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1차 선교여행과 그 결과 - 바울의 선교

by 이재섭 posted Oct 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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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1차 선교여행과 그 결과

-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하나님(13:4-15:29)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신약학)



사도행전 13:4-14:23은 바울의 1차 선교여행으로 알려진 본문이다. 이 여행은 누가복음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14:27에서 내레이터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또 하나의 민족적인 장벽을 넘어야 했는데, 그 장벽은 15장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다루어진다.

구브로에서의 선교: 바예수와의 격돌(13:4-12)

구브로 선교는 바예수(아람어로 ‘예수 또는 여호수아의 아들’을 의미한다)라 불리는 유대인 마술사와 바울의 격돌에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바예수는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적하고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역공을 펼친다(13:7-8). 이에 ‘바울로도 알려진 사울’(여기서 이름이 바뀐다)은 바예수에게 욕설을 퍼붓고 소경이 되라는 저주를 내리면서 직접적인 반격에 나서는데, 이는 마술사를 억제하는 것을 넘어서 총독이 복음을 순조롭게 들을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다. 확실히 총독은 바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바울의 메시지를 믿게 되었고(13:12), 결국 바울과 바예수의 대결은 바울의 승리, 즉 하나님의 복음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이 경쟁에서의 승리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이 일 이후 바울이 그의 새로운 선교적 권위를 강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바울이 왕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할 것이라는 예언이 아직까지는 성취되지 않았지만(9:15), 구브로에서 제일 높은 신분의 관리이자 총독인 서기오 바울에게 설교하고 결국 그를 회심시킴으로 그의 목적에 가까이 도달하게 된다(13:4, 12). 우리는 바예수의 이야기에서 바울의 비전이 성취되는 한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내레이터는 바예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선교여행의 구성원들을 다시 한 번 언급한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점은 내레이터가 그 구성원들을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라고 언급한다는 것이다(13:13). 아마도 내레이터는 앞으로의 내러티브가 바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듯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바울의 신분의 변화는 바울이 그의 선교에 있어서 대표적인 후원자 바나바(9:27, 11:26)를 그의 고향 땅인 구브로에서 능가한다는 사실로써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4:36).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의 선교(13:13-52)

이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비시디아에 있는 한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16절)에게 연설을 한다. 그 연설은 이전에 사도행전에 나타났던 그 어떤 설교들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이스라엘의 모든 성서(13:33, 35, 13:15, 27, 39-40)를 성취하는 데 필수적인(13:46) 것이었다는 확신을 강조한다(cf. 눅 24:44-45).

바울의 연설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단락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체류하던 시기로 시작해서 다윗의 통치를 거쳐 예수의 도래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묘사한다(13:16-25). 두 번째 단락은 이스라엘의 최근의 역사를 다루는데, 예루살렘에서 처형당한 예수와 하나님이 그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내용이 포함된다(13:26-37). 마지막 단락은 간략한 결론으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사함이 제공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주어진다(13:38-41).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비난을 받은 회당의 지도자들(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그들의 지경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서 유력한 시민들을 모집한다(13:50).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거부하는 자들을 향해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떠나 버린다(13:51). 이러한 행동은 누가복음서에서 예수의 제자들(12제자, 9:5; 70인 제자, 10:11)이 보여준 선교의 특징으로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유대인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부정한 자들이라는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함(14:1-7)

바울과 바나바는 로마 속주인 갈라디아의 남쪽에 위치한 이고니온에서 루가오니아의 두 성인 루스드라와 더베까지 이동한다(14:1, 6, 11). 첫 번째 도시인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지역 회당에서 설교를 시작하고 다시 ‘그들의 통치자’와 함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분리된 반응을 경험한다. ‘수많은’ 청중들이 회심하여 신자가 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려고 공모한다(14:1-6). 일부 청중들의 회심과 유대인들의 박해가 반복되면서 내러티브의 세계는 점점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내레이터가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사도행전에서는 예수의 12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사도라는 호칭이 사용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분명히 사도로 불리는데, 아마도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도들과 동등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한 앞으로 이어질 그들의 사역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이 열리도록 하나님의 계획을 돕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루가오니아에서의 기적 행위(14:8-20)

바울이 루스드라 선교 도중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소생시킨 기적은 사도행전 3장에서 사도 베드로의 초기 선교를 생각나게 한다. 베드로와의 관련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바울을 베드로와 동등하게 중요한 사도로 여기도록 기능한다. 비록 바울의 경우, 베드로가 1:21-22에서 제시했던 사도의 자격 기준과 맞아떨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증인이 되었고, 베드로와 예루살렘의 동료 사도들과 똑같이 기사와 이적을 베풀었다. 바예수 사건과 앉은뱅이를 소생시키는 기적 이후로 이제 바울은 베드로와 같은 ‘사도’로 독자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한다(14:4, 14).

루스드라에서 바울의 운명은 스데반과 동료들의 박해자로서의 자신의 이전의 역할에 대한 극적인 역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와 만나기 전, 바울(사울)은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동시에 남녀 그리스도인들을 끌어다가 옥에 가두는 예루살렘 폭도들을 지휘했다(7:58-8:3). 이제 여기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끌려서 성 밖으로 내쳐지고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은 신세가 되고 만다(14:19). 스데반의 시련과 잘 어울리지만, 바울의 최후 운명은 다르다. 그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하게 된다(14:20).

교회를 돌봄(14:21-28)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를 돌보는 사역의 형태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 교회에 지역 지도자들을 임명하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요소에 있어서, 바울은 14:22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요청은 누가의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눅 9:23)고 한 말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 요소에 있어서, 바울과 바나바는 23절에서 그 지역 교회들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을 선택하고 있다. 그들이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장로를 임명하는 장면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세움을 받았던 상황을 상기시킨다(13:2, 3). 그러나 이 경우에는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역 교회에 주재하면서 교회의 일을 관장하도록 임명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임명된 지도자들은 안디옥에서처럼 예언자들이나 교사들(13:1)이 아닌 ‘장로들’로 불린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발단: 이방인에 대한 안디옥과 예루살렘의 입장 차이(15:1-5)

우리는 사도행전 11장으로부터 예루살렘교회 안에 할례받지 않은 자들과의 식탁교제를 반대하는 일단의 할례자들의 모임이 있음을 알고 있다. 11장에서 그들은 베드로의 증언으로 설득되었고,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을 기뻐하게 되었다(11:1-18). 그러나 예루살렘교회 안에 존재했던 특별한 한 그룹이 다시 할례와 모세의 율법 준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그룹은 이방인 회심자들의 믿음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구원받은 자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행해졌던 유대인으로서의 사회 민족적인 확인절차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방인 문제에 대한 바울과 바나바의 반대 입장은 이 부분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전의 자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한다는 기본적인 확신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의 메신저들을 ‘이방의 빛을 삼아’(13:47)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었다’(14:27)는 사실은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필수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이는 다음 부분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에 의해서 좀더 명료해질 것이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론(15:6-29)

우리가 베드로와 야고보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이 장면은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지도력이 교체되는 과도기를 암시한다. 12장 이후 본문에서 사라졌던 베드로는(12:17) 여기 15장에서 다시 등장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는 만남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며,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회의에서 마지막으로 말하는 사람은 야고보로서,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야고보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 이방인들을 문제삼지 말아야 된다”고 결정한다. 흥미롭게도 그 동일한 동사는 마카비 시대에 셀류시드 왕 데메트리우스의 편지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축제와 성일을 지키는 것을 제한함으로 “아무도 유대인들에게 그 어떠한 것도 강요하거나 괴롭힐 권한이 없을 것”이라고 유대인들에게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유대인들이 이방 당국으로부터 그들의 율법을 포기하라는 괴롭힘을 당하기 원치 않았던 것처럼, 야고보도 이방인들이 율법 이행을 강요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는 일종의 절충안을 내놓는데(29절), 그것은 비록 이방인 제자들이 민족적 표시인 할례로부터는 자유로울지라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실천과 관련된 문제는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구하는 목적은 디아스포라의 혼합된 회중 안에서 유대 그리고 이방 성도들 사이의 교제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법령’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네 가지 항목을 금지하는데, 그것들은 우상으로부터 더러워진 것들(제사에 사용된 음식 같은 것), 음행, 목메어 죽인 것 그리고 피가 그것이다. 성서에서 그러한 규범은 노아의 계약(창 9:4)에서 모든 인류와 “육체의 생명은 피 가운데 있다”는 근본적인 전제에 기초하고 있고, 레위기의 성결법전(레 17:10-16; cf. 신 12:23)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거주하는 타국인에게도 오랫동안 적용돼 왔음을 보여준다.

결국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거나 모세의 율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고, 요긴한 것들 즉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단서조항이 첨부되어 편지로 정리되고, 그것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전달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15:30-16:4). 새로운 교회들은 모두 이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게” 된다(16:5).

호주성산 신약신학 연구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과 그 결과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 바울의 선교
2006/11/08 00:33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30611102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 로마의 주요 속주들에서의 선교(행 15:36-18:22)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신약학)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은 빌립보와 아테네, 고린도와 같은 지중해의 주요 도시들에서 바울이 행하는 성공적인 선교를 보고한다. 그러나 이런 성공적인 선교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의 조직적인 박해와 음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바울 선교의 빛과 그림자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성공과 실패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선 바울은 그의 여행 동역자들을 새롭게 정비한다. 첫 번째 여행의 동역자였던 바나바와는 마가 요한의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결별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은 새로운 동역자인 실라와 함께 그의 두 번째 선교여행을 시작한다.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선교(16:1-40)

사도행전 내러티브의 주요한 동인 중 하나인 성령은 환상과 다른 수단들을 통해서 선교 일정을 이끈다. 그리고 여기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는 바울 일행의 여정을 마케도니아로 전환시키는 주체 역시 주의 영이라고 내레이터는 보고하고 있다.

빌립보에서 개종한 첫 번째 사람은 루디아라는 여성이었다. 비록 루디아는 이방인이었지만 유대교에 끌려 동조하게 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행 16:14). 루디아의 경우는 고넬료와 유비가 되는데, 고넬료는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방인 회심자이지만(10:1-48), 루디아는 유럽의 최초의 회심자인 셈이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복음을 증언할 때 루디아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를 주로 믿었다. 그 결과 그의 가정(오이코스)은 세례를 받고 바울에게 융숭한 환대를 제공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오이코스’라는 단어인데, 이는 거대한 대가족 개념이면서 부를 상징한다. 루디아의 모범적인 헌신은 복음서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섬기던 여성들(눅 8:2-3)의 이미지와 일치하는데, 그들은 적극적인 경제적 후원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루디아의 역할 역시 여성으로서 바울 사역의 옹호적 동지로서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어서 바울과 그의 일행은 점(占)을 쳐서 주인에게 큰 이득을 제공하는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여종이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저희에게 전하는 자”(16:17)라고 며칠을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하자, 바울이 그녀를 괴롭히는 귀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쫓는다. 이 사건은 바울 일행이 빌립보 감옥에 구금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또한 그 구금은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는 한 과정으로 기능한다. 실제로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감옥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 게다가 감옥에 있던 사람들은 지진이 발생해서 옥문이 열리는 경험뿐 아니라 바울과 실라의 설득력 있는 증언으로 감명을 받는다. 바울과 실라는 우선 감옥 내에 있는 동료 죄수들에게 그러고 나서는 지진으로 인해서 생긴 일을 조사하는 간수에게 구원의 진리를 선포한다. 결국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처를 씻기고, 그들은 이 간수의 ‘온 집’(행 16:30-33)에 복음을 전하고(16:32), 그의 ‘온 집’ 사람들은 모두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증거로 음식을 나누면서 교제한다(34절). 바울은 자신이 감금된 것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빌립보서에서 언급한다(빌 1:12). 또한 우리는 이 장면에서 로마의 시민권자인 바울과 대면하게 된다. 바울과 실라의 이러한 신분은 ‘우리 로마 사람들’(16:21)이 받지 못할 풍습을 전한다는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주인 내외)의 고발을 일거에 제거해버린다. 이제 로마의 시민권자라는 신분을 드러낸 바울 일행을 통해 로마의 고위 계층과 시민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장면들이 사도행전 내러티브에서 펼쳐질 것이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선교(17:1-15)

바울 일행은 에그나티아 도로(via Egnatian)를 따라 서쪽에 위치한 데살로니가에 도착한다. 이곳은 마케도니아에 있는 도시로서, 로마제국의 속주 가운데서도 중요한 인구밀집도시였다. 데살로니가에서의 이번 선교(17:1-9)는 베뢰아에서의 선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17:10-15).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를 떠나서 그날 밤에 베뢰아로 가서 사역을 시작한다(10절).

바울과 실라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선교는 그곳의 회당에서 유대교의 성서를 설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17:1-3, 10-11). 특히 데살로니가의 회당에서는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만 할 것”(17:3)을 증명하고 바울이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강조한다. 이 두 곳에서는 적지 않은 귀족 계층의 여성들과 남성들이 바울의 메시지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17:4, 12). 이러한 반응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귀족 계층의 여성들과 유력한 남성들의 적대적인 모습(13:50)과는 정반대이다. 그레꼬-로마의 상류 사회에서 바울의 평판은 마케도니아에서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테네에서의 논쟁(17:16-34)

사도행전 저자에게 아테네는 고린도보다 더 중요한데, 그 까닭은 고린도가 세계를 향한 문이라면 아테네는 지혜를 향한 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테네는 문화의 요충지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찬 도시이기도 했다. 누가에 의하면, 아테네에 도착한 바울은 그 도시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게 된다(16절). 그래서 평소의 자신의 선교 전략과 동일하게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전함과 동시에 광장에서도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바울은 에피큐러스 및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런 경우는 사도행전의 전 내러티브에서 특기할 만한데, 바울이 정기적으로 그레꼬-로마의 도시 생활의 센터에서 복음을 선포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테네의 바울이 빌립보(16:19)와 데살로니가(17:5)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는 달리, 헬라 철학자들과 예수의 몸의 부활에 대해서 토론을 시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그들은 바울을 향해서 ‘말쟁이’라고 조롱하기도 했지만(17:18), 그가 전하는 새로운 사상을 듣기 위해 그를 아레오바고로 붙잡아 갈 정도로 그와 그가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보인다(21절).

아레오바고에 붙잡혀 온 바울은, 광장에 모인 청중들을 향해 “너희를 보니 매사에 종교성이 많도다”(22절)라는 말로 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시작한다. 물론 바울의 지적이 그들을 칭찬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바울은 자신이 아테네를 다녀보면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신전의 단을 보았다(23절)고 고발하면서, 그들이 신봉하면서도 그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고 예배하는 그 신을 자신이 알려주겠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제시하는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고 천지를 주관하며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공급하는 존재이다(24-25절). 이것은 바울이 전하는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속성을 아주 강도 높게 설명해준다. 바울의 탁월한 수사학적 전개에서, 그는 헬라의 철학자와 시인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전하는 사상을 옹호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한다”는 구절은 크레타의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에게서, 그리고 “우리가 그의 소생이다”는 길리기아의 아라투스(Aratus)에게서 인용한다(28절). 비록 바울이 헬라의 사상들을 인용하지만 그는 헬라 철학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그 구절들을 활용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에 현존하고 있다고 확증하지만,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자기 충족성과 그가 창조한 이 세계로부터는 독립되어 있다고 설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범신론자는 아니다. 그가 구약성서를 인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울의 신학은 성서의 맥락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린도 선교(18:1-22)

아테네를 떠난 후 바울은 폭이 좁은 지협을 통과해서 남쪽 헬라 영토 아가야의 행정 수도와, 아드리아해와 에게해 사이에 있는 중요한 상업 중심지인 고린도를 향하여 서쪽으로 나아간다. 그 곳에서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도착하는 실라와 디모데와 합류하게 되고(18:5), 또한 선교사 부부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난다(18:1-3, 18).

전체적으로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선교는 예상할 만한 경로를 따른다: (1) 그는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함께 논쟁을 벌인다(18:4). (2) 그는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회당을 떠나 더 광범위한 이방인들과 접촉하게 된다. 특히 바울이 옷에서 먼지를 털어 내고 이방인들에게 전환함을 말해주는 그의 보복적인 행동을 유대인들이 ‘매도’하거나 ‘모독’하는 갈등의 세부 사항들은 이전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적대감을 반영한다(13:45-41). (3) 결국 바울은 다시 한 번 로마 법정에 서게 되고 불법을 행했다는 거짓 고소를 당한다(18:12-16).

선교의 과정에서 바울의 인내를 가능케 한 힘은 그리스 여정을 개시했던 것(16:6-10)과 같은 또 다른 밤중의 환상에 기인한다. 현재의 현현에서는 두려움을 견뎌내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 아래 고린도인들에게 설교하기를 계속하라고 그에게 용기를 주는데, 이 환상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주께서 직접 말한다(18:9-10). 이것은 사도행전에서의 다른 환상들과 마찬가지로 주목할 만한 선교의 확장을 나타낸다. 여기서 특별한 또 한 가지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당시 베드로의 증언 이후 야고보가 내린 결론적 진술(15:14)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관례적인 용어(라오스)가 나타나는데, 이제 그 용어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하나 된 백성(라오스) 안에 포함된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18:10;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라오스)이 많음이라”]. 이와 같은 환상으로 고무된 바울은 고린도의 많은 백성들을 주께 데려오기 위하여 그 성에 여러 달 동안 정착한다(18:11).

이 여행 이야기에서 바울은 주인공으로 여전히 사역하지만, 그는 세 쌍의 동역자들에게서 도움을 받는데, 그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디모데와 에라스도(19:22), 그리고 가이오와 아리스다고(19:29)이다. 에라스도, 가이오, 그리고 아리스다고는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사람들로서 바울의 동역자들이 확대되고 있음을 반증해준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이라고 언급되는데(19:29), 16:9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이 도와달라고 바울에게 요청한 것이 이렇게 결실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세 쌍의 동역자들은 바울이 에베소를 잠시 떠난 후 독립적으로 사역하고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이 떠나 있는 동안(18:19), 에베소에서 새로운 사역을 관장한다. 또한 디모데와 에라스도는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을 돌보게 한다. 그리고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백성들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제자들이 말리고 있을 때, 바울의 선교를 방해하는 폭도들의 동요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아무리 멋진 영웅으로 등장해도, 바울 자신이 뛰어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장기간 체류한 후, 바울은 아시아 속주의 주도이며 상업도시로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제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에베소에 도착한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그곳에 와서 회당을 방문한다(18:18-19). 에베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고, 바울은 안디옥, 갈라디아, 브루기아 지역으로 간다(18:20-23).



호주성산 신약신학 연구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바울과 선교 - 바울의 선교
2005/08/10 17:47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16007438




바울과 선교


이용원(서울 장신대 총장)




목 차

들어가는 말
I. 부르심 이전의 바울
II. 부르심과 회심
III. 바울의 선교적 사명감과 선교의 꿈
IV. 바울의 설교와 선교
V.바울서신에서 본 선교신학
VI.바울의 신학과 선교
VII.바울의 선교원리와 전fir


맺는 말


들어가는 말

기독교 선교를 논할 때 바울의 선교는 결코 무시되거나 경시될 수 없다. 구약의 유대교를 자리잡게 한 것이 모세의 공적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초로 신약의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 복음이 사방으로 확산되어질 때 가장 큰 그릇으로 쓰여진 사람은 바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압제 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해들이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하기 위하여 모세를 택하셨고, 그를 여러 가지로 훈련시키고 준비시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비슷한 형태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저주와 정죄 아래 있던 인류를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일을 위하여 바울을 택하셨고 그를 준비시키셔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다. 물론 그는 선교를 처음 시작한 사람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유일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그가 중심 인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고, 아마 그가 없었다면 기독교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까지도 달라졌으리라고해도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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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부르심 이전의 바울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길리기아 다소에서 혈통으로는 유대인이면서 법적으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음을 알고 있다(행 22: 3, 27-28).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다소라는 도시는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였고, 희랍인과 동방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던 상업과 교육의 중심 도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희랍 철학이나 수사학을 깊이있게 정식으로 배운 것같지는 않다. 그에게서 희랍적 요소를 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그 곳 회당 교육을 통해서 받은 영향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부모는 엄격한 유대교의 전통으로 교육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70인역 구약 성경만이 아니라 희랍적인 다른 요소들도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희브리인 중의 희브리인(빌 3: 5)으로 자부할만큼 철저히 유대 전통을 고수하며 살았다. 그는 당대의 석학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으면서 성장한 바리새인으로서(행 22: 3) 흠이 없이 율법을 준수하였고 그 열심 또한 대단한 사람이었다(빌 3: 5-6).
따라서 그는 유대적 교육을 받았으나 동시에 희랍적 문화권에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유대주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는 비록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LXX)을 주로 배우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기까지 그는 유대교 선교사(Jewish missionary)로 봉사하였으리라는 추측까지 하게 한다(갈 5: 11).
그의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승에 대한 열심은 그로 하여금 그 율법과 성전 의식을 침해하는 어떤 가르침이나 행위도 참을 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눈에 바로 그런 반율법적으로 보이는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율법에 대한 열심히 그로 하여금 교회의 박해자가 되게 한 것이다(갈 1: 13).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로서의 바울을 위하여 다른 하나의 준비를 시키셨다. 그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희랍 문화 안에서의 성장과 로마 시민권이었다. 희랍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 쓰시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대교에서 배운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한 이해와 열심만으로는 부족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희랍-로마 문화의 지배적인 영향 하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었다.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지배국이었던 로마의 시민권까지도 가진 사람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시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오늘도 변함 없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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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부르심과 회심


바울로 하여금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한 계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한 부르심과 그의 회심(conversion)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그가 적어도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 곧 메시야라는 메시지를 들어 알고 있었고, 그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으셨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셔서 모든 사람들의 "주(the Lord)"로 세우셨다는 이야기나, 그를 통해 구원의 길로 알고 있던 모세의 율법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어 알고 있었다. 이런 내용을 잘 몰랐다면 그가 그토록 철저한 박해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그가 돌아서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단지 흔히 이야기하는대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서 깊은 충격은 받고 있었으리라고 말할 수는 있다. 스데반의 순교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행 7: 54-60). 하여간 율법을
최고의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던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매우 위험한 이단자들로 보였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근절해버려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에서는 물론이고 멀리 다메섹까지 가서 그들을 색출하여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때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때가 되었다. 그는 그리로 가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과 함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 4-5; 22: 6-11; 26: 12-18)는 말씀 앞에 그는 굴복하고만 것이다. 그의 앞에 놓인 두 길, 즉 율법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사이에서 그는 택일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전하는 편에 서게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 체험은 그로 하여금 참 선교사로서의 고난의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참고 걸을 수 있게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체험 사건은 단순히 그의 개인의 회심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고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받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핍박하던 그가 이제 사도가 된 것이다(고전 15: 8-9). 그의 고백에 따르면 아나니아의 입을 통하여 그는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된다.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행 22: 14-15).

그리고 그는 예수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앞에서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택한 그릇(행 9: 15)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후 기도하는 중에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 21)는 말씀을 직접 듣고 스스로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갈 1: 16). 이때부터 그는 한가지 결심 곧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를 전하기 위해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결심대로 그 일생을 살았다.
이제 그의 회심과 부르심이 가지는 몇가지 특징적인 면모를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1)회심 이전의 바울은 헌신적이고 열렬한 유대인이었다. 2)그의 회심 체험은 그의 삶의 방식과 세계관에 일대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3)그의 체험은 본질적으로 신비한 체험이었고 그 체험을 통해서 그는 하나의 꿈(a vision)을 가지게 되었다. 4)그가 이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자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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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바울의 선교적 사명감과 선교의 꿈


선교사로서의 바울은 선교적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한 뜻이 계셔서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다고 확신하고 있었고(롬 1: 1; 고전 1: 1), 자기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일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노라(갈 1: 15)고 고백하였다. 바로 선교적 사명을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서 회심한 후에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행 9: 15)을 깨닫고 자기 사명에 대한 바른 정립을 위하여 "혈육과 의논"하거나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가서 주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자기의 활동 방향을 바로 세우려 하였다(갈 1: 16-17)고 한다. 자신의 결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확신 때문에 그는 자신의 본능적인 바람과는 다르게 동족을 제쳐두고라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것이다. 그의 동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옛날 모세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출 32: 32). 그의 그런 열정은 이렇게 표현된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 2-3).

그러나 그의 이런 동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보다는 주어진 사명을 위한 복음에의 헌신의 열정이 앞섰다. 그는 늘 유대인에게 먼저라는 원칙으로 산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단호하게 돌아서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에서 온 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일 때에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복음을 거부하고 비방하는 것을 보고 바울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 46)

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가장 크고 시급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런 사명감은 단순한 사명감이 아니라 빚진자 의식으로 나타난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 14)는 것이다. 즉 복음을 전할 대상에는 차별이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는 데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로도 표현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이런 빚진 자 의식이나 부득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복음 전도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의식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그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 9)라고 외치던 예레미야를 연상케 하는 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이나 열정은 철저한 헌신이 따르지 않는 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따라서 바울은 훌륭한 하나님의 일군답게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따르는 헌신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때로부터 그의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그의 최대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으며, 자기의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심지어 감옥에 갇히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요 그것을 이루는 길이라고 확신하였기에 자신의 투옥도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빌 1: 12)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의 선교적 사명감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함으로써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사명감과 더불어 원대한 선교적 꿈을 품고 있었다.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자로 부름받은 그는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통하여 아시아 지역과 아가야와 마게도니아 지방까지를 선교지로 삼아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그의 꿈은 훨씬 큰 것이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 1: 13)

고 함으로써 그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음을 나타내었고, 나아가 그의 꿈은 로마 제국의 서쪽 끝인 스페인까지를 선교지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 19-20).

그의 꿈은 아직 복음이 전혀 미치지 못한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가려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Spain)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롬 15: 22-24)

고 하면서 로마 방문에 이어 스페인 선교까지, 다시 말해서 당시에 알려졌던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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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바울의 설교와 선교


바울은 일단 하나님께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확신한 이상 바로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믿었으므로 그것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한 충동(driving compulsion)을 느끼고 있었다. 바울의 전도행적을 보여주는 사도행전에는 그가 행한 설교의 실례를 세 번 보여주고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행 13: 16-41), 루스드라에서 행한 권면(행 14: 15-17)과 아덴에서의 설교(행 17: 22-31)가 그것이다. 그 외에도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행한 설교의 요약(행 17: 2-3),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의 고별사에서 보여준 그의 설교의 핵심 요소(행 20: 21)에서도 그가 행한 설교의 실제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행한 설교의 한 단면을 그의 서신에서도(고전 2: 2)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실례들을 보면 대체로 회당에서 행한 설교와 교회에서 또는 이미믿는 성도들을 위한 설교, 그리고 이방인들을 향한 전도를 위한 설교로 분류해볼 수 있다.
회당에서 행한 설교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를 예로 들어보면 그것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그는 유대 민족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그가 전하는 복음이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고, 자기가 조상들이 바라고 믿던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성취를 증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둘째 부분에서는 약속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오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를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음을 밝힌다. 결국 이런 메시지를 그의 동족 유대인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반발하는 것이 그의 회당 설교가 유대인들에게 거부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그는 결코 거기에서 움추러들거나 변명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고 분명하게 그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셋째 부분에서 그는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죄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결과에 대하여 엄숙한 경고를 한다. 아마 이것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찾아가 말씀을 전하였던 내용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생생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루스드라와 아덴에서 행한 이방인을 향한 설교는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베풀기 위한 예비적인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설교가 바울의 설교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와같은 예비적인 또는 철학적인 변론으로는 효과적인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았음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선교를 위한 최고 주제는 '십자가'와 '회개'와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분명해지는 셈이다.
에베소 장로들을 향한 고별사(행 20: 21)에도 복음적 설교의 핵심적인 면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구원의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바울의 설교는 회개와 믿음으로 요약해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지난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영적 굴복 행위(act of spiritual surrender)를 하게 하려고 했다. 회개를 통해서 지난 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자신의 약점과 부족을 인정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고백하고 이제 죄로 물든 세상과의 단절을 다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죄의 용서됨을 발견하고 참 생명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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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바울 서신에서 본 선교 신학


물론 바울은 기독교 신학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이론적이고 교리적인 신학에 몰두하였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론 신학자이기보다는 선교사였기 때문에 선교적 신학자(missionary theologian)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선교적 노력과 관심의 결과였고 신약 성경에 포함된 그의 서신 13권은 모두 그런 선교적인 노력과 관련되어 있다.

고린도서는 도시에서의 선교사명과 타락시키는 세력들에 대한 신생 교회들의 저항에 대해 보여준다(고전 1: 11, 5: 1, 6: 1-11, 10: 14, 고후 6: 14).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의 교회들 사이에서와 사도들 사이에서 각각 율법과 은혜를 주장하는 긴장 상태를 보여준다(갈 2: 1-21, 5: 1-12).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의 의미들과 신생 교회들을 위한 교회론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엡 2: 1-22, 3: 6, 10, 4: 1-16, 5: 21-6: 9).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태도에 관하여 순종의 대가와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빌 2: 5-15). 골로새서는 이방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하여(골 2:6, 3: 1-4) 기독론을 전개하고 있다(골 1: 15-20). 데살로니가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생 교회들의 의심과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살전 4: 13- 5: 11, 살후 2: 1-12). 디모데서와 디도서는 교회의 회중들 중에서 지도력을 기르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딤전 2: 8-3: 13, 5: 1-22, 딤후 2: 2, 딛 1: 5-9). 빌레몬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개인적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몬 1: 16).

바울의 대표적인 교리서신으로 간주되는 로마서까지도 이론적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라 선교적 관심의 결과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전 우주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의 통치 하에 있다(롬 1: 18 이하). 2)모든 사람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다(롬 1: 1-3; 20). 3)쬐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이었다(롬 3: 21-3: 20). 4)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에 이르게 하다(롬 6: 1-8: 39). 5)그것을 믿는 자들로 선교에 동참하게 한다. 유대인 선교(롬 9: 1-10: 4), 세계 선교(롬 10: 5-11: 24), 끝날까지의 선교(롬 11: 25-36), 선교와 영적 은사(롬 12: 1-21), 선교와 악한 정부(롬 13: 1-14), 선교와 기독교 공동체(롬 14: 1-23), 선교 전략(롬 115: 1-33), 선교와 개 교회들(롬 16: 1-27)이 그 내용인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교리 서신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그 도시에서 바울이 처음으로 말씀을 전한 후 일년 쯤 지난 때에 쓰여진 글이다. 그가 그 도시에 머물렀던 기간이 5개월 정도였다고 할 때 그 기간은 그가 근본적인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르치기에는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서로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에 그가 전하고자 했던 내용들을 글로 써서 전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 서신의 선교적 내용을 해스팅스의 성서사전(Hasting's Dictionary of the Bible)은 이렇게 요약 정리해주고 있다.

1)살아계시는 한 분의 참 하나님이 계신다(1: 9). 2)우상숭배는 죄로서 마땅히 버려야 한다(1: 9). 3)하나님의 진노가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의 불순한 생활로 인하여(4: 6),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복음을 반대함으로 인하여나타났다(2: 15-16). 4)심판이 갑자기 예기치 않은 때에 임할 것이다(5: 2-3, 5). 5)죽음에 내어준 바 되고(5: 10)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입은(4: 14)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베풀어주실 구세주(1: 10)이시다. 6)이제 그의 나라가 세워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리로 들어오도록 초청함을 받고 있다(2: 12). 7)이제 믿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그들을 구하시려고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그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1: 10,4:15-17). 8)그 동안에 그들의 삶은 깨끗하고(4: 1-8) 쓸모있어야 하며(4: 11-12) 깨어 근신해야 한다(5: 4-8). 9)그런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었다(4: 8, 5: 19).

교리 서신이 이처럼 선교적 기초에서 쓰여진 것이라면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다른 서신들이 더욱 그러할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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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바울의 신학과 선교

바울의 신학을 간단히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 할 수 없고 또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 이후로 바울 신학의 핵심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결국 이것은 구원론의 중심 요소일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 되는 것이니 결국 선교적 메시지의 요약된 정수라 할 수 있다.
바울 신학의 또 하나의 출발점은 회심 이전의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만 믿었던 그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과 모든 사람들에게 그 통치하시는 주권을 행사하시면서 누구나 아무런 값없이 불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런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안되고 그 전할 사명이 자기에게 주어졌다고 믿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복음 앞에서는 같은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민족 어떤 사람이라도 구원에 이르는 길은 인간의 윤리적 성취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한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해 주시었다. 곧 그 복음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law)를 얻어야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기는 하나 그것을 행할 능력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죄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sin)가 구원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떠오른다. 죄를 안고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구원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death)를 의미하게 된다. 죄가 저주와 죽음에로 가는 길인데 거기에서 자유를 얻는 것은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를 얻은 사람은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은 살게 된다.
바울의 신학은 모든 인간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선 죄인들이라고 하는데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하에 놓이게 되고 구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길 밖에 없다. 이렇게 구원의 반열에 들어온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교회의 일원이 된다. 여기에는 역시 민족이나 빈부귀천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바울의 신학은 그대로 선교 신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게 된다. 한 마디로 그의 신학은 복음적인 선교 신학인 것이다. 이런 모든 신학이 선교적 관심과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울의 신학에 비추어 볼 때 오늘의 신학이 선교적 관심과 노력과는 거의 무관하게 이론적인 탐구나 주장에 치우치고 있는 면은 마땅히 반성되고 바로 잡아져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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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바울의 선교 원리와 전략


선교신학자와 선교사로서의 바울은 어떤 원리와 전략을 가지고 일하였을까? 우리는 누구나 이런 질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나설 때 미리 그의 여정을 계획하거나 교회를 설립할 전략적인 지점들을 선정하고나서 그런 그의 계획들을 실천에 옮겼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에서 전략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관찰과 경험을 기초로한 의도적이며 공식화된 인위적인 활동 계획'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바울은 전혀 선교 원리나 전략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지시와 통제를 철저히 따르는 융통성있는 활동 방식을 전략이라고 할 때에는 그가 훌륭한 선교 전략들을 개발 활용한 전략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복종한다는 점을 최고의 선교 원리와 전략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성령께서 열어놓으신 문들을 통해 나아갔을 때 복음을 뜻하지 않게 널리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게도니아 선교를 시작한 이야기(행 16: 6-10)에서 이런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기도의 생활이 필수적이었으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기도 생활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통해 새로운 선교 활동의 장들을 찾기도 하고 준비하기도 하였다(행 16: 9, 18: 9, 22: 18, 23: 11). 그것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인 줄 믿고 순종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바울은 복음의 불변하는 진리를 고수하되 부차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기꺼이 양보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이 오늘날 우리가 선교 현장에서 회심자들이 본질적인 복음의 내용만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들까지도 우리에게서 배우고 따라주기를 바라는 현상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만이 아니라 우리의 관습이나 문화까지 전해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에 관한 한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 . . . .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 8-9)

라고 선언함으로써 복음에는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음을 밝히 보여주었다. 그 대신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복음 이외의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철저히 적응이라는 원리를 따랐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로 인도하려고(고전 9: 19-23) 했던 것이다. 이런 원리는 때로는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할례 문제에 초월해 있었지만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려 했고(행 16: 3) 디도에게는 거부한 것(갈 2: 3-4)이다. 우상의제물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이미 초월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선교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 13)고 선언한다.
셋째로 바울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집중적 선교 활동을 폄으로써 그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바울의 선교적 소명감은 '멀리 이방인에게'(행 22: 21)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려진 모든지역을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당시의 번영하는 4개 지역 곧 아시아에 속한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유럽에 속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의 전도 활동에 집중하였다. 이런 집중적인 방식을 통해 그는 10년만에(AD 47-57) 전혀 교회가 없던 이 지역들에 많은 교회들을 든든하게 세우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세계의 모든 이방인을 한꺼번에 복음에로 인도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아직 복음화되지 아니한 몇몇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도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회중을 많이 모으는데 힘을 쏟기보다는 교회를 세우고 자립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면서 일하였다. 그리고 일단 스스로 설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일들을 다른 동역자들에게 맡기고 다음 사역지 곧 아직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렇게 도시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는 그 주변 지역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언제나 새로운 선교기지가 되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대도시 중심의 선교는 여러가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그것은 로마의 행정 중심지로서 적어도 바울처럼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신변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희랍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통역을 필요로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흩어진 유대인들이 회당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었으므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하고 그들이 거부하면 이방인에게로 향했던 바울의 전도 우선순위와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실지로 회당 자체가 일종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으니 곧 혈통으로는 이방인이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God-fearers)이 있었고, 그들은 흔히 복음의 선봉장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넷째로 선교 방법의 하나로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삶의 모범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로마서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what I have said and done)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롬 15: 18)

고 함으로써 말과 더불어 행함이 복음전파의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는 "너희는 . . . . . . .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었으니"(1: 6)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이끌리어 나왔고 그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요 종으로서 본래 가지고 있던 고귀한 것들(바리새인, 학식, 로마 시민권 등)을 오히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기면서 지도자이되 섬기는 지도자(servant-leadership)로서의 삶의 본을 보인 것이 선교의 한 수단이 된 것이다.
다섯째로 그는 혼자 선교사역을 담당하려 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동역자들을 발굴하여 사람들이 그와 더불어 선교사역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의 동역자들은 다양하였다. 레위인 바나바, 한쪽으로만 유대인의 피를 받은 디모데, 헬라인 디도, 유대인이 아닌 의사 누가, 회당장이었던 소스데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아볼로, 마가와 실라 등 그의 동역자를 모두 열거하기는 어려우며, 그 출신도 각 계 각 층에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외로운 전도자가 아니라 많은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지휘한 선교 사령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로 그의 전략의 하나는 융통성이었다. 대상에 따라 다른 접근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당에서나 시장 거리에서나 공회당에서나 가정 집에서까지도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었고 상황에 따라 다른 접근 방법을 찾아 이용하였다. 아덴에서는 이교 철학자들의 한 가운데 서서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서 접촉점을 찾았고, 물리쳐야할 우상숭배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오히려 그들의 종교성을 들어 그들을 칭찬함으로써 복음전파의 기회로 삼는 것이었다(행 17: 22-31).
일곱째로 바울의 선교 전략은 삼자원리(three self principle)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교회들은 자치(self-governing), 자립(self-supporting), 그리고 자전(self-propagating)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세운 교회들은 스스로 지역 복음화의 사명을 위해 일하였으며 외부의 통제나 지도를 받지 않고 오직 성령에만 의존하면서 세워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생 교회들은 재정적으로도 외부의 어떤 힘에 결코 의존하지 않았다.
여덟째로 바울 자신의 선교를 위한 재정적인 정책은 자비량 선교였다. 그는 스스로 일함으로써 자신과 동료들의 필요를 감당하였고, 앞에서 말한대로 신생 교회들도 재정적으로 자립하게 했으며 동시에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들을 위하여 그들의 궁핍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스스로도 교회가 보내주는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 사용하였다(빌 4: 15-16). 이러한 원리는 오늘의 선교에서는 보기 힘든 원리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는 고난이라는 요소이다. 바울의 선교적 생애는 고난으로 특징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사도로 부르실 때부터 주님께서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he must suffer for my name)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 16)고 하심으로써 그의 사도로서의 삶이 겪을 고난을 예고해주셨다.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종이 됨으로써 얻어지는 자유였기(고전 9: 19-23) 때문이다. 그리고 선교 즉 구원의 역사를 펼쳐갈 때 이 세상의 신 곧 사탄이 그것을 방해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는 것이 당연한 일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들을 정복하시기는 했으나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 그들은 여전히 선교를 위한 순종 행위에 엄청난 방해물들을 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러한 세상의 권세들이 믿음과 사랑, 기도와 고난을 통하여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숱한 고난을 당할 때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체우노라"(골 1: 24)고 하면서 그 고난을 복음을 전하는 특권에 대한 대가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 또한 오늘이라고 변할 수는 없다. 십자가는 하나의 장식품이 아니라 여전히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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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말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의 행적과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우리는 선교사로서의 바울과 선교 신학자와 선교 전략가로서의 바울을 살펴보았다. 간단히 말해서 그의 신학도 선교적 관점에서라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서신이나 활동은 모두 그런 관심과 노력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언급한대로 이방인 선교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바울이 아니다. 그러나 이방 선교를 본 궤도에 올려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일이 바울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결실을 맺게된 것은 확실하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유대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참된 생명의 세계 종교가 되어 만민에게 구원의 길을 여는 일은 힘들었으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사역을 위하여 학자적 두뇌와 열정으로 넘치는 가슴, 철저한 헌신을 할 수 있는 의지력 등의 자질을 골고루 갖춘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택하시어 쓰시었고, 바울은 그의 부르심에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들어 이룬 것이다. 물론 바울이 선교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지는 않았고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서신을 보낼 때에도 그것을 선교학 교과서나 선교 신학의 이론서의 일부로 쓰지 않았다. 결국 어떤 문제들은 아마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운 여러 가지 통찰력을 통하여 현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선교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침들을 발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이용원 총장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M.Div.,Th.M.)를 거쳐 미국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D.Miss.)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남신학대학교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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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성산 신약신학 연구실 바울과 선교





바울과 여성 선교 동역자들 - 로마서 16 장을 중심으로 - 바울의 선교
2005/08/01 23:19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15694184






바울과 여성 선교 동역자들



- 로마서 16 장을 중심으로 -





김지철(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목 차


들어가는 말
I. 원시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역할
II. 겐그리아 교회의 '사역자' 뵈뵈
III. 부부 선교 동역자
1. 바울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2. '사도중에 뛰어난' 사역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IV. 선교 사역을 위해 '수고한' 여성들
맺는 말















들어가는 말


1997년 가을 대전 유성에서 열린 26 차 한국기독교학회의 전체 주제는 {여성신학과 한국교회}였다. 여기서 12 편의 논문과 1편의 성서연구가 발표된 중에 9 편이 여성신학에 관련된 논문이었다(한국기독교학회 엮음, {여성신학과 한국교회},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4, 한국신학연구소, 1997). 논문의 방향은 성서학(구약학/신약학)에서부터 조직신학, 실천신학, 그리고 성서연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전개되었다. 발표자도 주로 여성신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특히 주제 논문들은 주로 여성신학의 특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여성신학의 극단성이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의도 보다는 전통신학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 대안 신학으로서의 여성신학을 드러내려는 도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지닌 신학적 전통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현장에서 어떻게 서로가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지평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필자는 오히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들이 쓴 논문집 {교역과 여성안수}(오성춘.임창복.황화자.김중은 편, 장신대출판부, 1992)야 말로 1994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여성안수를 입안하고 통과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있어서 여성신학의 근거와 가능성을 제공한 책이라는 점에서 여성신학적으로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필진에 속해 있는 장신대 교수들은 대부분 소위 여성신학자들이 아닌 신학자들로서 여성안수의 타당성과 가능성을 성서학과 조직신학, 그리고 교회사와 실천신학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여성의 평등한 교회사역을 위한 현장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의 목회와 선교사역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한국교회사의 한획을 긋는 중대한 변화요 전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성서적이며 신학적 이해의 변화를 기대하는 필자로서는("여성지도력을 위한 성서해석학적 고찰", {교회와 신학} 24 집(1992) 130-149 쪽; "예수의 탄생고지에 나타난 모형론 -눅 1,26-38(마 1,18-25)을 중심으로-", {교회와 신학} 25 집(1993), 261-281 쪽; "이름없는 여인과 가롯유다", {마가의 예수}, 한국성서학연구소, 1995, 137-155 쪽) 따라서 이 시점에서 성서에 대한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한 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성서와 신학적 전통을 도외시하는 해석학적 입장에 서있는 여성신학적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서에 감추인 여성의 위치, 그리고 신학적 전통에서 간과했던 부분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평 확대함으로써 본래적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금 조명하고 계발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성서와 신학전통이 가부장적인 틀에서 여성의 억압에 일조했다고 비판받는 면도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그래도 종말론적인 소망과 위로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향한 자유와 해방의 역사를 만들어 준 것 또한 성서이기 때문이다(여성 신학적 관점에서 본 성서해석학에 대한 논의는 강남순, "페미니즘과 성서해석학", 정기철 엮음, {성서 해석학}, 호남신학대학출판부.한들, 1997, 특히 151-160 쪽을 참조하라; Fiorenza, In Memory of Her. A Feminist 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Christian Origins(김애영 역, {크리스챤 기원의 여성신학적 재건}, 종로서적, 19-130 쪽); 같은이, Bread Not Stone. The Challenge of Feminist Biblical Interpretation(김윤옥 역, {돌이 아니라 빵을}, 대한기독교서회, 1994)).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성서 해석학적인 문제를 다루기 보다는 로마서 16 장에 언급된 바울의 선교 동역자로서 여성들과 그들의 역할을 주석적으로 역사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제한된 성서본문의 자료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었던 중요한 역사적 위치를 보다 잘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I. 원시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역할


1) 원시 기독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될 때 여성들은 복음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수용자였으며, 또한 전승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매우 많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공동체에서 온전한 자격을 갖춘 구성원으로서 참여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모교회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을 때에도 여성들은 함께 있었으며(행 1,14), 또한 기독교회를 가능케 한 성령강림의 사건에도 여성들은 남성과 구별없는 공동체에 참여했던 것이다(행 2 장). 그 뿐 아니라 첫 공산적 신앙 공동체를 이룬 구성인원도 남성과 여성이었으며(행 5,14), 후에 사울이 예수 공동체를 핍박하기 위해 나섰을 때도 그 대상은 남녀가 다 포함된 공동체였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행 8,23; 9,2; 22,4). 또한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히브리파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나타난 갈등이 헬라파 여인들이 구제받는 일에 제외된 것에 대한 문제(행 6,1 이하)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원시 기독교 공동체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이름이 남성 사도를 중심으로 하여 서술된 누가의 글에서도 자주 눈에 띄고 있는 것은 교회에서의 여성의 등장이 결코 예루살렘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행 1,140),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행 5,1-11), 마가라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행 12,12), 그리고 그녀의 여종인 로데(행 12,13) 등이 언급된다.
계속해서 빌립을 통한 사마리아 선교 때에도 여성은 남성과 같이 세례를 받았으며(행 8,12), 욥바의 교회에서는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힘썼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녀가 죽자 많은 과부들이 울었다는 보도는 그녀가 가난한 과부들을 향한 구제사업에 전념했던 것을 알 수 있게 한다(행 9,36-39). 바울의 충성스런 믿음의 제자였던 루스드라 출신인 디모데(행 16,1; 딤후 1,5)의 어머니 또한 유니게라는 유대 여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었다.
유럽지역에서 맨 처음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으로는 자색 옷감 장수였던 빌립보의 루디아가 나타난다. 그녀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그것을 통해 가정교회를 이루게 된다(행 16,12-15.40).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투쟁한 여인들을 열거하는 데, 그 중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있다(빌 4,2-3). 데살로니가 지역의 선교여행에 대한 바울의 성공에 대해서도 누가는 이렇게 보도한다.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행 17,4). 베레아 지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다."(행 17,12).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통해 회심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 17,34).
고린도에서 바울이 만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에서 추방된 그리스도인들로(행 18,2-3), 그들 부부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에서 약 일년 반동안 머물다 바울과 함께 에베소까지 간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구변이 좋고 학문이 많은 아볼로에게까지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던 복음 증거자들이었다(행 18,26). 그들은 에베소 교회의 일원으로서 실제로 자기 집에 가정 교회를 세워 복음의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바울은 이 부부를 기꺼이 자신의 동역자라고 칭찬하는 것을 볼 수 있다(롬 16,3-5).
고린도 교회는 처음부터 여자들과 남자들로 이루어졌으며(고전 11,2-16), 여자들도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중 기도와 예언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전 14,34-35; 딤전 2,11-12는 이와는 달리 교회에서의 여성의 침묵을 언급한다. 따라서 고전의 본문을 후기의 삽입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앞 문맥과의 관계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교회안에서 잘못된 예언과 말씀은 남자도 여자도 다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조 최영실, {신약성서의 여성들}, 대한기독교서회, 1997, 223-240 쪽). 고린도 근처였던 겐그리아 교회에도 뵈뵈라는 여교역자도 있었으며(롬 16,1-2), 또한 바울이 제 3 차 선교여행 시에 두로에 들러 복음을 증거하고 그곳을 떠날 때에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밖까지 전송하거늘..."(행 21,5)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 여성들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고, 다시 두로로부터 가이사랴에 이르러서는 바울이 일곱 집사중 하나인 빌립과 그의 예언 하는 딸 넷을 만난 사실은 당시 여인들의 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행 21,9).
말하자면 바울의 선교여행에 나타난 여인들은 남성들에 비해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바울의 선교 여행의 배경에 이미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에베소, 골로새, 라오디게아에 있는 소아시아의 선교 교회들 가운데 많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은 각 서신 중에 가정 생활을 위한 교훈(엡 5,22-6,9; 골 3,18-4,1; 딤전 2,8-15; 벧전 2,18-3,7; 딛 2,1-10)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딤전 5,3-16에서 과부들에 대한 진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나, 빌레몬서 서두에 바울이 자매 압비아(몬 2)에게 문안하는 것은 그들이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의미한다. 골로새 교회의 눔바와 그녀의 집에 있는 교우들 또한 바울의 문안인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골 4,15).
여기서 우리는 그 범위를 더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쓰이는 군중들(행 8,6), 사람들 모두(행 9,35), 성도들(행 26,10), 또한 형제들(행 1,15,2,29)등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서신에서 '형제들'이라고 하는 말도 그러하기에 표준새번역 성경은 문자적으로 형제들이라는 말을 '형제 자매들'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말하자면 유대인과 예루살렘 사람들(행 2,14), 이스라엘 사람들(행 2,22), 제자들(행 6,1)이라는 표현에도 여성이 결코 배제되지 않았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이렇듯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처음부터 여성을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대 역행적인 교회의 자발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고백한 주님이신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과 결부되어 있다는 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몸으로 살았던 예수의 여성에 대한 태도를 첫 기독교 공동체는 뒤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친히 남녀 구별없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병을 치유했으며(막 5,25-34; 눅 13,10-17), 귀신을 내어쫒고(막 7,24-30), 죄를 용서(눅 7,36-50)하셨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군에 여성들도 포함시켰던 것을 볼 수 있다(눅 8,1-3; 23,27; 막 15,40).
예수의 이런 보편적 신앙의 자리를 보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모든 차별성이 극복되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종교적이며 인종적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성이 없는 것이며, 사회적인 차별성인 종이나 주인도 없는 것이며, 성적인 차별성인 남자도 여자도 없다(갈 3,28)는 사실이다. 조건이 있다면 단 하나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조건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갈 3,26-27). 할례가 오직 남자에게만 행해진 것이라면, 이제 세례를 통해 여성도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A. Weiser, "원시 그리스도교 선교에서의 여성의 역할", {원시 그리스도교 여성}, 분도출판사, 1992, 214 쪽).
원시 기독교회는 이 사실을 이미 구약의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보도한다(행 2,17-18: 내가 내 영으로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성령의 사건은 다시 말해 원시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 성적인 차별성을 극복케 하고, 복음의 우주성을 경험케 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복음의 세계 보편주의적인 방향은 유대인들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 행 10,2.35; 13,16.26; : 행 13,50; 16,14; 17,4.17; 18,7)에게로, 그리고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로 확대 되었던 것이다. 지역적이며 인종적이고 사회적인 차별성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차별성이 극복케 한 원동력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차별성의 극복의 장소로 팔레스틴에서뿐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위한 유대교의 회당들(행 9,20; 13,5.14; 14,1; 17,10.17; 18,4; 19,8 등)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만남의 장으로 이용되었으나, 보다 본격적으로 많은 수의 여성들이 복음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회당에서 가정교회의 자리로 기독교공동체의 자리가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헬라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상당히 자주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실제적으로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여성들은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고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도달한 여인들처럼 보여진다. 다비다(행 9,36.41); 마리아(행 12,12-13); 루디아(행 16,14-15), 브리스가(행 18,2.18-19.26; 롬 16,3-5; 고전 16,19); 뵈뵈(롬 16,1-2); 글로에(고전 1,11), 눔바(골 4,15). 그밖에 사도행전에서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여인들이다(13,50; 17,4). 따라서 이렇게 볼 때, 당시 헬라의 원시 기독교 공동체의 운동은 단순히 하층계급의 프로레타리아 운동이나 상층계급의 주된 관심에만 국한 된 운동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계층들을 모두 포괄하는 사회구조적인 특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G. Thei en, "고린도 교회의 사회계층",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김명수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287-341 쪽, 특히 336 쪽; W. A. Meeks, {바울의 목회와 도시사회}(황화자 역),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1992, 97-134 쪽).

3) 사도행전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의 만남과 성찬 교제에 대해 여러번 보고 하고 있다(참조 P. Stuhlmacher, Der Brief an Philemon, EKK, 1975, 70-75 쪽). 예루살렘에서(행 1,13; 2,46; 5,42; 12,12), 고린도에서(행 18,7), 그리고 드로아에서(행 20,8), 그리고 바울의 선교여행에서(행 20,20) 이러한 가정교회의 모습은 계속되고 있다.
신약에서는 가정교회( )라고 확정짓는 말이 네 번 나온다(고전 16,19; 롬 16,5; 몬 2; 골 4,15). 라는 의미는 가정에서 모인 교회를 말한다. 특별히 이 말은 로마서 16 장에서 유사한 내용으로 여러번 등장하고 있다(16,5 참조 16,14.15: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 14 절에 아순그리도와 불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그의 친구들, 15 절에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네레오와 그 자매, 그리고 5 절에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교회가 에베소에 있다는 것이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고전 16,19에서도 언급된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아마도 여행 다니는 기업가였을 것이며(행 18,2.3), 빌레몬은 집을 소유하고 있고, 종도 소유하고 있으며, 자금 또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동료 신앙인과 비교해서 매우 유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또한 행 12,12이하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문을 지닌 큰 집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원시 기독교의 교회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재력이 있는 남녀들이 신앙에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당시에 교회가 존속하고 지속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이렇듯 집을 제공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교회는 말하자면 복음이 증거되는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