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마 21:28~32)

by 이재섭 posted Sep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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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 목사(대구 봉덕교회)



순종하며 주의 일 감당합시다

선택된 하나님 일꾼의 미덕은 즉각적인 순종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하신 일이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이 한 이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수만 명씩 뜰에 서서 제사와 예배를 드리게 되어있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제물을 가져옵니다.

정성스럽게 집에서 키웠다고 해도 점이나 흠이 있어 불합격될 경우 다시 구해 와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전 주위에는 장사꾼들이 몰려들었고, 장사꾼들은 자기들의 장사를 위해 제사장에게 돈을 주고 자기가 판 것은 합격시켜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뇌물이 성행하고 부정이 판치는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이때 제사장들이 예수님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라고 물었습니다. 이들과 논쟁하시던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불의와 위선을 좀 더 분명히 밝히기 위해 도입하신 것이 본문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등장하는 두 아들을 비교하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꾼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첫째,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합니다.

맏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입으로는 “예”했지만, 행동은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면 진실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시145:18절,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신앙인들 가운데는 적당히 대처하는 처세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모습은 없으면서 교회 가자면 따라가고, 남이 찬송을 부를 때에 찬송도 부르고, 기도할 때에 기도도 따라하고, 그러다가 바쁘면 교회에 빠지는 것은 보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문의 맏아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에서나 이 세상에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도원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직분도 주셨습니다. 일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망각하는 행동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맏아들의 모습과 흡사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것은 천국 일꾼으로 사용하기 위해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예” 하는 자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신실한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잘못을 돌이키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너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을 때,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하고 거절합니다. “싫소이다”하는 어투는 상당히 무례하고 반항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둘째를 세리와 창기로 비유하고 있듯이, 이들의 태도는 오직 자신의 탐욕과 쾌락만을 탐닉하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사실 과거 우리들의 모습도 이러했습니다. 불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둘째아들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나중에는 “뉘우치고 갔다”는 데에 말씀의 초점이 있습니다. 분명히 처음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을 하러 갔습니다. 회개를 한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악한 본능과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는 잘못들이 있지만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릴 기뻐 받아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은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아버지가 시킬 때에 “예”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셋째 아들이 있었다면 좋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아들을 등장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그러한 아들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역시 셋째 아들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과거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사람이었습니다. 온갖 우상을 섬겨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이제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백성이 되었으니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둘째 아들 역할을 해야 됩니다. 둘째 아들이 잘한 것은 회개였습니다. 우리 역시 회개를 통한 죄 사유하심의 감격을 가지고 포도원에서 기쁘게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포도원에서 일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일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 받은 감격을 가지고 오늘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2008년 08월 17일 (일) 기독신문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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