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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덫(Trap of Evil)
악마의 덫은 ‘헤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나오는 약초인데, 예민하고 탄력있는 넝쿨로 이루어진 식물입니다. 악마의 덫은 자신의 몸에 닿은 모든 것을 감아 버리는데,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면 더욱 세게 감아 질식시켜 버립니다.
악마의 덫은 교묘해서 여간해서는 눈치를 챌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 덫은 아주 달콤해 보이고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것은 단번에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손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도 몰래 마음껏 엔조이하다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돈의 유혹이던지 혹은 마약의 유혹이던지 누구든지 이 덫에 한번 빠지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성의 유혹에 빠지면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 달콤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과 끝까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별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천사의 얼굴과 악마의 얼굴
지금처럼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악마의 덫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외롭고 가장 연약할 때, 악마는 광명한 천사를 가장하고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천사의 부드러운 미소로 손을 내밉니다. 그 사람의 어디를 보아도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저 사람을 따라가면 도움을 받을 것 같고, 반드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덫에 걸려든 순간 천사의 얼굴은 악마의 얼굴로 바뀝니다. 악마의 모습으로 바뀐 얼굴을 본 순간 충격은 너무 커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요,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엄청 손해를 보고 상처를 입었지만, 딱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고 소송을 할 수도 없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덫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몸과 마음을 망치고, 영혼까지 멍들어 일생을 후회하며 보내는 분들을 주변에서 수없이 봅니다.
악마의 음성과 성령의 음성
악마의 음성은 그럴듯합니다. ‘너는 많이 배웠고 잘났으니까 이정도 대우는 받아야 해! 그런 시시한 일에 매달리지 마라. 그딴 것 해가지고 언제 돈 벌고 성공할꺼냐? 좀 더 쉽게 한꺼번에 왕창 끝내야 하지 않겠니?’ 하고 속삭입니다. 마귀의 음성은 달콤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마귀의 음성을 들으면 나는 당연히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고,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악마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크고 좋은 일을 맡기리라’(눅 16:10)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큰 것을 바라보지 말고 주위에 있는 ‘어린 소자 하나를 실족시키지 말고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네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갈 2:20)는 것입니다.
악마의 음성은 달콤하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성령의 음성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악마의 음성을 들을 때에는 기분이 좋지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에는 자존심이 상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쫓기보다는 악마의 음성을 따를 때가 많습니다.
넓은 길과 좁은 길
사람들은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빠져 크고 넓은 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처음에는 평탄한 길이요 성공의 길 같아 보이지만,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찹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이요, 궁극적인 성공의 길이기 때문에 좁은 길로 가야합니다(마 7:13).
내 힘으로 악마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빠져 나오려 발버둥을 칠수록 악마의 덫은 더 큰 힘으로 조여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미련한데, 마귀는 강하고 악독하며 지혜도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내 힘을 풀고 성령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지고 내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빛의 소리를 듣고,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악마의 덫은 어둡고 칙칙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빛을 바라보면 악마의 덫은 자연히 풀리게 됩니다.
악마의 덫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도 남고, 본전 생각도 나지만, 단호하게 이를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은 어떤 형편에 있던지 이를 극복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 미련도 없이 털어버릴 때에 주님은 새 것을 채우시고, 어떤 낮은 자리에서도 일어설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The Atlanta Times 강진구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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