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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이 말하는 공동체성


문 동 학 (온누리교회 목사, Claremont Graduate School Ph.D. Cand. / 구약학)

들어가면서: 방법론적 서문

공동체성 또는 공동체의 삶은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보다 철저한 의미로 이해할 때, '구약성서신학적' 주제라기 보다는, '해석학적' 주제이다. 첫째, '공동체'라는 주제는 구약성서 본문의 주도적 의도성 안에 있지 않다(참조. Hans-Peter Müller, "Gesellschaft/ Gesellschaft und Christentum," TRE:756-764). 공동체성을 정의하고 규명하는 것이 구약성서가 선포되고 전승되고 보존된 바 그 원래의 의도는 아니다. 구약성서 본문이 선포되고 기록되고 전승될 때, 공동체의 삶을 신학적으로 진술하고자 하는 것이 구약성서의 원래의 의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동체성 또는 공동체의 삶은 구약성서 본문의 사회적, 문화적 전제이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성은 구약성서의 본문이 선포되기 이전에 이미 사회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조건이었다. 둘째, 구약성서가 '공동체'에 해당되는 용어들, 즉 '백성,' '나라,' '민족,' '가족,' '부족,' '모임,' '언어,' '수치(shame)와 영예(honor)' 등등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공동체성이 구약성서신학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용어는 문화사회학적, 사회학적, 문화인류학적, 사회윤리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구약성서 본문의 사회과학적 전제들을 재구성하는 것은 구약성서신학의 주 과제가 아니다. 구약사회학, 구약역사학, 구약사회윤리학의 과제는 되겠지만, 또 이것들이 구약신학을 정립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구약성서가 연구의 소재를 제공한다고 해서, 그 소재 자체가 구약신학적 주제라 말할 수 없고, 구약성서에 언급된 용어라고 해서, 그 용어를 풀이하는 행위 자체가 구약신학적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구약신학의 과제는 더 근본적이어야 하며, 더 철저해야 할 것이다(구약신학의 과제를 논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는 아니다).

공동체성 또는 공동체의 삶은 '구약성서해석학적' 주제라고 말하는 데에는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공동체성을 재론할 필요를 제공한다. 사회전반적으로 붕괴(disintegration)와 분해(deconstruction)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따라서 통합(integration)과 재건(reconstruction)은 논리적으로 그것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적 귀결이다. 개별화 또는 개인화(individualization)의 예방 또는 처방으로서 '공동체 재건'(community build-up)을 논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과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실존적 경험들 가운데서 고민하고 갈등하며 하나님 말씀을 기다리게 된다. 이때, 우리는 '구약성서는 공동체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며, '구약성서가 말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meaning)를 생산해 내는가?' 하며 탐구하게 된다. 따라서, 이 짧은 글의 출발은 '해석학적'이다. 해석학적 고민과 고통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해석학적 의미생산을 추구해 보는 것이다. 둘째, 구약성서 본문 안에 공동체에 대한 의미의 변화와 발전이 내재되어 있다. 즉, 구약성서는 이미 그 자체 안에 해석학적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그 변화와 발전은 구약성서 본문의 명백한 의도성 안에 있지는 않고, 비의도적으로, 즉 본문의 무의식의 세계에 침잠하여 흐르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와 발전의 단계에 따라 공동체에 대한 해석과 의미의 변화가 구약성서 본문의 이면에 반영되어 있으며, 이것을 재구성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공동체성의 주제를 접근하는데 어느 정도 - 결정적이지는 않고 - 도움이 될 것이다.

구약의 공동체

구약의 공동체, 또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민족적, 인종적, 지역적 공동체라기보다는 종교적, 정치적 공동체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가족 공동체로부터 출발하여 부족 공동체를 거쳐 국가 공동체로 발전하는 과정은 지난 200여년 간의 이스라엘 사회역사 연구의 주요 소재였다. 이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구심점은 '야웨신앙'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특정 사회계층, 특정 인종적 집단, 특정 지역적 집합체라기 보다는 특정 종교적 집단의 성격이 강했다. 족장시대에는 가족적, 부족적, 혈통적 성격이 강하다가, 출애굽을 경험하면서(출12:38을 보면, 출애굽에 다른 민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사 시대까지 신앙적 공동체의 성격이 강했다. 그후 왕국 시대에는 다시 세속화의 과정, 즉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가, 포로기를 경험하면서 다시 종교적 집단, 신앙적 공동체의 성격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구약의 본문은 어떤 종류이든지 공동체성을 전제하고 있다. 족장 이야기를 족장 중심의 공동체를 전제로 설명하는 것은 알트(A. Alt) 이후 아직도 구약사회학의 주요주제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경험을 공유한 공동체이며,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언약 공동체이다(특별히 Ernest W. Nicholson, God and His People: Covenant and Theology in the Old Testament. Oxford: Clarendon Press, 1986를 참조). 계약법전과 성결법전과 신명기법전도 공동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으며, 신명기 역사서와 예언서, 심지어 시가서와 지혜문학도 이스라엘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다. 즉 공동체는 대부분 구약문헌에 전제되어 있다. 구약신학의 중심적 주제인 언약, 정의, 평화, 사랑, 역사, 선택(프로이스는 선택을 중심주제로 구약신학을 재기술했다. 참조: Horst Dietrich Preuss, Old Testament Theololgy. I & II. OTL.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5) 등도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전제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구약이 경전화(canonization)되는 과정에 '공동체'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구약 경전은 공동체와의 상호관계에 의하여 경전으로 형성되었다. 공동체 없는 경전은 불가능하다(참조. James Sanders, Canon and Community: A Guide to Canonical Criticism.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4). 이렇게 공동체는 구약의 본문이 명백하게 서술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구약의 본문의 서술에 있어 이면에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즉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으면, 구약을 이해하는 출발부터 오류가 생긴다. 왜냐하면, 구약 자체가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주석작업과 해석작업도 그 전제된 것을 의도적으로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성(
구약의 공동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
이를 통해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단순한 '이익공동체'(Vereinigung)가 아니고 '생활공동체'(Gemeinschaft 또는 Gesellschaft)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상 이러한 구별도 완전하지는 못하다. 종교현상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Gemeinschaft 와 Gesellschaft를 철저하게 구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참조. Geo Widengren, Religionsphänomenologie. Berlin: Walter de Gruyter & Co., 1969:594 이하).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다만, 이스라엘은 공동체를 이루는데 있어 여러 가지 구심점들이 있었지만, 역사를 거듭하면서 야웨신앙이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민족공동체, 지역공동체, 직장 또는 이익단체 공동체를 구심점으로 하여 집착과 투쟁을 일삼는 집단 이기심은 그 어떤 근거를 사용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가 혈연, 지연, 학연, 이익관계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포괄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관습(Custom)과 윤리(Ethos)와 법(Law)

어떤 사회 또는 공동체이든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관습과 윤리와 법이 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구별된다고 할 때, 이것은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관습과 윤리와 법이 있다는 말이다. 관습은 자연발생적이며 폐쇄된 체계 내에서는 가치 중립적이며 맹목적, 비의도적이며, 집단적 무의식의 축적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도 나름대로 관습이 있었다. 한편, 관습이라는 측면에서는 주변 민족들과 공유하는 것도 많았다. 보다 민간적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관습은 그 자체가 '이스라엘적'이라고 규정짓기가 어렵다. 물론 관습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확장하는 방향으로 강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이스라엘의 관습이 구약 본문의 이면에 전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관습을 가리켜 '구약적,' 또는 '성경적'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가장 대표적인 실례는 아브라함이 하갈을 첩으로 맞이할 수 있었던 관습, 그리고 형이 상속자가 없이 죽었을 때 그 아내는 시동생과 결혼하여 상속자를 낳아야 했던 관습이다. 이러한 관습에도 신에 대한 신앙과 경외가 동반된다. 관습이 공동체를 한계 짓고 특성을 말해 주지만, 만약 이스라엘 공동체가 자기들의 관습의 한계에 머물러 있고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관습이 윤리로 결정화되어 나갈 때, 주변 민족들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 그 대표적 실례는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윤리적 계명으로서 씨족 사회와 부족 사회의 윤리적 덕목을 반영하고 있다. 어느 종교적 공동체나 내적인 윤리적 덕목을 신의 계명으로서 절대화시켜 나가는 것이 일반적 현상인데, 십계명에서는 그 계명이 갖고 있는 내재적 가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종교적 현상을 초월한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십계명에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윤리로서 시공간의 격차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내적 가치가 있다. 일반적 종교현상에서는 신에 대한 절대적 헌신만을 강조하는 것이 두드러지나, 다른 종교현상과 차별되게 하는 구약의 십계명의 내적 가치와 우월성은 두 번째 돌판이 갖고 있는 '공동체적' 윤리에서 나타난다. 이 공동체적 윤리는 생명 존중 사상(6계명), 성적 윤리와 결혼과 가정의 순수성 강조(7계명), 타인의 재산권 보호(8계명), 정직과 진실(9계명), 그리고 더나아가 심리적 덕목(청빈과 절제, 10계명)으로 결정화되었다. 십계명은 시내산 언약 체결의 문맥 중 언약서 안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그 절대적 가치가 극대화된다. 십계명으로 표현된 이 공동체 윤리는 21세기 사이버 월드(Cyber World)의 시민(Netizen)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다른 사회와 같이 윤리의 최소한을 법제화시켰다. 레위기의 성결법전은 시민의 사회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법철학적 체계가 '성과 속' 또는 '정결과 부정'이기 때문에 보다 제사적 또는 보다 종교적 법으로 분류가 된다. 신명기 법전은 고아와 과부와 객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시키지 말라는 놀라운 '정의'(Social Justice)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사회역사에 있어서 그 신명기 법이 실제적으로 선포되고 시민에게 강제되어 위법자를 처벌하는 기준이 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신명기 법은 이상적인 사회의 현재적 선포일 수 있다. 우리가 '법'(Law, 또는 Justice)이라고 할 때, 가장 근접하고 또 가장 본질적인 것은 역시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이다. 이 법전은 '사례법' 또는 '판례법'(casuistic law)의 모음집인데, 한 마디로 '정의들'(
맺는말: 공동체에 대한 희망

구약 신앙은 공동체적이다. 하나님의 계시, 선택, 구원, 임재 및 동행, 심판과 구원,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찬양과 감사와 탄원 등은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가장 결정적인 공동체의 구심력이 되었다. 이 신앙은 인종, 계층, 소유를 초월하고 극복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관습과 윤리와 법에 반영되고 결정화되어 있다. 공동체를 빼면 구약적 신앙의 해석이 어렵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공동체의 구심력을 이룬 곳이 교회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들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조직의 구성원들과는 달리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집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백성,' '내 백성'으로서의 교회가 집단 이기심이나 불의함을 배제시키고 극복해야 하는 근거는 바로 신앙공동체의 윤리에 있다.

이러한 하나님 신앙은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희망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이사야 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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