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랑의 이야기

by 이재섭 posted May 18,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인숙아, 너 요즘 공부 안 하는 것 같다.>
길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인숙이를 만났다. 인숙이는 이때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이 무렵 나는 오랜 과외지도 경험 탓으로 얼굴만 보아도 학생들의 학습 태도나 성적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신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지만 사례조차 어려운 개척교회를 돕고 대신 필요한 용돈은 과외수업을 통해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는 해서 뭘해요. 어차피 고등학교에 못갈텐데->
길 가다가 마주친 인숙이의 힘없는 답변이 맘에 걸렸다.
<..................>

내가 한동안 다녔던 교회 중3 여학생 가운데 장인숙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나는 다른 교회 전도사로 옮겨갔지만 오랫동안 다닌 교회라 교회 식구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인숙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주일학교 교사여서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인숙이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아마 인숙이 생모보다 더 예쁜 여자를 얻으려 들었던 것 같다. 인숙이 생모 쪽으로만 해도 자녀가 넷인가 되었다. 그래서 인숙이 집에서는 가정형편상 여자는 모두 중학교까지만 가르치기로 정해 두었다 한다. 인숙이는 차녀다. 착하고 똑똑했던 언니도 여자였던 탓에 중학교 졸업으로 학창 생활을 끝냈다.


<인숙아, 내 말 잘 들어야 해.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계시단다. 하나님이 자기 딸인 너를 고등학교에 보내주려고 하셔도 네 실력이 부족해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못가면 어떡할래.>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 집 형편을 제가 더 잘 알아요.>
착실하기로 소문난 학생이 이렇게 주저앉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인숙아, 너 내말 꼭 들어주렴. 이건 절대 비밀이야. 부모님이 아시면 반대할테니까-. 우리 집에 와서 과외공부를 해라. 남들보다 조금 먼저 오면 기초부터 가르쳐줄께. 누가 알면 오해할 수 있으니 반드시 비밀이라야 한다.>
물론 수업료는 없다. 인숙이는 우리 과외 교실 특별 장학생으로 받아주는 셈이다.

인숙이와 나와는 일곱 살 차이- 이미 고교 진학을 포기하기로 되어 있는 여학생을 그것도 우리 집에서 가르치는 걸 주위에서 알게 되면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 십상이었다.
며칠 후 마침내 인숙이가 교복 차림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든 채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인숙이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자신은 진학을 안 할 예정인 만큼 보충수업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허락해 주셨다 한다. 대신 매일 방과 후 학교에서 바로 우리집으로 향했다. 버스가 연결되지 않아 30분 이상 제법 먼 거리를 걸어다녀야 했다.

인숙이에게 공부를 가르쳐보니 아니나 다를까 중학교 1학년 수학 문제도 제대로 못 푸는 것이었다. 어릴 때 공부를 잘했던 인숙이가 그 사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인숙이 집안과 여러 해 동안 한 교회를 다닌 탓에 인숙이 집을 자주 방문했다. 가족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수업만큼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라 생각됐다.
나는 중고교를 독학으로 마친데다 학생들 과외경력이 만만치 않아 급속도로 인숙이의 기초를 정리해 주었다. 본래 똑똑한 인숙이라 잘 따라 주었다.

이해 8월 초 나는 군에 입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인숙이와의 비밀 수업도 이제 마무리해야 될 상황이었다. 그 사이 인숙이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 나는 속성지도에 일가견이 있었다.
<인숙아, 너 혹시 진학을 못하게 되면 검정고시를 볼 생각은 없니?>
<전 선생님같이 끈질지기 못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 부탁인데 공부는 계속해야 돼. 마치 고등학교 입학 시험보러 가는 아이들처럼 꾸준히 공부하렴. 내말 알겠지.>
<예, 노력할께요. 선생님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이로부터 몇 달 후 군에서 아직 신병 생활을 고생스럽게 할 무렵이었다. 인숙이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 어느 위문편지보다 반가웠다. <얘가 철들었네. 편지도 다 보내고-> 하고 뜯어봤다. 과연 고등학교를 무사히 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선생님, 지금 저는 고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요. 작년 가을에 이천에 사는 고모가 서울에 오셨다가, <인숙아 너 고등학교 가니?>하고 물으시기에 <못가요.>하고 대답했더니 고모님이 깜짝 놀라시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착실한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면 되나. 인숙아 너 나 따라 우리 집으로 가자. 우리 집에서 고등학교 다녀라. 우리 집에 같이 살면서 니 사촌동생들 공부도 좀 봐 주렴. 나랑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살자.> 하시는 거예요.
이 말을 듣고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하나님이 나를 돕고 계시다는 생각도 느꼈고요.

선생님 지금 저는 고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요. 지금 주산 시간이어서 사방에서 콩볶듯이 주산 소리가 들리지만 저는 이 시간 선생님께 안부도 전할 겸 위문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고모님을 따라 이천으로 내려가 고등학교에 시험보러 갔답니다. 그런데 글쎄 제가 2등으로 합격했지 뭐예요. 모두 선생님의 은혜라 생각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모님이 우리 집에 이렇게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를 썩힐 뻔했다는 말을 듣고 저는 선생님 생각을 했어요. 군대 생활하는 동안 부디 몸 건강하게 안녕히 계세요.>

이런 일이 있은 지 약 10년이 지난 후 인숙이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통신신학을 하려고 원서를 내러 왔다가 마침 이 학교를 방문 중인 나와 마주친 것이다. 그새 인숙이는 시집을 가서 아들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인숙이의 얼굴은 아직 청순한 여학생같이 느껴졌다.
인숙이가 지난날을 추억할 때 내게 비밀수업을 받던 일들이 떠오르리라 생각된다.
나는 주님의 도구일 뿐 결국 주님께서 인숙이를 사랑하셔서 복을 주신 것이리라. -
인숙이는 지금도 자기가 받은 사랑의 빚을 주위에 나누어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사진설명-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추운 겨울 어느 날 멀리 떨어진 부랴트 마을을 찾은 사라 선교사와 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