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부활내과에 입원한 사람 중 모스크바 선교사로 활동하시던 김 목사님이란 분이 교통사고를 당해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요양 중이셨다. 부활내과는 김 목사님을 무려 1년이 넘도록 무상으로 치료하고 있었다. 김 목사님은 명문 S대를 나와 30년 이상 교편을 잡으시고 교감 자격까지 취득하신 후 뒤늦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학을 하신 분이었다.
자연히 나와 많은 대화를 가지게 되었다. 내게 아예 선교지로 돌아가지 말고 가족 모두 철수할 것을 주문하셨다. 혹 내가 자기 판단을 잘 이해하지 못할까봐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도 담임선생을 잘 속여 선생 생활 30년 하면 사람의 마음을 읽는데 귀신이 된다. 더욱이 신학교를 나와 목사까지 됐으니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모스크바에 2년 간 선교사로 있으면서 선교지 모습에 대해 많은 것을 보아왔다.
일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하고 단지 후원비를 받아내는데 급급한 것을 자주 목격했다. 이들은 대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만일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생각지 않은 후원이 도달하면 주위에서 그 방법을 배워 답습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서로 한 통속이 되어 서로 감싸주기까지 한다(거짓말인 줄 알면서 옹호해야 서로 동지가 되나 보다).
만일 이 목사 같이 정직하고 고지식한 이런 자들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면 문제 인물로 간주해 어떻게 해서라도 밀어내려 들 것이다.
그땐 꼼짝없이 고사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곳에 가서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지내겠느냐. 괜히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일찌감치 단념하고 국내에서 목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혹 한국교회에다가 어떤 선교사의 모습을 두고 문제삼지 말아라. 오히려 더 고단수의 인물로 생각하고 괜스레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괜스레 선교지 실상을 말해 봤자 이상한 인물로 취급당하게 될 뿐이다.”
<독자들은 이 말로 인해 행여나 선교 열기가 식지 않기 바란다. 선교는 누가 해도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인 만큼 신뢰를 가지고 후원과 기도를 해야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박0곤을 지켜본 본인으로서는 한국교회 목사님들을 이처럼 이용해도 되는 것일까 생각되어 한마디 안할 수가 없었다>.
-물론 순수한 선교사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 인물의 예(나중에 다른 지역 사람들도 비슷한 성향을 보였지만)를 보아서는 김 목사님의 시각과 유사함을 느꼈다. 이 자가 우랄스크를 떠나면서 안 되겠는데요 라고 말한 것은 자신과 동질(?)이 아니어서 더 이상 유대를 맺기 어렵다는 뜻으로 보인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후원을 받아낸 다음 우리끼리 적당히 나누어 쓰면 될 게 아니냐는 식이다. 도둑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고 7살 연상인 목사와 한국 교회를 상대로 뭐하는 짓인가.
김 목사님 말대로 혹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낼 우려가 있으면 오히려 사방에 소문을 내어 아예 말을 못 믿도록 만들 것이다. 이들은 이미 주어진 신분(?)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기만하는데 그만큼 유리하다. 따라서 순진한 후원자들과 후원교회만 이런 자들에게 피해를 입게 된다.
찬미가 입원한 같은 방에 한 장로님이 계셨다. 인생 경험이 풍부하신 분으로서 우리 이야기를 전해 듣더니 “그렇게 막 가는 인간은 절대 앞을 막아서 안 되니 그대로 두고 피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찬미가 부활내과에 입원한지 한달이 지나자 드디어 홀몬제를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찬미를 괴롭히는 병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단순히 천식으로만 보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찮았다. X-Ray 필름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아직 어려서인지 보는 이마다 의견이 달랐다.
평소 알고 있는 X-Ray 전문병원 원장님 또한 친절히 무료로 검진을 해주셨다. 대개 찬미 가슴 상태를 정상으로 보고 있었다.
마침 큰 병원 원목으로 계시는 H목사님께서 부활내과를 자주 오시는 탓에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이 계시는 병원에서 검사를 한번 받아 보기로 했다. 찬미와 함께 큰 병원을 찾아가자 H목사님은 직접 담당 의사 선생님들께 데리고 가주어 찬미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소아과 의사선생님은 X-Ray 전문 병원에서 찍은 필름을 보시더니 폐렴이 극심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가슴뼈 부근이 약간 흐릿해 보이는 것뿐인데 소아과 전문의여서인지 폐렴 증세가 아주 극심하다는 것이다.
즉시 아이를 입원시켜야 된다며 입원명령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경비가 부족해 큰 병원에 입원시킬 수가 없었다.그래서 지금 입원 중인 병원에 결과를 알리고 당분간 지켜보겠다고 말한 후 돌아와 원장님께 진단 결과를 알렸다.
부활내과에서는 이미 고가의 강력한 항생제를 장기간 사용하는 등 찬미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찬미의 상태가 심각해 대개 한 주일 정도만 사용하는 항생제를 장기 투여하고 있는 것 같았다(아마 소아과 전문의의 진단도 찬미 치료에 참고가 되었을 것 같다).
얼마 후 드디어 미동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던 찬미의 횡격막 쪽이 점차 기능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러자 호흡이 점차 쉬어지면서 상태가 급격히 호전되는 것이었다. 기적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부활내과와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심을 다시금 느꼈다.
찬미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초등학교 동창 몇 명이 찾아왔다. 이 가운데 같은 반 친구도 있었다(초등학교 시절 내가 반장이었던 탓인지 오랜만에 만나도 금방 알아보았다).
반 급우였던 친구는 누가 좋은 약이다 하여 약사가 아닌 자를 통해 어떤 약을 사서 오랫동안 먹었는데 알고 보니 홀몬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약을 끊을 수도 없고 몸이 약해져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는말에 홀몬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것 같았다.
어릴 때 축구를 좋아했던 아이었는데 그 사이에 홀몬제로 인해 이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다니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동창인 친구는, 내가 찬미의 경우 홀몬제를 끊은 지 좀 경과되었다고 하자, 홀몬제는 끊고 어느 정도 견딜 수만 있으면 그리 걱정할 정도가 아니다 라며 위로했다.
H 목사님은 우리가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더라도 추운 지역을 피해 남부 지역으로 옮기라. 남부 지역인 침켄트에는 자신의 동창인 S목사가 있는데 선비처럼 좋은 분이니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지역 내에 있는 공무원들이나 주변 인물과 잘 사귀어 두었기 때문에 지내는데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말씀도 했다(후일 우리 가족이 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어 S목사님을 만났지만 듣던 것과 달라 충격을 받았다).
보름 정도 더 안정을 취한 후 선교지에 전화를 하자 아직도 방해 세력으로 인해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찬미의 상태를 더 지켜볼 여유가 없이 서둘러 현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찬미와 저희 선교를 위해 후원해 주신 분들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주위에 인사를 한 후 찬미와 함께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 앉자 조금 떨어진 곳에 M박사 일행이 보였다.
알마타 공항에 도착하자, 찬미 비자에 문제가 있다면서 선뜻 들여 보내 주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대사관에 들려 확인을 받았는데 인솔자 없음으로 체크된 아래에 찬미 이름을 써 넣어 입국이 거부되고 만 것이다.
대사관에서 새로운 비자 용지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결국 문제가 된 것이다. 찬미가 처음 발급받을 때 찬미도 어른들과 똑같이 비싼 비자 발급비를 낸 상태였다. 자기들 편리위주의 행정에 우리만 곤란을 당하는 것이었다.
불편한 찬미가 수 시간 동안 공항에 발이 묶여 있느라 지칠 대로 지쳤다. 나중에 공항 직원 중에 누가 나가라고 하기에 그냥 나왔다.
본래 가까운 곳에서 쉴까 하다가 날도 새고 하여 시내로 나섰다.
그래도 알마타에서 신세진 분들께 인사를 하려고 찬미와 함께 시장을 들렸다가 우리를 미행한 듯 악한 무리들에게 에워싸이고 말았다(알마타는 본래 도둑이나 강도가 많은 곳이다). 서둘러 피했지만 그사이 엄청난 손실을 입고 말았다(이 점 후원자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결국 비상시 뒤로 물러설 길이 막힌 셈이 되고 말았다).
먼저 신 목사를 찾아가 인사를 하자 내가 다시 돌아온 사실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돈을 털린 부분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알마타를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러시아인 집으로 갔더니 환영해 주었다. 우리가 준 돈이 아직 며칠 지내도 될만큼 남았다며 그냥 자기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이집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우랄스크로 가기로 했다.이방인의 집이 마음에 편했다. 벌써 더웠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일찍 우랄스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집을 나서는데 찬미가 구토하기 시작했다. 비행장에 갔더니 표가 다르다며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냥 돌아서야 했다(나중에 교회 사무원이 찾아가 비행기 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이처럼 길이 막힌 것도 주님의 뜻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알마타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후 찬미의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급히 찬미를 데리고 경희크리닉을 찾아가자 점차 의식을 잃어 갔다.
함 선생님과 새로 오신 남자 의사 선생님이 찬미 상태를 살펴보더니 사태가 심각한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이를 이대로 내 줄 수 없어요. 큰 병원으로 옮겨야겠어요.” 하는 함 선생님의 말이 아마 중태로 판단된 듯 급히 큰 병원에 연락하자 얼마후 앰블런스가 도착했다.
가족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급히 한국으로 다시 후송시키려 해도 돌아갈 경비마저 부족했다. 또 남은 가족 역시 경비가 거의 떨어진 상태이다.
찬미가 다소 회복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일단 우랄스크로 가야 할 것 같았다(아마 주님께서 선교지 영혼들을 더 귀하게 보고 계신 듯-).
사흘 간 큰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찬미 의식이 조금 돌아왔다. 그래서 의사들에게 “아이가 이 병원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퇴원을 시켜 달라. 우랄스크에 가면 아이 엄마도 있고 그쪽 병원 치료를 받겠다.”고 부탁했다. 의사들도 외국 아이를 마냥 붙들어 둘 수 없었던 지 퇴원을 받아주었다.
병원비를 안 받겠다고 해서 선물비 라며 조금 주고 나왔다.
주일이 되어 교회를 찾아가자, M박사가 우리를 보고는 대뜸, “애 죽이려고 다시 데려 왔냐.”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선교는 어차피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안전을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선교지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도 스스로 결단했던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선교사의 본분이라 생각되었다. 그래 앞으로 나아가자.
마침 큰 병원 원목으로 계시는 H목사님께서 부활내과를 자주 오시는 탓에 자주 대화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도 스스로 결단했던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이 선교사의 본분이라 생각되었다. 그래 앞으로 나아가자. 나머지는 주님이 책임지실 것이다. 주님께서 선교지로 돌아가라고 명하신 것 같았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생각됐다.
M박사는 입버릇처럼 현지인 의사들을 가리켜 “돌팔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심지어 자신의 전공이 외과이면서도 아무 환자나 오는 대로 다 받는다. 과연 이 나라를 사랑해 왔다면 적어도 같은 분야의 의사만이라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도우러 온 의사가 현지인 의사를 돌팔이라고 부른다면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를 보낸 곳에서도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함 선생님은 이러한 M 박사를 가리켜 의학에는 엄연히 전공 분야가 있는데 정말 해도 너무 한다. 아무리 의료 수준이 낮아도 의사는 대개 그 나라 지성인의 자존심이 걸린 분야이다. 남의 나라에 와서 환자를 붙잡고 있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 환자가 죽기도 했다며 나무랐다. 교회 집사이기도 한 만큼 좀더 겸손하고 사랑과 관용을 가질 수는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