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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삶(누가복음17:11-19)


우리의 삶의 가장 귀한 아름다운 것 중에 하나는 감사의 삶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더욱 감사의 삶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축복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땅에는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사는 사람과 불평과 불만 속에 사는 사람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만날 때에 가장 안심이 되고, 또 동업하는 일에, 혹은 친구를 사귀는 일에, 또 함께 거래처를 삼아서 사업을 하는 일에 있어서 그래도 제일 믿음직스러운 사람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를 잘 섬기고 효도하는 사람은 남을 함부로 헤치지 않습니다. 부모를 잘 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마음 바탕은 벌써 그 마음에 어느 정도 참 인간다운 인간, 인격적이고 도덕 윤리적이며 신앙적인 자세와 인간 형성이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거역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에 친구를 배신할지 모릅니다. 어느 순간에 동업하는 사람을 등질지도 모릅니다.

다른 하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성품을 지니고 생활하는 사람은 함부로 사람을 배신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억울하게 하거나 원통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가슴을 찢는 아픔을 주고, 통곡하게 만들고, 심지어 사람을 매장시키고, 실패하게 하며, 구렁텅이에 던져버리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되십시다.

일본의 우찌모라 간조우는 말하기를 '감사는 은혜받는 그릇이다'라고 했습니다. 브레이크는 '감사로 받는 자는 더 풍성한 수확이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이 연결되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레위기 13:45∼46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자는 극히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그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이 사는 가족과 이웃과 마을에서 사는 생활도 분리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항상 슬픔과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리운 가족도 함부로 볼 수도 없고 출입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제재를 당했습니다. 제사장에게 깨끗이 나았다는 표를 받기까지 저들은 이러한 소외를 당해서 살았는데 정말 저들의 생애가 얼마나 처참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길을 가다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열 문둥병자들이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13절) 예수님은 이 말씀을 듣자마자 즉시 '가서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깨끗이 치료받은 사실을 선포하고 고쳐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 문둥병자가 다 고침을 받아서 기쁨으로 갔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여기서 오늘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아홉 사람과 같이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런 사람이 있고, 받은 은혜를 하나님과 이웃과 가족 혹은 형제들과 교우들 그리고 민족에게 서로 감사할 줄 아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중에 아홉 사람과 같이 되지 말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던 한 사람과 같이 감사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떤 덕과 인격, 지위, 명예, 학위보다도 더 귀한 그의 명예가 되고, 덕과 인품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줄 아는 민족은 선진국이 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정말 멋진 신사와 숙녀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신앙인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주님 앞에 감사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문둥병자와 같이 버림받고 낮고 천한 자를 찾아오신 주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문둥병자와 같이 몸에 문둥병이 생긴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오히려 정상인보다 마음이 더 깨끗하고, 더 거룩하고, 더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천사같이 생활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겉으로는 건강하지만 속으로는 흉악한 문둥병자보다도 더 흉악하고 더 더러운 우리 인생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의 만신창이가 되어서 감각도 없어지고, 양심이 화인 맞아서 의와 진리와 선에 대해서 취미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공경과 사모함도 없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더럽고 흉악한 문둥병자 같은 인생들을 주님이 더럽다고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죄인이라고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찾아오셔서 고쳐주시고, 의인과 선인으로,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고쳐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그 주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정말 누가 이 문둥병자를 좋아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많은 길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찾아가셨습니다. 예레미야 29:13에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높은 사람 만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일부러 우리를 만나주시고,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만나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모스 4:12에 보면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나게 된다"(잠 8:17)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고통스럽고,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정말 전후좌우에 먹구름과 태산준령과 같은 그런 어려움이 놓여 있다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아무리 지구 덩어리같은 이런 큰 사건도 예수님 손에는 한 알의 알사탕만도 못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해결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그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바로 복을 받는 사람이요, 승리하는 사람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처참한 처지에서 부르짖는 부르짖음을 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그는 솔직하게 자기의 처참한 처지를 뉘우치고 주님 앞에 고백하면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13절)라고 소리쳤습니다. 여기에서 '긍휼히 여겨 달라'는 이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불쌍히 여겨 달라,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는 아무리 동정을 구하고, 아무리 도움을 구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불쌍히 여겨 달라고 지렁이처럼 뒹굴면서 구해도 절대로 천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는 절대로 우리가 비굴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마음도 꿇고, 무릎도 꿇고, 인격도 꿇고, 그의 생명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찾아온 이 분은 얼굴을 땅에다 대고 치료를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은 것만큼 긍휼을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깝고 컬컬할 때 정말 내 마음 속에 기쁨을 줄 수 있는 조건은 물질도 아닙니다. 권세, 명예, 사치, 향락, 쾌락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 위로의 성령, 보혜사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왜 보혜사라고 했을까요? '보혜사'라는 말은 '함께 한다, 위로한다, 지켜준다'는 뜻입니다. 위로하며 보호하시기 위해서 함께 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가 있는 곳은 기쁨이 있습니다. 죽음에서도 기쁨이 있고, 고난에서도 기쁨이 있습니다. 실패에서도 기쁨과 찬양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간에 동경에서 성회를 인도하는데 동경에 목사님 한 분이 저에게 그래요. '목사님, 동경 시내를 다니실 때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한 번 봐주십시오. 그들에게는 기쁨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본 선교를 하시면서 그들을 대하는 중에 자기가 가장 느끼는 것이 뭐냐하면 기쁨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신령한 눈을 뜨고 보면 그분들은 경제적으로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기쁨은 없습니다.

여러분, 참 기쁨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기쁨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위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쁨이요, 그리고 내세의 천국의 소망을 소유한 자가 참된 기쁨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기약이 없고 보장이 없습니다.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 인간이 큰 소리를 치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누가 명령하고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능력의 손이 이 지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여러분과 저를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오직 찬양할 뿐입니다. 그 하나님께 오직 경배드릴 뿐입니다.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름을 세세토록 부르십시오. 그 이름을 세세토록 의지하십시오. 그 이름을 세세토록 자랑하십시오. 그런 자만이 참 기쁨이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큰 집을 지어놓고도 그들은 오히려 불안을 느낍니다. 지진이 하도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런 속에서도 기쁨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저들의 이 비참한 부르짖음을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시편 103:13에 보면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준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비는 자식을 불쌍히 여겨줍니다. 슬프고 괴롭고 어려울 때, 병들고 연약하고 나약할 때 그 부모가 얼마나 자식을 염려하고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보다 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며 믿음을 가진 이 자체로 모든 것에 보장을 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더 우리에게 크게 됩니다. 성도가 외롭고 고통을 당할 때는 하나님의 은총이 더 크게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하나 하나를 다스리고 관심을 갖지만 인간의 머리털 수까지 세신 바가 되었다(마 10:30)고 했고, 우리 인간의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기억하신다(시 139:2)고 했으며, 눈동자같이 지켜주신다(신 32:10)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시 46:1)가 되셔서 위험을 막아주시고, 목자(시 23:1)가 되셔서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고, 우리의 길(요 14:6)이 되셔서 천국까지 인도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처지에서든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50:15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번에 오사카에서 성회를 하는데 오사카의 목사님 한 분이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교회에 지진이 났을 때 새벽기도회에 나온 성도가 새벽기도를 그날 따라 좀 일찍 나오시게 되었는데 나오자마자 이 집이 그냥 가라앉았답니다. 그런데 얼마만 더 지체했어도 거기서 죽었을 텐데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가족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주신 최선의 방법과 최선의 길이 바로 기도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도 기도하시고, 편챦을 때도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를 많이 쌓아놓으면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도행전 27장의 말씀을 연구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276인이 정말 좌절과 절망 속에 한 사람도 살 수 없는 그런 가운데 있었는데 왜 한사람도 죽지 않고 살았는가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9절에 보면 금식하는 기도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금식하는 기도의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엄청난 사건이 있었지만 저들을 위기에서 건져주었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꼭 기도를 하는데 위기 상황 속에만 기도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겨야만 주를 찾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을 때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구한 것은 하나도 허공을 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회하면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성도는 기도하는 성도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기도하는 분은 반드시 해결의 날이 오게 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성도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오늘 좋은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도 기도하지 않을 때는 보장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불과 믿음의 역사를 이어주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늘 같이 하시고, 하늘 문을 항상 열어주셔서 하늘의 보좌에서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 우리의 인생을 깨끗하게 치유해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오늘 이 문둥병자는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고침을 받은 일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미완성으로 우리를 손대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다가 무능해서 주님이 손을 떼시는 분이 아니라 완벽하게 끝까지 책임을 져주시고 보장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완벽하고 깨끗하게 고쳐주신 일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그 주님은 문둥병을 일시적으로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가서 영원히 깨끗하고 완전하게 고침을 받았다는 표시로 그의 몸을 보여주라고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5:26에 보면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와 생활의 어려운 역경도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여러모로 병들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의 생활 속에 이런 저런 상처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저런 고통과 위험, 염려가 얼마나 많아요? 주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0:17에 보면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마음에 상처가 많은 인생입니다. 우리는 모순투성이 인생입니다. 사실 사람 보기에는 의로운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너무나 부족한 우리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치유를 받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낮고 천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께 감사하고, 처참한 처지에서 부르짖는 부르짖음을 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인생을 깨끗하게 치유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 남서울중앙교회 http://www.ns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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