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자 / 차성도 교수

by 이재섭 posted Aug 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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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기독교는 이전보다 세상 사람들로 부터 더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 ‘개독교’를 검색해보면 0.11초 만에 무려 1,330,000개의 문서들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청소년들에게 영향력이 큰 동영상, 플래시, 만화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등,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기독교가 지탄받는 이유 중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가 일 이등을 다툰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역자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까? 여러 지역의 다양한 교회들을 섬겼던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통해서 사역자의 바른 모습을 배우고자 한다.

그들의 사역은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살전 2:4a)처럼 사람의 인정이나 인위적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음으로 시작되었다. 아무리 교단이 인정하고 목회학 석사 아니라 박사를 취득했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면 진정한 사역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사역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여야한다.

그들의 태도는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b)같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살전 2:5a)처럼 사람에게 아첨하는 말도 하지 않았고,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살전 2:6)같이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는 사역자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유행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역자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태도로 사역을 해야 한다.

그들은 사역을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살전 2:10)처럼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없이 진행하였다. 그들은 경건을 위해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살전 2:5b)같이 탐욕을 부리지 않았고, 흠 없는 사역을 위해서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9)처럼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사역을 진행하였다. 최근에 유명한 교회 지도자들이 돈에 의해 여지없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바울과 함께했던 사역 팀의 재정적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3:8-9)같이 복음전하는 자로서 재정적 공급을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애써 일하고 음식 값도 자신들이 치렀다. 이렇게 그들은 스스로 본을 보임으로서 자신들을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역자는 경건하고 올바르며 폐를 끼치지 않도록 처신하여야한다.

http://www.godfamil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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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특히 사역자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살아가야 합니다. 10여년 방해자로 인해 본의 아니게 카자흐스탄을 철수하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목사나 선교사 등 하나님의 직분을 가진 자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심판한다. 너는 오직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며 사랑의 목자가 되라”

인간이 완전한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자는 인터넷 상에 단 두 개의 공개적인 글을 실었는데 그 목적이 우리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어서 씁쓸하게 생각됩니다. 용기가 없는 탓인지 이미 쓴 글을 지우지도 못하고 더 쓰지도 못하는 태도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한국은 요즘 무척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미 예약한 관계로 늘푸른교회 설악산 전교인 수련회를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평화”를 주제로 특강을 하기로 되어 있어 지난 한 주간 동안 “평화”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그 용법상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 - ⑴ 안식의 느낌으로서의 평화, ⑵ 하나님과의 화해의 상태로서의 평화, ⑶ 그리고 종말론적 구원으로서의 평화이다. 이 중 마지막 의미가 기본적인 것이다(이병철, 성경원어해석 대사전).

장신대 김지철 교수님이 쓰신 “영혼의 혁명을 일으키시는 성령”(두란노)에 나온 내용을 소개합니다.
샬롬은 전쟁이 없다는 뜻도 아니고, 불화나 갈등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샬롬이란 문제를 대면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그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겠다는 뜻이다. 또한 샬롬은 하나님의 꿈이고 하나님의 비전이다.바로 이땅에 난무하는 근심과 걱정, 미움과 적대심, 분노와 폭력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제7일에 쉼과 안식을 주시며 샬롬을 베풀어주셨다. 그리고 창조하신 세상의 목적이 샬롬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탄생의 노래에서 샬롬이 나타난다(눅 2:14).그리고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하나님께서 온전한 평화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이다.

혹 당신 안에 평화가 없다면, 당신 안에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 관계에 너무 얽매인 탓일 수도 있다. 예수님 앞에 나가야 그 안에서 평화를 찾고 누릴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성령을 통해 주어진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이 평화를 이룬다.

평화와 함께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단어가 “화목”이라 생각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18-2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자가 되기 위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형제와 화목할 때 진정한 평화가 주어지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비난하더라도 동요하지 말고 본분을 다하는 삶이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사진설명> 부랴트 종족 빌치르 교회에서 성경공부와 교제를 나누는 이 선교사 일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