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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차라리 이스라엘의 길 잃은 자들에게 가라.

 

 

  아직 몸이 불편한 딸과 함께 우랄스크로 돌아가자 알라 선생님 가족 등 측근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동안 찬미와 많은 고난을 치르면서 현지로 돌아온 것은 이곳에서 마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많은 우려 곡절을 겪은 채 돌아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알라 선생님을 통해 미리 우랄스크 아동병원 의사가 홀몬제를 왜 그만큼 투여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담당 의사는 무척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자신은 일상적인 치료를 다한 것이다. 만일 자기 병원에 다시 오면 똑 같은 과정을 밝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아보아 딸 치료를 계속하기로 했다. 며칠 후 알라 선생님이 새로운 병원을 알려주어 인사를 드리고 딸이 이상이 있을 때마다 봐주기로 했다. 일단 선교지에 적응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기로 했다.

 

 

  막상 현지로 왔지만 박 쪽에서 우리가 다시 온 것을 알고 계속 몰아내려 들었다. 나중에는 집을 비워주는 조건으로 우리가 물품비로 건너 준돈에도 훨씬 못 미치는 돈(2800불)을 박의 동생이 가져왔다. 굳이 보상하려면 왕복 경비를 비롯해 변상할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일단 주는 대로 받았다(내가 직접 이자를 만나게 되면 이들이 지난 태도에 대해 참기 힘들 것같아 사라 선교사가 수령했다). 

 일단 법적으로 활동을 보장받으려면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일이 시급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밝은 보리스 선생님께 연락했다. 끄즈오르다 보리스 선생님이 우스타브(교회내규)를 비롯해 준비 서류 샘풀을 열차 편으로 보내 주셨다.

 

  법무부에 교회 허가 신청 문제를 상의하러 가자 마침 알라 선생님 친구 분이 담당으로 있었다. 그 분은 서류를 검토하더니 혹 잘못된 곳이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고치겠다. 최대한 협조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모든 것이 잘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관계 서류를 갖추어 교회 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제 선교지에 새로운 교회가 태동할 것인가 자못 기대가 되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 교회 설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남한만한 우랄스크 주에 유일하게 사역하는 목사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땅 끝인 선교지에 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단도 지지 않고 자기 사람(?)들을 통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국은 선교사도 보내고 또 이상한 인물도 보내는 듯-

 

  하루는 시장에 갔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 남한에서 왔다고 하자,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남한 사람이 이 먼 지방 도시까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게 왜 왔냐고 묻기에 교회(쩨르코비)에서 일하는 목사(빠스토르)라고 했다. 그는 이 두 단어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끝내 내말을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정말 이방 지대에 온 것이다.

 

  알라 선생님께 “고려인협회장이 우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가 이곳에서 교회 설립을 하거나 이곳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은 이슬람과 러시아 정교회가 섞여 있는 나라여서 접근이 쉽지 않다.

 

  어느 날 알라 선생님이 우리 식구를 모두 식사에 초대를 했다. 온 식구가 알라 선생님 댁을 찾아가자 고려인협회장이 먼저 와 있었다. 

고려인협회장이 어색해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 만나려 했지만 박과 함께 이곳을 와서인지 시간을 내 주지 않았다. 

  알라 선생님은 이분이 우리를 피하는 것을 알고 이처럼 사귐의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알라 선생님이 지혜롭게 양쪽을 동시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므로 식사를 하는 동안 서먹한 관계가 다소 가라앉게 되었다. 

만남이 주는 의미가 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화가 점차 진지해지자, 고려인협회장은 부담이 다소 줄었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앞으로 이곳에 교회를 세우게 되면 자기 사무실을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책상하나 정도 놓아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순간 박이 이런 걸 이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자흐스탄에서 교회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10명의 설립 동의자가 필요하다. 특히 민족 대표가 나설  경우 교회 설립 허가가 더 쉬울 수가 있다. 박은 보리스 선생님과 함께 주로 현지 고려인협회를 통해 도움을 받아 허가를 받은 다음에 이들의 참여를 배제함으로 고려인들로부터 배신감을 사게 된 것이다. 

 내가 “좋다. 약속을 지키겠다.” 고 말하자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비록 주청이 있는 도시이고 한 종족을 대표하는 고려인협회라지만 지방 도시에서는 이들이 어디 사무실 하나 제대로 얻을 형편이 못되어 책상과 전화 정도 둘 자리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

 

  고려인협회장은 우리 교회 설립을 위해 장소 물색 등 여러 가지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슬람권 나라라 교회로 사용할 건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한 민족 대표가 부탁해서인지 종합학원 건물을 교회로 쓸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 두었다. 또 선교 방법으로 무료 영어 교실을

있도록 양해를 구해 두었다. 또 선교 방법으로 무료 영어 교실을 세우기 위한 영어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영어 교수까지 한분 물색해 주었다.

 

커피숍 같은 곳이 없어서 조그만 박물관에서 영어 교수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교회 설립 준비가 구체적으로 갖추어져 갔다.  하지만 박 쪽에서 갖은 이유를 내세워 현지 정부에 고발을 했다 우랄스크 주에 한국 교회에서 유일하게 사역하러 온 목사를 쫓아내려 드는 자가 한때 파스터(목사) 임직을 받은 자였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박 속에는 과연 누가 지배하고 있을까. 그가 이만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믿고(?) 후원(?)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박 측의 고발에 맞서 한때 주 전화국장을 지낸 아리스 선생님(교회 설립 대표)을 비롯해 여러 현지인들이 나서서 우리를 변호하는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아리스 선생님은 이들이 고발한 글이 계속 쌓여 한 묶음이 넘는다며 혀를 찼다.

 자신이 현직(전직 주 전화국장)에 있었다면 저런 놈은 금방 해결 볼 수 있었는데 그만 은퇴를 해서 이제 힘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하루는 출입관리국에서 출두하라는 연락이 왔다. 법무 담당 직원은 유능해 보였다. 내게 영어, 독일어 중 하나로 대화하자고 했다. 

내가 영어도 썩 잘 못하지만 우리 측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통역을 통해 말하겠다고 하자, 아리스 선생님과 알라 선생님이 동석한 자리에서 심문을 하는 것이었다.

 먼저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가 사실인지 물었다. 이러한 질문 배경에는 엉뚱한 이유가 있었다(선교사라 할지라도 전공자가 아니면 문제삼을 수 있다).

-박은 한국에 있으면서 러시아 남자와 사는 교회 고려인 통역과 그의딸(결국 러시아 여자 아이로 17세 정도)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약 두 달 간 한국 교회를 여기 저기 순회한 적이 있다(이 현지인은 거짓과 술수가 능할 뿐 아니라 한국에서 온 목사를 방해한 주역이었음에도 마치 선교지 교회의 유능한 일군인 양 위장시켜 한국 교회를 우롱한 것이다. 결국 박과 둘이 한국 교회를 유린한 셈이다).

 박은 심지어 자기 쪽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이 여자마저 속여 이를 이용하려 들었다. 한국 방문 때 이 현지인 여자를 전도사로 둔갑시키고 심지어 어느 신학교에 가서 내가 이 학교를 졸업했냐고 묻자,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는 말을 목도하게 한 후 이 목사는 신학교도 졸업 안한 가짜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고려인 여자는 고발장에 자신 있게(?)이런 내용을 명시했던 모양이다. 참으로 교활한 자라 하는 일마다 이처럼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나는 오랫동안 신학 수업을 받느라 여러 신학교를 졸업했는데 이날 참고로 가지고 간 서류를 통해 본인의 말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심지어 “여러 나라에 가본 적이 있느냐, 여긴 왜 왔는냐?”는 등 심문했다. 다른 부분에 문제가 없을지라도 일단 초청한 교회 고발이라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회 도장을 이런데 쓰려고 따로 빼돌려 두었던지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던 교회 도장이 고발장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 나라 교회 허가 도장은 일종의 관인 도장의 효과가 있다. 물품 인수비를 챙겨가면서까지도 도장을 빼돌린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이날 아리스 선생님은 이미 70세가 넘는 노령임에도 배석하여 출입관리국 직원에게,“저놈들이 나쁘다 이 교회는 내가 설립 대표였다. 내손으로 세웠지만 잘못되고 말았으니 내 손으로 다시 허물고 싶다.하고 말하자,  담당자가 많은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본래 우랄스크 교회는 당시 고려협회장이었던 아리스 선생님이 교회가 있는 남부 지역을 방문했다가 우리 쪽에도 교회를 세워달라고 요청함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박은 내게 자신이 모스크바를 가다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기차에서 내려 이 도시를 발견하고 교회를 세웠다고 말한 바 있다(더욱이 그는 선교보다 자신의 동생 사생활 문제로 주위에서 말을 듣게 되자 동생을 보호할 겸 선교사란 명분을 주어 이곳으로 보냈다).

 

 담당자는 자신의 직무였던지 내게 앞으로 보름 이내 이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 영어로 주문했다. 교회 도장에 의해 왔으니 교회 도장의 거부(결코 전체 교인의 요구가 아니라 단지 도장에 의한 것 뿐이었다)에 의해 여기를 떠나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음날 알라 선생님 부부와 함께 출입관리국 책임자를 만나러 갔다. 주 경찰간부인 그는 이미 보고를 받았던지 우리에게 오히려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냥 있어도 좋다. 자신이 최대한 도울테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는 것 같았다. 

 

외국인 출입의 키를 지고 있는 출입관리국 책임자(직책이 꽤 높은 편이다)가 협조한다면 누가 막아서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박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동원해 갖은 모략을 짜내고도 뜻대로 잘 안되자 자신이 알고 있던 고려인 부호를 통해 고위층에게 일을 잘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했던 모양이다(카자흐스탄은 아직 법보다 권력이 우선인 나라이다. 하지만 이런 부당한 요구를 단지 권력에 의존해 처리하려 들 때는 대개 이에 상응하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이 나라는 법을 아무리 잘 갖추어도 어떤 권력이 동원되면 그 힘에 의해 무산되는 수가 많이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박은 아마 주지사 정도의 힘을 동원한 것 같다(박의 측근 고려인 부호 집에 이따금 주지사가 들려 도박판을 벌리기는 등 놀다가 간다고 들었다).

  박은 또 고려인 부호의 감정을 부추키느라 본인이 한국에 자신을  욕하는 내용을 신문에 내어 한국의 모든 사람이 당신을 나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한국 사람이 욕한다 하면 아주 기분 나빠한다. 박은 이처럼 갖은 거짓으로 상대를 역이용하는 인물이었다. 

박의 말을 믿고 현지인 부호가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해서 내게  “내가 널 반드시 쫓아내고 말겠다” 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자기 가까이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기는 쉽지 않을 듯-(훗날 러시아에서도 같은 성을 가진 자가 이런 방식으로 자기 주위 사람을 먼저 속인 후 우리와 적대감을 갖게 했다. 이 자는 카작 박이 보낸 글을 갖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사용했다. 악의 사슬은 이처럼 국경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 영적 지혜가 필요하다).

 

박은 부자이고 힘이 있던 고려인 부호의 감정을 자극하는 한편 자신의 동생을 러시아 여자와 이혼시키고 이 부호의 딸과 재혼시키려 들었다. 이처럼 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자였다.  불을 품으면 어찌 타지 않겠는가. 이런 자를 자꾸 수용하고 비호하다 보면 엄청난 손실과 오명 또한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박이 철저한 변화가 된다면 몰라도 이런 자를 끝까지 자기 사람(?)이라고 감싸려 든다면 결국 한 통속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시일이 흐름에 따라 점차 이 자의 진면목을 알게 되어 믿었던 자들이 하나둘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땅에 정착(?)을 시도하기 시작한 모양인데 과연 얼마나 버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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