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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우랄스크를 떠나며

 

박은 우리에게 받아간 돈에 훨씬 못미치는 2,800불을 동생 편에 보내주면서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동생이 찾아왔기에 문을 사이에 두고 말했다. 얼마면 될까요? 하고 묻기에 딸 치료로 한국을 오간 경비(한국 왕복 교통비와 후속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를 포함해 13000불 이상을 요구했다. 동생은 말도 안 된다며 그냥 돌아갔다 ). 우리는 박의 말을 믿고 엄청난 경비를 들여 이곳까지 왔음에도 편도로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삯 정도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 것이다.

굳이 악한 자의 처소에 더 머물 필요가 없어 집을 이사하기로 했다.. 박의 심복격인 교회 사무원은 앞으로 이 집에 자기가 살게 됐다는 듯이 세탁기를 두고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물품들은 이미 상당한 대가를 치른 탓에 가져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듣고 보니 세탁기를 두고 가야 할 것 같았다(결국 이때부터 카자흐스탄을 떠나기까지 2년간 세탁기 없이 살아야 했던 탓에 사라 선교사 허리에 무리가 왔다).

 

우리는 시내에 새로운 집을 임대해 3개월치 세를 주었다. 그동안 사용하던 집에 짐이 있어 당분간 두곳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우랄스크를 떠나지 않고 새로운 집을 세 얻었다는 말을 박의 심복이 듣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순순히 도시를 아주 떠나지 않는 것을 알고 바로 박에게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박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현지에서 밀어내려고 갖은 모략을 짜냈다.

하루는 이사한 집에 세탁기가 없는 탓에 세탁물을 챙겨 전에 살던 집으로 빨래를 하러 갔다. 집 입구에서 경찰이 대기하고 있다가 신분증을 보이면서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디선가 박의 동생이 나타나 박의 심복(통역)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려 들었다. 왠 꼬마아이 하나까지 데리고 들어가려 하기에 넌 나가라 했다. 박의 심복인 고려인 여자가 계속해서 아이를 붙잡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려 들었다.  짐작컨데 박의 동생이 경찰에게 고려인 여자와 자신이 부부라고 말한 것 같았다. 마치 어린 아이 하나까지 딸린 가족인 양 행세해 우리를 몰아세우려 한 듯-

 

경찰은 TV가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또 교회 교적부를 훔쳐갔다는 말까지 했다. 대충 말해 놓고 덜미를 씌워보려는 수작이었다. 본래 박은 자신의 대형 TV는 이곳에 보관해 놓고 동생의 작고 싼 TV를 우리에게 비싼 값에 팔은 터였다. 내가 경찰에게 당신만 들어오라고 한 후 박이 둔 큰 TV와 몇 가지 짐들을 보여주자 경찰이 밖으로 나오면서 "물건이 그냥 그대로 있다." 있다 하고 말했다.

이번엔 저들의 요구대로 교적부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허가 교회이기 때문에 교적부를 가져가게 되면 크게 문제가 되는 모양이었다). 자기들은 가장 중요한 교회 허가증과 도장까지 따로 감추어 놓고도 이런 쇼를 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비 요소가 있을지 몰라 교적부는 이 집에 보관 중이었다. 결국 경찰은 그냥 돌아갔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박의 동생이 집 열쇠를 몰래 가지고 달아났다. 이 집은 열쇠가 없으면 안에서도 문이 열리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집에 감금 상태에 놓여있는 동안 사라 선교사가 박의 동생을 뒤쫒아가 열쇠를 달라고 했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윗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자 이를 지켜보던 경찰도 무언가 이상이 있는 것을 눈치 챈 듯하다. 아마 현행범으로 몰고 가려다가 실패한 듯-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 정도로 물러설 위인들이 아니라 생각됐다.

 

 며칠 후 교회 허가 신청을 접수해 둔 법무부 측에서 9월이 지날 동안 즉 한 달 동안 교회 허가는 안 된다며 태도를 바꾸고 말았다. 알라 선생님은 법무국에 갔다가 이러한 통보를 받고 다리가 후들거려 혼났다고 했다. 법무부 직원인 알라 선생님 친구 분도 너무 고위층(주지사가 직접 지시한 듯- 이 나라 주지사는 전 분야 통제가 가능하다) 명령이어서인지 아예 더 이상 거론조차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과연 9월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무언가 박의 또 다른 음모가 서려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번엔 출입관리국에서 우리 가족 여권을 모두 가지고 출두하라고 했다. 알라 선생님이 미리 전화로 알린 후 우리와 같이 출입관리국으로 가기 위해 집으로 오셨다(박 형제로 인해 이분을 대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한국인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늘 송구스러웠다).

 

 “선생님 오늘 무슨 말을 듣게 되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하고 미리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알라 선생님은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목사님, 괜찮을겁니다. 출입관리국 책임자가 며칠 전에도 우릴 잘 봐주기로 했잖아요. 아무 일없이 잘될 겁니다.” 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짓는 것이었다.

 “선생님, 사실 제가 어제 잠을 거의 못 잤습니다. 아마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자, 알라 선생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결국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위기 속에서도 틈틈이 현지인에게 신앙을 심어주어야 했다.

 

 출입관리국에 들어서자 담당 여자 경찰이 우리 가족 여권을 내 놓으라고 했다.그러면서 겸연쩍게 말을 꺼냈다.  “미안하게 됐다. 상부의 지시로 당신들은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제 자기 부서에서 무슨 회의가 있었다고 했다. 아마 상부에서 누군가 출입관리국에 압력을 가한 모양이다.

 “며칠이면 한국까지 갈 수 있겠냐.” 고 묻기에 적어도 2주일이 걸린다고 하자, “그건 곤란하다. 사실 상부에서 3일만 주라고 했다.” 라고 말하기에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 아주 극단적인 명령을 내리게 한 것이다. 알마타로 가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있는데다 다시 알마타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또한 일주일에 한번 밖에 없다.

그런데 3일 안에 이 나라를 떠나라니-  아예 불법체류자가 되어 이 나라에 구금되던지 아예 강제 추방되라는 뜻인 듯(사람이 어쩌면 이토록 악할 수 있을까. 끝까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려 들었다.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증인을 없애자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출입관리국 담당 경찰도 이런 내용을 우리에게 적용하자니 어이가 없어보였던지, “딸 아이가 아파서 한국을 다녀온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핑계로 10일을 주겠으니 법을 위반하지 말고 무사히 나갈 수 있길 바란다.” 하고 말하면서 여권에 무엇을 기록하는 것이었다(여권에 어떤 기록을 남기는 것 또한 상부 지시인 것 같았다. 다만 이때 어떤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단지 날짜만을 변경하는 내용만 기록했다. 담당 경찰은 우리를 도우려고 이렇게 했던 것 같다).

 

 경찰은 우리에게 당장의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것을 은연 중에 강조했다. “다른 주에서 거주허가를 받을 수도 있고 그곳 파견을 받아 다시 이리로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여자 경찰들에게 준비해 간 선물까지 주자 더욱 미안해 했다.이날 담당 경찰은 우리에게 어이없는 부탁을 했다. 정말 같은 한국인이란 사실이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이것은 선교를 떠나 민족적으로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지만 대외적으로 박의 신분을 고려해 한국에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참기로 했다.

 

“혹 한국에 가게 되거던 저런 자들이 이 나라에 다시 못 오도록 조치해 달라.”(이 말이 이때 언뜻 이해가 안 갔다. 문제의 인물은 형제지만 박은 현재 서울에 있고 여긴 동생만 있는 걸로 아는데 어째서 복수형을 써서 말을 할까 하는 의문이 잠시 일었다. 이 도시를 쫓기듯 떠난 후에야 박이 몰래 와서 우리 가족이 추방되도록 현장 지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관까지 압박을 준 사실이 몹시 기분이 나빴던지 박 형제에 대해 한국 측에서 응분의 조치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출입관리국을 나서는 알라 선생님이 영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게 물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어떻게 이 나라 일을 우리보다 더 잘 아세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영감으로 알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을 잘 믿기 바랍니다.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라고 당부했다. 비록 우리가 쫓겨나게 되더라도 가까이 있는 분만이라도 구원을 얻기 바랐다. 정말 틈틈이 수고를 많이 해 주어 고마웠다.

 “예, 지금은 잘 모르지만 저도 하나님을 잘 믿고 싶습네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알라 선생님은 길을 가는 동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 그런데 제 오십 평생에 이렇게 독한 인간은 처음봅네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독할 수가 있을까요. 참 무섭습네다.” 

 

   알라 선생님은 전후(戰後) 북한에 전기기술고문관으로 파견 나가 있었던 부친으로 인해 평양에 중학교까지 졸업한 분이다. 북한에서 10년을 거주하면서 성장기를 보내고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온 분이 한국에서 임직을 받은 자를 가리켜 이런 말을 하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했다.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며 인생을 살아 온 분이지만 박과 같은 인물이 있음에 놀랐던 것이다.

  "듣자니 본래 박 집이 잘 살았답니다. 그런데 그만 그의 부친이 노름을 하다가 재산을 다 날렸다고 하던데 집안에 그런 피가 흐르는 게 아닐까요?" 하는 말을 듣고 자식이 문제가 많으니 족보까지 다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박 성향으로보아 어떤 말도 그대로 믿기 어렵지만-). 박의 태도가 못마땅해 알라 선생님 가족을 비롯해 대부분의 성도들이 처음에 잠시 유대를 갖다가 멀어진 상태였다. 

 

 측근 성도들과 현지인들이 이별의 아쉬움 탓에 매일 찾아와 주었다.  먼 나라에서 자기들을 위해 왔다가 같은 민족의 모함으로 떠나야 하는것이 안타깝게 생각되었던지 몹시 마음 아파했다. 현지 영혼들을 상하게 하고 선교를 가로막는 자가 이 낯선 땅에서까지 찾아와 판을 치다니- (그래도 박이나 나중에 동생 후원에 참여 하는 자들은 무언가 보람을 느끼고 있으리라.더욱이 바우리는 호박이 넝쿨 째 들어온 양 덥썩 받아들였다가 10년 동안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우랄스크에서 기도할 때면 때때로 손이 뜨거워지는 것을 이따금 느낄 때가 있었다. 성령께서 기도하도록 휘몰아칠 때가 많았다.  결국 하나님의 일은 현지까지 사람이 가야 그만큼 역사하시기 쉬운 것이리라. 상처 입은 어린 양 또한 다가가서 싸맬 수 있지 않는가.

 영적 전쟁터인 만큼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을 자주 체험했다.선교사란 결국 성령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디든지 순종하고 갈 때 주의 뜻이 실현된다고 믿는다. 아브라함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을 따르는 자들은 사실 불과 소수에 불과했다. 그가 임명한 4명의 현지인 집사와 통역 현지인 전도사가 그 전부인 셈인데 나중에 전세터 집사마저 여기서 빠졌던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교회 도장과 허가증이 없었던  탓에 법적으로 우리가 몰리게 된 것이다. 물론 전체 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무언가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훗날 러시아 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너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어차피 자기 민족 목사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선교사가 필요했다).

 박을 추종했던 전세터 라는 고려인 여자는 본래 유치원 교사였던 분이다. 비교적 사려 깊은 분으로 보였는데 한동안 박의 꾀임(?)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녀는 시장에서 옷 장사를 했기 때문에 떠나기 앞서 시장으로 인사차 찾아가 보았다. 전세터는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우리가 찾아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이때 찾아간 우리도 놀랄 정도로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정말 찾아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어 저들이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이 목사님을 데려왔으니 책임지고 한국을 오고 가는 비행기 값과 모든 경비를 변상하라고 말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한 마리의 어린 양이 이리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전세터에게 이튿날 우리 쪽 사람이 모이는 시간에 찾아오라고 했다.

  그녀는 통역이 있는 곳이어서 더욱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전세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난 일들을 설명했다. 듣고 보니 정말 어이없는 내용들이었다(독자들께선 그의 이런 면을 기술하더라도 단지 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보아 주기 바란다. 결코 한 사람을 빗대어 전체 선교사의 단면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엄연히 현지에서 있었던 사실이라 소개해 나가고자 한다).

 

  “박은 동생을 러시아 여자와 살게 하고는 아기를 못 낳게 했다. 처음에 임신하자 심장병을 이유로 낙태하고 두 번째 아이를 낳게 된 것이다. 러시아 여자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오기 직전에 악쭈빈스크(우랄스크에서 약 700km 떨어진 곳)보냈다. 그후 동생은 고려인 부호 딸과 밤낮 어울려 다녀 보기에 안 좋았다.” 는 것이었다. 전세터의 말에 한 민족으로서의 아픔을 느꼈다. 이방인의 일도 아니고-

(박은 자신의 동생에게 키가 거의 20cm 더 커 보이는 러시아 여자를 현지처 처럼 데리고 살라 하고는, 얼마 후 헤어질 것을 대비해 아이까지 낳지 말라고 주문할 정도로 교활했다. 물론 동생의 생활비는 그가 받은 루원비(?)에서 충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 참석한 “벨라”라는 분은 전직 교장 선생님으로 아들은 현지인 목사이다. 벨라는 박을 가리켜 “샤캴(늑대)과 같은 놈이다. 참으로 무서운 인간이다.” 하고 혀를 찾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떠나게 된 것이 안타까운듯 표정들이 안 좋았다. 언제 다시 만날 기약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전쉐터는 한때 저들의 하수인 노릇하느라 우리를 몰아세운 사실이 아쉬운 듯 울먹이기까지 했다. 우리를 초청하기 위해 알마타로 갈 때 자기도 동행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초청을 위해 선물비나 경비로 500불이 든다 해서 미리 주었다고 했더니 실제로 100불도 안 들었을 뿐 아니라 자기들은 그 돈을 박이 댄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들을 돌보기 위해 우리 가족을 이 먼 곳까지 보낸 것이 아닐까.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알라 선생님 집에서는 성대한 송별회까지 열어주었다. 그분의 출가한 딸 “세터”는 비교적 신앙이 돈독해 현지지도자로 육성했으면 했다(나중에 전도사가 되었다 한다). 이 자매가 송별회 자리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목사님, 한국에 가거들랑 이 나라에 박00과 동생 같은 못된 자들이 이 나라에 왔더라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자들이 이 나라에 못 오게 해 주세요.” 라고 말했다.알라 선생님 남편이신 블라지미르 선생님은 참으로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로서 부친이 전직 주(州) 경찰국장이셨다. 이분도 송별 인사를 했다.

 “나라에서 시키는 일이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보내드립니다. 부디 잊지 말고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하며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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