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도 광야처럼

by 이재섭 posted May 18,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나님이 일을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광야를 반드시 통과하는 것입니다. 지정학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도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야곱도 홀로 광야에서
잠을 자야 했던 날이 있습니다. 요셉도 홀로 구덩이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양을 치며 무려 사십 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윗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앞두고 광야에서 사십 일을 지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도 광야생활이 있습니다. 바울도 회심한 후에 아라비아에서 보낸 시간들이
있습니다.

광야, 그곳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느 교수님은 말하길 광야는 하나님이 극대화되고
사람이 극소화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에 가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오직 한 분만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고 신뢰하려고 해도 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이 광야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생활은 사람이 커지고 하나님이 작아집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아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살만합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만든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습니다.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면 됩니다. 사람을 나의 도움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치하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는 없습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살던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도 사십 일도 사 년도 아닌 사십 년 동안이나. 그렇다고 양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만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 분과 함께 사십 년을 살았습니다. 모세와 다윗은 유난히
광야생활이 길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광야생활을 한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담대함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면서 들려준 그 믿음의 고백들은 광야생활을 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다윗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기자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는 초막에서 일주일
정도 생활을 합니다. 광야체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1년에 한 차례
광야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광야체험을 통해 하나님은 다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게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게 합니다. 재물을 사용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기본 질서입니다.
도시생활을 하다보면 재물을 의뢰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재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엉클어집니다. 이 엉클어진 것을 다시 푸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에 가면 이
엉클어진 것이 풀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주기적으로 광야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소망하기는 우리는
도시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광야에서 사는 것 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의뢰할 만한
사람들이 많고, 의지할 만한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길 원합니다, 저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도. 사랑합니다.

광염교회 조현삼 목사

사진설명- 시장을 찾은 이르쿠츠크 시민들 모습 - 왼쪽 건물이 이르쿠츠크 백화점
우리와 같은 크리스챤은 0.5%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