아가 자신과 동역자이자 동급(?)의 신분임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그의 말에 비중을 두었지만 시일이 흐르면서 지켜보니 선교사란 칭호가 안 어울리는 것을 느꼈다.
크리스챤 사업가 부인인 B집사는 우리가 왜 J청년을 선교사라고 불러야 하나요 하고 물었다. 심지어 전도사라는 표현도 쓰고 있어 신학교 출신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 지역으로 오기 앞서 J 청년이 마침 언어대 한국어 강사로 있었던 탓에 언어 연수 비자 발급을 도와주었다. 이르쿠츠크 도착 후 혼자 살던 P 집에 보름 정도 머물면서 숙소를 알아보기도 했다.
미혼인 청년 혼자 몸이라 식사 준비는 사라 선교사가 도맡았다. P가 서둘러 우리가 나가주기 바라는 탓에 급히 이사를 하면서 우리 이왕 알게 되었으니 주말마다 만나 기도회라도 갖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하자 서로 바쁜데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 하고 거절했다. 결국 P를 만날 일이 적어지게 되었다.
선교사가 거의 없을 무렵 P는 우선 이 청년을 포함해 선교사 모임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신학 수업을 받았고 나름대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유학생인 J청년을 선교사로 임명하면 이 후에 오는 교회 청년들도 모두 선교사라고 불러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했다.
그의 생활태도를 지적한 것과 청년을 선교사로 받아들이지 않겠닥 한 말로 인해 P와 점차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P가 총각으로 있다가 결혼을 하고 신부를 데리고 오자 멀리 시집온 새댁을 위해 사라 선교사가 P집을 찾아가 김치까지 담궈주기도 했다. 한국에서 막 온 새댁을 위해 우리집에서 환영 파티를 열었다. 새댁이 이날 <목사님 가족이 계시니까 정말 좋네요>라고 말하자, 이런 내용의 표현을 싫어하는(오직 해바라기처럼 자신을 높여야 함에도-) P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도보로 10분이면 올 수 있을만큼 지척 간에 살면서도 굳이 전화로 성탄 인사와 새해 인사를 하기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나중에는 전화를 직접 받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화 받는 태도가 왜 그러냐고 도리어 큰소리쳤다. 정말 어려운 젊은이라 생각되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 처한 2002년 구정- 누가 인사하러 올 사람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Y자매가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이런 방문 사실을 안 P가 Y자매를 다그쳤다. 거기를 왜 갔냐고- (둘이 무슨 사이도 아니고-) 참으로 어이가 없는 망발이 아닐 수 없다. P를 혼냈더니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이런 목적으로 온 한국인들은 만날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일들로 인해 우리와 멀어졌음에도 우리가 선교지 불화를 조장했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새로 오는 선교사나 크리스챤들과의 접촉이 쉽지 않았다.
한국교회 선교 관계자의 한 사람인 중신 목사님께서 하신 말이 떠올랐다.
<선교사가 낯선 선교지에 가서 일을 제대로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오랫동안 한국에 거주하셨던 예수원 토레이 신부도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의 문제는 성직자 가운데 거짓말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듣고 반성해야 할 말이라 생각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입술은 정직하고 깨끗해야 된다. 정직은 모든 목회자가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특히 선교사는 이방 지대에서 살고 있는 만큼 더욱 본이 되어야 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라>(마 5:16)
재작년 여름 당시 친구 목사 가족이 이르쿠츠크를 방문했다. 마침 부인이 상담가라 자신의 후배인 Y자매의 부탁으로 이 지역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참석하게 되면 모두 놀라 일을 진행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위치만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친구 목사를 모임 장소로 안내하던 중에 길에서 P를 마주쳤다. 역시 모른 척 하고 유유히 지나갔다. 이날 우리를 제외하고 전원(?)이 모였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야겠지만 왠지 이들의 모임이 그리 탐탁하게 보이지 않음은 내가 예민한 탓일까.
친구로 생각했던 이 자도 자기 쪽 자매를 선교사로 보내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택하라고 지시한 모양이다. 내가 선교지에 오도록 소개했음에도 도착 후 1년이 지나도록 아직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이른바 소외당한 자를 가까이 해서는 이익인 안 된다고 생각한 탓일까-
전후로 볼 때 P가 핵심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Y자매를 비롯해 몇몇 자매들을 중심으로 이 자를 감싸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우리는 그가 이 땅에서 쓰임 받는 인물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치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명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않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15편).
최근에 우리가 이 지역에 오도록 불러들인 청년이 역시 이 그룹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줄로 세워놓고 혼내겠다며 정의감을 부르짖더니 결국 한 자리에 소속하게 된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러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히 12:15)
성경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약 3:1)고 했다. 선교사란 이름은 함부로 가져서는 안 될 직분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과 관계된 직분자일수록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소외(왕따)시킬지라도 우리를 사랑하는 후원자들이 있고 측근 러시아 목사님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 계시는 만큼 위로가 된다. 하지만 선교사 이전에 신앙인이고 또 같은 민족이라면 이렇게 살아가서 안 될 것이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선교지의 정서가 이래서는 안 되겠기에 천사홈에 이 글을 올린다. 추석을 전후해 단 한 사람이라도 교류가 주어진다면 이글을 삭제할 생각이다. 아마 이들은 우리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숨바꼭질을 계속해야 할지 의문이다.
이르쿠츠크에 살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바란다. 특히 한국에서 온 크리스챤들이 진정으로 거듭나 사랑과 화목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교회로부터 보냄받는 자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위해 기도해 주시길 당부한다.
* 우리 그렇게 살아요 *
어두움이
강물처럼 밀려와도
포근히 감싸 주는
주님의 사랑이 있으면 됩니다.
때론
새벽의 찬 서리가
우리의 마음을 얼게 할지라도
사랑의 미소,
사랑의 눈길,
그리고
관심과 기도는
언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줍니다.
언제나
주님의 사랑,
그 안에 산다면
우린
늘 기쁘고 행복한
은혜와 축복의 삶이 되겠지요?.
우리 그렇게 살아요
하늘소리가
성경적으로 볼 때 진정한 크리스챤에게 왕따는 없다.
주님(또는 )성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태도가
오히려 왕따될지 모른다.
만약 나의 삶이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이라면,
누가 나를 칭찬해도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고
만약 나의 삶이
열매 맺는 삶이라면,
누가 나를 비판하든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 존 번연
사진설명- 농구 팀 학생을 안내하기 위해 바이칼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에 올랐다.
멀리 한국에서 농구팀이 왔지만 결국 한국인들 한 명도 없이 우리 가족만 참석했다.
언제까지 이런 식의 삶을 살아가야 할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