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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알마타에는 특별히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친구 출판사를 통해 신00에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과 W선교사에 대해 들은 정도였다.  우리가 현지로  떠나기 얼마 전, 평소 잘 알고 있는 국내선교단체인 W단체를 방문했다(나는 일찍부터 이 단체 회보 편집을 도와주는 등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마침 이 단체에 관계된 김 장로님께서 며칠 후 알마타로 가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장로님께서 어떤 일로 선교지에 가시게 됐습니까?” 하고 묻자, “자기 교회에서 알마타 W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는데 점차 비자가 어려워져서 중장비 학원을 하나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과 함께 가서 선교비를 전해주러 갑니다.” 고 했다. 내가 그런 이유로 거액의 선교비를 들여 학원을 세운다는 것은 소모가 심해 보인다고 말했다.

  선교가 정 어려우면 다른 지역을 알아보면 될 것이 아닌가. 신학생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불과 몇 사람에게 기술 교육을 시켜 비자 발급을 원활하게 하겠다고 거액의 한국 교회 헌금을 동원하겠다는 것이 다소 모순처럼 보였다. 장로님은 교회가 결정한 일이라 자기는 잘 모르겠다. 단지 선교부장으로 목사님을 수행할 뿐이다. 다만 전에도 알마타에 가 봤지만 자기 선교사가 비싼 음악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등 생활이 다소 사치해 보여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염려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카자흐스탄 변방 도시로 가게 된 만큼 그곳에 들리게 길에 되면 우리 이야기를 하고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니 그때 협조를 바란다고 좀 전해 달라고 했다. 아마 장로님이 이런 이야기를 본인에 전했을 것이다.
  마침 알마타에 뚜렷하게 아는 사람도 없었던 만큼 김 장로님과 대화한일이 생각나 신00 부인에게 W선교사 전화번호를묻자 가르쳐 주었다.

 W와 전화로 대화를 시도했다. 먼저 김 장로님에게 W에 관해 많이 들었다며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그게 어쨌단 말입니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아이가 위중해서 알마타로 오게 됐다.” 하자,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고 말만 할 뿐 선뜻 찾아오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송금이 안 와 어려움이 많다. 어떻게 받는 방법이 없냐 하고 물었지만 자기 부인 이름으로 된 통장이 있기는 하다 하면서도 정작 찾아오려 들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대화를 포기하고 말았다.

-부지 중에 지나가는 자를 도운 것이 천사를 만났던 아브라함이 떠올랐다.왜 같은 한국인인데 어려울 때 선뜻 나설 수 없는 것일까. 참으로이해하기 어려웠다. 

W는 이런 대화가 있은 지 수개월 후 강도의 기습을 받아 갈비뼈와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채 한국으로 철수했다고 한다(나중에 후 복귀했다함). 
 성경에도 기회가 있을 때 착한 일을 하라고 했는데-



  찬미와 함께 병원에 갔더니 마침 함 선생님 남편 손 사장이 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숙소에서 신00가 한국으로 가라고 독촉하여 더 있을 수 없게 됐으니 잠시 찬미와 머물 장소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손 사장은 너무 어이가 없는지, “신00 두고봐라. 언젠가 네가 한 일에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곧 회사 총무로 있는 현지인을 불러서 우리 가족을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저녁 무렵 러시아인 집 방을 하나 구해 일 주일 간 머물기로 하고 거처를 마련했다.  러시아 사람 집이라 식사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또 그 집에 찬미 언니 또래가 두 명이 있어 찬미와 자주 놀아주었다.

(후일 의료선교를 주로 하는 G단체 회보를 보고 신00 교회가 현지 선교병원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교 병원에 입원한 셈인데 그토록 냉정하게 대했단 말인가. 이처럼 선교기관과 선교사 사이에 일관된 흐름이 없이 서로의 이익에만 급급할 때가 있다. 현지 교회에 약간의 약만 제공하고 병원이라고 칭하는 것도 모순이 아닐지-) 그래도 자신들의 회보에 계속 써 먹고 있다.

 갓난아기마냥 힘없이 누워 있는 찬미를 밖에 데리고 잘 걷지도 못해 밖으로 나갈 때면 주로 업고 다녀야 했다. 러시아 여자들은 아이들이 어려도 등에 업는 일이 거의 없다. 대개 유모차로 나른다. 또 아주 어린 아이라도 걸리기까지 한다.
 내가 다 큰 아이를 업고 시장을 들리자,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아이를 왜 업고 있냐고 물었다. 지금 이 아이가 많이 아프다고 하자고개를 끄덕였다. 

시장 입구에는 대개 거지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찬미에게 일일이 돈을 조금씩 주라고 시켰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는만큼 착한 일을 하는 찬미를 보시면서 아픈 것 또한 돌보아주시리라 믿으며-

경희크리닉에서는 하루에 홀몬제를 반개 씩 줄여나가면서 찬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들은 본래 부작용을 줄이려면, 1주일에 반개 씩 줄여야 원칙이지만 너무 위험 수위여서 모험을 걸기로 한다며 모두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르두밀라 선생님은 자상한 할머니 같아서 틈만 있으면 내게 주의를 주었다.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서인지 식사시간 외에는 반드시 아이를 잠 재워야 한다.  혹시 깨어나더라도 눕혀 두어야 한다. 이미 저항력이 떨어진 상태라 만일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죽게 된다.”며 휴식을 강조했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은 주로 산부인과 선생님이 주사를 놔주었다.  찬미는 아픈 주사를 매일 맞아야 함에도 이 선생님이 주사를 놓으면 덜 아프다고 좋아했다.

  신00는 C단체 파송으로 알마타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후배인 박00을 불러 들였다. 박이 막상 신00 소개로 현지에 와서 지내는 동안 자신을 배치한 끄즈오르다 지역이 우주 발사 기지가 있는 황폐한 땅인데다 염분이 많고 먼지와 바람이 심한 작은 도시이다.
또 처음에 알려준 말과 다른 면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박00은 신00와 소속 단체에 더욱 반감을 가졌던 것 같다.

사실 이 지역은 원자병 또한 우려되고 있는 곳이다. 우주선은 이따금 발사가 실패했는데 이 경우 일종의 원폭 피해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주변 환경을 해치기도 하는 탓에 러시아가 일부러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먼 카자흐스탄 한 지역을 우주 발사기지로 택해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박은 자기 멋대로 살아가다가 현지인들로부터 크게 빈축을 샀다. 결국 주 정부로부터 강제추방당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는데(이 경우 본래 전 지역 출입이 불가능하다), 이는 신00이 부문별하게 사람을 현지로 불러들이고 적절히 조치하지 않는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박으로 인해 많은 현지인들이 상처를 받고 본인 자신도 강제추방 당해쫓겨나간 부분에 대해 신00의 책임이 없지 않다. 
 (박은 소속 교단에서까지 면직 당했음에도 C단체를 자주 출입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총무가 우리에게 소개하게 되어 연관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내게 선교를 잘 모르는 교단 지도자들이 내용도 모르고 자신을 면직 처리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내용인즉 아픈 것을 몰라주었다는 뜻이다. 아마 추방내용을 알았다면 더 빨리 문제삼았을 듯-). 

  내가 신00에게 왜 박에 대한 정보를 K단체나 C단체 등 한국 선교단체에 알리지 않았냐고 나무라자 그는 이미 교단에서 면직 처리된 만큼 자신과 무관하다고 얼버무렸다. 또 자신은 이미 C단체에서 교단 선교사로 소속을 옮겼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도 C단체에서는 그를 써 먹고 있다.

  신00는 박의 동생이 현지에서 러시아 여자와 결혼할 때 결혼 주례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결혼은 나중에 아이 하나를 남긴 채 이혼이란 형태로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신00의 부분별한 판단으로 인해결국 이 두 형제를 동조한 책임이 크다고 본다. 자신이 불러들인 자가 면직까지 갔다면 그 자신 또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지 않았을까. 

신00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인데 구소련 선교단체인 C단체 첫 파송 선교사 중 한 명이다. 박이 내게  “C단체에선 별 쓸모없는 노털(노인)들을 데려다가 선교사라고 선발해 현지로 보내어 오히려 선교지만 어지럽힌다.” 고 말을 했다. 나중에 이들이 소속한 교단에서 특이한 지역으로 진출한 탓인지 소속 교단에서 선교사로 받아들이게 됐다.

(박의 말이 대개 엉터리지만 훈련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무작위로 사람들을 뽑아 선교사로 보낸 부분에 대해서는 재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훈련보다 사람의 기본 성향이 더 중요해 보인다).

나는 불과 한 주일 정도 신00과 같이 지냈는데 도움도 입었지만 여러모로 불편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찬미가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리일 것 같았다.

 홀몬제 감량이 조금씩 성공하고 있었지만 일단 부담이 적은 곳으로 옮겨 더 치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경희크리닉 함 선생님은 찬미의 완치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내게 굳이 한국에까지 안 가도 찬미가 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을 가야 안전할 것 같았다.

  알마타에 온 지 12일이 되자 마침내 의사들이 비교적 안전 수위로 보고있는 2개까지 떨어졌다.  일단 아이들 몸으로 견딜 수 있을 만큼 내려간 것 같아 서둘러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홀몬제와 벤토린  등 응급조치할 준비를 대강 갖추고 경희크리닉을 들리자 영양제 한 병을 놓아주었다. 

 르두밀라 선생님은 한국 병원에 보이라며 나머지 감량 프로그램을 짜주셨다. 낯선 땅에서 만난 고마운 분들이다. 떠날 때 간단한 선물을 드리고 인사했다.
  주님께서 이러한 만남을 주선해 주신 것으로 믿는다. 주님은 자기 자녀를 친히 지키시는 분이시다.
또 현지에 자선병원을 세운 경희대학교 병원 측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 소속 단체에 선교비(우리 측근자가 보낸 헌금임에도-)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도 끝내 보내 주지 않았다. 심지어 단체장과 신00가 1년 차이 선후배 사이로 밝혀졌음에도 이렇듯 냉정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아마 처음엔 단체장이 선배라고 밝혀져 신00가 조심스럽게 나가다가 단체장이 내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자 계속 함부로 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후일 알고 보니 다른 용도로 쓰기도 했다).

 중환자를 후송해야 하는데도 비행기 요금조차 안 보내주는 현실이 답답했다(둘이 서로 선후배 사이라 해 놓고도 소속한 단체에서는 우리 문제에 대해 별다른 대비책조차 없었던 것이다다.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  사실 I단체에서 직접 지원하는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후원하는 분들이 보내온 것을 통장 관리만 맡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 선교비를 안 보내다니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중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I단체가 계속 반응을 안 보여 신00에게 비행기 값이 없다고 하자 편도 요금만큼 빌려주면서, “너 같은 자는 선교사 자격이 없으니 가서 돌아오지 말아라. 다시는 알마타 땅을 밟지 말라” 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그래서 편도 만큼 차용해 주었나 보다(편도일 경우 30% 이상 비용이 더 들게 된다. 하지만 아직 3명의 가족이 이 땅에 남아 있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는데 알마타 공항에서 찬미 비자가 없다며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미성년자의 경우, 인솔하는 부모여권에 비자를 찍어주는데 찬미는 엄마 쪽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랄스크 주 출입관리국에서 써 준 확인서와 치료하러 가는 환자라는 진단서를 보였는데도 비자가 없으니 대신 50불을 내라는 것이었다.이때 남은 돈이라고는 20불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저만치 한국 선교사처럼 보이는 분이 있어 다가가 “목사님이죠.” 하자 그렇다고 했다. 지금 30불이 모자라 아픈 아이가 비행기 탑승이 어렵다고 하자 쾌히 내주어 감사했다. 나중에 갚겠다고 했음에도 극구 사양했다.이분은 조 선교사님이라고 했다.

자신은 종교 비자 연장이 안 되어 일단 정리하고 철수하는 중이라고 했다. 비행기에서 그동안 당했던 일들을 말하자 자신이 6년 동안 겪었던 일보다 짧은 몇 개월 동안 더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며 위로 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가뜩이나 선교사를 불신하는 추세인 한국교회에 안 좋은 영향을 낳게 될까봐 저으기 걱정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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