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by 이재섭 posted Dec 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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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인가? 만일 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야 한다. 존 멕스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이들이 호감을 느끼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그들을 편하게 해 줘야 한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다음 일곱 가지 특징을 지녀야 한다고 죤 멕스웰은 말하고 있다:

1. 따뜻한 가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은 따뜻하고 친철하다.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가슴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하나님의 따뜻한 가슴(마음)을 느껴야 한다. 그의 인자하심이 진정으로 나의 생명보다 낮다는 진리(시63:3)를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가득채워져 가는 마음을 소유한 자에게서는 은은히 배어 나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리'로 가득찬 가슴(어쩌면 머리)보다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가득찬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자기가 말하는 '진리' 관점에서 좀 모자라게 보여도, 아니 참으로 부족하게 보여도 가슴에 주님을 향한 잠잠한 사랑을 상대방 지체에게서 느낄 때에 나는 매력을 느낀다. 진리로 사람을 대한다고 하면서 비판적인 사람보다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친철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나는 마음이 추울 때 내 마음의 더욱더 춥게 하는 성경적 지식을 쏟아부는 사람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한 마디의 위로의 말로 내 추운 마음을 품어주는 사람에게게서 매력을 느낀다.

과연 나에게 이러한 매력이 있는가?

2. 개인차 존중

상대방의 장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자신의 장점만을 의지하고 은근히 상대방의 단점을 깔보는 사람과는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자신과 그저 다를 뿐인데도 자기의 이기적인 기준에서 상대방을 틀렸다는 느낌을 뾰죽하게 심어주려는 자와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다른 점들을 존중하고 서로의 다른점들 가운데 내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왠지 편안함을 느낀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단일성만을 주장하면서 내 생각과 기준과 나 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좀 나와 다른 것 뿐인데 왜 자꾸만 내 잣대를 상대방을 재면서 생각과 말로 난도질하면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기면 범죄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참으로 불편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한 개개인의 다른 점들을 존중하면서 항상 상대방에게서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자에게서 나는 매력을 느낀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같은 연악하고 부족하고 죄 많은 심령을 존중해 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 그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기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자라고 생각한다. 좀 다르면 어떤가? 오히려 다르기에 내 마음의 지경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요 배움의 장이 될 수 있지 않는가? 시냇가가 된 것에 만족하지 말고 바다와 같이 되려고 힘쓰는 자에게서는 왠지 편안함을 느낀다. 바다와 같은 마음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자라 생각한다. 퍼즐에 한 조각 한 조각에 매여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품을 믿음으로 보며 마음으로 그리면서 인간관계를 개척해 나아가며 유지하며 발전시키는데 헌신하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과연 나에게 이러한 매력이 있는가?

3. 기분의 일관성

죤 멕스웰은 이렇게 말한다: "...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종 일관된 기분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안정되어 있고 우리가 예측 가능한 상태를 가지고 있다. 볼 때마다 항상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우리는 그들에게서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예측하기 쉽다." 우리의 기분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좋았다 나빴다 할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의 안정감이 없게 되면 참으로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인가?

감정(Feeling)을 진리의 말씀(Fact)을 믿는 믿음(Faith)으로 절제하며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일관성 있는 감정을 소유하며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왠지 마음이 부담이 없고 편안함을 느낀다. 나의 일관성이 없는 기분조차도 받아주고 이해해 줄 수 있다는 확신과 안정감을 나아게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을 너무나 절제한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또한 진실되게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지 않나 생각한다. 경직되어 있는 사람에게서 어떠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인가? 기분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과연 나에게 이러한 매력이 있는가?

4. 상대방 감정에 대한 세심한 배려

편한 사람은 상대방 기분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 채고 상대방의 기분과 감정에 맞추어 알맞게 반응을 조절한다(멕스웰). 알맞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편한 사람은 나의 감정을 이성으로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뜻한 가슴으로 들어주다고 생각한다.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면서 자신의 감정 또한 진실되게 또한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그리할 때 상대방은 편안한 사람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므로 말미암아 더욱더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상대방에게 세심한 배력을 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는 발언을 양심에 꺼림낌이 없이 함부러 발언하는 사람은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기가 힘들다. 상대방 입장에 서서 잘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참 편안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로 실천해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참 매력적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나에게 이러한 매력이 있는가?

5. 자기 결점을 스스럼없이 공개하는 사람

"시종일관 항상 완벽한 척하는 사람만큼 남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도 없다"(멕스웰). 이러한 사람에게서는 왠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너무나 완벽하게 보이려는 완전주의자에게서는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유스럽지 못한 면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다가가기 편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결점에 관해 솔직하다. 그들은 듣기 좋은 말보다 들을 필요가 있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멕스웰). 너무나 사람들을 의식하여 그들에게 칭찬만을 듣고자 애쓰는 사람에게서는 인간미를 느끼기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즉,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관계에서서 정직할 수가 없기에 편안한 인간관계, 인간미를 느끼를 인간관계보다 뭔가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인간관계임을 느끼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한 관계를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습관적으로 맺고 유지한다면 어떻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그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마스크를 쓰고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다. 적어도 그 마스크를 인정하고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 마스크로 인해 고민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을 알게 될 때에 매력을 느낀다.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그 이유는 나도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계속 마스크를 더 겹으로 싸려는 사람에게서는 왠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냥 형식적으로 인간관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투명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매력을 느낀다.

과연 나에게 이러한 매력이 있는가?

6. 쉽게 용서하고 빨리 용서를 구하는 능력

"우리가 다가가기 편한 사람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어서 자기 결점도 스스럼없이 드러내기 때문에 항상 겸손하다. 겸손하기 때문에 빨리 용서를 구하고 또 쉽게 용서한다" (멕스웰). 편안한 인간관계는 서로가 완벽해서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 생각한다. 서로의 "한계와 허술함",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을 잊지 않으므로 서로를 용서하는데 기쁨을 누리는 인간관계가 참으로 편안한 인간관계라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는 분명히 성장하고 성숙한다고 믿는다.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의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인간관계에서는 '용서'라는 단어는 생활화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완변주의적 사람은 교만함 가운데서 자신의 결점을 용납할 수가 없기에 상대방의 결점 또한 더욱더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완벽하게 보이는 인간관계를 유지한다고 착각할 수 있어도 이 얼마나 피곤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겠는가? 자신의 결점조차도 하나님께 용서함받고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하듯이 그의 사랑으로 나 자신을 용서하고 용납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편안함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자신의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진실되게 나아가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그러한 자는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게 꾸미려고 형식적인 부분에 치중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자에게서는 왠지 인간미를 느낀다. 포장을 거부하고 마음과 마음의 대화를 추구하는 자에게서 나는 매력을 느낀다. 과연 나에게 이러한 매력이 있는가?

7. 진실성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진실해야 한다. 솔직해야 한다. 내 모습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면 또한 그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걱정하고 있다면 결코 인간관계를 단순하고 순수하고 진실되게 유지하기가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인간관계가 상대방이 나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유지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얼마나 피곤한 인간관계인가? 서로를 탈진시킬 것이다.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인간관계는 진실함을 느낄 수 있는 관계이다. 그 진실함이 언어로도 느낄 수 있지만 분명히 비언어적으로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말보다 비언어적으로 자신의 진실성을 겸손히 또흔 잔잔하게 들어내는 사람에게서 나는 매력을 느낀다. 왠지 마음에서 그러한 사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심비에 주님의 사랑을 심어주는 사람들은 진실한 사람이다. 결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우리 마음판에 새겨질 수가 없는 것이다. 새겨진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편안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또한 유지하고 싶다.

나 같은 자를 편안하게 대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제임스 나눔/자료ⓒ창골산 봉서방

선교지에서 지내는 동안 인간관계를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나면 금방 가까와질수 있고 설혹 오해가 있더라도 쉽게 풀릴 수 있을텐데 만남을 꺼려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심지어 만남의 기회를 가로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교제를 나누지 못하도록 담을 형성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쉽게 용서하고 빨리 용서를 구하는 능력>만 있어도 그리스도이 지니는 코이노니아(친교)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이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 떠넘기기까지 합니다. 한 차례도 찾아온 적도 없으면서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나이도 적지 않은 만큼 더욱 따뜻한 가슴으로 모두 품기 원합니다. J형제와 교류를 갖게 되어 여러 선교지를 동행한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파송 교회와 가족 그리고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연합하여 큰 몫을 감당해 나가리라 기대됩니다. 러시아를 사랑하는 J형제의 모든 기도와 바람이 응답되리라 믿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관계 유지에서 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성도 간에 하나가 될 때 천국 공동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 의식을 가져야겠습니다.

<사진설명> 시베리아 원주민 마을을 찾아간 미하일 목사님, 이 선교사와 사라 선교사- 이 선교사 옆에 있는 시베리아 원주민 형제는 삼수 끝에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협력교단인 러시아 침례교회에서는 주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문답에 통과해야 세례(침례)를 주기 때문에 늦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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