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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5 15:42

인생종말(딤후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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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종말
딤후4:1-8

1. 서론
10여 년 동안 병원에서 운명 환자들만 상담하던 미국의 로스 의사는 “인생은 항상 종말적인 질문을 가지고 살 때 비로소 완전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 엘본디는 “사람이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오늘 죽을 것처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내 인생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내 인생의 종말적 질문을 스스로 정직하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바울 사도가 파란 만장했던 전도인의 생을 거의 마치고 생과 사가 만나는 절박한 순간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특히 6절 이하 8절까지를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적어도 네 가지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질문이 있고, 여기에 대한 바울 사도의 정직한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의 및 아래 스스로 종말적 질문을 물어 보고 여기에 대하여 정직한 대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2. 본론
(1) 내 인생을 어떻게 정리하겠는가
첫째로 오늘이 내 인생의 종말이라고 하면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정리하겠는가?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답은 본문 7절에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33년의 전생을 “다 이루었다”고 정리하였습니다. 야곱은 “나의 나그네길은 고생과 수고뿐이었다”고 했으며, 나폴레옹은 “나는 실패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선한 싸움! 그것은 무엇입니까? 도덕주의자는 도덕적인 선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선이요, 하나님만이 선이라”고 하였습니다(요 6장). 하나님이 선이면, 바울 사도의 선한 싸움이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의지가 실현되기 위하여 부단히 자기를 죽이는 삶의 노력을 의미할 것입니다. 진정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았으며 지금까지 내 인생을 무엇이라고 정리하고 평가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볼 일입니다.

(2)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이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답은 본문 6절 상반절에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제사 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모든 순서의 마지막은 제물의 피 한 잔을 제단 앞에서 쏟는 선서로 끝이 납니다. 바울은 그의 전 생애가 마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 자신의 순교의 피, 그 피 한 방울을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 그의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그의 혈관 속에 붉게 흐르고 있는 피,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순교의 결단입니다. 여러분! 오늘이 내 인생의 종장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사실은 가족이나 교회 위해 기도할 것같으나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미루어야 할 일이 있고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은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정도 중요하고, 친구도 중요하고, 아이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것들이 신앙 생활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종말이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를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3)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가겠는가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본문 8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주를 사모하는 마음’을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질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바울도 물질을 남겨 두고 가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무덤 하나 없이 남의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가 얻을 수 있는 구원의 복음을 남겼습니다. 바울 사도도 그의 신학과 신앙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의 신앙과 생활은 각 시대, 각 정신 문화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맥락을 살펴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되는 기독교 신앙의 물줄기는 사도 시대의 바울의 신학과 중세와 초대 교회를 잇는 어거스틴, 그리고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에게서 꽃핀 성서적 신앙, 19세기 청교도들에게서 볼 수 있는 세계 선교의 신앙을 들 수 있습니다. 바울의 그 훌륭한 신앙은 그가 작고한지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들의 가슴 속에 같은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기독교가 전해지는 곳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역사,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이 내 인생의 종말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남겨 두고 가겠습니까. 그 좋은 아파트입니까. 남몰래 숨겨 둔 저금통장입니까. 아니면 아는 척 모르는 척 몰래 사둔 땅조각입니까. 참으로 귀한 것은 믿음, 주님을 신앙하는 믿음인줄 아시기를 바랍니다. 품위 있는 신앙을 남겨야 합니다. 교회를 규모 있게 섬기는 부모의 모습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 기쁨으로 찬송하는 아빠의 모습,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감사하던 모습을 자손들의 가슴 속에 남겨 두고 가야 합니다. 사회 심리학자이며 정신 분석가인 ‘칼융’은 자녀들은 그 민족 사회로부터 직접적 간접적,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수탁자’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어차피 부모로부터 정신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남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두고 가야겠습니까? 질문하고 정직하게 대답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너는 무엇을 희망하는가
이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답은 본문 8절 말씀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여비되었으므로…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희망이 없으면 기쁨도 없습니다. 인생의 해가 저물고 내 허파의 활동이 쉬게 되는 순간 나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면 그보다 슬픈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희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말 위대한 희망입니다. 기다릴 만한 희망입니다. 한 인생의 종말은 그의 생이 어떠하였느냐에 따라 희망도 될 수 있고, 절망도 될 수 있습니다. 희망은 성취되는 순간에 비로소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재적 기쁨과 행복의 사건으로 내 인생을 압도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노처녀가 흠모하고 사모하던 총각이 있었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총각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한 달 후 어느 날 학위를 받고 돌아올 터이니 결혼해 줄 수 있겠느냐는 청혼의 편지였습니다. 처녀는 이 편지를 받는 순간 기쁨과 행복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미래의 희망은 오늘의 기쁨이 되고 용기가 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아직은 면류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면류관은 오늘의 기쁨이요,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고, 면류관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나라의 행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 즉 미래에 약속된 것을 현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히 11:1). 믿음이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천국을 여는 열쇠요, 오늘을 사는 기쁨이요, 내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에도 끝없는 희망을 안겨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존 와나메이카는 대통령 해리슨으로부터 체신부 장관으로 봉사해 줄 것을 요청 받았을 때 주일 학교 학생 가르치는 교사직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장관 자리를 사양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봉사의 생활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섭섭하게 대접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봉사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하나님의 문화가 아닙니다. 신앙은 소유도 아니요, 수단도 아닙니다. 신앙은 실존적인 것이요, 존재론적인 것이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다루는 절대적인 것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제 정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결론.
오늘이 내 인생의 종말이라고 하면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정의하겠는가? 오늘이 내 이생의 종말이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오늘이 내 인생의 종말이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가겠는가? 오늘이 내 인생의 종말이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희망하겠는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자료집에서

사진설명- 이르쿠츠크 중심인 칼 막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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