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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잠수정 동원해 90년전 '콜차크 군자금' 수색
1917년 러시아제국(帝國)을 무너뜨린 사회주의 혁명군에 맞서, 알렉산드르 콜차크(Kolchak·1874~1920년) 제독은 1918년 황제 옹립을 기치로 내걸고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반(反)혁명 정부를 세웠다. 콜차크는 지난 4월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제독의 연인'의 실제 주인공이다.

콜차크는 1920년 2월 체포돼 처형됐지만, 그에게는 25만명의 병력과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군자금으로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괴 500여t이 있었다. 바이칼호 서쪽까지 후퇴한 그의 병력은 혁명군을 피해 동쪽으로 가야 했다. 혁명군이 장악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치지 않고 동진(東進)하는 유일한 길은 두께 3m의 얼음으로 뒤덮인 바이칼호를 건너는 것. 2월부터 3개월간 영하 40도의 혹한(酷寒)에서 폭 48~80㎞, 세로 636㎞의 호수를 건너가는 대장정이었다. 대부분은 결국 호수 위에서 동사(凍死)했고, 콜차크의 유품인 금괴도 이 얼음 위에 버려졌다. 6월부터 바이칼의 얼음이 녹으면서 시신과 금괴는 호수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90년. 그 금괴를 찾으려는 탐사가 최근 한창이다.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22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이르쿠츠크 센터와 모스크바 해양연구소가 지난 15일부터 잠수정 미르(Mir)호를 투입, 깊이 1642m 바이칼호 어딘가에 있을 콜차크 금괴를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역사학자들은 콜차크 금괴가 발견된다면 금괴 자체의 가치는 물론, 당시 러시아 황실이 콜차크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군자금 중 어느 정도가 반혁명 자금으로 쓰였는지 등의 수수께끼도 일부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모스크바=권경복 특파원 www.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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