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만난 동창생들

by 이재섭 posted Apr 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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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이는 카자흐스탄에서 월반한 탓에 줄고 한 살 많은 누나 찬미와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기성이가 샬롬 스쿨(영국 선교부가 카자흐스탄에 세운 학교) 진학준비반(러시아 학제로 0학년을 둔 학교가 있음)에 다니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수학을 잘해 월반이 가능한데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더군요. 찬미 성장에 적지 않은 지장을 줄 수 있어 다소 우려되었지만 인데다 한 학년에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해 보여 허락했습니다.

기성이는 나이가 어린데다 막내인 탓인지 더욱 앳되어 보였습니다. 러시아 학교에 편입한 후 얼마되지 않아 동급생 학부모들이 너무 어린 학생을 한 교실에 두었다고 거센 항의가 일어났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내가 인정했으니 문제삼지 말아라고 말해 무마되었습니다.

얼마후 자녀들 모두 이르쿠츠크 27번 학교로 전학해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러시아 고교는 대부분 세분화되어 있어 특정 과목 중심으로 수업을 합니다. 기은이는 찬미와 기성이보다 2학년 위인데다 영어반이 없어 기은이는 25번 학교 고교로 진학했습니다. 찬미는 사회반으로 기성이는 수학반을 택해 진학했는데 기성의의 경우 고교 졸업식 때 최연소 졸업생임에도 영예의 수학왕 상을 받았습니다.

결국 찬미와 기성이는 줄곧 동창생이 되었습니다. 27번 학교에서 만난 친구 가운데 꼬시짜라는 남학생이 있습니다. 기성이 나이가 두 살 적지만 친한 친구로 잘 지내왔습니다. 찬미와 기성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탓인지 한국어 수업에도 열심을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이르쿠츠크 국립대 역사학과 정교수여서 외국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꼬시짜는 중고교 대학까지 모두 찬미와 기성이 동창이 되어 남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뒤를 이을 뜻이 있는지 이르쿠츠크 국립대 역사학부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찬미와 기성이 그리고 기은이 모두 러시아 국립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수년 전 한국 배제대에 한국어 연수를 갔다가 중국에서 온 여학생을 만나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라고 합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어라는 공통 과제를 놓고 한국에 왔다가 결혼까지 염두에 두게 된 것입니다.

얼마전 꼬시짜가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자연히 동창인 찬미와 기성이가 함께 만나 작은 동창회 모임이 되었습니다. 약혼녀라 할 수 있는 중국 자매가 조만간 이르쿠츠크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유학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한류 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 멋진 미래를 가꾸어나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찬미와 기성이가 다녔던 카자흐스탄 샬롬 스쿨 교문 앞에서- 1998년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