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너게(우뢰의 아들)

by 강진구 posted Feb 13,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www.agapech.kr

보아너게





이 곳 조지아의 번개는 한국과 달리 그 위력이 엄청나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어마어마한 천둥소리는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번개와 천둥이 칠 때에는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천둥과 번개를 통하여 엄청난 양의 질소(nitrogen)가 만들어지고, 그 질소가 이 땅을 기름지게 함으로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모 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을 때에 천둥과 번개가 있었고, 사람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뇌성을 하나님의 임재하심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신(God)의 소리인 천둥과 번개를 두려워합니다.


이방인들은 우뢰(thunder) 소리를 두려워하지만, 신자들은 하늘의 소리를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부하지만, 하늘의 소리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질서를 유지하고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주 님의 12 제자들 중에 특별히 주님의 사랑을 받고, 이너 서클에 들어있는 세 제자가 바로 시몬과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주께서 밤이면 언제나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는데, 그 때에도 언제나 동행했던 제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주님은 이 제자들에게 각기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시몬에게는 '베드로'(반석)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의 별명을 주셨습니다(막 3:17).


보 아너게라는 이름의 뜻은 ‘우뢰의 아들’입니다. 아마도 ‘천둥번개처럼 영향력있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지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삶을 보면 보아너게라는 별명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이나 요한 1,2,3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보면 요한의 문체는 섬세하고 부드럽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수줍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요 한의 형제인 야고보 역시 의롭고 강직한 성격을 가진 자였기 때문에 말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중시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약 2:17)고 하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길에 서서 기도하지 않고, 한 적한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그의 무릎이 낙타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의 우직하고 부드러운 삶과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오늘 우리에게도 천둥과 번개처럼 들려지고 있습니다.





우뢰의 아들





강 단의 설교도 역시 화려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천둥번개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의 영혼이 살찌고, 반석(베드로) 같은 교회가 됩니다. 설교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로 들리기 위해서는 야고보의 행함이 전제되어야 하고, 요한과 같은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 리의 말이 저들에게 우뢰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서는 야고보의 듬직함과 요한의 따스한 사랑이 우리에게 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한다할 지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화려한 말보다는 행함이 있어야 하고, 저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조지아의 날씨가 참으로 변덕스럽습니다. 날씨 때문에 우리의 삶마저도 변덕스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자세가 헝클어지고 게으름을 부릴 때에 천둥 같은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 땅에 말 잘하는 연사(speaker)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 잘하는 목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과 같은 애정을 가슴에 품고, 야고보처럼 낙타 무릎이 되도록 눈물로 기도하는 주의 종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이 땅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 눈물과 기도는 부드럽지만, 우뢰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천둥과 번개는 광야와 같이 메마른 이민사회에 은혜의 소낙비를 몰고 올 것입니다. 우뢰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넉넉한 질소를 공급하여 살림살이를 기름지게 할 뿐 아니라, 건강하고 풍족한 삶으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천 둥번개는 세상을 뒤집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 충격을 주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뢰의 아들’로 부름을 받았다면,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아부하고 타협하는 비굴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아너게처럼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진정 ‘우뢰의 아들’이 될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처럼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될 것이며, 세상은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삶 자체가 저들과 다른 가치를 보여주며, 저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아가페선교교회 www. agape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