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동행

by 이재섭 posted Sep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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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환 편집국장(기독신문)

한 방송사가 매주 방영하는 ‘동행’이란 다큐가 있다. 얼마간의 연출이야 없겠는가마는 우리 사회속에 있는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더불어 사는 사회의식을 심고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보여주는 휴먼스토리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난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감당하지 못할 병이 있거나 수발하기 어려운 가족들이 있는 등 지독히도 불운한 삶이 여러겹 겹친 모습이다. 과연 이런 삶도 있는가, 저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일그러지고 찌든 모습들이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분노로, 또 때로는 희망과 용기로 희비를 느끼게 한다. 대한민국의 최하위 1%의 삶 속에서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동행이라는 말은 함께 길을 가는 것이다. 함께 길을 간다는 것은 같은 운명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동행이란 말은 더불어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엉키고 설키기도 하지만 발을 맞추듯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융화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가렛 피쉬백 파워스의 시 ‘나 한 꿈을 꾸었네’는 시련과 시험의 때에도 우리와 동행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나의 귀한 자, 네가 본 한 사람의 발자국은 너를 업었을 때의 내 발자국 이니라”라는 마지막 부분은 동행의 정점을 상징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동행은 너그러운 마음에서 시작되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지속되며, 사랑하는 마음에서 귀결된다.

실수가 오히려 아름다울 때가 있다. 고의가 아니거나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와 닿는 연민 같은 것이다. 동행자들이 필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이혼하는 부부나 정치권의 이합집산 같은 동행도 있지만 세상은 아름다운 동행이 더 많다.

올여름 더위가 유난히 길고 더한 것 같다. 그러나 세월 앞에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뭉게구름이 한바탕 피어오르고 산들산들한 바람이 불어오면 새로운 자연의 경관들이 펼쳐질 것이다. 이번 가을 풍성한 결실과 함께 흐뭇한 동행의 기쁨들이 있기를 기대해 보자.

2010. 8. 24.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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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을 기대하며-

선교지란 사랑의 실천 현장입니다. 한 나라에서 선교사로 또는 크리스챤으로 먼 나라까지 왔다면 반가움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
누가 뭐라 언질을 주었더라도 앞서 와 있는 선교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라도 알고 한 차례나마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밀양에 사는 장로님 가정 초청으로 잠시 들렸다가 키가 큰 한 성도가 J선교사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첫 방문한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게 되니 좀 당황했습니다. 초면에 이곳 선교지의 이면을 말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생각되었습니다. 듣기는 들었는데 아직 얼굴을 본 적이 없군요.

제가 있는 곳에 누가 오면 일단 우리와 거리를 두도록 하는 무슨 장치가 있나 봅니다. 그래도 그렇지 젊은 사람이 나이든 목사가 선교사로 먼저 와 있다면 한번쯤이라도 만남의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을 한 성도도 그렇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아파트 창 너머 보이는 교회 출신이라는 말에 세상이 좁은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 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누가 꼬집어 비난했다고 해서 상대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바울 사도가 주신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시 133:1,2)

처음 이런 문제를 야기 시킨 자가 안식년인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소위 선교사 모임을 주도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자매가 화목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반대로 명예훼손으로 고발 운운한 사실이 황당하게 생각됩니다.
십 수 년 인생을 더 살아온 목사가 시베리아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수년 전 자기들까지 모여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이를 위한 금식기도라면 금식기도까지 열었다고 하는데 이런 단합대회까지 해가며 결속한 탓인지 누구 하나 선뜻 전화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동행이란 말을 검색했더니 한 귀절이 나오네요. 한번쯤 생각해 볼 말이라 생각됩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언제나 마음문을 열어놓을 것을 약속합니다. 시베리아의 차디찬 겨울보다 얼어붙은 마음들이 조속한 시일 내 녹아들고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위해 기도바랍니다.

<사진설명> 모스크바 국립대 물리학부 박사 과정 유학 중에 잠시 출장 온 기은이-
선교지에서 부모와 십 수 년 살아오면서 이곳 현실과 같은 한국인의 이면을 자주 목도해야 했답니다.
그래도 물리학 수업을 마친 후 신학 수업까지 받겠다고 약속했는데 꼭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