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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쓴 글보다 두 달 정도 먼저 있었던 사건임- 추석과 연관된 글을 먼저 소개하느라-)
하루는 어머님이 파출부로 있는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아들과 함께 주인집 과수원에 놀러 가게 되었다. 유난히도 복숭아가 많은 고장이라 원두막에 앉아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를 따먹으며 모처럼 여유를 가졌다.
“복숭아는 밤에 어두운데서 먹어야 좋단다.” 하는 과원지기 아저씨 말에 왜 그러냐고 묻자, “ 잘 익은 복숭아만 골라 벌레가 파먹는데 사람들이 복숭아에 벌레가 있는 걸 보면 안 먹게 되기 때문이야. 그러니 밤에 불을 꺼놓고 먹어야 좋은 걸 먹지.”  라고 말해 어린 마음에 진짜 그런지 아닌 지 분간이 잘 안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칠게 흐르는 개울물을 건너 급히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외딴 집에서 비를 피하던 어른들이 소리치며 우리를 부르는 것이었다.
“얘들아, 큰일난다. 이럴 땐 물을 건너는 게 아니란다.  어서 이리 오려무나.”
  하지만 다리 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염려되어 억지로 가려고 해도 어른들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여러 사람들 틈에 섞여 함께 저녁을 먹고 밤을 보내게 되었다.  가족이 걱정이 되어 잠이 도무지 잘 오지 않았다.

아침 일찍 불어난 물줄기를 피해 집 쪽으로 다가가자 강물 위로 온갖 물건들이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집 가까이 다가갔더니 강물이 다리 아래까지 차서 우리가 살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엄마-”   하고 너무 놀라 울면서 주위를 살피자 어머니께서 큰 건물 추녀 밑에 동생들과 함께 피해 있다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얘, 이리 오렴 우리 모두 잘 있단다.”  “얘야, 우리 여기 있다."
"괜찮아. 어젯밤에 경찰 아저씨가 와서 피하라고 알려줬단다. 살림살이도 다 꺼내고 - 니가 올 걸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

검문소 순경 아저씨와는 평소 자주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다. 장호원교 다리를 사이에 두고 충청북도와 경기도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아저씨, 왜 경찰이 다리 양쪽에 모두 있죠” 하고 물었더니, "저쪽에서 도둑이나 죄를 지은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다리 양쪽에 검문소를 두고 서로 연락만 한다.”는 말이 어린 마음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 같은 한국 경찰인데 나쁜 사람을 잡기 위해 다른 도로 넘어갈 수 없다니-

이제 또 이사를 해야 했지만 앞으로 강가만은 피하기로 했다. 일단 물이 흐르지 않는 곳을 찾아 공사장 커다란 관이 묻혀 있는 곳으로 이사(?)했다. 사방에서 홍수를 피해 옮겨온 듯 몇 가구가 사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들끓었다.  잠을 자려고 해도 그 위로 다른 사람들이 수시로 넘나드는 탓에 40대 중반인 어머니는 제대로 잠도 못자고 늘 긴장 상태였다.

“어느 동네 인심은 ....” ,  “중국에 갔더니 .....” 해방 전에 그곳은 어떻고.....
“내일 어느 집에 잔치(결혼식)가 있고-” “어느 동네에 큰일(초상)이 났고-” 
자기들끼리 정보도 주고 받았다. 잔칫날이나 큰일 집을 만나게 되면 그날은 이곳 저곳 구걸하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한 집에서 얻어온 것만으로도 하루를 거뜬히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평생을 살아온 듯한 사람들 틈에 끼여 있자니 앞날에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결혼조차 않고 수십 년 간 거지 생활을 해 온 듯 남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보통 사람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 지하왕국처럼 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우리도 장차 저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봐라. 우리는 결코 당신들처럼 인생을 살지 않을 거다.’

  어느 날 아버지께 왜 우리가 이토록 가난하게 살아야 했냐고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차남인데 큰 아버지 집에서 재산을 모두 좌우해 어떨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막내인 삼촌은 꾀가 많아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지만 순진한 아버지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내 논 한마지기만 있어도 고향에 그대로 머물렀을끼다” 는 말을 들으면서 형제 사랑의 소중함을 느꼈다(나중에서야 상속법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을 일으키기 위해 가난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유교가 강한 안동 시골 마을에서 계속 살았다면 언제 교회를 찾아가 주님을 만나게 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며칠 후 어머니께서 파출부 일을 하고 있는 주인집에서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시장에 있는 상가 건물들은 장날인 5일마다 한 번씩만 사용한다. 그러니 시장 가게 한 칸을 얻게 되면 5일에 하루씩만 비워주면 당분간 살 수 있다면서 마음씨 좋은 가게 주인 한 분을 소개했다.   
앞에 문이 없이 탁 트여 있었으나 지붕이 기와라 모처럼 집처럼 생긴 곳에서 살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장날이 되면 리어카에 모든 짐을 옮겨 싣고 시장 한쪽에 종일 세워 두고 지키면 되었다.  기록적인 1965년 대홍수로 서울 마포가 물바다가 되었다는 말이 들려오자 어머니는 큰 형과 둘째 형이 마포에 있는 근로자 합숙소에 살고 있다면서 늘 걱정을 하시더니 아무래도 서울을 다녀와야겠다며 길을 떠나시는 것이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고 하더니 어머니의 마음은 어느 자식이나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인 듯........

 서울을 처음 다녀 오신 어머니는 서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야, 말도 마라. 차들이 얼마나 많고 쌩쌩 달리던지 그 틈에 사람들이 길을 건널 때도 재빨리 건너야 한단다. 차 사이를 헤집고 다니기도 했단다.”
 “형들은 어때요.”  “글세 많이 힘든가 보더라. 그래서 우리가 서울로 갈 생각이라고 말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형들은 영화 엑스트라를 하기도 하고 공사장 인부로 일하는 등 무척 힘들게 지내고 있었다 한다. 모두가 맨주먹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 무렵 셋째 형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서 가까운 안동 어느 중국 집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심한 병에 걸려 가족이 없는 외로운 곳에서 생명을 건 모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열이 42도를 넘어서 자칫하면 죽을 지도 모르는 아직 어린 종업원을 부모를 대신해 바라보는 주인 집 부부는 걱정이 앞섰다.
  ‘얘가 이러다가 외지에서 가족들도 모르게 죽는 것은 아닐까. 연락처가 없어 어디 알릴 데도 없고......’  부모를 대신해 주인집 부부가 정성껏 간호해 주었다.
  다행히 얼마 후 회복되어 다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똑똑하고 착한 형인데-
  후일 어머니는 보릿고개 시절이라 단지 굶지 말고 있으라고 식당에 맡겨 두었다고 했다.모두 함께 살 집이 없어 흩어진 채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장호원을 떠나 이태리에서 추석을 보낸 우리 가족은 다시 삼십 리를 더 가자 이천에 도달했다.  장마가 다시 시작되어 얼른 시장 건물로 피했다.  이곳에는 우리가 장호원 시장에 잠시 지냈던 것처럼 아예 시장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세상에서 자기 집이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어렵게 하는구나.’
  사람마다 집이 있지만 우리처럼 집 없이 떠도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혹 서울에 가더라도 우리를 맞아줄 사람도 없고 집이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연 어떻게 될까. 곤란한 일은 당하지 않을까.’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지낼 수 없는 것이었다.
  며칠을 더 머물며 비를 피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서울로 가는 길이 두 갈래가 있는데 광주 쪽으로 가는 길은 빠르긴 해도 산을 통과하기 때문에 리어카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서  용인 쪽으로 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마침내 리어카가 용인에 다달았지만 마땅히 잘 곳이 없었다. 마침 비어있는 큰 건물이 보이기에 들어가 하룻밤 잠을 자기로 했다.  갓난아기  때문에 아무렇게 밤을 맞기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새카맣게 건물 주위를 에워싼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여기서 잠을 잤냐. 어디서 왔느냐.”   온통 난리법석을 떠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기세였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지나는 길인데 지금 바로 떠납니다.”  라고 어머니가 말했지만 사람들은 막무가냈다.
  “당장 나가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알고 보니 빈 건물은 마을회관이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들 마을회관을 점거해 안주하려 드는 줄 알고 놀랐던 모양이다. 오갈 데 없는 가난한 가족라고 마구 몰아세우는  것을 보고 역시 서울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인심이 안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리어카로 서울까지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버스 편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보리쌀 자루를 비롯해 그동안 정든 리어카까지 팔고 짐을 간단히 줄인 다음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그토록 힘들게만 보이던 길이 버스에 앉아서 내다보니 시원스럽기까지 했다.  먼 길을 단숨에 달려가는 것 같았다. ‘차가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느새 버스는 수원을 지나고 있었다. 버스가 서울 가까이 접근할수록 큰 건물들이 보이고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 또한 자주 눈에 띄었다. 무조건 종점까지 가 보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서울에 접어들자 높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부산에서 태어나 10년을 살고 1년 반 정도 유리방황하다가 드디어 서울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소년 가장처럼 노동력을 상실한 부모님을 설득해 목적지인 서울로 도착하게 되자 감흥이 새로웠다. 빨리 자리를 잡아 내년 봄에 동생을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벌써 10월이라 서둘러야 했다. 과연 어떤 기적이 일어나려나-

<사진설명> 선교지를 방문한 음악선교단들에게 바아칼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멀리 있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산에 오른 이 선교사와 딸 찬미 - 주님의 도우심과 여러 후원자들의 기도와 후원에 힘입어 세 자녀 모두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무사히 학업을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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