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이희만 목사(대구 한샘교회)
어느 날 아내와 고향에 가는 길이었다. 내 고향은 조그마한 시골 동네이다. 시골에 황톳집 하나 짓고 가끔 쉴 수 있는 곳을 갖고 싶은데 아직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황톳집 이야기, 몇 년 전에 심어놓았던 매실나무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은퇴이야기로 넘어가곤 한다.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연못에는 미꾸라지를 키우고, 논에는 식용 개구리도 키우고, 굼벵이와 지렁이도 사육하고, 밭엔 각가지 채소도 심고, 마당엔 닭도 키우면서 노후를 지내면 어떨까?”라며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일쑤다. 모처럼 목회적 긴장을 벗어버리고 여유를 얻고자하는 마음에서 늘어놓은 이야기였다. 정말 그동안 뒤돌아 볼 사이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았다. 그러기에 삶의 허리띠를 풀고, 군불 지핀 시골의 방 아랫목에서 해삼처럼 풀어지고 싶어서였다.
이런 제안에 아내는 “지금부터 처음 목회하는 마음으로 10년만 더하소. 그 후에 그렇게 합시다.”라고 대답했다. 긴장을 풀려고 하는 내게 혹 느슨해질까 봐 하는 격려였다. 그때 나는 “죽으란 말이가?”라고 우스개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나이로도 10년을 더 해도 정년에 못 미친다. 아직 길길이 멀다. 할 일도 많다. 아내의 말처럼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마음, 초심이 중요한데 그러지 못 할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느슨해진다. 경륜이 쌓일수록 여유를 부린다. 이젠 용기도 줄어진다. 초심을 잃어간다.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25년 전 일이다. 시골에서 220V 전기에 감전되어 죽을 뻔했던 일이 있었다. 온 몸에 전류가 흐르면서 정말 하늘이 노래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결혼한 지 몇 달 안 된 아내 생각, 부모님 생각, 교회 생각, 고생하며 공부했던 생각,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들….
그 순간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여기서 저를 살려 주시면 평생을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애원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찌된 일인지 전기가 끊어졌다. 주님이 살려주신 것이다. 그때 전기에 터진 상처가 지금도 손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 후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이라는 찬송이 나의 찬송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해이해질 때면 이 상처를 보며 그때의 서원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 이제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라는 찬송을 목청껏 불러보며 삶을 다시 한 번 다잡는다.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 긴장의 끈이 풀어지면 안 된다.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2010년 12월 10일 (금) www.kidok.com
*******************
이 선교사는 1974년 3월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쳐 신학교에 들어
갔음에도 왠지 목회자로서의 꿈보다 선교사의 길에 마음이 쏠렸다.
그것도 자갈밭같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더욱이 헌신의 기도를 할 때 주님께서 관심을 갖고 들으신다고 믿는다.
20대 초반의 기도 순간을 잊지 않고 사역해야겠다는 결심은 가난한 이웃을 향하게 되고
열악한 선교지를 찾게 된 것 같다.
이따금 시베리아가 좋으냐고 묻는다. "한국보다 좋을 리 잊겠어요. 그냥 사는 거지요."
심지어 누군가의 방해로 젊은 우리네 크리스챤들이 인사도 없이 지내온 시일이 얼마인가-
그야말로 시베리아 유배당한 것같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럴지라도 20대 초반 주님 앞에 기도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택한 길이기에 오직 한 길을 가기 원한다.
이번 성탄절에는 한 두명이라도 한국인 크리스찬과의 만남이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어느 날 아내와 고향에 가는 길이었다. 내 고향은 조그마한 시골 동네이다. 시골에 황톳집 하나 짓고 가끔 쉴 수 있는 곳을 갖고 싶은데 아직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황톳집 이야기, 몇 년 전에 심어놓았던 매실나무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은퇴이야기로 넘어가곤 한다.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연못에는 미꾸라지를 키우고, 논에는 식용 개구리도 키우고, 굼벵이와 지렁이도 사육하고, 밭엔 각가지 채소도 심고, 마당엔 닭도 키우면서 노후를 지내면 어떨까?”라며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일쑤다. 모처럼 목회적 긴장을 벗어버리고 여유를 얻고자하는 마음에서 늘어놓은 이야기였다. 정말 그동안 뒤돌아 볼 사이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았다. 그러기에 삶의 허리띠를 풀고, 군불 지핀 시골의 방 아랫목에서 해삼처럼 풀어지고 싶어서였다.
이런 제안에 아내는 “지금부터 처음 목회하는 마음으로 10년만 더하소. 그 후에 그렇게 합시다.”라고 대답했다. 긴장을 풀려고 하는 내게 혹 느슨해질까 봐 하는 격려였다. 그때 나는 “죽으란 말이가?”라고 우스개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나이로도 10년을 더 해도 정년에 못 미친다. 아직 길길이 멀다. 할 일도 많다. 아내의 말처럼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마음, 초심이 중요한데 그러지 못 할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느슨해진다. 경륜이 쌓일수록 여유를 부린다. 이젠 용기도 줄어진다. 초심을 잃어간다.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25년 전 일이다. 시골에서 220V 전기에 감전되어 죽을 뻔했던 일이 있었다. 온 몸에 전류가 흐르면서 정말 하늘이 노래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결혼한 지 몇 달 안 된 아내 생각, 부모님 생각, 교회 생각, 고생하며 공부했던 생각,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허무한 생각들….
그 순간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여기서 저를 살려 주시면 평생을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애원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찌된 일인지 전기가 끊어졌다. 주님이 살려주신 것이다. 그때 전기에 터진 상처가 지금도 손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 후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이라는 찬송이 나의 찬송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해이해질 때면 이 상처를 보며 그때의 서원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 이제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라는 찬송을 목청껏 불러보며 삶을 다시 한 번 다잡는다.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 긴장의 끈이 풀어지면 안 된다.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2010년 12월 10일 (금)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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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교사는 1974년 3월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쳐 신학교에 들어
갔음에도 왠지 목회자로서의 꿈보다 선교사의 길에 마음이 쏠렸다.
그것도 자갈밭같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더욱이 헌신의 기도를 할 때 주님께서 관심을 갖고 들으신다고 믿는다.
20대 초반의 기도 순간을 잊지 않고 사역해야겠다는 결심은 가난한 이웃을 향하게 되고
열악한 선교지를 찾게 된 것 같다.
이따금 시베리아가 좋으냐고 묻는다. "한국보다 좋을 리 잊겠어요. 그냥 사는 거지요."
심지어 누군가의 방해로 젊은 우리네 크리스챤들이 인사도 없이 지내온 시일이 얼마인가-
그야말로 시베리아 유배당한 것같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럴지라도 20대 초반 주님 앞에 기도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택한 길이기에 오직 한 길을 가기 원한다.
이번 성탄절에는 한 두명이라도 한국인 크리스찬과의 만남이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