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위하여 부활하였노라

by 이재섭 posted Apr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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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온 백 쉰 여섯 번째 편지



2004년도 고난 주간에 교회의 한 청년이 나에게 전화를 해 자신은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제 밤에는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다가 참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자신 뿐 아니라 극장 문을 나서는 친구들의 눈들이 눈물로 인해 다 충혈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모든 호주인 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함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영화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설교를 듣고도 울지 않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니 참 영화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2001년도에 플로리다 주에 있는 한 은행에서 2만 5000달러를 털고 도주 중인 범인이 경찰에 자수를 했습니다. 범인의 자수 동기는 자신이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자수를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로 며칠 후 미국의 텍사스 주에서 도피 중이던 살인범이 자수를 했는데 그도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 자수를 했다고 했습니다. 두 달 전 애인을 살해한 후 마치 그녀 자신이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고 숨어 지내다 우연히 이 영화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영화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는 한 편의 동일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호주 출신 배우 겸 감독인 멜 깁슨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이후 골고다 언덕으로 가서 죽기까지의 짧은 여정을 그렸고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유대인의 광기와 예수의 수난을 세밀히 묘사했으며 특히 고문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했으며 또한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라틴어와 아람어로 촬영했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특히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을 유대인으로 직접 표현했다며 유대인들의 반발이 굉장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부활절을 앞두고 개봉되었었는데 이 영화를 기독교인들만 볼 것이라고 예상 했었는데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나 긴 영화 행렬을 이룬 가운데 비기독교인 들도 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섰었다고 했습니다.



극장 밖에서만 아니라 극장 안에서도 진풍경이 벌어졌는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것인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몰입되어 아멘을 외쳤고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는 아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나는 호주에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호주에서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내가 영화를 볼 때에 호주인 들은 아멘을 외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숨 막히는 순간들이었고 특히 예수가 고문을 받으면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고문을 받을 때 채찍에 맞아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장면과 그로인해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장면,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무지막지하게 생긴 못을 예수의 손에 들이 밀어대는 장면과 그리고 그 못 위를 망치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장면들은 정말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12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상영되는 두 시간은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에 거의가 할애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장면은 빈 무덤과 함께 극히 짧은 시간이었고 그리고 그 장면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이 영화가 예수의 고난에 대해 잘 표현해 주었다고 해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고난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해도 비록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수의 부활의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실패한 것일 것입니다. 나는 그 두 시간의 모든 장면 속에서 마지막 장면인 부활하신 예수께서 지나가면서 그의 손에 못으로 인한 큰 구멍이 난 것이 클로즈업되는 이 장면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정곡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승리와 환희의 마지막 장면이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 되어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고난만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고난은 다른 종교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의를 위해서 고난 받는 위인도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만 있는 죽음의 종교도 아닙니다. 진리를 찾다가 죽어간 많은 성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이 있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없어서 자신은 볼 때까지 믿을 수 없다고 하던 의심 많은 도마에게까지 나타나시어 친히 그의 손에 못 자국과 옆구리에 창 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여주신 주님께서 오늘도 영화로 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모양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어 친히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부활하였노라”

글쓴이 김해찬목사/호주 시드니 하나교회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