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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수 목사(대구 동신교회)

특별기고/복음을 위한 협력-협력의 놀라운 열매 함께 나눕시다



성경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 ‘함께’라는 핵심개념으로 묶여져야
“나 하나쯤” 이기주의 버리고 신앙공동체 성숙에 적극 앞장서자

목회자들이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더 큰 협력활동을 하는 것에는 왜 그리도 인색할까? “모여서 뭐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목회자들은 모임의 의의에 대해 회의를 품고, 대체적으로 이런 말을한다. “모이기만 하면 정치하고, 쓸데없이 놀기나 하고, 자기들끼리 모이면서 돈 내라 하고, 같이 안 모이면 따돌리고, 이름을 내는 데는 앞장서고, 이름을 올려주지 않으면 비난하고, 순서 맡으면 나오고 순서 맡지 않으면 외면하고….”

목회자들이 교회 울타리 밖의 협력활동에 주저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본 교회 목회만으로도 바빠서 쩔쩔 매는데, 여기저기서 오라고 하면서 돈을 내라고 손을 내미니, 진력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협력을 아무리 외쳐 봐야 그 외침은 응답없는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협력의 이유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왜 범교파적·범교단적 협력을 해야 하는가?

‘행복 공동체’의 선결 과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람의 독처(獨處)를 좋지 않게 여기셨다(창 2:18). 하나님이 애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한 남자와 한 여자로 하여금 한 몸을 이루어 ‘함께’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가정공동체를 인류공동체의 기초로 삼으셨다. 핵가정, 대가정, 일가친척, 종족, 민족, 국가, 인류…. 이런 식으로 인간들이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뜻에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도 아브라함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후손 메시아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가족과 일가친척과 민족과 천하 만민이 ‘함께’ 복을 받게 하시는데 그 뜻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민족을 이루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도 몇 사람만 나오게 하시거나 몇 가정만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유진(留陣)도 하고 행진(行進)도 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에서 살 때도 전쟁을 하거나 명절을 지키기 위해 ‘함께’ 모이기도 했지만, 사무엘의 미스바 집회처럼(삼상 7:5) 기도를 하기 위해 ‘함께’ 모이기도 했다. 바벨론에서 본토로 귀환할 때도 국민들이 ‘함께’ 귀환했다(에스라 2장). 에스라의 집회처럼(에스라 10장) 회개와 개혁을 위해 국민들이 범국가적으로 ‘함께’ 모이기도 했다. 느헤미야의 집회처럼(느 9장) 말씀을 듣고 통회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함께’ 모이기도 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의 십자가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간의 장벽을 허물고, 이 둘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는 의의가 있었다(엡 2:15).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그리스도의 ‘한 몸’의 여러 지체들이다(고전 12:12). 하나님의 교회가 한창 부흥할 때도 ‘함께’ 모이기를 힘쓰는 모양을 보였다(행 2:46). 구원이 완성된 미래 천국의 모습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모습이다(계 21:3).

이렇게 볼 때 창조와 출애굽과 귀환과 메시아의 구원이 모두 ‘함께’라는 핵심개념으로 묶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복된 다스림을 받는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구원의 목표인 것이다.

시편 133편에서는 ‘함께’라는 주제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구절로 읊어져 있다(133:1). 전도서 4장에서는 삼겹줄의 비유로 ‘함께’의 원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4:9-12). 히브리서 10장에서는 ‘함께’의 원리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구절에 요약되어 있다(10:25). 한 교회가 교회 단위로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으로 이 구절이 제한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목회자들은 이 말씀의 적용 범위에 대해서 양심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협력에 주저하지 말아야

협력에 대한 성경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했거니와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쓸데없이’ 모여 정치 발판을 삼는다든지, 너무 자주 논다든지, 모이지 않는 사람들을 따돌린다든지, 돈을 뜯어낸다든지 하는 것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범교파적·범교단적 집회와 협력을 말할 때에 이런 요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교단·범교파적으로, 전국적으로, 아니 전세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공동체로 모이는 것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협력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복음을 위한 협력은 어떤 경우에도 주저하지 말고 앞장서서 해야 하는 필연 필수의 대과제이다. 완성된 천국에서 다 ‘함께’ 모여 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개인 이기주의나 교회 이기주의에 빠져 “나만 잘 되면 된다. 우리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식으로 나가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이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에드 실보소(Ed Silvoso) 목사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도록〉(That None Should Perish)이란 책을 썼다. 실보소 목사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대표도시 레지스탄시아 시민들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도록 대대적인 도시복음화운동을 펼쳤다. 인구 40만 명의 레지스탄시아 시에는 교회가 70개가 있었는데, 그 중 68개 교회는 기존 교회에서 싸워서 갈라진 교회들이었다. 실보소 목사는 그런 도시에서 모든 목회자들을 ‘함께’ 모아 복음화의 꿈을 소개했다.

635개 기도등대(lighthouses)를 만들어 각 지역별로 그 지역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슬럼가에 16개의 물탱크를 설치해 주고 약품도 제공해 주었다. 이 일을 방해하던 산 라 뮤에테(San La Muerte)의 여자 총사제는 누워 자던 침상에서 불에 타 죽었다. 놀라운 것은 그 여자의 침상에만 불이 붙어 그 여자만 타 죽고 불은 다른 곳으로 전혀 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도시 모든 시민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한 주 전에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토요일에 전도지를 각 집에 배부한다는 광고를 한 다음 하루에 총 6만 3000가정에 복음 전도지를 배포했다. 신자들은 그 도시 환자들, 깨어진 가정들, 말 안 듣는 자녀들,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귀신들도 쫓아냈다. 먼저 34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전도집회를 했다. 3개월 후에는 10개의 더 큰 집회를 개최했다. 마지막으로 도시 전체 대상으로 대형 집회를 개최했다.

무당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전도집회를 하던 일부 참석자들이 병이 들고 일부는 쓰러지는 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그 때 강단 위에 70명의 중보기도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군중 속에서는 100명 중보기도대원들이 ‘함께’ 기도했다. 그 결과 예수 믿겠다고 나오는 수천 명의 사람들은 부적들을 가지고 와서 다 태워버렸다. 레지스탄시아 시장이 주님을 영접하고 2명의 시장 후보와 의사들, 기자들, 1명의 상원의원, 정치가들, 법조인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도시 전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6개월 후에 레지스탄시아 시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102%나 늘었다. 그 운동을 벌인 2년 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수가 400% 늘어났다. 70개 교회가 200개 교회로 늘어났다. 레지스탄시아 교회들이 복음화를 위해 협력한 결과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협력이 곧 전도다

레지스탄시아라는 도시의 복음화의 모델을 통해서 협력의 중요성을 밝혔거니와, 인간심리의 본질 면에서도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예배 시간에도 빈자리가 없이 꽉 차 있으면 흥이 나지 않던가? 빈자리가 있으면 어쩐지 썰렁하지 않던가? 자신이 임원을 맡거나 순서를 맡았을 때 복음적인 행사에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기운이 절로 나지 않던가? 그런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야속한 마음도 들지 않던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마음 조이던 경험을 한 목회자로서 다른 사람이 임원과 순서를 맡았다고 하여 협력하지 않는 것이 속보이는 일이라는 가책이 들지 않던가?

복음을 위해 서로 협력하면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힘을 얻게 된다. 자기 교회만 아니라 다른 교회 교인들이 집회에 많이 참석한 것을 보면 서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불신자들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보면 “저 사람들 뭣 때문에 저렇게 모이는가?”하면서 관심을 보이게 된다. 불신자들도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하던가, 그렇지 아마?” 하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암암리에 부활에 대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데모’하면 보는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건 영향을 받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거기서 영향을 받는 것이 인간심리의 본질인 것이다.

부활절연합예배에는 순서를 맡은 유무를 떠나 모든 교회, 모든 목회자들이 모든 교인들에게 꼭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할 것이다. 지역과 전국의 복음화·성시화대회에도 범교파·범교단적으로 참석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은 특별히 복음을 위한 협력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8년 02월 22일 기독신문

***************

<천사홈지기 글>

한국을 방문할 때 천사홈 서버 관리를 하는 분을 만날 겸 대구근처를 지날 때면 연락을 한다.
아무 대가 없이 서버 운영을 해 주고 있는 분인데 밝은 미소의 소유자여서 퍽 인상적이다.
한번은 동신교회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방문했더니 교회 규모가 얼마나 큰지 대형
빌딩에 들어온 것 같았다.
권성수 목사님의 목회 역량을 뒷받침할만한 시스템이 여기저기 보였다. 본래 역량있는 교수로
활동하시다가 목회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들었다.
교회와 연관이 있는 대상을 우선적으로 선교사로 선발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검증된 인물이라
야 더욱 신뢰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언젠가 교단 신문에 선교사를 찾는 광고가 실린 것을 보
았다. 꼭 측근 중에서 찾기보다 대내외적으로 물색하는 편이 더 낫다고 본 것 같다.


협력의 아름다움이 가장 필요한 선교지에서 언제까지 이런 양상을 띨 것인가. 의도적으로 한 가
정을 빼려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합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불화를 조장하느니 이상한 인물이라니 아무리 몰아세워도 공신력있는 단체소속 선교사여서 누
구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현지에서 몰아내기 위해 몇 차 례 시도가 있었지만 무위로
끝났다. 왜 이래야 했을까.

부활절을 몇 주 앞두고 있다. 이제 숨바꼭질을 그만하고 빛 아래에서 만나 아름 다운 협력을 모
색해야 할 때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이런 제안을 했지만 누구도 연락이 없어 아쉽게 끝났다.
화해의 악수를 거절한다면 성경을 등진 태도라 생각된다. 이제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자.
멀리 시베리아까지 온 한국 교회 크리스챤들 간에 모범적 삶이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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