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4일) 모스크바 국립대 물리학부 대학원 종합평가 시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은이만 외국인이었는데 5점(A학점)으로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정규 학업이 모두 끝나고 1년 남짓 남은 기간 동안 논문을 완성하면 졸업하게 됩니다. 기은이 장학금을 보내주고 계신 <아름다운 동행> 발행 겸 편집인이신 박 이사님과 여러 후원자들 그리고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기은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 마칠 무렵인 1997년 1월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떠나게 된 부모를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IMF로 더욱 살림이 어려워진 어느 날 기은이가 발이 많이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신이 너무 작아 발가락이 많이 상했는데도 참고 버틴 것이었습니다. 왜 여태껏 말을 안 했냐고 물었더니 집이 너무 어려워 보여 걱정할까봐 말을 안 했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는 뜻하지 않는 방해 세력이 적지 않습니다. 존경받아야 할 한국 어른(?)들의 이해 못할 언행을 지켜보고 지내야 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세 들어 살고 있던 고려인 부부가 주위의 유혹(?)에 이끌린 듯 갑자기 우리더러 집을 비워달라고 했습니다.
이 무렵 찬미와 기성이가 영국 선교부가 세운 학교를 다니고 있어 카작인 디렉토와 상의를 하자 마침 주로 영국에 상주하고 있는 학교 설립 목사가 학교를 방문 중이라며 우리 가족 문제를 급히 상의했던 모양입니다.
영국 선교부에서 현지 청년들 모임 장소로 사용하는 아파트가 있었는데 프랭크 목사님은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사용해도 좋다며 바로 열쇠를 내 주는 것이었습니다(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을 동안 이 장소에서 모임을 갖지 않기로 했다 한다).
이번엔 짐을 무사히 옮기는 일 또한 쉽지 않아 그동안 한동네에서 잘 알고 지내던 까작인 운전수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마침 이분이 대형 트럭을 가지고 있는데다 우리 가족이 처한 어려움을 알고 자기가 있으면(카작인 동네의 통장 격임) 문제의 고려인 남자도 꼼짝 못한다며 내일 짐을 옮기자는 것이었다.
3월 27일은 카작인 명절(파스카-이슬람 부활절에 해당)이 시작되는 날이라 모두 일을 쉴 때임에도 일찍부터 차와 짐꾼까지 대동해 왔습니다. 짐을 모두 싣기까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카작인 남자는 문제의 인물 집 앞에 계속 머물고 있었습니다.
일단 측근 고려인 성도 집으로 짐을 옮겨놓고 잠시 휴식을 가졌습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습니다. 아마 카작인 운전수가 아니었으면 무사히 짐을 챙겨 그 집을 나오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 것입니다.
고려인 집에서 몇 가지 필요한 생필품만 챙겨 영국 선교부가 제공한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벽에 붙여놓은 글에 아이들이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집 처럼 편한 마음으로 지내시오.”
“이 집에 있는 음식들은 마음대로 먹어도 좋습니다.”
영국 신사다운 글과 대문 보안 장치가 비교적 잘되어 더욱 감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이웃에 현지인 아이들도 많아 모처럼 자녀들이 밖에 나가 놀 수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잔뜩 긴장했던 아이들이 비로소 안심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가족이 고난 중에 있었음에서도 자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혹 성경공부를 잠시 쉬거나 자녀들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면 질책하셨습니다.
“너는 왜 네게 맡긴 나의 자녀들을 가르치지 않는가.”
그래서 늦은 시간에라도 잠시 자녀들에게 성경을 지도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들은 장차 내가 사용할 나의 종들이다. 이들을 모두 내게 맡길 수 있는가.”
“예,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을 위해 모두 내드리겠습니다.
그 사이 자녀들이 자라나 어느새 자라나 모두 박사 과정에서 학업을 쌓고 있습니다. 기은이는 2년 동안 수업한 후 가진 종합 심사를 무난히 통과해 내년 가을 졸업이 확실시 됩니다.
주님의 돌보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그동안 후원과 기도해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찬미와 기성이의 학업을 위해서도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설명> 기은이와 찬미, 기성이가 모두 졸업한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국립대학교 본관 건물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