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칼럼>
수년 전 한국에서 미국 선교사들의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 자기 나라를 두고 왜 굳이 멀리 한국에 와서 선교사 모임을 가졌을까 의아했다. 그런데 주제가 흥미로웠다.
<10만 명 이하의 도시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모임>
과연 이 주제대로라면 한국인 선교사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참석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이르쿠츠크는 공식 인구가 60만 명이다. 하지만 한국인 목사 선교사가 오지 않아 목회적인 대화나 친교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보다 더 큰 도시에도 선교사들이 선뜻 가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 비행기가 바로 가지 않거나 교육 환경이 안 좋을 경우 피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만 하더라도 100만 명 이상 거주하는 도시에 한국인 선교사가 한 명도 없는 곳이 있다. 10만 명 이하 도시라면 한국인 선교사가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 이런 걸 염두에 두고 한국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선교사 2만 명을 내다 본다는 한국 교회- 과연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역하고 있을까-
물론 음지에서 낯모르게 수고하는 선교사들도 있을 것이다. 대도시의 경우 선교사들이 많이 몰리는 까닭에 자주 만남도 갖고 연합 사역도 하고 있다.
평소 한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없는 탓인지 이따금 한국을 오가는 경유지로 울란바타르를 방문할 때면 한국에 거의 다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르쿠츠크에서 약 150km 떨어진 곳에 우스티 오르진스크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오랫동안 부랴트 종족 중심의 소공화국이었다가 지난해 봄 투표를 거쳐 이르쿠츠크에 편입됐는데 중심 도시 인구가 약 5만 명 된다. 반경 약 100km에 걸쳐 15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우리가 자주 가는 부랴트 종족 마을들도 본래 이 소 공화국의 일원이었는데 규모가 훨씬 작다. 대부분 마을에 교회가 없는데 신자 한 두 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스티 오르진스크에 미국인 필립 선교사 8년 가까이 거주했다. 그동안 세 자녀를 현지인 학교에 보낼 정도로 부랴트 종족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한 해 몇 차례씩 캠프를 열어 전도 운동을 펴는 외에 어려운 가정에는 구제비도 보냈다. 그야말로 부랴트 종족의 친구라 할 수 있는 선교사였다. 마치 어두움을 밝히는 등대와 같이 느껴졌다.
얼마전 필립 선교사 가족이 철수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랴트 종족과 평생을 같이 할 것처럼 보였는데 철수한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알고 보니 결코 부랴트 종족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선교사 비자가 3개월로 줄어들었다. 장기 비자를 신청할 경우 1년 중 6개월 이상 러시아에 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지키자면 엄청난 경비가 들게 된다. 자녀들의 나이가 어릴 경우 본국으로 오가는 비행?요금이 만만치 않다.
이 땅을 사랑해서 찾아온 선교사가 이 땅에서 만든 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어 철수하기로 한 것이다. 떠나기 앞서 자기가 쓰던 선교 장비를 삼손 전도사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여러 마을 부랴트 성도들을 모아 놓고 송별회도 가졌다. 수일 전 방문했던 보한 마을 부랴트 자매도 틈틈이 필립 선교사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들을 사랑해서 화려한 문명의 나라 미국을 뒤로 한 채 어린 자녀들까지 데리고 와서 불편한 작은 도시에서 살아왔던 만큼 석별이 못내 아쉬웠던가 보다.
우리도 몇 차례 필립 선교사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부랴트 종족을 선교하고 있는 공통점 탓인지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소박한 미국인 선교사 가족의 삶이 감동적이었다.
비자 문제는 우리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세 자녀가 모두 대학생이어서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지만 짧은 비자 기간으로 인해 적지 않은 경비가 들고 사역의 맥이 자주 끊어지는 것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자녀들 또한 부모가 없는 기간 동안 자기들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급속도로 물가가 인상되고 세계 경제마저 혼란스러운 탓인지 그동안 비교적 싸게 다니던 비행기 노선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그동안 이르쿠츠크에서 한국을 가는 방법이 다양했다. 중국 심양이나 북경, 몽골 울란바타르 등 경유지를 거쳐 가는 비행기지만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중단되고 단지 블라디보스톡 경유 코스 하나뿐이다.
얼마전까지 중국으로 거쳐가는 왕복 요금보다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하는 편도 요금이 훨씬 더 비싸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기차를 이용해 몽골 울란바타르까지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울란바타르까지 급행열차로 24시간, 완행은 34시간 걸린다. 급행열차는 자주 있지 않는데다 좌석이 없을 수도 있다.
1997년 1월 선교사로 떠나면서 <믿음과 순종>이란 목표를 세웠다. 불가항력의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 한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선교에 임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8)
그 어느 때보다 한국 경제가 어렵고 갑작스런 달러 인상으로 선교비가 20% 이상 감소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 물가가 급속도로 오르는 탓에 이중 삼중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럴지라도 최대한 절약을 해나가며 앞만 보고 나가기로 했다.
비자가 만료되어 부득이 한국을 나가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멀리 몽골 울란바타르까지 기차로 가서 한국 가는 비행기로 갈아탈 생각이다.
선교는 곧 영혼 사랑에서 출발한다. 후원자들 또한 선교사 가족과 선교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절약을 해 가며 후원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비록 여러 가지 어려움이 주어지더라도 주님의 사랑의 손을 펴고 살아가기 원한다. 우리에게 오는 경비가 줄어들더라도 현지 교역자나 가난한 이웃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기 바라고 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적절히 은혜를 베푸시고 피할 길을 내시리라 믿는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사진설명> 우스티 오르진스크 종족 지역 상징물 앞에서 이반 목사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