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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14:57

선교지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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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질서

 

 

바울 사도는 혼선에 빠져 있는 고린도교회를 위해 쓴 서신에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개정판에서는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고전 14:40)고 말했다.

선교지에서도 질서가 필요하다. 이르쿠츠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십대 중반에 이른 목사의 입장에서본 이르쿠츠크 한국인 크리스챤들의 현주소를 잠시 피력하기로 한다.

 

7년 전 우리가 이 지역으로 올 무렵 선교사로 온 젊은 총각 목사가 타지역에서 자기와 함께 이르쿠츠크로 온 청년을 선교사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자신과 동격(?)이라고 주장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선교사 훈련을 거친 것도 아니고 뚜렷하게 파송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선교비가 얼마 오는가 알아보았더니 출신교회에서인지 매월 수만원씩 온다고 했다. 대신 선교사로 임명한 자가 매월 어느 정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얼마후 결혼을 하자 두 배로 지원비를 올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선교사로서의 역할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다가 철수한 한국인 집사가 내게 왜 우리가 저 사람을 선교사라고 불러야 하는지 물었다. 나도 뚜렷하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선교사란 이름이 부르기 좋고 듣기 좋아서일까.

 

어느 날 젊은 친구가 내게 선교사의 모임을 갖자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 교회 파송 선교사는 이 자와 우리 정도밖에 꼽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저 형제는 선교사로 보가 어렵다. 억지로 선교사 모임을 갖기 보다 차라리 크리스챤 모임이라고 칭하면 이를 수용하겠다고 말하자 그만 대화가 결렬되고 말았다. 선교편지의 진실성 여부를 지적한데다 이 문제까지 대두되자 결국 대화마저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청년더러 조용히 충고했다. 이런 식으로 지내면서 선교사라고 내세우기보다 이왕이면 신학교로 가라 아직 젊었으니 코스를 제대로 밟고 다시 선교사로 나오던지 하라고 주문했다. 내말이 참고가 되었던지 얼마후 이 청년은 한국으로 돌아가 신학교로 진학했다(아마 졸업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은 지도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나를 가리켜 불화를 일으키는 자란 말이 퍼졌는데 이때부터 이런 말이 생겨난 것 같다. 불화의 주인공이란 지칭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중국에 있는 한인교회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 매월 적지 않은 규모의 선교비를지원하는 전제로 우리를 주파송 선교사로 영입하려 했었는데 그만 선교사 영입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말 한 마디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도리어 따지고 드니 어이가 없다. 소문이란 직접 찾아가서 말하지 않아도 바람을 타고 온 사방에 떠돌아다닌다. 이 땅에 온 젊은이들이 추종할만한 인품인지 묻고 싶다.

 

천사 홈에 선교지 상황을 다루는 것은 현실을 공감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는 미래를 바로 세우는 토대가 된다. 선교지에서 발생한 일들을 감추다 보면 개선의 기회마저 적어진다. 혹자는 천사 홈에 천사답지 못한 글이 실려있다고 비난했는데 독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사고와 감정, 신앙 형태가 선교지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고 좋은 점을 개발해 세계선교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이땅에 한국에서 선교사(또는 크리스챤)가 많이 온 모양이다. 전례로 보아 내가 또 불화(?)를 일으킨 자라고 강조해 두었는지 아무도 인사조차 없이 지내고 있다. 먼저 온 자가 연결을 시키지 않다 보니 새로 오는 크리스챤이 선뜻 찾아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좁은 선교지에서 숨바꼭질 하는 중이다.

몇몇 독신 자매들도 젊은친구 못지 않게 우리와 벽을 쌓고 있다. 이렇게 해야 자기 주위로부터 인정(?) 받게 되는지 자못 이해 못할 일이 많은 곳이라 생각된다.

 

선교지에서도 교회의 질서가 필요하다. 비록 개 교회가 선교사로 임명하고 파송했다 하더라도 당사자와 소속 교회의 관계일 뿐이다. 선교지에서 한 사람의 선교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과연 선교지에 온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갈 예정인지-

 

선교사 협회가 잘 갖추어진 지역에서는 선교사로 오게 되면 먼저 회원 가입 심사를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리를 제외한 채 자기들 마음대로 어떤 조직을 구성하기도 어려워보인다. 언제 이 수수께끼의 답이 나올지 아직 미지수여서 안타깝게 생각된다.

 

나는 목사가 된 지 22년 째 접어들었다. 좁은 선교지에 한국 목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예 길에서 만나도 피해가는 한국의 젊은이를 보면서 이 땅에 무언가 잘못된 나무가 심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잡초마냥 무질서하고 주위에 피해를 줄 바에야 자기부터 먼저 정화해야 하지 않을까.

 

선교지 교회는 한국 교회가 지니는 모범적인 교회상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선교지로 왔다면 한국 교회에서 지녔던 본래 모습대로 교회 청년이 되고 집사가 되는등 교회의 일원이 되어 섬김의 자세를 지니면 얼마나 좋을까.

 

선교사 이전에 한 사람의 신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 선교지에 왔던지 낯선 땅에 왔다면앞서 있는 목사에게 예의와 질서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여러 차례 반복해 말하지만 이런 풍토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보니 협력 사역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교회 지도자는 선교지로 가는 성도들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선교지에 건강한 교회가 자리잡고 선교지에서 더욱 많은 몫을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한국 크리스챤 젊은이들이 시베리아 땅에 많이 오는 것을 환영한다.

이르쿠츠크에 온 한국인 크리스챤들 간에 그리스도의 지체된 모습을 지닐 수 있도록 위해 기도바랍니다. 선교지 질서를 위해 우리 또한 겸허한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대하고자 한다.

 

바울 사도는 혼선에 빠져 있는 고린도교회를 위해 쓴 서신에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개정판에서는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고전 14:40)고 말했다.

선교지에서도 질서가 필요하다. 이르쿠츠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십대 중반에 이른 목사의 입장에서본 이르쿠츠크 한국인 크리스챤들의 현주소를 잠시 피력하기로 한다.

 

7년 전 우리가 이 지역으로 올 무렵 선교사로 온 젊은 총각 목사가 타지역에서 자기와 함께 이르쿠츠크로 온 청년을 선교사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자신과 동격(?)이라고 주장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선교사 훈련을 거친 것도 아니고 뚜렷하게 파송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선교비가 얼마 오는가 알아보았더니 출신교회에서인지 매월 수만원씩 온다고 했다. 대신 선교사로 임명한 자가 매월 어느 정도 지원해 주고 있었다. 얼마후 결혼을 하자 두 배로 지원비를 올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선교사로서의 역할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다가 철수한 한국인 집사가 내게 왜 우리가 저 사람을 선교사라고 불러야 하는지 물었다. 나도 뚜렷하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선교사란 이름이 부르기 좋고 듣기 좋아서일까.

 

어느 날 젊은 친구가 내게 선교사의 모임을 갖자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 교회 파송 선교사는 이 자와 우리 정도밖에 꼽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저 형제는 선교사로 보가 어렵다. 억지로 선교사 모임을 갖기 보다 차라리 크리스챤 모임이라고 칭하면 이를 수용하겠다고 말하자 그만 대화가 결렬되고 말았다. 선교편지의 진실성 여부를 지적한데다 이 문제까지 대두되자 결국 대화마저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청년더러 조용히 충고했다. 이런 식으로 지내면서 선교사라고 내세우기보다 이왕이면 신학교로 가라 아직 젊었으니 코스를 제대로 밟고 다시 선교사로 나오던지 하라고 주문했다. 내말이 참고가 되었던지 얼마후 이 청년은 한국으로 돌아가 신학교로 진학했다(아마 졸업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은 지도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나를 가리켜 불화를 일으키는 자란 말이 퍼졌는데 이때부터 이런 말이 생겨난 것 같다. 불화의 주인공이란 지칭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중국에 있는 한인교회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 매월 적지 않은 규모의 선교비를지원하는 전제로 우리를 주파송 선교사로 영입하려 했었는데 그만 선교사 영입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말 한 마디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도리어 따지고 드니 어이가 없다. 소문이란 직접 찾아가서 말하지 않아도 바람을 타고 온 사방에 떠돌아다닌다. 이 땅에 온 젊은이들이 추종할만한 인품인지 묻고 싶다.

 

천사 홈에 선교지 상황을 다루는 것은 현실을 공감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는 미래를 바로 세우는 토대가 된다. 선교지에서 발생한 일들을 감추다 보면 개선의 기회마저 적어진다. 혹자는 천사 홈에 천사답지 못한 글이 실려있다고 비난했는데 독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사고와 감정, 신앙 형태가 선교지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고 좋은 점을 개발해 세계선교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이땅에 한국에서 선교사(또는 크리스챤)가 많이 온 모양이다. 전례로 보아 내가 또 불화(?)를 일으킨 자라고 강조해 두었는지 아무도 인사조차 없이 지내고 있다. 먼저 온 자가 연결을 시키지 않다 보니 새로 오는 크리스챤이 선뜻 찾아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좁은 선교지에서 숨바꼭질 하는 중이다.

몇몇 독신 자매들도 젊은친구 못지 않게 우리와 벽을 쌓고 있다. 이렇게 해야 자기 주위로부터 인정(?) 받게 되는지 자못 이해 못할 일이 많은 곳이라 생각된다.

 

선교지에서도 교회의 질서가 필요하다. 비록 개 교회가 선교사로 임명하고 파송했다 하더라도 당사자와 소속 교회의 관계일 뿐이다. 선교지에서 한 사람의 선교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과연 선교지에 온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갈 예정인지-

 

선교사 협회가 잘 갖추어진 지역에서는 선교사로 오게 되면 먼저 회원 가입 심사를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리를 제외한 채 자기들 마음대로 어떤 조직을 구성하기도 어려워보인다. 언제 이 수수께끼의 답이 나올지 아직 미지수여서 안타깝게 생각된다.

 

나는 목사가 된 지 22년 째 접어들었다. 좁은 선교지에 한국 목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예 길에서 만나도 피해가는 한국의 젊은이를 보면서 이 땅에 무언가 잘못된 나무가 심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잡초마냥 무질서하고 주위에 피해를 줄 바에야 자기부터 먼저 정화해야 하지 않을까.

 

선교지 교회는 한국 교회가 지니는 모범적인 교회상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선교지로 왔다면 한국 교회에서 지녔던 본래 모습대로 교회 청년이 되고 집사가 되는등 교회의 일원이 되어 섬김의 자세를 지니면 얼마나 좋을까.

 

선교사 이전에 한 사람의 신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 선교지에 왔던지 낯선 땅에 왔다면앞서 있는 목사에게 예의와 질서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여러 차례 반복해 말하지만 이런 풍토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보니 협력 사역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교회 지도자는 선교지로 가는 성도들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선교지에 건강한 교회가 자리잡고 선교지에서 더욱 많은 몫을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한국 크리스챤 젊은이들이 시베리아 땅에 많이 오는 것을 환영한다.

이르쿠츠크에 온 한국인 크리스챤들 간에 그리스도의 지체된 모습을 지닐 수 있도록 위해 기도바랍니다. 선교지 질서를 위해 우리 또한 겸허한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대하고자 한다.

 

20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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