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결혼과 이혼>(2)

by 이재섭 posted May 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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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참된 혼인

성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부패해 버렸다. 타락한 죄인은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해 성적인 본성도 오염시켰다. 그러나 인간의 성적인 타락은 특별하다. 인간은 그들 삶 가운데 성적인 면을 남용하기만 한다. 이것은 성 자체를 하나님이 특별히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혼인의 한 부분인데, 혼인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교제, 즉 언약을 나타내는 지상적 표상이다. 즉 혼인은 언약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인간의 성을 왜곡시키기 위해서거 특별히 힘을 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에 대한 선택받은 신자의 올바른 태도와 올바른 사용을 회복시킨다. 신자에게 성은 좋은 것이라는 사상도 고린도전서 7장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나 성은 오직 혼인 안에서만 좋은 것이다. 혼인 외에 맺는 성 관계는 죄악이다. 바울이 “음행을 멀리하고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라”고 썼을 때, 그는 이점을 분명히 밝혔다. 음행은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간에 이뤄지는 성 관계다. 이것은 죄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것을 멀리해야 한다. 이것을 멀리하는 방법은 혼인이다. 혼인한 사람이 자기 배우자 djl에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죄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7:5에서 혼인한 자들에 대한 바울의 권면, “사다니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저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합하라”는 명령에 내포되어 있다. 혼인 관계 외에 이뤄지는 성 관계는 사탄의 유혹이요, 죄요, 사탄이 인간을 삼키려고 하는 수단이다.

성경 곳곳에서 혼인 밖에서 행하는 성 관계는 정죄 하며, 혼인 안에서 이뤄지는 성은 높이 인정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4절은 우리가 음행을 삼가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말한다. 올바른 행위는 우리 각자가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취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3장 4절은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선언한다.
성에 대한 하나님의 이 진리는 현실적인 목적을 비로소, 이것은 혼인한 성도와 혼인하지 않은 성도들의 길을 비추어 주어서 그들이 지혜롭고 올바르게 걸어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장 쓰라린 악, 즉 몸을 멸하고 영혼에도 상처를 입히는 악은 음행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음행 그 자체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이요 죄이기 때문이다. 음행을 통한 성의 오용을 피하기 위해서 젊은 성도는 혼인 생활에 이뤄지는 성의 올바른 사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젊은 처녀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장차 자기 남편이 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총각들도 자신의 힘이 장차 자기 아내가 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총각들은 자기 아내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창녀들과 한몸 되기를 의식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린도전서 6:16). P84-85

혼인의 토대는 두 사람의 영적인 하나 됨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뤄진 연합, 성경의 진리 안에서 이뤄진 연합이다. 이들은 성적인 조화가 아닌 영적인 조화가 기본이다.
간혹 미혼인 젊은 신자들이 자신의 혼인 대상자를 교회의 신자에게만 제한시키거나 “젊은 혈기” 때문에 처음 사귄 남자나 여자(비록 그들 모두 신자라 하더라도)와 곧바로 혼인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기도를 통해 결혼 대상자가 자기에게 맞는 사람인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데이트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다. P86

성은 혼인생활에서 아주 고귀한 부분이다. 모든 권위와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의 몸에 대하여 그리고 아내가 남편의 몸에 대하여 갖는 권위 혹은 권세는 책임 있게 사용 되어야 한다. 이것은 권위가 배우자의 유익에 대한 관심에서 사용될 때 가능하다. 성 관계는 수치스럽지도 않은 것이며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성에 대한 수치심은 교회 안에서 이뤄진 혼인을 불필요할 정도로 곤란하게 한다. 교회는 성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침묵할 뿐만 아니라 성이란 오직 자녀를 낳기 위해서 사용될 때에만 선하고 적법하다는 가르침을 통해 성이 본래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가가을 불어 넣음으로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왜곡된 생각과는 반대로 성경은 우리에게 혼인 생활 안에서 기쁨의 자유를 허용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혼인의 성적인 측면을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고 선하며 수치스럽지 않고 영예롭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에 포함돼 있다.

성과 참된 혼인
성이 혼인 생활에서 차지하는 고귀한 한 부분인 이유는 하나님이 성을 태초에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성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을 반영토록 했기 때문이다. 성은 특유한 방식으로 이채롭게 표현하고 실현한다. 둘은 한 몸이다. 그들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하나가 된다.
p88-89

성은 오직 자녀를 낳기 위해서 사용될 때만 합법적이라는 주장은 자녀를 혼인의 목표로 만드는 잘못을 범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와 같은 주장은 성은 출산을 떼어놓으려는 오늘날의 경향을 염려하기 때문에 나온다. 그러나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성 관계가 자녀를 생산하는 것 외에도 어떤 목적과 가치를 가진다고 분명히 말한다. 성은 혼인 생활에서 즐겁고도 놀라운 친밀성을 내는 한 측면이며. 혼인은 사랑의 관계를 독특하게 표현한다. 이것은 혼인 안에서 갖는 교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 관계를 이렇게 사용하는 것에 또 다른 용도를 더하셨다. 비록 자녀를 생산하는 것이다. P95

우리가 혼인에 대해 얘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연구 다보면 이혼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된다. 혼인의 진리에 대하여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교회도 이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진다. 심지어 불신 세계도 높은 이혼 비율에 놀라곤 한다. 이 관심과 놀라움은 시편 119편 53절이 말하듯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가 이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혼 자체가 들 삶을 망치고 인간 사회에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녀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그들이 이혼을 했거나 혼인이 심각한 문제에 빠졌기 때문에 이혼이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이혼에 대한 진리는 혼인을 했든 안 했든 교회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교회가 지닌 순결과 영적인 힘 복리에 대한 책임을 진다. 혼인의 진리에 대해 교회가 정말로 순종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교회가 치러야 하는 시험은 바로 이혼에 관한 시험이다. 이혼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교회는자신과 다음 세대들을 위해 혼인의 진리를 보존하든지 아니면 위태롭게 만든다.

우리는 이혼을 혼인과 별개 문제로 다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혼은 오직 혼인에 대하여 앞서 말한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이혼은 부정이다. 이혼의 부정은 긍정, 즉 혼인이다. 이혼은 혼인을 통하여 하나가 된 두 사람이 갈라서는 것이다.
이혼에 대한 신명기 24장 말씀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이혼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과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대조시킨다. 이 다른 가르침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모세의 이혼 규례이다. 예수님이 31절에서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은 신명기 24장 1-4절에 나오는 이혼 규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신명기 24장 1-4절은 이혼문제에 대한 중요한 본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본문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에 나타난 이혼 관련 규례는 예수님 시대에 전반적으로 잘못 이해됐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잘못 이해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오해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와 모세, 신약과 구약의 불일치라는 어 어려운 문제를 만든다. 우리 실수는 이 규례가 이혼, 심지어 재혼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본다는 데 있다. 즉, 다음 말을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 “그로 하여금 이혼 증서를 써서 그녀 손에 주고 그녀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것이다”(1 하반절, 2절)/ 우리는 이것을 사소한 이유에 의한 합법적 이혼이라고 본다. “사람이 수치 되는 일이 그녀에게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1절)이다. 그러나 사실, 이 말슴은 재혼은 말할 것도 없고 이혼에 대한 어떠한 인정도 찾아볼 수 없다.
모세는 여기에서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9장 8절에서 지적하였듯, 모세는 “허용”하였다. 어떤 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신명기 24장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가 취해야 할 법을 서술했을 뿐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있는 남자가 아내와 이혼을 하고 미래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와 같은 경우에도 그들은 이혼증서를 써서 자기 아내들에게 주어야만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너희 아내와 이혼하라”고 명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들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이 발견되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모세의 명령은 이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너희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된다면,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써주라”. 이혼 증서는 버림받은 아내들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모세가 남편에게 버림받을 여자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라고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스라엘의 여자는 금방 노리개감이 되거나 창녀와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이혼 증서는 “그녀에게” 써서 “그녀의 손에” 쥐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그녀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신명기 24장에서 우리가 종종 지나치는 것 중에는 모세가 이혼이나 재혼을 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나 인정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것을 허용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우리가 이 본문을 정확하게 읽는다면, 모세가 준 규례는 이것이다. 원래 남편에게서 이혼 당하여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여자는 두 번째 남편이 그녀를 또 버리더라도 전 남편에게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1-3절에서 모세는 단지 수치스러운 일 때문에 아내를 버렸다. 이혼 당한 여자들은 다른 남자와 혼인을 했다. 그리고 이 여자들은 두 번째 남편에게서도 이혼을 당하였다. 그와 같은 경우에 모세는 첫 번째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을 금한다(4절). 1-3절은 모세가 인정하는 것을 쓴 게 아니라 단지 일어나는 일을 보는 그대로 쓴 것이다. 흠정역은 이 점에서 다소 잘못된 점이 잇다. 특별히 1-2절은 모세가 남자가 이혼하는 것과 여자가 재혼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올바른 번역은 다음과 같다.

남자가 아내를 취하여 혼인한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녀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녀를 기버하지 아니할 때에, 그가 이혼 증서를 써서 그녀 손에 주고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라 그리고 그 여자가 그 집에서 나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고 만일 그 후부가 그를 미워하여 한다면 전부가 그 여자를 다시 취해서는 안되고,

이 번역에도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내포돼 있다. 그러나 이 번역은 모세가 이혼을 허용할 뿐 이지 인정한지 않는다는 것을보다 분명히 한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모세가 허용한 이혼이 가능한 유일한 이유는 “어떤 수치되는 일”이다. 문자적으로 이것은 “어떤 일의 벌거벗음”을 의미한다. 이 구절이 나오는 성경의 다른 곳은 오직 신명기 23장 14절 뿐이다. 우리는 이 구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기 어렵지만 여성의 어떤 성적인 더러움이나 수치를 의미하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음행은 아니다. 왜냐하면 음행에 대한 벌은 사형이기 때문이다. 그로나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성적인 수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음행과 관련돼 잇다. 그러므로 신명기 24장이 사소한 이유 대문에 이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이혼을 허용한다 해도 구약은 성적인 불결과 관련된 경우만 엄격하게 제한한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얘기하는 이혼은 음행의 경우에만 한정시킨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본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P109-113

예수님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모세가 신명기 24장의 규례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명기 24장 사이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계신다. “그러나 나는 이르노니.” 그리스도는 신명기 24장의 허용을 폐지하셨다. 음행의 연고 이외 어떤 이유에서건 이혼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참된 혼인에 대하여서도 충만하게 되엇다. 이를 버리는 자는 저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마 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