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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0 05:11

진화론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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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FALSE GOD OF OUR TIME

RUNNING TIME 1HOURS 31MINS

등장인물; 노만 게이슬러 40대 남 작가,나레이터
카릴 메트리시아나 30대 여 작가
로비 마하리쉬 40대 남 전 구루
과학자 1 40대 남 무신론자
과학자 2 40대 남 무신론자
교육자 50대 남 무신론자
여교사 30대 여 무신론자
폴 10대 남
리차드 10대 남
메리 10대 여
다임 10대 여
다나 10대 여
남자 1 30대 남 범신론자
* 이 외에 남자 또는 여자로 표시된 등장인물은 중복되지 않음.

PART ONE; IN THE BEGINNING?

과학자 1; 무식한 사람들이 신을 믿죠. 옛날 사람들이 믿었던 것은 모두 허무맹랑한 겁니다.

과학자 2; 노아와 방주, 요나와 물고기 요즘 이런 것들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교사; 하나님에 대해 반감을 가질 이유도 없지만 어쨋던 현대 고등교육에서 설 자리가 없어져 갑니다.

교육자; 대부분의 심리학 대가들은 현대인들의 정서불안이 종교적인 도덕관념에서 비롯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현실을 헤쳐 나가고 이세상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수퍼맨,산타클로스,예수같은 인물은 허상이며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본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과학자 2; 진화론을 믿지 않는 학생들을 낙제시키는 것은 곧 그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것은 2더하기 2가 4가 아니라고 믿는 것과 같은 이치죠.

과학자1; 다윈이 남긴 말중에 우리인간은 더이상 이 우주의 창조자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라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교육자;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인 시그먼드 프로이드는 종교는 우리시대의 노이로제이며 우리 학생들에게 이 증상을 물려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여교사; 처음에는 영어시간에 성경을 가지고 했었는데 지금은 폐지 했어요. 성경을 그대로 믿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교육자; 아주 위험한 책입니다. 시각을 좁히고 꽉막힌 국수주의자처럼 만들어 버리죠.

과학자 1; 성경은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줏어 모아 놓은 책이라는 것을 왠만한 지각을 가진 사람이면 다 압니다. 과학은 명백한 논리를 가지고 있죠.

노만 게이슬러; 어릴때 부터 교회에 다녔던 70%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있습니다. 무려 70%나 되고 있습니다. 모두 착실하게 성경을 믿던 아이들이었습니다. 만일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면 산타크로스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진실과 멀어져 혼돈속으로 빠진 결과가 됩니다.

해설; 노만 게이슬러 박사는 ‘우리시대의 우상’의 저자입니다.

노만; 이시간은 증거를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둘 것이며 저희들은 많은 청소년들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제반 사실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릴 것입니다. 이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짚고 넘어 가기를 바랍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과학자1; 저는 확실한 무신론자입니다. 교육자이며 과학자로서 신을 믿어야 할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노만; 이게 무슨 소립니까? 신을 믿어야 될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전에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생각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우주에 신과 같은 존재는 없다고 믿는 무신론입니다.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며 PBS ‘스페이스’시리즈의 유명한 사회자이자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무신론을 유행시킨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우주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합니다. 무신론과 그 파생물인 인본주의는 인간을 진화의 가장 걸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을 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바로 이 우주를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범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고 신은 모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신은 인격이 없으며 단지 우주를 움직이는 어떤 에너지이자 힘입니다. 범신론은 주로 동양종교들의 기본토대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대 기독교사상을 믿는 서구사회에까지 급진적으로 영향을 넓히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영화 ‘스타워즈’의 ‘기’개념은 범신론적 사상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전통적 유대교와 이슬람교로 대표되는 유신론은 신은 창조자이자 영원하며 인격을 가집니다. 절대자입니다. 우주를 창조했지만 속하지는 않습니다. 유신론의 관점에서 신과 우주의 관계는 화가와 그림의 관계로써 비교적 쉽게 비유될 수 있습니다. C.S.루이스는 “신은 우주를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계획하고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화가의 그림이 없어지더라도 화가는 존재한다는 거죠. 작품에는 화가의 내면세계가 포함될 것이고 작품의 특징과 아름다움은 그 화가의 상상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럼 신을 믿을 만한 논리적 근거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말하는 신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과학자1; 저는 갖가지 종교에서 말하는 신들의 이름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요는 우주는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항상 존재하는 것은 그 원인이 필요없죠.

노만; 이것은 무신론자가 유신론자에게 던지는 주된 반론입니다. 여기서 유신론자란 우주를 창조한 존재를 인격을 지닌 신이라고 믿는 자로 한정하겠습니다. 그럼 무신론자의 반론을 보겠습니다. 만일 이 우주가 항상 존재해 왔었다면 신은 그야말로 허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가 항상 존재해 왔을까요?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증거가 과연 있을까요?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이 우주의 모든 현상은 마치 양초가 타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고 합니다. 커다란 에너지 덩어리인 이 우주는 그 비축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에너지는 쓸모없는 열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주의 태옆이 풀린다는 말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영원이란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끝이 있다면 시작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논리적인 생각일 겁습니다. 우주가 영원하지 않다는 또다른 증거는 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에서 찿을 수 있습니다. 이 풍선이 우주라고 가정해 봅시다. 점들은 은하계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흐른 뒤의 우주의 크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주는 팽창을 계속할 것이고 은하계와 별,행성들은 계속해서 멀어져 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의 이 우주는 매우 작았었고 모든 물체가 서로 밀집된 형태를 가졌다고 합니다.

과학자 1; 우주는 항상 존재해 왔고 그리고 존재할 겁니다.

노만; 관찰되는 것은 이와 반대로 우주의 테잎은 풀리고 있는데 이것은 이 우주의 결말이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입습니다. 그리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이것은 팽창의 시작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과학자 2;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주는 단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 원인은 알바 아닙니다.

노만;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이것은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과학이란 학문은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원인이 있다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습니다. 유신론은 이 우주의 원인을 신으로 믿습니다.

과학자 2; 모든 것이 그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신도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신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노만; 잠시 거슬러 올라 가겠습니다. 일부 무신론자들은 우주는 시작도 없고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과학자 1; 요는 우주는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항상 존재하는 것은 그 원인이 필요 없죠.

노만; 항상 존재해온 것은 원인이 필요없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주는 그 시작이 있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신은 어떻습니까? 신은 우주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소모되지 않습니다. 그 결말도 없고 그 원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과학자 2; 우주의 폭팔로 인해 생겨난 것이지 전능한 창조주가 만던 것이 아닙습니다. 우주는 시간과 기회에 의해 생겨난 것입습니다. 신을 개입시킬 필요가 전혀 없어요.

폴; 야! 저기 좀 봐! 누가 두고 갔지!

리차드; 글쎄 발자욱도 없고 지문도 없어. 아마 진화된 것 같아!

폴; 진화됐다구?

리차드; 그래,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큰 폭팔로 처음 생겨났을거야. 세월이 지나면서 모양이 많이 변해왔겠지. 그래서 지금의 모습까지 온것 같아.

폴; 그럼 언제 롤스로이스가 되니?

리차드; 음,글쎄 다른 종인 것 같아.

폴; 너야 말로 진짜 다른 종 같아. 습니다도대체 누가 저기에 두고 갔지?

노만; 누가 두고 갔을까요? 자동차는 많은 지식의 결정체라는 것이 아주 분명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아주 합당한 질문입니다. 여기 자동차 옆에 적힌 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사막의 한 가운데 있는 돌위에 이런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적어 놓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아주 간단한 글자조차도 그 원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쇄소의 활자가 폭발하여 웹스터 대사전이 생겨났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습니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것은 그 원인이 존재한다는 전제는 매우 논리적이며 중요한 생각입니다. 심지어 무신론적 과학자들도 외계인을 찿는데 이 전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을 기초로 하여 그들은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되는 우주탐사를 하고 있습니다. SETI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외계정보 수집에 몰두하고 있는 칼 세이건이 그 예입니다. 우주 공간에서 짧은 메세지라도 잡힌다면 그것은 외계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메세지의 근원이 외계인이라는데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엄청난 메세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살아있는 유기조직에는 이런 전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S.O.S.구조 신호는 사람이 보낸 것으로 생각하지만 방대한 양의 백과사전은 우연히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이것이 합리적입니까? 여기에서 창조주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 또다른 근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그것은 규칙성으로써 가공할 만한 메시지와 디자인들이 정확한 질서를 이루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칙성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도 너무나 쉽게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막힌 조화를 결코 우연으로 넘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것은 우주, 특히 유기조직체의 고도의 정보와 지적디자인이면에는 창조주가 있다고 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입니다.

교육자; 인격적인 신의존재에 대한 적절한 반론은 이 세상에 악과 부정이 판치고 있다는 것도 될 것입니다.

노만; 신을 믿고 있고 최소한 도덕적으로 생활하려는 사람들은 악은 신을 버린 결과로써 받은 부산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의무로써 규정되지 않을때 사람의 선택은 선을 행할 필요가 없는 악이었습니다.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요는 사랑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이 구현되려면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결국은 사람이 선택하여 이 세상에 퍼져 있는 것이 바로 사랑하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유신론자들은 신이 개입하여 이 악을 영원히 추방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정의란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의 반론에 대해 조금 더 짚고 넘어 가겠습니다.

메리; 히틀러를 어떻게 생각해?

다임; 최고로 나쁜 사람이지.

메리; 어떤 기준으로?

다임; 사람이 해야 할 일과 그가 했던 일을 비교하면 히틀러는 최악이야.

메리; 그럼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뭔데?

다임; 그야 옳은 일이지.

메리; 그 옳은 일은 어떻게 알아? 과연 옳은 일이 뭐지?

노만; 이것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객관적인 선의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악을 악으로 규정짓겠습니까? 무신론자들의 가슴에 그 기준이 없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부정이 만연하다고 불평하겠습니까? C.S.루이스가 크리스챤이 되기 전에 이 세상의 잔인함과 부정함을 가리키며 신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럼 정의와 부정이란 개념을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직선을 알지 못하면 곡선을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 우주에 빛이 없었다면 눈을 가진 생명체도 없었을 것이고 어둠 또한 몰랐을 것입니다. 어둠이란 개념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일까요? 도덕적 신을 믿지 않는 자라 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부도덕과 부정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도덕적 기준이 있다는 말입니다. 유신론자는 이것을 신이 부여했다고 믿습니다.

과학자 1; 저는 확실한 무신론자입니다. 교육자이며 과학자로서 신의 존재를 설명할 논리적 근거를 찿을 수 없다고 봅니다.

노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정리하겠습니다. 과연 논리적 근거가 있을니까?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첫째로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야 한다. 둘째로 우주는 시작이 있다. 그러므로 셋째는 우주는 원인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우주의 근원은 없다고 말합니다. 유신론자들은 우주의 원인을 신이라고 믿습니다. 누가 더 논리적입니까? 이 세상의 생명체 내부에는 방대한 정보가 내재해 있고 전체적으로 훌륭하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적인 발견 또한 어떤 존재의 설계와 작품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우연히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질서가 그 속에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더 논리적입니까? 우리는 부정과 악,부도덕,시기 같은 것들을 혐오하고 있는데 이것은 선과 도덕,정의,사랑의 기준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무신론자들은 부도덕과 부정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도덕과 선의 절대적 기준이 있다는 것은 부정합니다.

경찰이 있다는 말은 도둑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적인 도덕적 창조자가 있다고 믿는 유신론자들의 생각은 합리적인데 반해 무신론자들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유신론을 지지한 사람들은 그들이 신의 존재를 믿는 근거를 합리적으로 제시해 왔는데 무신론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은 “이것은 나를 당혹하게 만드는군. 이런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건 말도 안되!”라고 말했습니다. 이 총명한 과학자는 우주 자체를 신으로 보았던 그의 가치관이 무너져 내리는데 대해 낙심했던 것같습니다.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이런 말은 합리적입니까? “우리가 우리보다 위대한 존재를 숭배해야만 한다면 그 대상을 태양이나 별로 하면 어떨까요?”

이곳은 ‘레드 라이온’광장으로 저는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의 집을 찿아가 보려 합니다. 그는 1970년에 사망했으며 그가 쓴 책중에는 ‘나는 왜 크리스챤이 되지 않는가?’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신은 없다.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야 하며 신 또한 원인이 있어야 한다. 신의 원인이 없듯이 우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받들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곳은 챨스 다윈의 서재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그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의자에 다윈이 앉곤 했습니다. 무릎에 올릴 판자를 가져다가 팔걸이에 걸쳐놓고 여기서 집필하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바로 이런 자세로 그가 완성한 책이 1859년 출판된 그 유명한 ‘종의 기원’입니다. 이책은 그 원본의 복사본으로써 다윈이 직접 써서 초판 발행한 책입니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중의 한 권으로써 과학세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책입니다. 이 책으로 챨스 다윈은 현대과학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놓았습니다. 다윈은 이 책을 통하여 지금 이 세상의 고등생물체는 생명체는 태고에 그가 ‘벌레 웅덩이’로 부르는 곳에서 시작된 아주 단순한 생명체들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는 진화론의 목적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진화론적인 개념에는 창조자나 절대자가 들어 올 여지가 없다” 과연 그들이 절대자를 믿지 않습니까? 무신론자들에겐 합리적 설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어떤 과학잡지에서 인용한 글이 있습니다. “진화론은 사람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 이유는 이것이 증명된 사실이라기 보다는 허무맹랑한 창조론에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일의 유명한 무신론자 프레드릭 니체의 말에서 보다 더 명백해집니다. “우린 신이 신이길 부정한다. 만일 기독교의 하나님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더욱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전기를 보면 죽기전 10년동안 이 문제를 고뇌하면서 정신병동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으나 그들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고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증거는 자명하고 무신론자의 대부분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것으로 미루어 그들은 증거의 부재때문에 무신론자가 된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정신적 문제가 아닌 도덕적인 것입니다. 두뇌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입니다. 다윗왕은 이런 사람들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PART TWO; COUNTNFEIT GOD

여자(20대); 물론 나는 신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습니다 하지만 내가 신이라면 구체적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낼 거예요. 이를테면 파도나 모래나 바다처럼 말이예요.

남자(30대); 아뇨,신을 믿지 않아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존재죠. 부족함이 없고 완벽하기 때문에 굳이 종교를 가질 필요가 있겠어요?

남자 1(30대); 글쎄요, 성경의 하나님도 인격을 지닌 여러 신들중의 한 분인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 분도 이 땅과 우주와 생명을 창조한 신입니다.

노만; 조금전에 살펴 보았던 유신론은 우주의 창조자인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 신은 우주를 무에서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견해입니다. 아울러 창조자의 존재를 믿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인 생각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 견해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주 기원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그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과학이 발견한 것은 우주의 시작이 있었다는 것입습니다. 완벽한 질서가 있고 수많은 생명체 내부에 방대한 정보가 있고 우리 마음속에는 도덕관념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신론자들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창조주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그 존재는 하나님이라는 거죠.습니다 그러고 이 외에도 많은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범신론과 다신론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남자(20대); 요가와 명상에 빠졌어요. 그래서 힌두교와 불교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신이고 신은 모든 것이라고 믿고 있죠.

여자(30대); 지구에는 지구의 신이 있듯이 우주에는 많은 신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들은 우리도 신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죠.

남자(20대); 말하자면 범우주적 존재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사고의 본체로써 우리는 여기에 연결되어 있죠.

남자(20대); 신은 있어요. 하지만 그 신도 손을 못 쓸 만큼 세상은 타락해 버렸습니다.

노만; 신에 대한 의견이 다양한데다가 서로 혼합되어 더욱 혼란스러운 양상을 띱니다.

여자(30대); 그래요,예수를 믿어요. 그는 부처나 마호멧이나 간디처럼 위대한 선지자죠.

남자(30대);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표은 같습니다. 길은 여러 갈래지만 한 곳에서 만나죠.

남자(30대); 성경의 하나님도 ‘스타워즈’에 나오는 ‘기’와 같은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잘 못느끼고 있죠. 우리가 신의 일부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상 그 힘을 꺼내어 쓸수 없다고 생각해요.

노만; 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은 무한히 큰 존재이기 때문에 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들어면 옳은 것 같지만 이 의견들은 서로 모순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두 의견을 들어 보십시요.

남자 1(30대); 성경의 하나님도 인격을 지닌 여러 신중의 한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분도 이땅과 우주와 생명를 창조한 분입니다.

여자(20대); 신은 창조주가 아니며 모든 물질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힘입니다. 그래서 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생물에 불과합니다.

노만; 이렇게 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도 서로 모순된다면 그건 진실일 수 없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두번째 시간에는 이들 의견이 유신론과 다른 점을 살펴 볼 것입니다. 그 다른점을 분석해 가면서 진실과 허상을 가려내는 방법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비 마하리쉬’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작가입니다. 그는 자서전을 통하여 직접 체험한 힌두 구루 세계와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경위를 밝혔습니다.

로비 마하리쉬; 범신론자들은 모든 것은 신의 일부이자 신 자체이며 또한 모든 것은 하나이고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 모습이 서로 다르고 다양할지라도 결국에는 같은 신으로 귀결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사상을 제외하고 힌두교는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제외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만이 길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죠.습니다 저는 북미와 서부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동양종교에 심취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범신론자들의 믿음과 행위가 이젠 일반화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본인 내부에 종교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자(20대); 저의 사촌은 YWCA 요가 강사입니다. 저에겐 그것이 단지 운동이라고 해요. 그런데 명상을 많이 합니다. 도대체 명상이 운동이 될수 있나요?

폴; 요가는 힌두교에서 나왔대. 우리 숙모는 환생했다고 믿고 있어.

다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대?

폴; 살빼려고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가 숙모에게 최면을 걸자 숙모가 이상한 억양으로 남자목소리를 내더래. 최면상태로 전생을 더듬어 올라 갔다 왔다는 거야.

다나; 우리 아빠도 사업세미나에 갔는데 강사가 뉴에이지운동을 권장했다더라.

폴; 어떤 건데?

다나; 사람은 자기가 상상하는 모두것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대.

폴; 그래서 하기로 하셨니?

다나; 인사담당자에게 물었는데 그 사람도 최신경영이라고 동의했다는 거야.

폴; 네 삼촌과 항상 같이 다니는 그 이상한 사람 기억나니?

다나; 그 마약 상습자 말이니?

폴; 그래, 항상 오로라니 업보니 우주와 하나가 된다,유체이탈,영혼안내자와 만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쟎아!

다나; 그런데 그 사람은 멀쩡한 정신으로 도지히 그런걸 못한대.

폴; 아참! 너 ‘기’를 어떻게 생각해?

다나; 기라고? 영화 ‘스타워즈’에 기라는 말이 나오던데 바로 그 ‘기’말이니?

폴; 영화속에만 있는 이야기라고 믿고 있니? 너도 참! 기로써 신이 되려는 사람이 있단 말야!

노만; 범신론자들은 신은 인격이 없는 ‘기’이며 모든 물질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세상 모든 것이 신이며 심지어는 질병,타락,죽음까지도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범심론자들,특히 크리스챤 사이언스는 질병과 죄는 잘못된 생각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범신론자들 중에서 병들지 않고 죽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범신론자들은 우주의 만물은 마치 불타는 사막에서 탈진한 사람이 오아시스의 환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착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차를 몰고 가던 범신론자가 다른 차를 들이 받았을 때는 단지 환상이 무너지거나 착각이 깨어 질때의 수준을 넘어서 죽음으로 끝날 뿐입니다. 범신론자들은 사람은 스스로가 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신은 불변하는 절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신임을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변하지 않고 신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성적이지 못한 것을 자랑합니다. 오직 신비주의적 경험만이 신을 아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성은 사람을 신에게 떼어 놓는 환상입니다. 그렇다면 이성이 없는 가운데 신비주의적 경험과 환상을 어떻게 구별한단 말입니까? 범신론자들은 그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성을 배제하고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습니다 범신론자들은 실제 많은 경험을 합니다. 그들의 경험이란 주로 요가와 명상,마약,최면등으로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하여 신을 경험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믿습니까?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말로써 표현하기 힘들며 아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대답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성은 환상이기 때문에 믿지 말라고 하는 그들이 특정한 경험이 어떻게 신의 체험인지 아는가 하는 것입습니다. 다신론은 많은 신을 숭배합니다. 이집트는 많은 신들로 유명한 나라입습니다. 이것은 피라미드로써 근처에는 수많은 신전과 신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들의 우상숭배를 이집트의 역병이라고 말했습니다. 물신,하늘신,개구리신도 있습니다. 고대인의 사상이었던 이 다신론은 20세기에 다시 부활하여 동양에서 서양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는데 이젠 미국내에서도 쉽게 관찰되고 있습니다. 다신론은 범우주적 절대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들의 힘은 제약되어 있고 어느 특정한 분야에만 개입되는데 자연과 결부된 비신,해신등이 그 대표적입니다. 비옥과 전쟁,아름다움,사랑을 지배하는 신들도 있으며 생활중에 조그만 불행이 닥쳐도 그 재앙의 원인을 신으로 돌려 버립니다. 한가지 이상의 신을 믿는 풍토는 문명화된 현대사회를 고대사회로 돌려 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신론은 현재 번창일로에 있습니다. 몰몬교로 알려진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의 회원은 무려 5백만명에 달합니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를 분리된 신으로 보며 남성회원들은 하나님처럼 자기세계의 신이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중에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연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은 자연의 신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권신장운동에 가담한 여성들중 일부는 현재 여신복고사상을 외치고 있는데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처럼 남성우월주의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완강히 거부해 버리는 것이 특징입습니다. 오늘날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주술행위자들은 고대인들의 신을 숭배하며 지하세계의 영혼들과 접촉하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서구사회에 유행하는 주술행위는 지혜의 근원을 찿는 다신론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여기엔 어린아이들도 예외일 수가 없는데 지하 신들의 세계에 흥미요소를 가미한 ‘던전 앤 드래곤’같은 게임과 우주의 지배자로서 ‘히맨’과 ‘쉬라’같은 만화주인공등이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다신론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들이 많으면 그만큼 혼란해 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은 선하고 어떤 신은 악합니다. 양면을 다 가진 신도 있고 그 능력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이 우주전체의 주인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렇게 다양하기 때문에 진정한 화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체 실권을 쥐는 존재가 없는 한 어떤 선한 일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 맞다면 신들은 항상 골머리를 앓을 겁니다. 이 세상은 수많은 남신들과 여신들간의 싸움 그리고 인간들과 신들간의 싸움등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가수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과 다를게 하나도 없을 것입습니다. 다신론과 유신론의 또다른 차이점은 유신론은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증명된 증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다신론은 지탱할 수 있는 그 어떤 기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란 맹목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노만; 성경은 역사적 기록입니다. 성경의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이곳 이집트에서 있었습니다. 이곳은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홍해로 갔던 길이며 예수가 한동안 어린시절을 보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단지 신화가 아닙니다.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와 중동지방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발굴해 내었습니다. BC 8세기경에 산헤립에서 포위된 예루살렘은 적군의 눈에 띄지 않게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해 터널을 팠다고 합니다. 역대하에 기록되어 있는 그 터널은 오랫동안 비평가들의 시비대상이 되었는데 마침내 고고학자들에 의해 이렇게 모습을 드러 내었고 이로써 성경은 하나님의 예언과 말씀이라는 것이 또한번 증명된 셈입습니다.

전세계 유수 박물관에는 성경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수만가지의 고고학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유물을 통하여 성경의 구약과 신약이 진실한 기록이라는 것을 여러모로 확증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수천가지의 증거를 볼 수 있는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입니다. 무신론자나 회의론자,경험론자라고 생각한 분, 여기 오셔서 직접 보신후에 믿으시기 바랍습니다. 무신론은 어느 곳에도 신은 존재치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어느 장소에도 어느 시간에도 신은 없었지만 우주는 항상 있었다고 무신론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말합니다. “우주는 항상 저기 있다.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챨스 다원은 창조주의 생명체를 자연적 선택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진화의 산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신론자의 가까운 사촌은 지상 인본주의입니다. 지상 인본주의 역시 우주는 스스로 존재해왔고 창조주는 없다고 표방합니다. 그러나 이 지상인본주의의 숭배 대상은 다름이 아닌 인간입니다. “어떤 신도 우리를 구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를 구해야 한다.”라는 것이 인본주의 선언서 내용입니다. 무신론적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는 “인류의 이상은 인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인본주의 심리학자 프롬은 신은 실제하는 절대자의 상징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상징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창조주로서의 신을 몰아내어 버렸고 그 빈자리에 다른 우상을 앉혀 놓았는데 그것은 우주와 자연 그리고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무신론자들, 특히 교육분야의 완강한 무신론적 입장은 어느 유명한 작가의 말을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멍청할 정도로 비이성적이라는 것과 특히 그것이 기독교같은 종교일 때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무신론자들은 절대적이고 인격적인 이 우주의 창조자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자의 논리를 이렇게 상식에 어긋나는 억지로써 다음과 같이 공격하기도 합니다. 유신론자들은 신이 스스로 자신을 창조했다고 믿고 있으며 이것은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했다는 비논리적 주장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신이 스스로 그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유신론자들이 신은 스스로의 원인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신은 자신의 원인이 아니며 단지 영원합니다. 반면에 우주는 시작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 우주의 원인을 성경의 인격적 하나님이라고 유신론자들은 믿고 있는 겁니다. 무신론자들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무신론적 철학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 빅뱅이론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에 어떤 특정한 시간에 이 우주전체가 시작되었다.” 그러면 무신론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이 우주는 단지 무에서 탄생되었다고 믿어야만 합습니다. 그리고 창조주를 부정하기 때문에 이 우주의 질서 또한 시간과 기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무신론자의 유신론에 대한 반박이 첫째로 너무 비논리적이다, 둘째로 우주는 시작이 없다라는 것으로 일관되는 한 그들에게 진정한 논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습니다.

이러한 신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은 단지 그들의 상상속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취하게 되면 그들은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전생의 죄를 현세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업보의 법칙을 믿는 범신론자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철저히 무관심합니다. 돕는 것은 받는 사람의 내세에 부담을 줄 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에 대한 관심은 신이 되는 길에 방해가 되며 오직 요가와 명상같은 자기 성찰적 수양을 통해야만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상들은 순진한 서구인들을 고립시키고 자기만 아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간혹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범신론자들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박애적인 행동은 그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사상에 기독교등의 다른 사상이 혼합되어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러나 두가지 사상이 결합된 이런 형태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동양의 범신론 사상을 추구하는 ‘헝거 프로젝트’가 그 한 예입니다.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아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이라고 믿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동참했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한 곳에 모여지면 우주의 기운도 여기에 순응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신론은 하나님을 거부함으로써 도덕율을 버렸습니다.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도덕의 절대 기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의 지배세력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은 약육강식의 법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선과 악을 재는 잣대는 항상 변합니다.

도덕적 절대 기준없이는 어떤 발전도 기대하지 못합니다. 무신론자들도 이런 상황의 타개책으로 어떤 절대 기준을 제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연이었고 이념이었고 또는 자아가 되었던 것입습니다. 신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의 차이점을 지금까지 살펴보았는데 이 차이점들은 그들의 행동과 그 목적에서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예를 들어 범신론과 기독교적 유신론을 비교해 보면 자아에 대한 생각이 정반대입니다. 범신론은 자아를 신성화합니다. 자아지향적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자아를 부정하는 타인지향적성향을 강하게 띕니다. 기독교의 타인 지향성은 매우 두드러져서 수천년 동안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간혹 십자군 원정이나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어떻게 생각되어져야 하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들 두가지 역사적 사건들이 기독교 기본 정신을 흐트렸다고 보진 않습니다.

반면에 수십대에 이르는 롤스 로이스를 굴리고 있는 인도 구루들의 생활은 그들의 범신론적 무소유 사상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상이 무엇이건간에 그들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절대적 양심에 어긋난다는 느낌이 생겨나게 하고 있습니다. 저 뒤에 윌리암 윌버포스가 다녔던 교회가 있습니다. 1
833년에 사망한 그는 현대사회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아브라함 링컨으로서 국회에서 혼자의 몸으로 노예폐지법을 통과 시켰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1791년 그는 윌버포스에게 이런 편지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누가 앞길을 막겠습니까? 두려워 말고 정진해요.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계속해봐요.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미국의 노예제도는 저 세상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윌버포스는 그의 영감을 실현시켰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두번째 시간은 신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들과 그것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발생되는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이였습니다. 과연 그 차이는 아주 컸습니다. 평생을 기독교적 유신론을 비판하며 보냈던 버트란트 러셀은 이렇게 시인한 적이 있습니다.
“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크리스챤의 사랑과 어떤 박애 같은 것들이 바로 존재의 동기이자 행동의 지침이고 용기의 이유이며 이것으로 인해 진리의 갈구가 생겨난다.”

프랑스의 무신론자 존 폴 사르뜨르는 성경의 하나님을 거부할때 초래되는 심각한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신이 없어서 우리 행위에 적법성을 부여하는 어떤 가치나 기준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고아가 될 것이다.” 그릇된 신에 대한 견해는 그 받아들이는 정도에 관계없이 그 결과는 파괴와 죽음입니다. 이런 선택에 대한 결과가 로마서 1장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히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사기,악독이 가득한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PART THREE; MIRACLE,SCIENCE OR SUPERSTITION?

남자(50대); 성경을 보면 신이 이룬 사건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것들을 자연의 법칙과 질서로써 이해할 수 있어야만 됩니다.

남자(50대); 반복된 경험만이 진리로 간주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증거 불충분으로 단정되어야 합니다.

남자(50대); 기적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연적 현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남자(50대); 예수의 부활이 쥬피터 신에서 생겨난 미네르바가 바벨을 세웠다는 신화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될 날이 올겁니다.

남자(50대); 자연과학과 같은 학문들이 초자연적 기적들을 우주밖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노만; 수세기에 걸쳐 많은 위대한 학자들이 기적의 가능성을 배제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의 세번째 시간에 이들의 반론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들어가기전에 전시간 내용을 잠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시간에는 창조주를 믿는 것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를 다루었습니다. 무신론자는 우주는 항상 존재해 왔고 창조주는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창조주의 존재를 비합리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과 논리를 동원해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보였습니다. 놀랍게도 과학의 발견들은 우주가 시작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시작이 있다는 말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시작이 있으면 원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주 또한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원인이 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여기서 ‘그 무엇’은 여러 가능성을 미루어 ‘그 누가’가 적합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초등생물에 조차도 고도의 정보가 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적 존재의 작품임을 나타냅니다.

하나의 비유로써 러쉬모아 산의 조각과 그랜드 캐넌의 자연을 고려해 봅시습니다. 이것들의 원인으로 비,바람같은 비인격체와 인격체로서 조각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 봅시다. 당연히 비와 바람은 와싱턴과 링컨,제퍼슨,루즈벨트의 얼굴을 정확히 깍을 수 없기 때문에 러쉬모아 산의 얼굴상의 원인은 조각가라고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조각의 원인은 ‘무엇’이라는 것보다 ‘누구’라는 것이 적합하죠. 그런데 이 우주의 초등생물조차도 러쉬모아의 조각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도의 정보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와 모든 생명의 원인을 그 어떤 지적존재로 귀착시키는 것입니다. 우주와 생명을 창조했지만 창조물속에 포함되지 않는 지적존재를 유신론자는 신이라고 부릅니다. 두번째 시간에는 유신론과 다른 사상들을 서로 비교했는데 주로 무신론과 범신론을 다루었습니다. 범신론은 신은 비인격체이며 모든 것은 신이며 신은 모든 것이라는 사상입니다. 범신론자들은 신을 충만한 에너지,포괄적인 인식,범우주적 자각등으로 생각합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기’라는 말은 오늘날 범신론자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한 예입니다. 무신론은 신이 없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신론자들이 창조주를 믿지 않는 대신에 다른 대상을 숭배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광활한 우주를 섬깁니다. 어떤 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숭배합니다. 어떤 이는 사람의 지배자로써 이념을 섬깁니다. 우리는 두번째 시간을 통해 그들의 사상이 서로 모순되어 모두 진리일 수 없는 생각들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은 비인격체로써의 성품과 인격체로써의 성품을 모두 가졌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동시에 양면을 가질 순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개인과 집단,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유신론자들은 신은 인격적이고 지적이며 우주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별개로 존재합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다룰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신은 세상일에 개입하는가 아니면 방관만 하는가? 다시 말해서 기적은 가능할까요?

과학자 1;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을 기적이라고 하죠. 신도 마찬가집니다. 자연의 법칙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과학자 2; 기적은 예측불가하고 반복되지 않으며 유일하기에 비과학적입니다. 과학은 확률과 규칙성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자인 저로서는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와 기적이 신이 한 일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기적을 믿을 근거가 없죠.

노만; 우리는 우주의 설계자이자 창조자인 신의 존재를 시사하는 많은 과학적 증거를 찿아 냈다고 생각합니다. 기적을 못 믿는 사람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뛰어난 사람들이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해 왔습니다. 버트란트 러셀도 시도했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도 “물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도 없다.”라는 짧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존재하기만 하면 기적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기적을 비과학적으로 간주해 버릴까요?

과학자 2; 기적은 예측불가하고 반복되지 않으며 유일하기에 비과학적입니다. 과학은 확률과 규칙성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노만; 과학이 규칙성의 학문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수없이 떨어뜨리면 꼭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실험으로 중력이란 과학법칙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은 확률을 다룹니다. 제가 손에 쥔 사과를 놓았을때 그냥 떨어질 확률은 경험에 미루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떨어지는 실험을 수천번했었는데 72번째 실험에서 사과가 공중에서 10초동안 머물렀다 떨어진 일이 단 한번 생겼다면 이 72번째 실험은 전혀 과학적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이후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기적에 대한 주된 반론입니다.

과학자 1; 기적은 유일하고 반복되지 않고 거의 확률이 없기 때문에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믿어선 안되죠.

노만; 그러면 만일 여러분들이 브릿지 게임을 하다가 확률이 육백 삼십 오억 백 삼십 오백만 오천 구백 육십분의 일인 ‘퍼펙트 핸드’를 했을때 방금 이 과학자들의 말처럼 유일하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그 게임을 무효화하고 다시 하자고 합니까? 필드에서 거의 확률이 없는 홀인원을 기록했을때 여러분 중에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남자(20대); 설마 사실이라고 믿진 안겠죠? 다시 치도록 합시다.

노만; 이런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일어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런 일을 규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 터무니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자(20대); 당신이 홀인원하는 것을 옆에서 봤지만 유감스럽게도 과학자인 저로서는 10번만 더 홀인원을 해야만 믿겠습니다.

노만; 과학세계에서 기적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반복되어야만 한다는 것입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시작과 같은 엄청난 일들은 되풀이 될 수 없는 큰 사건입니다. 한 번 일어 났으며 되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습니다 과거의 기적들은 말로써 전해져 왔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 그들은 현재 외계인의 정보수집을 위한 SETI프로그램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과 같은 과학자들이 관계하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지능을 가진 외계인의 메세지를 탐지하여 그 존재를 확증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탐지된 메세지는 단 한 건입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분석해 보면 기적에 대한 소위 과학자들의 반론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인식할 정도로 되풀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적을 배제해 버리는 과학자들은 어이없게도 ‘빅뱅’설을 믿고 생명체의 진화를 믿고 있습니다. 이것들 또한 되풀이 되지 않음에도 말입습니다.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은 기적중의 꽃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찿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의심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대이빗 흄은 말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우리 주변에 관찰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확증할 수 없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면 그것을 믿어선 안된다.”

부활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한 번 있었고 그후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무생물에서 진화되었다는 것은 믿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계속 반복되지도 않고 있쟎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진화를 믿습니다. 직접 과거로 가서 확인해 볼 수도 없고 오늘날 전혀 되풀이 되지 않는데도 진화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긴 세월동안 내려온 과거의 흔적을 나름대로 분석해 본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믿음에 비해 나을 바 없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온 어떤 기록을 통해 부활의 기적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격자의 기록입니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여러가지 사상이외에도 기적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믿음을 표방하는 또 하나의 주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주의라고 불립니다. 모든 존재와 모든 현상은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신은 우주의 일부로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적어도 이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기적 또한 존재치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릅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이 자연주의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자연주의는 종교적 색채도 띠고 있습니다. 쉽게 납득이 안가시겠지만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중에는 기독교신자가 아닌 자연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신약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궁금하실 겁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아마 이렇게 했을 겁니다. 이것은 제퍼슨의 성경입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신중하게 읽어 보다가 던져 버렸을 겁니다. 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자연주의자들은 초자연적 신의 개입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모든 현상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고 믿습니다. 신이 이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왜 그들은 기적의 가능성을 부정할까요? 성경의 기적을 믿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제퍼슨은 아예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믿은 것같습니다. 이들의 생각으로 부터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첫째로 신의 존재를 강력히 믿는다면 기적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입니다.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증명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가능성의 전제는 열어 두었습니다. 그 반면에 기적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부터 증명해야만 되는데 이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기적을 부인하는 과학자들의 논리는 기적이 유일하고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고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빅뱅이나 우발적인 생명체의 탄생과 같이 유일했던 사건은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현재 이러한 일 또한 되풀이 되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교육자; 기적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접어두고 영적힘과 표적운운하면서 꼭 같은 기적을 보여주는 종교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데 어떻게 신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까?

노만; 좋은 지적입니다. 범신론에서 수많은 구루들이 소위 표적으로써 불가사의한 일과 기적을 일으키며 자신들이 신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전혀 그 확증은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스스로 신이라고 말하면서 죽은 사람을 살림으로써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이곳은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후에 예수가 이곳에 왔을때 그의 몸은 썩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소리치자 그가 무덤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는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니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 사상의 절대적 기반은 오직 예수만이 사람의 몸으로 온 신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독특한 그의 기적입니다. 예를 들어 부활의 기적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기다릴 구세주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살다가 그냥 죽어버린 다른 종교의 지도자와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기적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종교들이 같은 표적과 기적을 가졌기 때문에 기적은 더이상 그들 신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범신론자들의 기적과 기독교의 예수가 행했던 기적이 다를 것이 없다면 그 기적들은 더이상 쓸모가 없게 됩니다. 범신론과 기독교는 그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둘다 진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같으면 적어도 그 기적은 각 종교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적은 기독교의 기반이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연 모든 종교의 기적이 같을까요? 아니면 기독교에는 다른 종교에서 찿을 수 없는 어떤 독특한 표적이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다른 종교와 달리 그 진리의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이런 면에 중점을 두어 기독교사상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PART FOUR; JESUS CHRIST,GOD OR GURU?

여자(20대); 구루 사이바바는 세상에 내려온 신이고 이 시대의 화신입니다. 독심술을 하고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그것을 증명하죠.

남자(40대); 라즈니쉬만이 유일한 신입니다. 그의 거룩한 능력을 느끼려면 직접 만나봐야 합니다.

남자(30대); 마하리쉬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신이 되는 길을 펼쳐 놓았습니다.

남자(30대); 스와미는 우리 신입니다.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병을 치료해 줍니다. 그분 발에 닿았던 먼지 조차도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어요.

노만; 이 프로그램의 네번째 시간은 기적들,특히 기독교 사상에 관련된 기적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전 시간에 언급했던 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유신론자들은 우주을 창조했지만 그 일부가 아닌 지적이고 인격적인 창조주의존재를 믿습니다. 이러한 창조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요 반론은 과학적 증거와 논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이슬람교 그 외에 기독교는 이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이에 반해 범신론은 그것을 우주에 퍼져 있는 일종의 에너지 또는 범우주적 인식 같은 힘이라고 하며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고 모든 것의 일부라고 합니다. 그밖에 지난 시간에는 우주를 창조한 인격적인 신이 존재하면 기적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적이란 그가 창조했지만 이 우주의 일부분이 아닌 신의 독특한 행위이며 그의 목적과 존재를 시사하는 특별한 표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 기적에 대해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교육자; 기적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접어두고 영적힘과 표적운운하면서 꼭 같은 기적을 보여주는 종교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데 어떻게 신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까?

노만; 이것은 중요한 지적으로써 신에 대한 견해가 서로 전혀 다른 두 종교가 같은 기적을 행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큰 모순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기적으로 이 세상에 개입하여 왔기 때문에 이 반론은 기독교 사상의 존립에 관계됩니다. 왜 그러냐고요? 모순된 사상은 둘다 진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교가 견해는 달리 하면서 그 신의 기적이 같으면 어느 종교가 진리인지 판단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종교의 기적이 모두 같다는 말이 과연 진실일까요 아니면 거짓일까요? 힌두교와 불교,뉴에이지운동 그리고 서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마법등의 토대가 되는 범신론에서는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 우주에 포함되어 있고 인격이 없는 에너지가 독특한 방법으로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기적이란 우주에 퍼져 있는 소위 ‘기’라는 것을 이용하여 자칭 신이라는 사람에 의해 행해진 일에 불과합니다. 아주 소수지만 일부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모두 신이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놀라운 일을 하는 정도에 따라 대접받는 정도도 달라 집니다. 다시말해서 다른 사람보다 높은 수준의 놀라운 일을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더욱 신에 가까워 졌다는 것으로 해석됩습니다.습니다 이곳은 예수가 살았고 가르쳤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던 예루살렘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동양의 구루들입니다. 제 곁에 있는 분은 19년간 인도에서 살면서 그런 거짓 예수들을 보아왔던 카릴 메트리시아나입니다. 카릴은 베스트셀러 ‘새시대의 신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카릴,예수와 동양의 자칭 신인 구루들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카릴; 신에 대한 동양적 개념은 인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뿐만아니라 바람,동물,나무에게도 있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에너지 또는 자각이라고 그들은 부릅니다. 그들은 예수를 인격체가 아닌 단순히 마음의 상태로써 언급하고 있어요.

노만; 그래서 우주를 초월한 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속에 내재해 있는 신을 발견해서 스스로 신이 된다는 말이 가능하겠군요.

카릴; 어떤 구루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신도 나쁜면과 좋은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었을때 그들에겐 죄라는 것은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노만; 그러면 용서라는 개념도 없겠군요.

카릴; 없죠. 잘못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용서라는 것도 없어요. 죄도 없고 관용도 없죠. 그런데 사람이 어떤 지극함에 이르지 못하면 업보의 법칙에 따라 환생하게 되는데 다시 태어난 사람은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수양하는데 더욱 힘쓰야 한다고 합니다.

노만; 환생과 부활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두가지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도 됩니까?

카릴; 부활과 환생에는 비슷한 점이란 전혀 없습니다. 부활은 육신이 다시 사는 것이고 반면에 환생은 영혼이 다른 몸으로 영원히 움직여 다니는 겁니다.

노만; 죽은자를 되살리는 사건은 기독교 기적중의 꽃입니다. 예수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림으로써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증명했었는데 과연 구루들의 기적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들과 필적할 수 있는 것입니까?

카릴; 절대 그렇지 않아요. 사실 그들 기적 대부분은 속임수와 사기에 불과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하는 구루는 들어 본 적도 없어요.

노만; 지금까지 신이 존재하면 기적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기적은 다른 종교와 달랐습니다. 예수의 기적들이 사실이 아니고 독특하지 않다면 그를 신으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가 신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속이 텅빈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이제 중요한 한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성경의 기적들은 사실일까요? 성경은 아주 오래전의 기록이기에 신빙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주요 반론입니다. 역사적 근거가 부실하므로 하나의 신화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 말이 맞을까요? 모든 고대 자료중에서 신약의 신빙성은 그 으뜸으로 꼽힙니다. 신약에 관한 문헌은 원본과 그 사본으로 짐작되는 복사본을 포함하여 고대 어느 시대의 자료보다 월등히 많이 발견되어 있습니다. 신약의 일부가 담겨있는 몇개의 문헌은 사건과 기록시기가 10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보존된 신약의 필본은 5300권이 넘는데 반해 다른 고대 문헌은 대부분 20권이 안됩니다. 10권밖에 되지 않는 ‘시저’의 ‘고올’전쟁기록이 원문연구가들에 의해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모두 일관성 있게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오래전에 기록된 자료와 실제 사건의 시간차는 무려 900년이었습니다. 고대 자료들의 평균 시간차는 보통 천년입니다. 학자들은 실제 사건과 그 기록이 쓰여진 자료와의 시간차가 적어면 적을수록 그 자료의 신빙성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다시말해서 시간차는 바로 정확도입니다. 수많은 사본이 있고 가장 오래된 사본과 실제 사건과의 시간차가 백년밖에 되지 않는 신약의 신뢰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 어느 시대의 자료보다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자; 성서자료가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사람들에 의해 과장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저는 신화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미국을 건설했던 토마스 페인 그리고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 심지어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까지 예수를 실존 인물로 보지 않았습니다.

노만; 일부 비평가들은 진실이 많이 과장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와 같은 시기에 신약을 저술한 사람들은 사실의 왜곡을 용납하지 않았던 수많은 눈초리에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신화가 되기위해서는 적어도 두세대는 흘러야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런데 신화는 바로 사건 당시의 사람들이 기록했습니다. 그럼 역사에 예수에 관한 기록이 있을까요? 토마스 페인과 버트란트 러셀,알버트 슈바이쳐가 똑똑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들의 전공은 역사가 아니였습니다.

1세기 역사학자들은 그리스도라고 불려진 나사렛 예수의 기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로마역사학자 타소비스의 기록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사람이 디베랴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죽음을 당했다.”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입니다. “그당시 예수로 불렸던 현자가 있었는데 그의 행동은 선하고 고결하다고 알려졌다.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버리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박힌지 삼일후에 그가 다시 살아 났다는 것을 알리고 다녔다.” 이런 역사학자들은 예수가 살았던 그 당시의 사람들입니다.
AD 2세기에 살았던 크리스챤 작가 저스틴 마터는 예수의 역사적 기록을 입증하기 위해 세상의 역사적 자료를 참조하곤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의 기록을 연구하면 예수의 행적을 찿을 수 있다.”실제로 우리는 신약 전부를 잃어버린다고 가정해도 11구절을 제외하고 완벽하게 지금의 신약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것입니다. 만일 신약의 역사적 근거를 던져버린 다면 그것은 고대역사 일부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신약은 고대 역사와 사건 그리고 전해져 오는 인물들중에서 객관적으로 가장 잘 증명된 역사 문헌인 것입습니다.

회의론자들은 성경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이유로써 BC 천년에 기록된 구약성경을 문제 삼습니다. 구약의 가장 오래된 사본이 AD 천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천년의 시간차가 있고 그 오랜세월동안 수많은 수정이 예상되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1940년 제가 서 있는 바로 이동굴에서 구약의 에스더기를 제외한 구약의 전 사본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사야등은 전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해독한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의 성경은 수천년전의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간차가 천년인 이사본과 지금의 성경은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빛’이란 단어만 다를뿐이며 이 또한 내용에 전혀 영향을 못미치기 때문이다. 회의론자는 틀렸고 성경은 옳았습니다. 저명한 고고학자 넬슨 글릭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발견과 일치되지 않았던 경우는 없었다. 그 중 일부 발견들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이 객관적으로 정확한 기록임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명한 고고학자이자 신약 회의론자였던 윌리암 램지경은 누가복음을 고고학적으로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모든 자료들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비교해본 결과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은 아시아 소수민족의 지형과 그들의 고대풍습과 사회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도행전을 보게 되었다. 점차 내 마음속에 성경의 기록이 진실이라는 생각이 커져 가고 있다. 한 종교의 기적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잘 입증된 경우는 일찌기 다른 종교에는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들은 그 역사적 근거를 찿을 수 없다.”

교육자; 저는 여전히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는데 과장이 있었다고 봅니다. 의도적으로 역사적 자료를 많이 집어 넣을 수도 있죠.

노만; 복음을 남긴 사람들이 진실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이 의견에 대한 반론으로 당시 이 복음의 전도 대상자 속에는 직접 사건을 확인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백명의 목격자들이 그 기록을 인정했고 그중에는 초기교회 지도자들도 생겨났었다는 것으로부터 그 진실성을 엿볼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신약에 사건의 정확함과 진실성이 결여 되었더라면 얼마 못가서 땅속에 파묻혀 버렸을 겁입니다. 이런 역사적 진실성에도 불구하고 신약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는 현재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들을 입증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로써 예수는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으며 그래서 신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을 기록한 4복음서는 예수가 죽을 당시의 상황을 충분한 증거와 함께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로마병사가 아직 살아 있으면 다리를 꺽으라는 명령을 받고 다가갔었으나 이미 죽은 후였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 군병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꺽지 않았고 다른 군병은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러자 예수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흘러 나왔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육체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록들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자; 당신들이 나더러 복음이 확실한 진실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나는 그 기록한 사람들과 제자들 그리고 목격자들조차 합세하여 어떤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과장시켰던지 아니면 요즘 신흥종교처럼 돈과 권력 때문에 꾸며냈을지도 모르죠.

노만; 거짓말을 퍼뜨리면서 그 대가로 이익을 누려야 마땅했을 예수의 제자들은 오히려 극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기행각을 벌이며 갇히고 고문당하고 추방되고 죽어 갔습니다. 사도중 한 사람만 제외하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한사람의 대오이탈도 없이 최악의 고난을 감수하면서 그리고 전혀 흔들림 없이 과연 그들은 일부 사람들의 반론처럼 거짓말을 하고 다녔을까요? 아니면 진실을 알리려 했을까요?
예수가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수많은 성경의 예언이 그 당시에 이루어 졌습니다.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는 예수의 행적을 미루어 예수가 예언에 맞춰 사건을 조작했거나 예언에 맞추어 의도적으로 시도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반론은 숀필드의 저서 ‘유월절 음모’로 인해 유행되었습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어이없는가를 보이기 위해 예수가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아주 역사적인 곳에 있습니다. 미가 5장 2절에 예수가 태어날 곳으로 예언되었던 베를레헴입니다. 어떻게 의도적으로 자기가 태어날 곳을 조작하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는 그가 죽기전에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계획을 꾸밀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난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탄생을 이처럼 사람이 조정할 수 있습니까? 동정녀로 부터의 탄생은 사람이 조작할 수 없는 일이며 이것은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증거들을 희석시키기 위해 어떤 비평가는 예수가 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아마 그는 성경을 읽다가 그만 둔 모양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사람들은 표적을 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부활이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으며 밤낮사흘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는 이 근처에 살았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는 대답했습니다.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습니다 구약에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많습니다. 그 예언들이 많이 이루어진 곳이 이곳 갈릴리입니다.

예수가 안식일에 구약의 예언서를 읽었던 회당은 이곳 갈릴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는 선자자 이사야의 글을 펴서 읽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예수는 책을 덮고 그의 말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렇게 하여 메시아가 온다는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 졌던 것입습니다. 갈릴리의 해변을 따라서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가 어떤 집에 들어서자 많은 군중들이 따라 들어 왔습니다. 집에서 예수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느날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예수가 말했습니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주위에 서 있던 서기관들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말을 예수가 하는데 놀라 웅성거렸습니다. 이런 생각을 안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그 중풍병자는 침상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예수는 이같은 초자연적 표적을 보이면서 자기가 신임을 증명했습니다. 얼마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의해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라는 영화가 만들어 졌습니다. 이 영화는 기독교 교단과 신학자로부터 불경스럽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영화제작자들은 실제 성경의 예수와는 상관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지만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몰려가서 이 영화 상영을 거부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이영화에서 예수는 판단력이 없고 자신이 누구라는 확신이 없는 아주 나약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정확한 모습을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기독교신자들이 예수의 생애와 품성과 그가 받은 시험을 재고하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 또한 시험의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서 15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예수는 원죄가 없었습니다. 그는 원죄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과 달리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요한1서 2장 16절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예수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휴혹은 그에겐 외부적이지만 우리의 유혹은 원죄에서 오는 내부적인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영화‘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의 예수는 뉴에이지 예수입니다. 이 영화의 기초가 된 원작의 머릿말에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신이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물질을 영적화하고 새롭게 창조하여 신을 구원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뉴에이지 사상입니다.

이 영화속의 그리스도는 스스로 깨우침을 얻고 있습니다. 자기내부에 존재하는 신적 가능성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뉴에이지 사상입니다. 이 영화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신성을 발견하는 모델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그리스도는 신이 사람이 된 반면 이 영화의 그리스도는 사람이 신이 될려고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수가 갈보리에서 죽었을때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스스로가 희생한 것입니다. 그는 많은 시험을 받았지만 그 시험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죄의 대속도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후 다시 살아났고 여기엔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신약에는 무려 오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상처있는 그의 손과 그의 옆구리를 보여 주었고 생선을 달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많은 진리의 말씀으로 그가 부활한 예수임을 확인시켰는데 이것으로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몇년전에 저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회의론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하나님 존재의 타당성을 설명해 주었고 이 우주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우주의 기막힌 질서에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창조주가 있고 그래서 기적도 가능하다고 설득하면서 저는 그에게 한때 회의론자였던 프랭크 모리슨의 ‘누가 돌을 움직였나?’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그 작가는 비판하기 위해 기독교를 연구하다가 오히려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하는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전부 읽은 후에 저와 다시 만난 그 친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으며 그는 예수를 살아 있는 주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몇 년 뒤에 그는 이 무덤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는 감정에 복받쳤고 죽었다가 사흘후에 이 무덤에서 영원히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다른 회의론자에게도 많이 생깁니다. 부활의 증거를 연구한 로드 리틀톤도 그러했었고 하버드 대학의 교수었던 유명한 변호사 사이몬 그린립 역시 신약은 사실이며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게 되었고 그 증거에 관한 책도 저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의심이 많으신분 그리고 무신론자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기적을 행할 수 있고 부활은 그 절정입니다.

이 무덤에서 죽음으로 부터 부활한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번역:한국비디오선교센터


사진: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 하나님의 창조로 만들어진 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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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진흙빵을 대신할 아이티 생명의 쌀 file 이재섭 2008.03.09 3215
» 진화론의 허구성 file 이재섭 2007.06.10 3862
34 주는 사랑, 받는 사랑 9 file 이재섭 2009.08.23 3369
33 자살, 권리인가 살인인가-전기철 이재섭 2019.05.18 197
32 위기가 곧 기회 이재섭 2007.12.09 2587
31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들 3 이재섭 2009.11.30 2656
30 온전히 드리는 삶 1 이재섭 2009.03.03 2812
29 오해와 자존심 이재섭 2007.12.02 2572
28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 37 이재섭 2008.06.02 3059
27 순종의 실천 31 이재섭 2009.05.17 2743
26 성지순례 file 이재섭 2007.06.10 4295
25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16 이재섭 2009.12.01 3109
24 상한 마음들 53 file 이재섭 2008.09.12 4318
23 사랑의 충고 file 이재섭 2007.10.19 2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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