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랴트 지역 선교와 러시아 교회 이해

by 이재섭 posted Feb 25,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월 23일은 러시아 명절의 하나로 <남자의 날>입니다. 매년 3월 8일 <여자의 날>만 명절로 지키다가 남자의 날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저도 남자여서 가는 곳마다 축하 인사를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 기성이와 함께 출발 준비를 했습니다. 이반 목사님이 우리를 태우러 왔습니다. 가는 길에 슈퍼에 들려 여러 가지 먹거리를 사고 비상금도 준비했습니다. 이반 목사님이 도요타 중고차를 구입했는데 성능이 좋아 보였습니다. 3년 간 자신과 지인들이 30만 루블(약 1200만원)을 모아 샀다고 합니다. 10년 된 차지만 하얀 색 외관이 좋아 보였습니다. 벌써 이 차로 1000km 이상 오간 곳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본래 미하일 목사님이 동행했는데 여러 날 째 감기가 낫지 않아 외부 출입을 삼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나라 감기는 쉽게 전염되기 때문에 목사님이라도 집에만 머문다고 합니다.
차가 좋아 미끄러운 시골 길을 지날 때도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속도도 빨라 빌치르 마을까지 2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 삼손 전도사와 부인인 까짜가 영접했습니다. 까짜가 너무 오랫만에 왔다며 어떻게 지냈냐며 식구들 안부를 물었습니다( 사실 이유는 다른 데 있는데-)
간단한 식사를 하고 예배를 위해 모였습니다. 외부 교인은 나이든 여성도 둘뿐이었습니다. 전에는 십여 명씩 모이던 곳인데 그 사이 변화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빌치르 교회는 본래 왈로자라는 현지인 사역자가 기초를 놓았다고 합니다( 파수대를 통해 이단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현재 목사님입니디. 왈로자 목사님 인척이 이 마을에 있어 이곳 사정을 잘 알고 있었는데 특히 삼손을 집중적으로 전도하고 양육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왈로자가 이 마을에서 약 800km 떨어진 울란우데에 살면서 한국인 사역자를 거들 무렵 선교사에게 이 마을 이이기를 했나 봅니다. 그러자 마을을 방문해 7명에게 세례를 주고 자신이 교회(?)를 세웠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먼 길을 오가며 영혼을 돌본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 연결고리를 내세워 다른 나라로 사역자를 옮긴 후에도 자기 영역(?)이라는 논리를 펴서 이해를 어렵게 합니다.

철수할 무렵(추방이 원인이라고 함) 한국인 사역자와 왈로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결별하게 됨에 따라, 왈로자가 측근 성도들을 보호하고 양육을 맡기기 위해 러시아 침례교단 지도자인 이르쿠츠크 1번 교회 미하일 목사님을 찾아가 이들을 관리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마침 미하일 목사님 은 빌치르 마을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프리모리스키 마을에 있는 그룹을 인도하기 위해 자주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두 마을 신자를 합쳐 삼손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성도는 어느 정도 성숙한 데 비해 부랴트 종족은 대부분 초신자입니다. 처음 몇 년 간 교회가 아니었지만 점진적인 도약을 거쳐 교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부랴트 종족은 신자가 적은 탓에 지도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브랴트 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라마 불교 신자들이고 이르쿠츠크 내에 있는 부랴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새마니즘에 젖어 있습니다.
이반 목사님이 평신도 지도자 양성을 위해 3년 제 성경학교를 세웠는데 삼손을 이 훈련에 참여시켰습니다. 1년에 3번 한 주간씩 집중 수업을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과제물을 주어 자습하도록 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에베소서를 16시간에 걸쳐 강의했습니다. 지도자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오랜 수고가 필요합니다. 몇 차례 만나 장로교 지도자 훈현을 시켰다고 주장한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입니다.

저희가 러시아 목사님들과 가진 교역자 모임에서 꼭 필요한 교역자에게 사역비를 지불하고 싶다고 말하자, 자기들은 자비량이 원칙이라고 답했습니다. 수개월 후 교역자 모임 시간에 이반 목사님이 전에 우리가 한 말 지금도 유효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여력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자, 꼭 한 사람있는데 우리가 사역비를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삼손입니다. 본래 목수였는데 전임 사역자로 삼기 위해 목수 한 달 월급을 우리가 대신 지원해 주었으면 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우리가 지원하는 것을 당분간 감추고 침례교 노회를 통해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하고 싶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합의했습니다.

삼손은 평신도 지도자임에도 노회 내에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러시아 목사님들에게서도 선례가 없는 전임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삼손은 전임사역자가 된 대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티코처럼 생긴 낡은 차를 몰고 여러 마을을 순회하기도 하고 자기 집에서 드리는 예배 인도를 위해 열심을 다했습니다. 저희는 매월 한 차례 정도 미하일 목사님과 이곳을 찾아 말씀과 봉사의 활동을 했습니다.

러시아 침례교단은 집사 안수가 교회 일군이 되는 첫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 3년 전, 미하일 목사님과 이 선교사, 삼손의 영적 지도자격인 왈로자 목사님 셋이 집사 안수식을 가졌습니다.
수 년 전 강가에서 1박 2일간 특별 집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 선교사가 양 한마리 값을 헌금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날 침례(세례)식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경할 간부이신 아나똘리 집사님이셨습니다.
미하일 목사님은 빌치르에 공식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빌치르 교회 등록 절차까지 마쳤습니다. 뜻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한국인 선교사가 다른 나라에 살면서 자기 사역지(?)가 침해 당했다고 사방에 문제 삼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한 지역에 두 사람이 이권 타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러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로 사역지를 옮겨 간 지 오래 되었습니다( 혹 러시아에 있더라도 주와 공화국은 관할 영역이 다릅니다). 선교사 신분이 발각되어 입국이 거부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사유로 추방된 케이스는 드문 편입니다. 아직 러시아에 선교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참고로 이 선교사는 2002년부터 종교비자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사역 중입니다. 혹 법을 지키지 않고 현지 정부 눈밖에 벗어났다면 사안에 따라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외국 땅인만큼 언제라도 새로운 법이 만들어질 소지가 있습니다.

러시아는 아직까지 교회가 허가제입니다. 원칙적으로 세례(침례)교인 10명 이상이 있어야 하고 이들이 사인하여 관계기관에 교회 설립 청원을 한 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지교회 허가는 좀더 쉬운 편인데 모체 교회가 있어야 하고 관련 서류가 통과되어야 합니다. 허가받은 교회는 세무번호가 주어지는데 정기적으로 세금을 내야 하고 교회 비품을 모두 신고하는 등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22일 방문을 기해 삼손에게 부랴트 공화국에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교회가 몇 개나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두 오래 전에 떠났지만 두 선교사가 한 개씩 세웠다고 말하더군요. 바로 허가교회 수를 말합니다. 허가 받은 교회가 그룹(구역)을 여럿 거느릴 수 있지만 이 경우 교회 수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가 교회를 10개나 그 이상 세웠다고 주장할지라도 현지인의 시각으로 볼 때 공식 교회 외에는 교회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정말 교회를 세우기 원했다면 이 나라 법에 맞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훈련된 교역자를 배치한 후 사역을 지원하는 등 후속 조치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의 목회자도 러시아 오순절 교단 신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지인은 이처럼 자기 나라 신학교를 선호하고 교류를 갖기 원합니다. 그럼애도 불구하고 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장로교 독노화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장로교 지도자가 세워지기 바라지만 체계적인 신학교가 없이 개인지도식으로 지도자 양성이 가능한 지 이해를 어렵게 합니다.

삼손 전도사가 러시아 침례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을 멀리서 듣고 이러한 사실을 수용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그냥 현지 교단에서 잘 관리하고 있으면 자신이 못다한 사역이 좋은 방향으로 연결된 것에 대해 감사할 일이지 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르쿠츠크 주 내부에 속한 마을임에도 멀리 부랴트 공화국에 있는 자기 측근자에게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주문한 듯 더욱 큰 혼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 울란우데에 거주하고 있던 후임 자매(얼마 후 철수)에게 빌치르 마을을 찾아가라고 지시한 모양입니다. 이 자매는 후계자인 현지인 목사와 원주민 6명을 데리고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와서 4박 5일을 머물면서 갖은 말로 설둑하려 들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자기들이 우리가 한 것보다 지원을 더 많이 하겠다. 이번 여름에 단기 팀 100명이 온다는 말로 상대를 제압했습니다(하지만 나중에 안 오기로 결정이 났다고 둘러댑니다. 별다른 지원도 없었나 봅니다. 결국 실망만 안겨 주고 우리와 불필요한 마찰만 일으켜 놓고 말았습니다).

이날 아예 쐐기를 박으려 한 듯 돌아가는 길에 미하일 목사님을 만나 빌치르 교회를 자기들에게 양보하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합니다. 남의 나라를 자기 홈 그라운드인 양 몰아부친 것입니다. 미하일 목사님은 오랫동안 이르쿠츠크와 야크츠크, 부랴트 공화국 연합 노회장을 맡았던 분입니다. 오순절 측에서도 부랴트 선교에 열심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독교 신자가 거의 없던 땅에 와서 복음의 기초를 세웠다는 식의 논리를 펴서는 안 될 것입니다.
800km 거리를 몇 차례 다녀간 수고를 인정하더라도 자신이 씨앗(?)을 뿌렷으니 그 열매(?)는 자기 몫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마을도 대동소이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현지인 목회자를 돕는 일이 모순으로 생각되면 직접 우리에게 연락하면 될텐데 왜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답니다. 심지어 러시아 중견 목사님에게 사람을 보내 항의하는 건 상식에도 맞지 않은 언행이라 생각됩니다.
당시 이런 내용을 천사홈에 실었는데 삭제하라는 압력이 사방에서 들어오더군요. 또 그럴지라도 자난 일을 간략하게 정리해 천사홈에 싣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빌치르 교회에서 완전히 물러나기까지 글을 계속 남겨 둘까 생각 중입니다(참고로 빌치르 대신 빌추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왜 굳이 발음을 좀 다르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제 그만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자유하고 주어진 사역에 힘쓰길 당부합니다. 우리 모두 현지인 목회자들에게 예의를 지켰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충돌로 인해 저희 사역이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적은 선교비를 덜어 현지인 사역자를 도운 것이 무슨 큰 잘못인 양 사방에 몰아붙이고 삼손 가정과 우리 사이를 떼어놓으려 든 탓에 한동안 출입을 자제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러시아 목상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지원을 했습니다. 삼손 집이 ㄷ자 형태인데 저희 후원자 한 분의 후원에 힘입어 떨어져 있는 방에 문을 내고 교회 간판도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꾸 신경쓰였던지 지난해 봄엔 새로운 카드를 냈습니다. 삼손에게 한국 방문을 시켜 주게다고 말한 것입니다. 결국 자기 후원교회로 데리고 가서 자신이 세운(?) 교회 현지인 교역자라고 말할 것이 뻔한 일이라 생각되어 한국에 가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방문을 원하면 우리가 도울 수도 있으니 좀 기다리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은 자기는 외국에 한번도 간 적이 없다. 일년 휴가를 모아 그냥 여행가는 것으로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인품이 좋으신 미하일 목사님은 삼손의 휴가를 인정하겠다고 말했지만, 우리의 경우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동안 후원자들을 대신해 절약해 가며 지원해 온 것을 생각해서라도 한국을 방문할 경우, 우리를 후원해 곳에 인사를 시키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었습니다.

미하일 목사님에게 삼손이 지금 한국을 가게 되면 우리 지원을 부득이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교회에서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하더니 1번 교회 재직회의에서 삼손 사역비를 모두 담당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삼손이 한국을 다녀왔던 것입니다. 저희 후원이 줄고 있어 이에 상응하는 지원을 다른 곳에 하는 것이 무리해 보였습니다.

현지인 교회가 이처럼 수고하고 있는데 자기가 세운 교회라고 주장해도 되는지 의문이 갑니다. 계속 자기들이 지원하는 현지인 지도자로 간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현지인 교회를 대신하여 매월 사역비를 전부 부담하던가, 사역에 꼭 필요한 승합차를 사주는 등 헌신적이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좀더 여유를 보여 성장 장애로 얼굴 한 쪽이 기형 상태인 삼손 큰 딸 성형 수술을 맡아 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교는 말이 아닌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방문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지난 한 해 동안 다른 마을을 돌아보면서 삼손이 있는 지역을 피해왔는데 너무 거리를 두면 안 될 것 같아 이번에 방문했던 것입니다.

삼손에게 신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3년제 평신도 지도자 과정을 끝내고 러시아 침례교단 노보시비르스크 계절제 신학교( 4년제)를 다니고 있는데 이제 2학년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반 목사님은 삼손이 너무도 대견스럽게 생각되나 봅니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와 힘을 모아 일으켜온 사역의 날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인으로 인해 우리가 상처받는 것이 마음 아팠던지 지난번 파동 때 자신이 영어로 한국에 글을 보내겠다고 말하기에 만류했습니다. 이 선교사 또한 장로교 목사지만 이제라도 삼손 전도사를 중심오로 형성된 빌치르 교회와 주위 마을은 러시아 침례교회 관할 지역으로 맡겨 두었으면 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린도전서 3:6)
분쟁이 심했던 고린도교회에 내린 결론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린도전서 14:40).

천사홈에는 가능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싣기 원합니다. 좀 복잡한 내용의 글을 싣게 되어 천사홈 방문자들과 후원자들께 송구스럽습니다. 샤마니즘의 원산지일 수도 있는 바이칼 호수 주변 부랴트 종족 마을 선교를 위해 기도바랍니다.
저희는 순교와 고난의 땅을 꿋꿋이 지켜온 러시아 목회자님들과 성도님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사진설명> 후원자의 지원에 힘입어 출입구를 따로 낸 빌치르 교회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