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by 이재섭 posted May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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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이칼 인가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차가우며, 가장 크고(남한면적의 약 1/3), 가장 깊은 담수호이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호수로, 전세계 담수총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정처럼 투명한 물 속에는 담수물개, 철갑상어, 속이 다 보이는 투명한 물고기 골로미양카 등과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1,500여종의 다양하고 고유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살아 있는 진화박물관이자 원시생명체연구소이기도 하다.

담수 생태계 가운데 순수한 생물 종의 숫자가 가장 많으며(1997년 현재, 1500여종) 그 중 75%가 다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유토종으로서 그 토종의 비율 또한 세계 생태계 중에서 가장 높다.



또하나의 지구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가 다른 호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유한 토착성을 갖는 이유는 바로 그 자신의 특수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물의 차가운 정도, 나이, 크기, 깊이, 맑은 정도, 다른 담수 생태계와의 단절 등 여러 면에서 바이칼은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만일 바이칼이 이런 속성들 중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의 특별생태계 중 하나일 뿐이지만 이 모든 속성들을 다 가지고 있으므로 생태계 조건으로 볼 때 그것은 거의 ‘또 하나의 지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이칼 호수는 생물학, 진화학 그리고 지질학 분야들이 서로 만나 과학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근원이랄 수 있다.



바이칼의 토착 생물 종들 중에 지형의 급변에 의해 격리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2,500만 년 동안 이 호수 안에서 진화해 왔다. 이들은 거의 모두 ‘필라젤’ 구역이라 불리는 바이칼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데, 환경공해에 오염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이 필라젤 구역에서는 토착 생태계가 자연스런 방법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이칼이 과학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장 귀중한 교훈이며, 또한 세계의 저수지라는 위상과는 별도로 우리가 바이칼 호수를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발원지 바이칼 호

이러한 생태학적 이유들 외에도 역사적으로 바이칼 호수는 중앙아시아 또는 유라시아 유목민족들의 발원지이자 이동경로로서 중요한 세계사적 의의가 깃들여 있다.



일찍이 12세기 초 바이칼호 근처에서 일어나 한 세대도 채 지나기 전 당시 문명사회의 꽃이라던 북경과 바그다드와 키예프를 함락시키고 홀연 세계통합을 이루면서 새로운 문명세계를 건설했던 징기스칸의 몽골, 4세기 후반 ‘신의 채찍’으로 불리며 유럽의 ‘영원한 수도’ 로마를 위협했고, 기원전 200년 이후 수백 년 동안 중국 한나라를 압박하여 몽골 고원과 황하 이북 및 만주에 거대한 흉노제국을 세웠던 훈족(흉노), 중국 대륙에 북위(北魏), 북주(北周), 수(隨), 당(唐)의 제국을 건설하고 수백 년 통치했던 몽골계 선비족(鮮卑族) 탁발부(서양에서는 ‘타비가츄’로 알려짐), 또한 6세기 후반 불과 20년만에 동쪽 만주로부터 서쪽 비잔틴제국의 북방지역, 남쪽으로는 힌두쿠시에 이르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동서와 남북에 걸친 대제국을 일구었던 투르크(돌궐)족, 8세기 중반 역시 투르크계로서, 투르크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이 몽골 고원을 차지한 후 당시 붕괴 직전의 당 왕조를 대신하여 약 100년 동안 동아시아의 패자를 지낸 위구르족,

9세기의 투르크 계통 몽골족 키르기즈, 10세기 당나라 멸망 후 장성 이북에 키타이(Khitai) 요(遼)제국을 건설하여 북송(北宋)을 압박하며 11세기까지 동방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했던 거란족…….



이상 언급된 유목민족들 모두가 역사적으로 바이칼호 남부의 오르콘강과 툴라강의 상류 초원에 그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이칼호는 마치 민족의 발원지이자 자궁과도 같은 성스러운 바다였다.



징기스칸의 탄생지이자 무덤이 있는 바이칼 지역

특히 징기스칸은 1167년경 바이칼호 서부 해안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바이칼 호수의 가장 큰 섬인 알혼(olkhon)섬의 동쪽 동바이칼 바르구진(barguzin)의 토착 몽골족이었으며 나중에 이 바이칼 서부 알혼섬으로 이주하여 왔다는 전설이 있다.

징기스칸도 몽골제국을 건설하며 정벌전쟁의 틈틈이 자신의 고향인 바이칼에 들러 기도와 명상, 휴식을 취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으며, 사후에도 알혼섬에 무덤을 썼다고 전한다.

어쨌든 인류역사의 주무대를 유럽과 아시아로 보는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기원전과 기원후를 통해 수천 년간 세계 인류의 삶과 문명에 가장 역동적인 변화의 틀과 계기를 마련해 왔던 수많은 유목민족들의 거점이었던 시베리아,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지역은 바이칼 호수 지역이었다. 또한 금년 6월 바이칼 현지 답사 때 만난 이르쿠츠크국립대 블라디미르 교수(역사학)는 “바이칼이 모든 몽골인종의 근원지이다.”라는 말로 시베리아 지역에서의 바이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모든 몽골 인종의 근원지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steppe)지대를 생활무대로 삼던 유목민족의 인종적 갈래는 대부분 몽골로이드 황인종이며 오늘날 한반도에 정착한 한국사람들 또한 같은 혈통의 북방 몽골로이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기원과 그 형성을 살펴보고자 할 때 바이칼호는 연구의 중심축에 해당되는 여러 가지 역사 문화적 근거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국학자였던 육당 최남선 선생과 봉우 권태훈 선생 등 선학들이 바이칼 호수 일대를 우리 민족 문화의 발상지로서 주목한 바 있다. 물론 우리 조상들의 활동무대이며 근거지로 비정되는 지역들은 러시아 연해주, 알타이, 우랄 산맥 지역과 만주의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여러 곳이 있지만 우리 문화의 뿌리와 우리 겨레 얼의 진원지로서는 바이칼호 부근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 학계의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민족지학, 형질인류학 및 유전인자를 다루는 생화학, 분자생물학까지 동원된 종합연구성과로서는 아직까지 우리 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확실한 정설은 없다.



대략 오늘날의 한국인은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 연해주 등지에 살고 있는 여러 종족들, 즉 축치, 코랴크, 캄차달, 유카기르, 이텔만, 켓트, 길라크, 골디, 에벤키, 부리야트, 우에지, 사모예드 등의 퉁그스족으로 구성되는 몽골로이드 황인종들의 여러 갈래 -중국 문헌상에 동호, 숙신, 말갈, 읍루, 거란, 여진족 등으로 표현됨-들이 구석기시대인 지금으로부터 약 1만3천 년 전 대빙하가 녹은 후빙하시대 충적세의 따뜻한 기후와 함께 바이칼호를 떠나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최몽룡, 『한국문화의 시원을 찾아서』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밀접한 바이칼

하지만 이러한 학계의 가설과 상관없이 확실한 것은 바이칼호 주변 일대의 문화적 토양이 우리의 토착 문화적 그것과 너무도 유사성이 많다고 하는 근원적 친연성이다. 특히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성지(聖地)라 일컬어지는 바이칼 알혼섬은 역사적으로 코리(Khori) 부리야트족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고 이 코리족이라는 바이칼 원주민은 또한 고구려의 조상인 북부여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바이칼호 일대의 토착원주민인 부리야트 몽골족의 정신적 뿌리인 샤머니즘과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유사성, 여러 가지 전통 풍속상의 동일성들을 보더라도 바이칼 지역이 우리 문화의 뿌리와 밀접한 문화사적 의미를 적잖이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바이칼의 생태환경적 의미와 드넓은 시베리아의 초원 및 울창한 타이가 삼림이 주는 아름답고 장쾌한 대륙적 풍광을 생각할 때 바이칼을 향한 의미는 더욱 풍요해지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이러한 바이칼의 여러 의미들을 총체적이고도 다각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제 1부, ‘바이칼 순례기’에서는 2년 전부터 바이칼에 주목해 온 봉우사상연구소 민간문화답사팀의 상세한 현장보고서가 여행기 형식으로 풍성한 사진들과 함께 실려 있다.



이어서 한국 시베리아학회를 이끌며 우리의 척박한 북방문화연구 풍토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애쓰고 있는 러시아 문학자 이길주 교수의 「하늘을 닮은 마을, 바이칼 사람들」은 바이칼호를 포함한 광대무변한 시베리아대륙에 대해 서술한 국내 최초의 인문지리학적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그는 따뜻하고 유려한 문학적 필치로 시베리아의 역사와 인문지리학적 배경, 원주민인 몽골리안들의 현재적 실상 및 러시아 진출과 통치의 문제점들까지 시베리아 연구 초보자들을 위하여 친절하고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시베리아에서는 무기보다 토기가, 사람들보다는 식물과 동물의 유해가 더 많이 발굴되고 있다고……. 또한 그곳에서는 전쟁보다 신명나는 샤먼의 굿을 더 자주 펼치고 사람보다 자작나무와 곰과 범을 더 숭배하던 민족들이 살아왔노라고…….





샤먼의 바다, 바이칼

또 하나 주목해야할 글은 양민종 교수의 「샤먼의 바다, 이야기의 천국」이다. 모스크바대학에서 문학이론을 전공한 양교수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 비슈케크국립대학에서 알타이 구비문학을 연구하기도 한 독특한 경력의 학자로서 바이칼 호수가 인근지역의 촌락수보다 더 많은 풍요한 전설과 민담을 품고 있는 샤머니즘의 바다라고 정의하였다.



즉, 바이칼의 ‘바이’라는 말이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상고시대의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샤먼을 가리키고 ‘칼’은 괼, 골, 곌 등으로 불리는 넓은 계곡지와 호수를 의미하는 말이며, 결국 바이칼이란 지명이 바이칼 인근 지역과 극동을 잇는 동시베리아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바이’와 ‘칼’의 복합어였음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였다.



또한 바이칼 호수는 고대로부터 호수 자체가 샤먼인 것으로 고대인들에게 인식되어 왔다는 것이다. 사실 시베리아지역의 정신문화적 토양과 샤머니즘은 한반도 우리 민족의 시원 문화이기도 하다. 엮은이가 그간 다섯 차례의 바이칼 지역 답사를 통해서 그들의 제사 유적지와 전통 샤먼을 직접 만나 보고 확인한 것은 우리 전통의 솟대 신앙과 성황당 유적들이 바이칼 지역의 샤머니즘과 너무도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바이칼 알혼섬에 인당수가 있다

양교수 또한 바이칼 지역의 현지 답사를 통한 민담 채록 과정에서 예부터 바이칼호를 지나는 상인에 의해 바이칼 호수의 인당수(알혼섬 부근 추정)에 몸을 던지게 되는 희생 처녀가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을 하여 신들의 세계인 바이칼에서 살게 된다는 전설을 채록하였다.



이는 우리네 고전소설 『심청전』의 주요 모티프와 너무도 흡사한 바, 바이칼 지역 사람들의 문화가 중앙아시아부터 동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의 한반도까지 영향을 주고받는 문화적 공유성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덧붙여 우리의 대표적 전래설화의 하나인 『나무꾼과 선녀』도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산실인 바이칼 알혼섬의 코리 부리야트족 신화에서 비롯한 전형적 이주(移住)설화에 속한다.

「태초의 인간, 알혼섬의 샤먼」에서는 바이칼 호수 마을 ‘옐란치’의 부리야트 몽골족 전통 샤먼인 발렌친(47세)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네 무속 및 무속인들과 그네들 샤머니즘의 서로 같고 다른 점을 살펴보았다.





참 나를 찾아가는 순례, 민족 시원 문화 탐사

제1부 마지막 글로 몽골사학을 전공하며, 북만주 흥안령 산맥과 내몽골 지역 및 바이칼 호수와 알타이 산맥을 거쳐 우랄 지역까지 몽골리안의 활동 근거지들을 열정적으로 답사해 온 주채혁 교수의 「지금 우리에게 바이칼이란?」을 실었다. 주교수는 일찍이 1991년 몽골 수교를 하자마자 맨 처음으로 현지 답사를 하고 1992년 동몽골 학술대탐사 과정에서 현지 몽골 노인들에게 바이칼 알혼섬의 코리족 일파가 동진하여 만주와 한반도로 와서 부여족과 고구려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구비전승을 확인하여 국내학계에 소개하였다.



이후 수많은 북방문화탐사를 통하여 한민족의 시원 문화를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뿌리 찾기 역사 탐방의 의미를 참 나를 찾아가는, 내 안으로의 순례기행으로 승화시켜 나가려 열과 성을 쏟고 있다. 그가 한민족 시원지로 비정하고 있는 지역은 바이칼호 주변의 타이가숲 및 몽골 초원과 만주 흥안령 산맥 주변이다.



이 글은 민족 시원에 관한 여타 학자들의 논문과 달리 연구자의 땀과 열정이 배어나는 그런 담론이다. 북방 몽골리안 루트가 다시 열린 1990년대 초부터 부지런히 민족 정체성에 대한 거대한 의문을 지니고 현지 답사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길을 물어서 구석구석 헤치고 다닌 흔적들과 겨레에 대한 사랑이 물씬 풍겨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제2부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는 작년 2002년 8월 바이칼 인근 이르쿠츠크 국립대에서 한민족 기원을 주제로 개최된 한국, 러시아 양국 학자들간의 국제세미나 논문들과 그 개요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우선 「한민족과 바이칼」이란 제목으로 우리에게 바이칼 지역이 갖는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적, 유전학적, 역사적, 지질학적, 정치경제적 제반 의미들을 거시적으로 진단해 보는 전문가 좌담을 정리했다. 참석자들은 바이칼이 비단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문화적 순례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북방진출의 중요한 관문의 하나로서 미래 동북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우리 삶의 역동적 발전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2부의 주요 논문은 이번 미팅의 한국 측 공동의장이었던 이홍규 박사(서울대 의대)의 「유전자로 찾는 한민족의 뿌리」와 고고학자 이헌종 교수(목포대)의 「현생인류의 출현과 한민족의 시원」, 생물학자 김욱 교수(단국대)의 「한국인 형성 과정의 유전자 분석」, 해양학자 노영재 교수(충남대)의 「바이칼호와 한반도의 기후」, 지질학자 김주용 박사(한국지질자원 연구원)의 「한국 후기 구석기 유적의 지층과 바이칼 알혼섬」 등이며, 러시아 측 학자들의 유전학, 고고학, 민족지학, 지질학 관계 논문들은 자하로프 박사 외에는 사정상 그 요지들만 번역하여 실었다.



자하로프 박사의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 바이칼 투바족」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 바이칼호 서부 사얀산맥과 알타이산맥의 투르크계 투바족임을 잔잔하고 알기 쉬운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이 글들을 보노라면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 확인 작업은 이제부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에 싣지는 못했지만, 자하로프 박사는 러시아과학원과 모스크바국립대 유전학과 교수로서 이홍규 박사와 주채혁 교수 등과의 협조를 통해 「알타이-바이칼지역 원주민의 미토콘드리아와 DNA변형: 북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나타나는 유전적 역사의 의미」라는 논문을 완성하여 최근 보내 왔다.



이 논문은 1997∼2001년의 4년간 알타이-바이칼 지역 8개 원주민 527명을 대상으로 DNA를 추출하여 미토콘드리아 DNA유형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여러 가지 괄목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우선 아메리카대륙의 최초 인류는 알타이, 바이칼 지역의 원주민들과 같은 유전학적 뿌리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이번 연구에서 밝혔다. 특히 바이칼호와 앙가라강, 사얀(Sayan)산맥의 남부 지역, 알타이산맥 자락의 한 종족이 아메리카 신세계에 Y염색체를 퍼뜨린 근원이었다는 점을 제기하였고 이중 바이칼호의 대표적 원주민 집단인 부리야트족과 남부시베리아의 소요트(Soyot)족이 한국인과 같은 줄기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www.bongwoo.org 자료실에 번역문이 실려 있다.)



2부에서 주목해야 할 글들은 의학자 이홍규 박사와 고고학자 이헌종 교수의 논문으로, 이번 이르쿠츠크 바이칼 미팅의 쟁점과 요지들이 대부분 집약되어 있다. 특히 한민족의 뿌리를 인류발생설과 연관시켜 아프리카 기원설을 토대로 하는 이홍규 박사의 바이칼 이동설에 대해 세계 다지역 인류발생설을 지지하는 이헌종 교수의 반론이 전개되어 한층 흥미를 더한다.

이 논문들을 보면 우리가 왜 이 바이칼을 민족의 시원 및 나아가서 동아시아 제 민족들의 시원 문화적 근거지로 상정하고 주목하는가에 대한 제반 학문적 입장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퉁구스족에 대한 새로운 인식

투로프 교수의 「퉁구스족과 에벤키족의 기원」을 읽으며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시원과 이동 경로에 대해 추적하다 보면 원주민 종족들의 이름만 무성할 뿐 그 뿌리는 대개 고아시아족과 퉁구스족으로 귀착됨을 발견한다.



여기서 고아시아족은 특별히 다른 종족이 아니라는 점이 현대에 와서 증명되었으므로 결국 퉁구스족 하나가 현재의 투르크 계열과 몽골계 시베리아 제 종족의 뿌리로 남는다. 러시아 학자들이 중시하는 에벤키족 역시 퉁구스족에 지나지 않고 아메리카로 이주한 종족 또한 바이칼과 알타이 지역의 투르크 종족이고 보면 시베리아 고대 문명의 주축은 퉁구스족 한 뿌리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은 바이칼을 우리 민족 시원지로서 확정할 수는 없지만 시베리아, 만주 및 극동 연해주 등 여러 후보지들 가운데 일차적으로 가장 유력한 대상지역임을 현재로서 부인할 수는 없겠다. 2부에 실린 글들은 우리 학계의 전문가들이 피력한 시원 문화론 제기의 일단으로서, 더불어 인접국가 러시아 학계의 견해도 수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기회가 마련되어 여러 차원으로 시원 문화 연구가 심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처럼 자신의 뿌리에 대해 학문적으로 국가적으로 소홀히 하는 나라도 흔치 않다는 점을 밝혀 둔다. 이웃나라 일본은 자신들의 시원을 연구하는데 매년 국민세금으로 100억 원을 쓰고 있다.(이홍규박사 글에서)



2부 마지막 부분에는 「한반도 통일과 시베리아 바이칼」이란 관점에서 러시아 경제 전문가 한종만 박사(배재대)의 「동토에 봄은 오는가」를 실었다. 한종만 박사에 따르면 러시아시베리아 및 극동지역이야 말로 향후 우리나라가 동북아 중심국가로 부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이라 규정짓고, 한반도 통합과정에서 이곳과의 인적, 물적 교류의 활성화로 상호간 경제적 이익을 창출시키고 사업추진과정에서 재외 한민족과 북한 동포들을 참여시켜 민족 동질성과 정체성을 유지시켜나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시베리아

바이칼을 포함하여 시베리아와 극동 연해주까지, 우리와 이웃한 이 광대한 땅덩어리의 경제적 가치란 정말 대단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
2. 지구상 마지막 남은 처녀지이자 천연자원의 보고이다.
3.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교량이다(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4. 풍부한 수자원과 수력발전 잠재력을 보유.
5. 세계적인 수산자원과 삼림자원의 보고.
6. 잠재력 높은 한국과의 농업개발 협력사업.
7. 관광 및 생태자원의 보고.
8. 기초과학기술의 메카(노보시비리스크 과학 연구단지).



이밖에도 더 많은 의미들을 열거할 수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은 앞으로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시베리아 지방정부와 그 주민들은 이 지역이 중국인과 일본자본, 미국의 영향력에 넘어가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경계한다는 점에서 한국과의 상호보완 차원의 경제 협력은 현재로서 아주 전망이 밝다 하겠다.

마지막 제3부 ‘시원으로 가는 길’은 바이칼 시원 문화 여행 가이드 편으로 그간 시베리아 바이칼호 인근지역에 대한 안내가 전무했던 출판계 정황을 고려해서 이곳을 찾는 일반인들을 위해 제공하는 종합 여행정보 서비스라 할 수 있다.

봉우사상연구소는 국내 최초로 바이칼 지역 민간 문화 답사를 기획하고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현지 답사를 통해 수집된 각종 여행정보와 현지 사정들 및 볼거리들을 이곳에 모두 풀어 놓았다.





시급한 문화적 진출과 투자

결론적으로 바이칼 지역을 포함하는 시베리아, 극동러시아 지역은 비단 민족 시원 문화의 근거지라는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적 차원에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중요성과 친연성을 바탕으로 한 미래 동북아시아의 역동적 삶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문화적 교류가 더욱더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정부차원의 세심한 배려와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시베리아 지역에서 창출할 경제적 이익이란 실로 막대하며 그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하지만 경제교류와 진출에 앞서야 할 것이 문화교류이자 진출인 것이다.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문화적 진출은 자연스레 이뤄지지 않는다. 미리 의도하고 계획하여 준비된 정책 아래 꾸준히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의 의미도 결국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거시적으로 바이칼 문화 탐사는 시베리아로 향한 우리의 정신문화적 교류이자 진출의 첫걸음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미래 한국과 러시아인들 간의 합리적인 경제교류의 초석이 되며 징검다리 구실을 해낼 것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우리의 북방문화 탐사는 알타이산맥 지역, 튜바 예니세이강 지역, 아무르강 유역, 연해주, 흥안령 산맥 지역 등으로 확장되어 갈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정신문화도 그 확장된 외연만큼 깊고 풍성한 내용을 갖추게 되리라 믿는다.



이제 때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남의 손과 머리에 의존하여 우리의 뿌리를 알려 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되어 우리 본모습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지난 2년간 이 책의 발간에 도움을 주시고 참여해 주신 국내외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린다.

출처 : [기타] http://cafe.naver.com/northroo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 boolingoo 2009.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