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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 친구(?)가 지난해 가을 먼저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굳이 ‘친구’란 단어에 물음표를 넣은 까닭은 과연 친구 사이가 맞는지 의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방을 ‘친구’로 생각할 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한 쪽에서 우정을 가지고 대하려 들어도 상대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친구 관계라고 단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친구(?)의 이름을 P라 부르기로 한다. P와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살았다.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얼굴을 알고 지낼 정도였다. 같은 나이에 P가 나보다 2개월 정도 먼저 태어난 이른바 동갑내기다. 이 정도 조건만 갖추어도 흔히 말하는 친구 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P는 전형적인 수재형이다. 초중고 모두 우등 졸업했다. S대를 목표로 공부했다가 후기에 신학대로 진학했다. 같은 해 나는 다른 신학교로 진학해 둘 다 신학도가 되었다.
군을 전역한 후 P의 행방을 찾기 어려웠는데 과외지도를 하던 학생이 마침 P가 다니는 교회 출석 중이어서 둘 사이 관계를 이어주었다(난 신학생 시절 작은 교회에서 주로 무급으로 봉사하며 과외나 개인지도로 생활을 유지했다).

또래인 탓에 자주 P집을 찾아가고 오랫동안 교제를 가졌다. 따라서 가족도 잘 알고 특히 P의 모친이신 권사님은 불신 배경에서 성장한 나를 친 아들처럼 품고 기도하신 분이어서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P가 유난히 우월감이 강한 탓에 그토록 오랫동안 알고 지냈음에도 선뜻 ‘친구’ 라는 표현을 하지 않아 나혼자 친구라고 생각해야 할지 고심할 때가 많았다.
어느 분야에서던지 자신이 앞섰다고 믿고 싶은 P의 성향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건을 소개한다. P보다 4년 늦게 결혼한 우리 가정에 뜻밖에 셋째 아이가 생겼다. 몹시 어려운 목사 가정에서 남들이 잘 택하지 않은 셋째 아이를 가지게 된 터라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셋째 아이를 데리고 외출이 가능할 무렵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P 어머니 권사님께 아기를 보일 겸 인사를 갔다. 아기를 본 P가 놀란 듯 외친 첫 마디가 “나도 하나 더 낳아야겠네.”그렇지만 대부분 둘 낳고 단산한 터라 셋째 아이 출산이 쉽지 않아 보였다.

이때 태어난 셋째 아이가 기성이다. 한국 나이 스무 살임에도 이르쿠츠크 국립대 물리학부 4학년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잘 다루어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다른 복은 기대하면서 정작 자녀의 복은 피해가는 우리네 현실이 안타깝게 생각될 때가 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3)고 한 성경 말씀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P가 작은 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있을 때 우리 가정은 선교사로 떠났다. 처음에 약간 후원에 참여하다가 이내 이마저 중단했다. 시일이 흐를수록 더 가까워지기보다 무언가 거리감을 느끼게 되어 만남의 기회 또한 자연히 줄어들었다.
수 년 전 측근 목사로부터 P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 심각한 상태에 놓였다는 말을 듣고 오랜 만에 찾아갔다. 그 사이 권사님은 천국으로 가시고 P는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다.

P와는 4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사이다. 그래서 남은 날 동안이라도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위해 기도할 마음을 가졌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나만의 생각인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아쉬웠다. 언제나 자신이 더 앞서야 한다는 생각 탓인지 병약한 몸으로 나와의 만남을 가지는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썩 건강한 편이 아닌데-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나 위로하고 우정의 기도를 해 주려던 나의 생각이 그만 한계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가끔씩 그의 건강이 걱정이 되어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P는 오랫동안 작은 교회를 맡고 있었는데 인터넷 상에 잘 나오지 않아 그의 소식을 알기 어려웠다. 어젯밤 그동안 P의 상태가 궁금해 검색을 하자 6개월 전에 P가 소천했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 사이 더 찾아가보지 못한 사실이 안타까웠다. 똑똑하고 유능한 친구였는데- 체격도 크고 건강해 보이던 몸이 작은 암세포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마지막엔 뼈만 남았다고 한다.
앞서 간 친구(?)를 천국으로 먼저 보내고 외진 선교지에 남아 있는 나는 사실 P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무엇보다 더 많이 영혼을 사랑할 책임이 있음을 느낀다.

Y자매의 선배 격인 자와도 10년 정도 친분을 유지했다. 간이 좀 안 좋다고 해서 그를 위해 매일 기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의 소개로 소속 단체 간사로 있던 K자매가 이 지역 선교사로 지망하자 그만 나와 멀어지고 말았다.
아마 우리와의 접촉을 하지 말라는 주문이 있었던 것 같다. Y자매는 이보다 훨씬 먼저 우리를 피하는 중이다. 젊은 친구와의 교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보다. 새로이 오는 자들까지 묶어 모두 해바라기처럼 자기만 바라보라는 뜻인지-

5월초가 되어도 아직 새순도 안 나오고 있는 시베리아 땅에서 이렇듯 살아가고 있다. 선교지는 그 어느 곳보다 화목과 일치가 필요하다. 혹자는 우리가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나무랄 지도 모른다.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면 이곳 현실이 어떠한 지 피부로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쌍방이 잘못할 수도 있겠지만 가해자(그것도 집단으로)와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관심과 기도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 혹 자신의 측근자가 이 땅에 와 있다면 더욱 기도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선교지는 사랑과 화목의 실천 현장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하셨다. 신앙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매듭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앞에 어떤 매듭이 있더라도 풀고 화목을 도모할 때 하늘의 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나이든 선교사를 제외한 자리에 모여드는 우리네 젊은이들이 지켜볼 대상이 있다. 이 땅에 온 크리스챤들이 우리와의 접촉을 못하도록 막아온 자매가 과연 박사를 따고도 이곳에 남아 계속 사역할 것인가. 아니면 교수 자리(?)를 찾아 어느 순간 떠날지 수수께끼로 남겨 둔다.

이글이 최선의 삶을 살다가 앞서 P와 남은 가족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지면을 통해 P의 남아 있는 가족에게 위로를 보낸다.
오래 전 큰 아이 돌이 되었다며 나를 불러 축하예배를 드릴만큼 P와는 친분이 두터운 편이었다. 아들이 아버지 뒤를 이어 신학 수업을 받고 있다 한다. 대를 이어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P를 더 깊이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을 반성하며 사랑의 빚을 갚아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사진설명> 이르쿠츠크 1번 교회에서- 오래 전 어느 성도가 헌납한 집을 교회로 개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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