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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찬미는 7시간(시차를 고려하면 5시간 정도) 동안 가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비교적 잘 적응해 주어 감사했다.  이때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어떤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비행기를 탈 때 들으니 침켄트 S교회 목사 어머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여러 사람들이 공항까지 전송을 나왔었다.

 하지만 정작 비행기에 탄 사람은 노인 혼자였던 것이다. 얼른 가서 벤토린을 목에 뿌리고 청심환을 하나 드렸더니 정신이 좀 돌아왔다.  이처럼 연로한 노인이 비행기를 타는 일이 힘들텐데 어떻게 혼자 다니실까 생각했다.

  이를 보면서 중환자가 공중에 뜬 채 이동하는 일 또한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후일 우리 가족이 침켄트로 이동하게 되었다. 고난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정작 S교회 양 목사 또한 전혀 도움의 손길을 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때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I단체 회장 목사님이 차를 가지고 나와 주었다. 순간 어디로 가야 될지 잠시 생각했다. 찬미 상태로 보아서는 당연히 큰 병원으로 가야 했겠지만 뚜렷한 후원교회나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I단체 또한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 잘 알고 있는 부활내과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찬미 문제로 전화를 하자 원장 선생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이분은 오랫동안 어려운 목회자와 가족들에게 무료 진료해 왔다.  특히 나와 우리 가족가운데 어떤 질환이 있을 때마다 무료로 진료해 주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찬미를 부활내과에 입원시키고 함께 지내자니 마음이 좀 놓였다. 이렇듯 병원도 약국도 많은 나라를 뒤에 두고 그 낯선 나라까지 가서 뜻밖의 일을 당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부활내과에서는 찬미가 약한데다 홀몬제 기운이 몸에 남아 있어 이를 씻어내려는 듯 하루에도 많은 양의 링거액을 놓는 것 이었다(입원 중에 모두 52병의 링거액을 맞았다. 이 많은 양의 주사를 놓는 동안 찬미는 한 차례도 울지 않을 만큼 강한 의지를 보였다).
 찬미는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기침을 하는 것이 꼭 천식처럼 보였다. 병원 측에서도 일단 천식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찬미가 입원한 지 이틀 후 주일 아침이었다.  갑자기 찬미의 얼굴에 사마귀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더구나 의식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병원 가까이 사시는 원장 선생님을 찾아보았으나 교회를 가신 듯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주일엔 원장님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다. 일단 찬미부터 살려놓고 봐야겠다. ’ 입원 중인 환자에게 약을 함부로 먹이는 것은 병원 측에 예가 아니지만 지금은 내가 판단할 때인 것 같다.’는 생각에 당번으로 문을 연 약국을 찾아나섰다.
  그나마 작은 약국에는 프레드니졸론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마침 제법 큰 약국을 찾아내어 프레드니졸론을 달라고 하자 약사가 그런 약을 왜 사냐고 물었다.

우리 집 아이에게 꼭 먹어야 한다고 대답하자 어른도 아닌 아이한테 먹이려면 의사 선생님 처방이 있어야 한다고 하기에 지금 어디 계신 지도 모르고 아이 상태가 심각하다. 내가 현지에서 지켜본 경험도 있어 알아서 할테니 50개만 달라고 하자 내 주었다 (의약 분업이 된 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낙후된 나라에서는 이런 약을 거리에서도 구할 수가 있다).

 일단 찬미에게 2개를 먹이자 조금 후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기운을 차리는 것이었다. 찬미가 배가 고프다고 하기에 밖으로 데리고 나왔지만 끝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찬미가 언제 다른 아이들처럼 뛰놀 수 있을까. 과연 회복이 될까.'
 찬미의 앞날이 다소 걱정됐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찬미를 알고 계시지 않는가. 이만큼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이튿날 원장님이 회진할 때 전날의 일을 말씀드리고 아무래도 홀몬제 감량을 당분간 내가 직접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미 카자흐스탄에서부터 홀몬제 다루는 법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는 말이겠지만 원장님이 자상하신 분이어서 자신도 매일 반 개씩 넣고 있다며 완전히 끊게 되면 알려 달라고 했다.  

이때부터 내가 직접 조심스럽게 홀몬제 감량에 들어갔다. 찬미의 몸에서 홀몬제를 요구하는 것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조금만 줄여도 얼굴에 표가 나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는 1/4정도의 미량만 줄여도 몸에서 금방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앞으로 아이들에게 이런 약을 다시는 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이 약은 카자흐스탄에서는 상용적으로 많이 쓰는 약이다).  
찬미 호흡 상태가 안 좋은 지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위로 오르내리는 것이 보기에 안타까웠다.

  찬미가 선교지에서 병을 얻어 후송되어 온 것을 알고 후원자들께서 자주 찾아와 기도를 해 주셨다.  특히 후원교회 유 전도사님과 멀리서 등촌동에서 찾아와 주신 사모님, 부흥회를 많이 다니시는 박 목사님 등 여러 분들이 찾아와주셨다. 

  신유의 능력을 지녔다는 유 전도사님과 박 목사님의 기도는 힘이 넘쳐 보였다. 출신 초등학교 선생님들로 이루어진 몇 분의 후원자들이 계셨는데 찾아와주셨다. 박00을 우리에게 소개한 C단체 총무도 찾아왔다. 사실 총무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잘못 소개하는 것도 비난을 살 만한 일이 아닌가).
그밖에 많은 분들이 찬미를 염려해 찾아와 주셔서 감사했다.

아무리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지만 홀몬제를 투약하고 있는 상태에서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판단되었던지 원장님이 오전에 회진을 다녀갈 때마다 아직 약을 먹이고 있냐고 물었다.  

 원장님 부부는 같은 내과 의사로서 그동안 많은 목사님들(심지어 외국 목사님들까지)을 무료로 진료한 바 있다.  또 목회자 가족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또는 저렴하게 치료해 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신앙과 인술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이었다.  

 선교지로 떠나기 얼마전 부활내과에 들렸다가 살색깔이 우리보다 짙은 분이 추운지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잘못하는 영어지만 물어보았더니 인도인 목사님이셨다. 지금 아세아연합신학원에 유학 중이라 했다. 아마 부활내과 소문을 듣고 진료 차 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선 겨울 옷을 좀 챙겨드렸다. 본국에서는 신학교 교장까지 했다고 한다. 내가 가족은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생각하기만 해도 괴로운지 표정이 안 좋았다. 사모님과 가족 간에 위해 서로 기도만 할 뿐 이라고 했다. 양쪽 다 너무 어려운 탓에 기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인도 목사님을 데리고 평소 잘 아는 권사님 사무실을 같이 찾아가 소개시켰다. 권사님이 인도에 계신 사모님과 자녀들을 위해 약간의 헌금하시는 것이었다. 인도 목사님은 너무 놀랐는지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행복하다.”(I am happy.)란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인편을 통해 꽤 여러 날 걸려 인도에 헌금이 도착하자 어떻게 도울 길이 없어 위해 기도만 하고 있던 사모님이 무척 놀란 듯 우리 가족 사진을 보내 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이처럼 현지인들에게는 조그만 도움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나중에 인도 선교사를 만나 이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인도 사람은 거짓말을 잘하는 만큼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 고 했다.

선교지 사람들을 불신하거나 지나치게 조심하기 시작하면 결국 선교사 자신을 위한 선교(?)나 자기의에 빠질 수가 있다. 선교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기 희생이 없을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인도 목사님과 함께 세계 선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신림동 N교회로 데리고 가자 여러모로 편리를 봐 주었다. 특히 자기 고향 가족과 전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자 오십 가까이 된 인도 목사님은 모처럼 가족과 전화하게 되어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이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가족과 자유롭게 이야기하기에 국제전화 요금이 비싸니 가능한 짧게 쓰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이 목사님은 N교회가 너무 좋았던지 틈만 나면 찾는 것이었다. 
  많은 교회가 있는 나라지만 이처럼 사랑을 베푸는 교회를 선뜻 만나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N교회는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큰 힘이 되어 왔다.

 찬미와 한국에 머무는 중에 참으로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박00이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사라 선교사 친정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는데 현지에서 우리가 많이 잘못해 그만 쫓겨나게 되었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현지로 연락할 전화번호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듣고 노인이 얼마나 놀랐을까. 박00은 이런 짓도 서슴치 않고 하는 위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성품을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그는 언젠가 천사홈을 통해 내가 쓴 수기를 본 것 같다. 딸 둘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찬미가 당한 어려움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과나 반성은 커녕 인터넷 상에서 자기를 욕하면 고발당할 수도 있다는 말로 협박해 왔다. 정말 어이없는 현실이다. 오히려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면 청중들이 보는 앞에서 속 시원히 지난 일을 말해볼 수 있을텐데 그 이상 반응이 없어 아쉽다. P선교회에서도 관심을 갖기에 한 자리에서 만나겠다고 해도 연락이 없다).

 자신이 일을 꾸미고도 이처럼 사방에 다니며 거짓으로 주위를 현란시켜 놓은 것을 보고 박00이란 자의 이면을 다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지금 P선교회 소속으로 알마타에 머물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C단체에서도 그동안 박00의 말만 듣고 내가 오히려 문제 인물로 알고 있었다. 찬미 일로 한국에 오게 되어 사무실을 방문하게 하자, 사무 간사가 자기들이 듣던 것과 정반대네요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총무는 자신이 잘못 판단해 일이 커진 사실에 대해 일체사과하지 않는 것을 보고 기회적인 인물로 보였다. 무슨 일이든 책임지는 자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부활내과에 입원한 김 집사님은 찬미를 딸처럼 잘 돌보아 주셨다. 아침엔 머리도 따주고 자기 딸들이 입던 옷을 많이 선물했다. 찬미가 아직 어려서 응석을 부려도 받아주어 감사했다. 그 집에 딸만 둘이 있는데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찬미는 이따금 언니들과 자고 오기까지 했다. 외로운 찬미에게 좋은 만남이 되었다. 찬미에게 옷도 많이 선물했다.

정 전도사님과 서 전도사님 부부는 우리 선교를 여러모로 도와왔는데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찬미에게 자기 딸이 입던 옷을 하나씩 입혀 보면서 많은 선물을 했다( 선교지에서 오랫동안 입을 수 있었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어느 날 찬미는 고단위 항생제 주사가 너무 아픈지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지금 그 박00과 동생 때문에 이렇게 아픈 주사를 맞아야 되나”고 하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빠가 남이 어렵다는 이야기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딸까지 고생하는 게 아닐까. 정말 어이없는 결과로 인해 어린 자녀들과 아이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미래를 건설하는 기초가 된다. 선교지에서 있었던 개인적인 선교 역사일지라도 한국 교회 선교사 세계의 이면을 지켜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기에 여기에 싣는다. 이제라도 박00과 같은 자가 전날의 과오에서 돌이켜 진실한 종이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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