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동역자,함께 군사된 자(빌 2:19-30 중)

by 이재섭 posted Jan 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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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빌 2:19-30 중)


아프리카의 지도자 만델라는 약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해 준 것이었습니까? 그와 일치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이 그것을 가능케 해 준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이라 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태로 보낸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인해 감옥에 갇혔음에도 바울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지근에서 살폈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바울의 사역은 성경의 곳곳에서 그가 밝혔듯이 바울 개인이 이룬 것이 아니라, 꼴라쥬와 같이 그를 돕고자 했던 동역자들 각각의 수고와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곁에 있고자 헌신했으며, 바울의 뜻을 이루어내는데 조력했으며, 그 자신의 것 모두를 그리스도를 위해서 드렸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디모데를 보내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진실로 신념에 있어서 마음이 일치한 그 어떤 사람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 곁에는 신념이 일치한 이들이 함께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의 아비를 섬기는 자녀와 같이 복음의 증진에 있어 섬겼노라” 밝힙니다. 그것은 열정과 함께 하는 겸손이었습니다. 신념은 신념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복음의 신념은 디모데에게서 처럼 모두가 인식할 수 있는 열정과 겸손을 낳습니다. 디모데는 성도들의 안녕에 대해 진실로 관심하였습니다.

바울 곁에 그들 자신의 이해들을 구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디모데를 통해 바울의 사역을 계속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는 먼저 이 신념으로 가득 찬 이들의 열정과 겸손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헌신하는 이들을 통해 교회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사막에 피어나는 꽃과 같이 이 척박한 땅에 오아시스와 같은 주님의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그 영광스러움에 동참하는 기쁨은 그 신념으로 행한 이들 각각의 몫입니다.

디모데와 더불어 바울에게 더할 수 없이 귀한 인물은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형제요, 동료 사역자요, 동료 군사였습니다. 그가 바울을 위해 행한 사역은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의사를 전해 주는 메신저의 역할과 바울의 쓸 것을 제공하는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수고를 기울여야 하는 것임에도 그렇게 드러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역할이었는줄 압니다. 그것은 가르치는 일,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과 멀리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식을 전해 주고, 사역자의 쓸 것을 공급하며, 그의 안위를 살피는 일은 아마도 그렇게 인기 있어 보이지 않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에바브로디도는 그 일에 있어 바울에게 형제요, 동료로서 수고하는 자요, 생사를 함께 하고자 했던 용맹한 군사였습니다. 주께 대한 신념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를 묻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하고 있느냐를 분명히 할 뿐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죽음의 지경(point)에 이르도록 병들었음은 복음을 섬김에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로 죽음에 가까웠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빌립보 성도들이 섬길 수 없는 부분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그의 생명을 위험에 내몰다가 죽음에 가까웠노라 바울은 설명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심이 에바브로디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을 위해서도 그를 살리셨노라며 그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나로 슬픔 위에 슬픔을 지니지 않게 하시려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함으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향한 그의 뜨거운 애정을 드러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먼저 간다면, 더할 수 없이 그에게 슬픔이 되리만큼, 주체할 수 없는 통곡을 쏟아 놓았을 것이라면, 복음을 위한 그의 조력을 바울은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 역시 에바브로디도의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입증되어진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온 성도들이 그가 다시 온전케 된 것을 볼 때 크게 즐거워 하고 기뻐할 것을 바울이 확신할만큼, 에바브로디도는 멀리 떨어진 교회에게조차 기쁨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헌신된 성도들은 그를 지켜 보는 이들에게 소망이 되며 기쁨이 됩니다. 더할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오늘 교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양육해 나가는 것을 존재 목적이라 믿습니다. 그 어떤 한 교회가 그 어떤 다른 교회의 성도의 입증된 가치로 인해 그의 존재를 기뻐해 줄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정과 겸손, 그리고 죽음의 point에 이르기까지의 수고와 헌신을 이루어 내는 주님의 군사들이 진정 높임을 받는 교회들이 되어지기를 늘 소원합니다.

하늘소망교회 김희승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