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그네

by 이재섭 posted Mar 0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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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환 편집국장(기독신문)

탈무드에 한 랍비와 나그네의 대화가 나온다. 랍비의 집을 방문하게 된 나그네가 집안에 살림이 없는 것을 보고 살림살이가 왜 이렇게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그렇게 묻는 당신은 살림살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되물었다. 나그네는 저는 떠돌이 방문객인데 살림살이가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랍비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길 역시 잠시 세상을 방문한 나그네 길인데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싱거운 대화같지만 그 속에 수수한 가르침이 들어있다. 나그네 길 같은 인생여정에서 소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되새기게 한다.

흔히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한다. 원로 대중가수 최희준은 나그네 인생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하숙생으로 노래하기도 했으며 시인 박목월은 일제 식민사회의 암울함을 나그네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추운 겨울 방랑의 길을 나서는 청년의 모습을 그린 뮐러의 시를 가곡으로 만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차디찬 현실을 등지고 길을 떠나는 나그네 인생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나그네라는 이미지 속에는 고단한 모습으로 끝없이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 들어있다. 반면 세상을 포기한 듯, 초월한 듯 달관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나그네라는 개념 속에는 단지 무소유의 의미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한 것은 세월의 덧없음을 이르기도 하지만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하나님 앞에서는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함축되어 있다. 인간으로서의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총체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조들도 인생을 나그네로 그리고 있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130년 인생을 나그네로 표현하였으며 다윗은 주님 앞에서 우리는 이방 나그네 같다며 그림자 같은 세월을 안쓰러워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영원히 머무는 곳이 아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

작금 다툼과 갈등으로 팽배한 한국교계의 실상을 보면서 나그네 인생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2012년 02월 28일 (화)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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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을 떠나 선교지에 머문 날들이 15년 가까이 됩니다. 고국을 떠나 선교사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나그네 인생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날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적은 땅에서 교제의 길목을 가로막은 자가 있어 씁쓸했답니다. 자신을 독보적인 존재(?)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인듯 10년 이상 한국인 크리스챤들과의 접촉을 막아왔답니다. 성탄절이 되어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들을 수 없고 새해 인사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오랜 시일을 보내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모진 태도로 대해야 했는지 심지어 이 자를 옹호(?)한 자들도 있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답니다.

선교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달려갈 생각입니다. 물론 사역하던 곳 또한 다시 돌아갈 마음이 있습니다. 나그네처럼 어디서 머물던지 주위에 예수님을 소개하고 조그만 유익을 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사진설명> 알혼섬 선교 답사갔다가 돌아오는 배에 오르는 이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