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은 기성이의 만 20세 생일입니다 축하바람니다.

by 이재섭 posted May 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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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이는 1991년 5월 30일 서울에서 작은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기성이가 이땅에 나기 얼마 전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옮기려다가 예측하지 못했던 권리금을 요구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년 간 유급 사목으로 있던 회사가 무리하게 사세를 확대하다가 부도 위기를 맞아 더욱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기성이가 어린 시절 사진조차 제대로 찍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찍부터 친 동생처럼 생각해 온 후배가 여천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을 때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지만 한번도 세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컴퓨터가 무척 비쌌던 탓에 고장이 나면 선뜻 고칠 엄두를 못내던 시절입니다. 멀리 가서도 큰 형님같이 생각되었던지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했습니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직접 먼 길을 가야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또 여천을 가야 하는데 집안 사정이 어렵다보니 갈 차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친 동생 같은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서 머나먼 여천까지 달려갔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에 서울로 돌아오려 하는데 수고했다며 만원을 주더군요. 서울까지 돌아올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내색을 않고 후배 집을 나섰습니다.

일단 충주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장로님이 충주 경찰학교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입니다(현재 중앙아시아 선교사로 사역 중이심). 지나는 길에 들린 것처럼 방문했습니다. 마침 장로님이 자리에 계서서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서려 하는데 노자에 쓰라고 2만원을 주시기에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추억어린 후배가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하기에 식구 모두 김포공항에서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러시아에서 마주친 젊은이가 바로 미국으로 간 낙현 목사와 한 교회 출신이고, 고교와 대학까지 후배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네 젊은이와 점차 불편한 관계에 접어들고 있어 혹 고향 선배가 나서게 되면 선교지에서 뜻하지 않게 생긴 매듭을 풀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뜻밖의 답이 왔습니다. “목사님 미국에 살면서 보니까 미국 사람들은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더군요.”라는 답을 들려주고 더 이상 제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층에게 중재를 부탁해 보았지만 대동소이했습니다(대개 침묵으로 일관하더군요. 사랑도 관심도 없는 듯- 심지어 우리가 현지에서 밀려날 것을 기대한 듯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가려든 자도 있었습니다. 수년 후 오히려 자신이 맡고 있던 자리에서 그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샘이 같으면 물맛도 같은 건지- 그래서 후배가 고교 졸업 직후 저와 함께 살면서 자주 자랑하던 모교회(계동교회)를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 무언가 신선한 물줄기를 찾을겸 옛 추억을 더듬어보기로 했습니다.

기성이 생일 축하하려다가 다른 이야기만 했습니다. 1997년 1월 23일 기성이가 만 5살도 안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입학한 직후부터 기도해 온 선교의 길을 23년만에야 실천에 옮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성이는 선교지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MK(선교사 자녀)에 해당됩니다.

기성이는 어린 탓에 선교지에서 유치원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기억이라고 선교원시절뿐인 기성이에게 낙후된 카작 문화가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됩니다. 샬롬 스쿨 진학 준비반 담임 선생님이 기성이를 무척 아껴주었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어린 제자를 위해 일일이 만져보게 하고 손을 잡고 데리고 다니며 글자를 익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성이가 수학에 두각을 보이자,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부모를 학교로 불러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수학을 잘 해서 월반을 시키고 싶은데 한 살 많은 누나가 있어 괜찮겠냐고- 결혼이 비교적 늦은 편이라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로인해 누나가 다소 힘들 수 있겠지만 친구처럼 한 교실에서 지내는 것이 자녀 관리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기성이는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두 세 살 어린 편입니다. 그래도 수학에 두각을 보이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이르쿠츠크 47번 학교에 편입해 다닐 무렵 한 학부모가 유심히 기성이를 지켜보다가 갑자기 나이를 물었습니다. 이 학부모는 자기 아이보다 너무 어린 외국인 학생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는지 다른 학부모들을 선동해 두 세 학년 아래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학교에는 사우치(교감 정도)선생님들이 많습니다(한국으로치면 부장이나 주임 선생님 정도인 셈-) 이 가운데 한 선생님이 학부모와 뜻을 같이 했습니다. 얼마후 이런 소요를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이 이들에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편입을 인정했다. 내 처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나 하고 말하자,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기성이 대학 진학을 고려할 때, 막내인데다 나이까지 어린 탓에, 형과 같은 전공을 택하도록 주문했습니다. 부모가 도와줄 수도 없는 학문의 세계라- 이제 기성이는 이르쿠츠크 국립대 물리학부 5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음악학교 졸업식 때 피아노 전공 학생 가운데 1등 없는 2등을 차지했습니다. 고교 졸업식 때 수학왕 상을 받아 물리학도의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러시아 대학교 졸업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논문 발표가 6월 1일에 있습니다. 5월 23일에 있었던 논문 예비 발표에서 교수님들의 반응이 좋아 좀 안심이 되는 모양입니다. 졸업식이 7월 7일로 결정되었습니다. 비자 종료 시기 등 다른 가족이 계속 현지에 머물기 어려워 기성이는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만 5세의 어린 시절부터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살아온 기성이의 장래를 위해 모스크바 국립대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등록금이 어떻게 마련될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누나 찬미와 함께 입학 서류를 보내고 진학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찬미는 이미 좋은 성적으로 논문 발표를 마쳤습니다. 6월 1일 기성이 논문 발표를 위해 기도바랍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기성이와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관심을 갖고 기도해 오고 계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교자 자녀들의 진학을 위해 그리고 안정적인 후원과 사역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천사홈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아름다운 소식이 오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진설명> 이르쿠츠크에서 약 230km 떨어진 엘란츠 마을에서 드려진 예배 때 반주하는 기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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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자녀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6월 1일) 기성이 물리학과 졸업논문 발표가 있었습니다.
기대한 대로 5점(A)을 받아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찬미와 기성이가 5년제 러시아 대학 학업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만 스무 살을 막 넘긴 기성이가 어려운 물리학부 학업을 끝까지
잘 마쳐 준 데 대해 주님께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후원자들과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이 함께 이루어낸 쾌거라 생각합니다.

찬미와 기성이 모두 모스크바국립대 대학원 진학이 무사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와 격려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