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아빠와 딸

by 이재섭 posted Apr 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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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는 만 7살이 채 못되어 카자흐스탄을 거쳐 러시아에서 줄곧 살아왔는데 얼마전 만 18살 생일을 맞았다. 러시아에서 초중고 생활을 거쳐 대학교 2학년 생활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선교사 가족이라 해도 이쯤되면 러시아 문화와 정서가 몸에 많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특히 러시아는 여자를 아주 높인다. 심한 경우 남성 무용론을 주장하는 여성도 있다.
결혼을 하고도 쉽게 이혼하고 모자 가정을 이룬 채 살아가는 여자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이 경우 형편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고 보고 여러 가지 특혜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 여자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인 탓인지 모자 가정을 이루고도 생활하는데 어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찬미 친구 가운데 친부모와 사는 경우는 절반도 못 미친다. 일부는 두 번 째 남편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화 배경에서 자라나서인지 선교사 자녀라도 여성 우월주의에 빠져들기 쉽다. 더욱이 러시아에서는 나이 차이가 아무리 많이 나도 수평적으로 대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정서와 사뭇다르다. 시대적 흐름이 많이 달라졌다만 부모를 받들고 순종하는 자세가 우리네가 지켜온 사회이다.
늦은 결혼으로 찬미와 무려 36살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이미 타 문화에 익숙해진 탓인지 자기주장을 쉽게 굽히지 않고 맞설 때가 있어 이를 지켜보던 사라 선교사가 긴장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중순 한국에서 파송예배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자녀들만 선교지에 두고 사라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머물렀다. 부모가 없는 동안 찬미가 여자인 탓에 오빠와 동생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식사 때맞춰 밥 달라고 요구하는 동생, 매일 같이 쌓이는 설거지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남자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라 찬미가 아직 어린 나이에 수고가 많았다.

파송예배가 한 달 늦어지게 되어 치과 치료 중인 사라 선교사를 한국에 남겨 두고 이 선교사만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연초에 다시 한국으로 오기로 했다. 사라 선교사가 찬미에게 아빠가 러시아로 혼자 가신다고 말하자 아빠가 와서 뭘해요 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 짐만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의 빈 자리를 대신해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이었다. 멀리 선교 여행도 같이 다녀오고 살림살이를 하는 동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 듯 전보다 훨씬 더 가까와진 것 같다.

이 선교사는 모친이 비교적 일찍 돌아가신 탓에 수년 간 남자들끼리 산 적이 있다. 군에서 몇 달 간 파견지에서 100여명을 먹어 살리는 취사병을 하기도 했다. 야전 공병 부대 소속이었던 탓에 소규모 파견지에는 정규 취사병이 없었다. 그래서 사병을 지목해 취사병으로 근무하도록 했다. 어느 날 중대장이 나를 부르더니 남자끼리 살아왔다고 하니 취사병 자격이 있다 하면서 명 취사병이라고 지시해 그 많은 병사들을 먹여 살렸다.
사라 선교사가 없는 동안 이 선교사가 살림을 도맡아 했더니 아빠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 같다. 남자도 필요할 때면 주방 살림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눈치다.

금년 1월 초 파송예배에 맞춰 이 선교사가 다시 한국에 나간 사이 찬미가 수고를 많이 했다. 그래도 이때는 방학이라 조금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 선교지에 후 두 달이 지나 치과 후속 치료를 위해 사라 선교사가 한국에 다시 나갔다. 자연히 집안 살림은 다시 이 선교사 몫이 되었다.

찬미는 대학생인데다 최근 아르바이트 삼아 막 설립 단계인 한국인 회사에서 통역 등 여러 가지 일을 돕는 중이어서 무척 피곤한 상태이다. 찬미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주방 일에 신경을 써왔다.
어려도 자신이 여자라서 책임감을 느끼는지 틈만 있으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도맡아 한다. 의좋은 형제처럼 사라 선교사가 없는 공백을 부녀가 메워나가고 있다. 살림살이를 맡으면서 찬미와 많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가정 살림을 맡아야 한다는 공동 관심사 때문인 듯- 서로를 위하는 것이 사랑의 기본이다.
막내는 다양한 식단을 선보이는 이 선교사에게 아빠가 요리를 잘해 너무 좋다며 엄마가 없는 동안에도 불편없이 지내고 있다. 금방 나가서 라면 하나, 김밥 한 줄 사올 수 없는 외진 땅을 살아가느라 모두가 수고를 감내하고 있다.

선교사는 전천후가 되어야 한다. 누가 선뜻 나서서 도와주기가 쉽지 않은 타지 생활인만큼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어떤 권위 의식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교사 자녀가 자라나 선교지와 세계를 위해 헌신할 수도 있는 만큼 자녀들이 보기에도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더욱 일상의 생활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5주 정도 사라 선교사가 한국을 다녀오는 동안 슈퍼를 거의 매일 같이 드나들고 손에 물 묻히고 살아가는 이 선교사의 삶이 마치 주부를 연상하게 한다.
선교지에서 선교사 가족이 살아갈 수 있도록 후원과 기도를 계속해 오는 후원교회와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며 기쁘게 오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설명- 멀리 떨어진 엘란츠 마을을 방문 중인 이 선교사와 찬미
알흔섬 입구에 있는 마을로 아직 교회는 물론 기도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