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환 (기독신문 편집국장)
얼마 전 한 친족 결혼식이 있어 지방에 갔다가 겪은 일이다. 식장과 바로 인접한 뒷산에서 산불이 났는데 한 아줌마가 삽으로 흙을 퍼부으며 불을 끄고 있었다. 아마 밭 주변의 쓰레기를 태우려다 산자락에 옮겨 붙은 것 같았는데 묘지 몇 동을 태우고 불길은 잡혀가는 듯 했다. 식장 직원 서너 명이 달려가 서투른 솜씨로 막바지 불길을 잡고 있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불길을 길 건너 덤불로 옮겼고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불이 돼버렸다. 결국 소방관과 소방헬기까지 동원돼 물을 퍼부은 끝에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당시 불이 난 주변에는 식장에 왔던 수백여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입으로 불을 끌 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방관자였다.
1964년 뉴욕에 살던 27살의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인이 새벽 3시경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 여자는 30여분 이상 격렬하게 반항했는데 주변 40여 가구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전등을 끄거나 신고하지 않고 내다보지도 않으면서 결국 살해됐다. 이러한 방관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방관자효과 일명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일명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이론이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의식하는데 그것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동기 유발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관의식은 문명의 발달과도 관련이 있다. 문명은 인간의 심성을 메마르게 했고 메마른 심성은 무관심과 단절로 이어졌다. 개인주의가 마침내 이기주의로 전환되고 그것은 물질만능주의로 변질되면서 안일주의, 보신주의가 횡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방관자효과를 인간불신으로 생긴 사회병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방관자들을 대신해 CCTV가 그 역할을 하는 세상이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뛰어들지 못하고, 학교에서 따돌림으로 당하는 애들이 있어도 남의 일로 치부한다. 나라가 흔들려도, 교회가 바닥을 치고 있어도, 위기를 알면서도 주변만 두리번거리며 외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는 방관자다.
2013년 04월 02일 (화) 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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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나와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온 한 젊은이로 인해 무척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한국에서 수시로 사람들이 왔지만 대부분 이 젊은이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방관자가 되어 지켜볼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까지 방관자가 될 수 없어 본인에게 여러 차례 충고하고 주위에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최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젊은이로 인한 피해 규모가 점차 확산되어 이제 불길을 잡기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 분야와 선교와 문화 과목을 수업 중에 있습니다. 커리큘럼에 신학부 학생들을 위한 원어 과목이 방학 중 계절제 수업으로만 되어 있어 담당교수님과 대화를 나눈 끝에 제가 학기 중에 과외 형태로 지도해 주기로 했습니다.
매주 화요일 11시에 수업을 갖기로 했는데 어제 첫 수업에 5명의 신학생이 참석했습니다. 문법을 잠시 정리한 후 요한복음 11장 20절에서 27절까지 헬라어 원어로 강의했습니다. 앞으로 신학생들이 원어에 더욱 친숙해 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바랍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반에는 민족사랑교회(노숙자 쉼터교회)를 찾아가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제가 피아노를 치면서 찬송가 몇 곡을 부릅니다. 우리 모두 이웃 사랑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