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사역을 시작하며-

by 이재섭 posted Jun 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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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주님의 인도로 1997년 1월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2년 반 정도 머물 때 심한 방해로 여권을 탈취당하고 종교 비자 연장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1999넌 6월 한국으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1년이 안식년이 된 셈입니다.

2000년 7월, 이번에는 러시아 시베리아로 향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11년이 되도록 한
차례도 안식년을 갖지 않았습니다. 선교 단체에 따라 4년에서 6년 사이에 안식년을 갖는
것이 통례입니다. 평소 학생 신분으로 수업에 몰두하면서 안식년(?)을 꼬박꼬박 챙기는
사람도 있더군요. 학업에만 전념하는 학생의 경우 방학을 이용해도 될 것 같은데-.

지난 해 가을부터 선교비가 급격히 줄어 부득이 안식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중에라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선교지를 방문하고나 사역을 재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국내에 머물 동안에도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앞으로 사역에 꼭 필요한 괴제가 있어 가족보다 먼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선교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이 부분은 추후 다시 정리해 싣도록 하겠습니다)..
주일에 시간이 가능할 때마다 인천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를 맡기로 했습니다. 지난 주일
11주년을 맞아 11시 예배 설교를 하고 오후에 창립예배 오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천사홈에는 주로 러시아에 관한 글을 실어야 할 것 같아 그동안 소개할 기회가 없었던 선교
현장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엮어 나갈 생각입니다.
새소식 난에 지난 선교 이야기가 실리더라도 양해바랍니다.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오랜만에 국립묘지를 찾았습니다. 군 복무 중에 아끼던 후배가 그만
불의의 사고로 순직했기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연례적으로 받던 훈련인데 제가 전역한 후
1년이 못되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군과 관련된 일이라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고 이상구 상병은 서강대 영문, 국문 복수 전공 3학년 재학 중에 입대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군종사병으로 독립교회를 맡고 있었는데 틈만 나면 교회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저와 잠시 만나는 동안에 양말 속에서 영문 뉴스위크지를 꺼내 읽기도 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현충일에 맞춰 한국에 머물 기회가 거의 없
어 오랜 만에 그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좀 늦게 도착해 다른 후배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전쟁이나 군 생활 중에 전사하거나 순직했습니다.
특히 6.25 동난 중 자유 수호를 위해 전사하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안식년 기간 동안 국내 연락처- 010-2220-0091
<사진설명> 모스크바 차없는 거리(아르바트)를 흉내낸 이르쿠츠크 차없는 거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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