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 위에 싹이 나고
죽은 듯이 지내던 나무에게서 순이 돋고
푸른 잎이 하나둘 보일 때면
“드디어 봄이 왔다” 하고
어린아이 마냥 탄성을 외치고 싶다.
나이가 오십을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봄이 그리워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루하리만큼 기나긴 겨울을 지내는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늘 하얀 모습
그대로 마냥 있는 것만 같다.
온통 눈에 싸인 도시 미끄러운 빙판 길-
벌거벗은 나무들- 풀 한 포기 없는 땅-
자녀를 둔 가장, 선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긴 겨울에 대해 푸념조차 늘어놓을 수 없다.
시베리아에서 여러 겨울 보내면서
마음속으로 바래온 것이 있다면 봄이 한 달만
빨리 왔으면 하는 기대였다.
몸도 썩 좋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조차 없는
시베리아에서 푸른 잎사귀만 보아도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런데 올 해들어 놀라운 변화가 일고 있다.
대자연의 섭리는 해가 바뀌어도 대동소이한데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강추위가 오지 않아
바이칼 호수가 꽁꽁 얼어붙지도 않았다고 한다.
4월 말이 채 못 되어 나무순이 돋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봄이 성큼 빨리 오려나 생각됐다.
아니나 다를까 사월에 순을 내는 나무가 보이더니
오월 초에 벌써 일부 나무에서 잎을 내기 시작했다.
벌써 겨울이 끝난 것이다. 탄성이라도 지를만 하다.
나무들도 자기 몸이 얼어죽을 만큼 서둘러 잎을 내지
않는다. 앞으로 더 이상 추위가 없다는 뜻이다.
수년 전에 시베리아 태생 크리스챤인 야콥 할아버지
와 자주 만날 일이 있어 물어보았다.
“시베리아의 봄은 언제 오는가 하고-”
그러자 자신의 손을 펴보이면서
“봄이 오는 때는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
언제 봄이 오는지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하지만 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봄이 온 것이다.”
아무리 날이 따뜻해도 나무가 잎을 내지 않으면
또다시 눈과 한파가 몰려올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는 내가 마음속에 바란 바대로 봄이 한 달
먼저 찾아온 것 같다. 정말 뜻밖의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이 자라나더니 어떤 나무
에서는 꽃이 피어 봄 향내를 풍기고 있다.
흙이 많은 도시답게 사방에 민들레가 노란 빛을
더해가고 있다. 민들레 영토가 꽤나 넓다.
푸르러가는 시베리아의 봄이 위로가 된다.
사람의 마음에도 이처럼 봄날이 오면 좋겠다.
시베리아의 겨울만큼 잎도 꽃도 볼 수 없는
메마른 나무처럼 살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빛의 자녀다운 면모를 지녀야 한다.
시베리아의 봄을 맞아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도록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수년전 시베리아에 거주하면서 쓴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