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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의 모습이다. 예배 때가 되면 교회로 갈 준비를 서두른다. 교회라지만 시간제 임대 건물이어서 예배 시간만 교회일 뿐 다른 시간엔 평범한 건물일 뿐이다. 마치 신기루처럼 교회로 변했다가 사라지곤 한다(하지만 이 건물조차 나중에 주인이 바뀌면서 사용이 어렵게 되었다).

시베리아의 3월은 아직 눈과 얼음이 남아 있다. 집에서 교회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20분 걸리는 길이다. 제법 떨어진 길을 걸어서 교회로 간다.
눈을 밟으며 교회로 가는 목사 가족들 손에 등에 가방이며 짐이 들려 있다.
키보드, 앰프, 스피커, 성경, 찬송가, 성도들 간식 등 작은 이삿짐을 나르듯 챙겨서 교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래도 교회로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주일이면 러시아인 전도사 안톤이 짐을 들어주기 위해 목사 집을 방문한다.
함께 짐을 끌고 가던 안톤 전도사가 갑자기 내게 묻는다.
“차는 언제 구할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 후원자가 나서면 그때 구할 수 있겠지.”
춥고 힘들다는 시베리아 땅을 선교하면서 아직 차량조차 없이 지내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는 모양이다. 먼 나라에서 선교하러 온 목사 가족이 등에 지고 들고 가는 짐들 속에 사랑이 실려 있다. 아무래도 좋다. 선교를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해 온지 오래이다.

“제 차가 빨리 마련되면 좋겠어요.”
안톤 전도사는 불과 만 스물 두 살이다. 이르쿠츠크보다 훨씬 추운 야쿠츠 출신이다.
이곳은 겨울이면 영하 40-50도에 이르는 아주 추운 지역이다.
안톤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튼튼해 보이는 몸을 소유하고 있다. 일찍이 아버지와 헤어지고 건강이 안 좋은 어머니와 사느라 고아처럼 지내야 했던 안톤이다.
그래도 일찍부터 교회를 다닌 탓에 일생을 주님께 헌신키로 하고 신학교까지 졸업했다.
러시아 사람은 대개 신학교를 나와도 생활 대책이 없다. 누가 사례를 주는 예가 거의 없다.
그래서 무언가 일 자리를 찾아야 한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남보다 몇 배의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신학교를 나오고도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용하거나 다른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생업에 종사한다. 이를 가리켜 제 2직업이라 한다.
안톤 전도사는 운전 경력이 있어 택시를 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가 선뜻 차를 맡기려 들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 왔다. 자기 차가 없으면 운전할 기회도 흔치 않은 곳이다.

안톤은 지난해 군에 입대했다가 군 생활 중에 그만 머리를 다치고 말았다. 병원 생활을 하다가 의병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머리가 온전치 않아 한동안 일을 쉬어야 했다.
법에 따라 안톤에게 보상비가 나오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아마 중고 자동차 한 대 살만큼 되나 보다. 이 차가 생기면 안톤은 이제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다. 자신의 직업도 중요하지만 외국인 목사 가족을 도울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결혼을 빨리하는 편이다. 안톤에겐 약혼녀가 있다.
신학교 실습을 갔다가 만난 사이라고 한다. 안톤의 생활이 다소 안정되면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한다. 안톤의 자동차에 많은 꿈이 실려 있는 셈이다.
우리가 굳이 안톤을 전도사로 택한 이유는 안톤의 어려운 환경과 성실함 때문이다.
앞으로 결혼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아파트 임대료와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 청년들은 젊어서 결혼하게 되는 만큼 부모가 도울 때도 있다. 하지만 안톤에게는 이런 기대조차 어렵다. 대신 우리가 책정한 사례비가 아파트 임대료만큼 되어 안톤의 살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마 안톤의 결혼 설계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그가 앞으로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바라는 의미에서 전도사로 발탁한 것이다.

아직 주일 예배를 러시아어로 통역하지 않기 때문에 안톤에게 미리 설교 내용을 알려 준다.
그는 한국인 목사와 일하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국어 학습에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 기타를 잘 치는 안톤이 머지않아 중국 조선족 예배 시간에 기타 반주를 하게 될지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로 더 열심히 한국어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안톤에게 말했다. 자식뻘 되는 그에 대해 남달리 관심이 많다.
“한국은 기독교가 발달한 나라이다. 신학책도 많이 있고 앞으로 좋은 협력자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한국어 공부를 잘 해두면 여러모로 유익하다.”

착한 안톤이 아직 이해 못하는 것이 있다. ‘왜 한국 목사가 차도 없이 불편스럽게 다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들은 대개 좋은 차를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인 만큼 아무래도 짚차를 선호한다.
미국 한인 교회에서 파송한 한국 선교사가 얼마 전 신형 승합차로 바꾸었다 한다.
이에 비해 짐을 챙겨 교회까지 들고 나르는 목사 가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벌써 선교지 생활에 접어든지 7년이 되었지만 사실 한번도 차량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물론 집도 소유한 적이 없다. 반대로 차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 선교사를 보기 힘들었다.

그동안 맨발로라도 선교를 할 수 있다면 먼 길을 걸어서라도 다닐 양 살아왔다. 후원자에게 보내는 기도제목 가운데 차량 구입이 필요하다고 써서 보낸 적도 없다. 선교지에 도착하기 무섭게 차가 필요하고 핸드폰이 필요하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선교사도 있는 것 같다.
‘굳이 후원자들에게 짐을 지워가며 선교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버티어 온 것이다.
시베리아의 찬 바람을 맞으며 이곳저곳 걸어 다닌 곳이 적지 않다. 때론 짐을 든 채 다녀야 했다. 선교사의 발길이 수없이 닿은 이 땅이 복음화 되는 날이 속히 오기 바랄 따름이다.

“제 차가 빨리 마련되면 좋겠어요.”란 안톤의 말에 그의 따사로운 마음이 실려 있다.
내달 중엔 군에서 안톤에게 보상비가 지불될 모양이다. 자기 차가 마련되면 우리 가족이 교회 갈 때 등에 매고 손에 들고 다니던 짐을 자기 차에 싣고 교회에 날라주고 싶은가 보다.
얼마전 우리가 협력해 오던 교회와 연관이 있는 미국인 여 선교사가 비자 연장을 위해 한국을 다녀왔다. 러시아 종교비자는 반드시 외국에 나가서 수속을 밟게 되어 있다.
이 여 선교사가 처음 한국 방문 길을 두고 사방에 자랑한 모양이다.

“한국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엄청나게 큰 교회도 많이 있다. 기독교신자들도 무척 많이 있다. 그리고 선교 열정에 싸여 있다.” 아마 무척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와 있는 한국 선교사는 젊지 않은 나이에 그 흔한 차량조차 없이 이런 저런 짐을 챙겨 지고 들고 교회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선교지에 꼭 필요한 것은 차도 집도 아니다. 진실과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차도 좋은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해 못할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는 만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 16)
내면세계의 풍부함을 가지고 진정 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때 진정한 선교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비록 차량이 없을지라도 우리 가족이 선교지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후원해 오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사진설명- 시간제 건물을 빌려 교회를 세웠지만 중국 조선족과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와서
영혼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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