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

바이칼호에서 서쪽으로 65㎞떨어진 이르쿠츠크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 강은 바이칼호의 물이 흘러나오는 유일한 강이다. 1918년 세워진 이르쿠츠크 국립대를 비롯한 대학과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은 바로 바이칼 호수이다. 바이칼의 길이는 690km이고, 폭이 넓은 곳은 80km, 좁은 곳은 27km이며 둘레는 2,000km이다. 바이칼호의 수량(水量·2만3000㎦)은 발트해와 비슷한 규모이고 가장 깊은 곳은 1,700m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앙가라 강 등에는 초대형 수력발전소가 즐비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전철화도 풍부한 전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동쪽으로 65㎞ 떨어진 리스트뱐카는 바이칼이 앙가라 강과 만나는 마을로 바이칼을 찾는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바이칼을 볼 수 있는 도시들이 여러 곳이 있지만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에 외국 여행자들이 보편적으로 많이 찾는 곳이다. 천혜의 관광지로서의 조건을 가졌지만 아직 관광지로 충분히 개발되지 못한 상태이다. 호텔이나 교통 등 기본 시설도 미비하다. 이르쿠츠크 주 정부 관계자는 98년부터 관광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으나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은 미미하고, 외국 관광객들도 중국, 일본, 몽골 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해결책은 대규모의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인데, 이 계획도 여의치 못한 것 같다. 러시아에서 투자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다. 개방 후 외국자본들이 들어왔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러시아에 외국 자본이 들어와 공동투자를 하거나 위탁투자를 해서 회사가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가면 어느 순간 러시아 법을 이용하여 외국지분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 추위가 닥치면 바이칼도 꽁꽁 얼어붙는다. 겨울에는 높이 4m까지 치솟는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어 호수 면이 울퉁불퉁한 얼음판으로 변한다. 얼음 두께는 150㎝ 정도이고, 청정호수답게 얼음도 맑아 8∼10m아래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겨울에는 얼어붙은 호수위로 철도가 깔리고 호수 위를 다니는 차들을 위해 교통표지판까지 선다."고 되어 있으나 현지에서 확인해본 결과 허무맹랑한 정보임이 밝혀졌다. 지금도 겨울이면 바이칼 호수로 지프와 버스가 다니지만 철도는 운행되지 않는다.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철도가 건설되지 않은 1900년에서 1905년도까지만 철도가 운행되었다고 한다. 리스트뱐카는 바이칼 호수와 어울려 아름다운 마을인데 통나무로 지은 민박집과 레스토랑 그리고 아름다운 별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선착장에는 노점상들이 공예품과 바이칼의 명물인 "오물"을 팔고 있고, 부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유람선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망망 대해 같은 호수로 나갔다. 배가 일으키는 포말과 비가 내려서인지 호수 물이 흐려 깊은 곳까지 확인할 수 없었다. 하늘과 숲, 호수 건너편에 깎아지른 절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관은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별명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이칼호를 위협하는 것은 주변의 펄프공장이라고 하는데, 다행히 지금은 모두 철수시켜 하나의 공장만 남았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의 신비로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이칼호의 역사는 무려 2,500만년이나 된다고 한다. 보통 호수의 수명이 3만년 정도라고 하는데 800배가 넘게 장수하는 비결은 호수 내 200m 이하의 깊은 물에서 항상 4도 정도의 수온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호수들이 수온이 올라가 결국 늪지로 변해버리는 것과는 달리 바이칼은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바이칼이 늘 깨끗한 것은 이 곳에서 사는 "보코플라프"라는 1.5㎜ 크기의 새우같이 생긴 갑각류 때문이라고 한다. 보코플라프는 지저분한 것들을 잡아먹는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바이칼호는 보통 호수와는 달리 200m가 넘는 깊은 곳에서도 사는 생물이 있다. 호수 주변에는 2,600여종의 식물과 동물이 사는데 이 중 3분의 2는 이 곳에만 사는 진귀한 것들이다. 민물에 사는 유일한 물개인 바이칼 물개는 수명이 40∼50년이나 된다. 바이칼이 항상 소금기 없는 민물을 유지하는 것도 신기하다. 364개 하천에서 바이칼로 물이 흘러들어 오지만 바이칼호의 염분은 항상 유입 강물들보다 낮다. 학자들은 "호수 바닥에 담수가 끊임없이 나오는 샘이 있는 것 같다."고 추정한다고 한다.

바이칼호 근교의 통나무집에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냐(러시아 식 사우나)를 체험했다. 바냐는 앙가라 강의 사우나와 마찬가지로 강가의 통나무집에 벽돌로 화로를 만든 것이 전부인데 장작불을 지펴 열이 오르면 몸에 물을 끼얹으면서 사우나를 즐긴다. 러시아 사람들은 백화나무 줄기를 물에 적셔 아플 정도로 세게 온 몸을 때리는데 이것이 혈액순환에 좋다고 한다.

사우나를 하다가 강으로 달려가 물에 몸을 담그고 다시 사우나를 하는 것을 반복한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강에 뛰어들거나 눈 속을 뒹굴기도 한다고 한다. 나 역시 똑 같은 방법으로 사우나를 즐겼는데 특히 겨울에 즐기는 사우나가 일품이라고 한다.

아침부터 내리던 보슬비는 사라지고 바이칼은 맑은 날씨와 함께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바이칼은 5분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인다고 한다. 비가 오다가 맑았다가 흐렸다가 바람이 불어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가 바이칼을 관찰했던 6시간 동안 바이칼은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바이칼에 심취해있어 점심 먹는 것도 잃어버렸다. 점심은 바이칼 박물관에서 버스터미널 쪽으로 400m정도 떨어져있는 "The last century"라는 음식점에서 먹었다. 오물을 곁들여 먹었는데 화려한 통나무 인테리어에 맛있는 음식, 그리고 창 너머 바라본 바이칼의 모습은 나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한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다. 가난한 대한민국이 자식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희생한 어머니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 선배들 덕분에 내가 바이칼에서 즐거움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나의 어머니와 선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올렸다. 나의 부모와 선배들이 평생 고생을 하여 이룩한 조국의 발전의 대가를 내가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 매우 송구스러웠다. 그리고, 나도 열심히 노력하여 나의 후손들이 지금보다 더욱 큰 과실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아름다운 바이칼을 바라보면서 다짐해본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바이칼에 와서 부모와 선배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보드카와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마치고 아담하고 고풍 어린 니콜라이 교회를 바라보며 바이칼 박물관을 방문했다. 바이칼 박물관은 크지는 않았지만 바이칼의 규모와 구조, 바이칼에 서식하는 동.식물 정보를 상세히 보여주었다. 또한 직원이 영어로 바이칼 호수의 역사와 자연에 관해 설명을 해주어 바이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바이칼 박물관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바이칼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시간이 늦어 바이칼 미술관을 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바이칼을 가장 가깝고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리스크뱐캬이다. 리스트뱐캬는 바이칼을 찾는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몸부림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아름다운 통나무 별장과 호텔 등을 건설하느라고 부산을 떨고있다. 이러한 인프라가 구축되면 리스트뱐캬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아름다운 통나무 호텔과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레스토랑이 바이칼과 어울려 지면 바이칼의 아름다움도 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간사한 여행자의 마음에는 어두운 생각도 떠오르는데 천혜의 바이칼이 더러워지고 몸살을 알게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내가 늙어 노년에 다시 바이칼을 방문할 때 지금과 같이 깨끗하고, 순수하며,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많은 정보에 의하면 바이칼 호수에서 하루 밤을 묶으면서 여행을 해야 바이칼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바이칼에서 하루를 묶고 싶었는데 이르쿠츠크로 오는 열차가 늦어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저녁 늦게 이르쿠츠크 시내에 있는 MNTK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 저녁이면 우리 일행은 노보시비르스크로 떠나기 때문에 노보시비리스크에 있는 정헌준씨에게 다시 한번 확인 전화를 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숙박 예약을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방인에게 정헌준씨는 기꺼이 숙박을 예약해 준다고 한다. 동토의 러시아에 유학을 와서 자신도 바쁠 텐데 간사한 여행자를 위해 수고해주는 정헌준씨가 너무 고마웠다. 그러나, 아직 모스크바와 상뜨 뻬쩨르부르그의 숙박에 대한 대책이 없어 약간 불안하다. 상뜨 뻬쩨르부르그에서 민박을 하기 위해 여러 번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안타깝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여행이란 계획대로 되는 것 보다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많지 않으나? 변동이 심한 가운데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며 여행하는 것 또한 참 맛이 아닌가?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이르크츠크도 잠들어가고 있다.

우리 일정상 만 48시간을 이르쿠츠크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르쿠츠크를 바이칼 호수를 포함해서 48시간 안에 구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기차 시간표에 맞추어 여행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무척 바쁜 날이다. 어제 밤에 상뜨 뻬쩨르부르그의 민박집에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고, 모스크바에서 우리를 도와 줄 사람도 섭외가 되지 않았다. 휴가를 가셨는지 배수한 교수님과 전화통화도 되지 않고, e-mail을 보냈으나 e-mail도 체크를 하지 않았다.

2일간 숙박한 MNTK 호텔은 어제 밤에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짐을 싸고 떠나면 된다. 아침 9시 30분 호텔 로비에는 지마가 이미 와 있다. 어제 밤에도 비가 내려 이르쿠츠크 하늘은 흐려있었고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 같이 싸늘하다. 긴 옷을 입고 청바지를 입었음에도 옷깃을 여미어야 했다. 우리는 바쁜 발걸음을 돌려 레닌 거리에 있는 인터넷 카페를 방문해 e-mail을 체크했다. 역시 배수한 교수의 매일은 없었다. 약간 불안하다. 물론, 우리가 스스로 숙박 장소를 찾을 수 있으나 우리가 처음 계획한대로 여행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해서 약간 불안한 것이다. 동국대학교 홈페이지와 카인정보 홈페이지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곳에 e-mail을 발송했다. 이르쿠츠크의 인터넷 카페는 언제 방문해도 시설이 좋고 쾌적해서 이용하기가 좋았는데, 국제전화 서비스도 하고 있어서 (주)카인정보에 전화로 업무를 지시했다. 우리나라 인터넷 카페가 게임방 역할을 한다면, 통신 인프라가 부족한 러시아의 인터넷 카페는 국제전화, FAX, 정보검색 등 다양한 정보 서비스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여행 스케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이르쿠추크 향토박물관을 방문했다. 강가라 강변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건설하자고 최초로 제안한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백작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오벨리스크 앞에 있는데, 100년 전에 건축된 고풍 어린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 박물관에는 이르쿠츠크 지역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물품과 동식물들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다. 한편, 슬라브 민족이 이 지역을 점령하기 전에 거주했던 원주민인 부랴트 민족의 물품들도 전시하고 있는데, 부랴트 민족의 통나무 주택과 통나무로 만든 생활용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e-mail을 체크하고, 향토박물관의 관람을 마치자 벌써 11시가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바삐 움직였는데 벌써 11시라니... 배가 고파 늦은 아침을 먹었다. 내가 방문한 음식점은 중앙시장 근처 우리트스코고 거리에 있는 벨르그라드 레스토랑인데, 이 레스토랑은 러시아 말을 하지 못하는 나 같은 외국 여행객들에게는 편리한 식당이다. 햄버거 가게와 같이 메뉴판에 음식 사진이 붙어 있어서 먹고 싶은 음식을 파악하기가 용이하고, 주문하기가 쉽다. 나는 음식점에서 감자튀김과 오이 등 야채가 들어있는 비프스테이크를 먹었다. 콜라와 커피 그리고 케이크 한 조각을 포함해서 70루블을 지출했는데 깨끗하고 맛이 있어 배불리 먹었다. 러시아 소들은 목장에서 방목을 하여 사육하기 때문인지 고기가 무척 연하고 고소했다. 우리나라 최고급 생고기 집보다 고기가 연하고 부드러웠다.

늦은 아침을 먹고 200m 거리에 있는 중앙시장과 백화점을 방문했다. 다행히 이르쿠츠크에는 시장과 백화점이 붙어있어서 시장을 구경하는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한 도시를 방문하여 그 도시의 경제력과 주민들의 생활정도, 식생활 문화, 그리고 상류층의 생활방식을 파악하는 데는 재래식 시장과 최고급 백화점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다.

중앙시장은 웅장한 건물에 파는 물건에 따라 정결하게 정돈된 우리나라의 할인매장과 같은데 우리나라의 할인 매장보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이 곳에는 러시아인들이 주로 먹는 빵과 사과, 포도, 오이, 살구, 복숭아 등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과일들과 싱싱한 고기, 닭, 그리고 바이칼의 명물인 오물과 연어 등을 판매하고 있고, 그밖에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팔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춥고 가난하지만 러시아인들은 꿈과 정서가 충만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드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그들은 꽃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특히, 장미꽃을 좋아하는데 붉은 색을 띄고 있는 꽃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느 도시를 방문해도 시장에는 꽃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며 또한 가장 화려했다. 이르쿠츠크의 중앙시장에도 꽃가게가 가장 화려했다. 향기로운 꽃 냄새가 온 시장을 진동시켰다. 이르쿠츠크의 백화점도 방문했는데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로프스크보다 화려하고, 품목도 다양했다. 백화점의 물건값이 장난이 아니다. 러시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나라이다. 교수들 한 달 월급이 100달러인데, 백화점에는 모자 하나가 100달러 이상이고, 낡아빠진 호텔의 숙박비가 40-50달러이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망할 것이라는 것은 나는 20년 전 대학시절에 이미 간파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 풍요롭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는 없다. 사회가 존재하는 이상 경쟁은 필요악이다. 항상 경쟁은 있기 마련이고, 불행하게도 경쟁 속에 사회와 경제가 발전한다. 사회주의는 경쟁을 최소화하고, 인간 평등과 인민을 위한 세상을 건설하자는 모토아래 새워진 이데올로기이다. 노동의 질(육체적 강도)에 따라 월급을 차등화하고 있다. 노동자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그들은 육체적 노동자에게 월급을 많이 주고 정신적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적게 준다. 당연히 박사급 연구원들과 교수들의 월급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까 머리가 총명한 젊은이들이 교수와 연구원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을 것이고, 이로 인하여 사회, 과학, 교육, 경제 등 모든 분야의 발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는 시각에 교육자들의 대우 조건이 낮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장 앞 주차장에서는 딱지를 끊는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주차료는 6루블인데 불법주차에 대한 벌금은 60루블이라고 한다. 시장 주위에는 항상 거지들이 있고, 한량들과 야바위 군들이 득실거리기 마련이다. 이 곳 이르쿠츠크 시장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바이칼 지방을 중심으로 살아온 소수 원주민인 부랴트 족들이다. 부랴트 족들은 우리와 모습이 닮은 몽골 족이라 내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작은 키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날품팔이를 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그들이 같은 몽골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인지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미국의 인디언 자치구역을 방문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최고의 인권국가로 자부하며 다른 국가의 인권문제에 간섭을 하는 미국의 추악한 행동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던 생각이 난다. 산업혁명 이후 동양인들은 자신들이 살아간 지역을 추악한 서구인들에게 빼앗기고 소수민족으로 생명을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가끔 볼 때 한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고 거슬려 가면 민족이 얼마나 비참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우리나라는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다.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지 못하고 당파싸움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우리는 지금까지도 고통을 당하고 있다. 36년간 일본 식민지로 고통을 받았고, 6.25를 거쳐 지금까지도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라고 한다. 통신망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국가처럼 연결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또 다시 적응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 질 것이다. 다행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젊은이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이르쿠츠크 시간으로 오후 1시 55분에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하여 출발한다. 우리에게는 3시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나는 지마에게 서둘러달라고 부탁했다. 간사한 여행자는 양적인 목표물을 취하려고 그러하듯이 즈나멘스크 사원부터 시작하여 바삐 움직이기로 했다.

즈나멘스키 사원은 키로프 광장에서 앙가라 연안을 따라 앙가라 강을 벗어나 우샤코프카 강의 다리를 건너는 곳에 있다. 이 사원에는 데카브리스트 난을 주동한 주요 인물들이 처형당했는데 그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정문 밖에서 본 사원은 아름다웠다. 파란색 양파모양의 지붕과 하얀 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웅장하고 섬세한 자태를 보여준다. 이 사원은 1672년에 건설했는데 아직도 튼튼하고 사원 내부에 그려져 있는 벽화도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대전에 있는 동화사, 청도 운문사, 석남사 등이 여자 스님들만 수도하는 비구니 사찰이듯이 이 곳 즈나멘스키 사원도 여자 성직자만 수도한다고 한다.

즈나멘스키 사원을 빠져 나오는데 낯익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돌아다보니 서울에서 왔다는 10여명의 한국 여행자들이 여행하고 있었다. 그 들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나는 나의 일정이 빠듯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바람에 날리고 다른 여행지로 달려가야 했다.

나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러시아를 개혁하려다 실패하고 이 곳 이르쿠츠크로 유배를 와서 이곳을 새로운 문화의 도시를 건설한 데카브리스트 난의 주역을 기념하기 위해 새워진 데카브리스크 기념관을 찾았다. 이 박물관은 원래 데카브리스트 난의 주역인 트루베스코이가 살던 집이다. 트루베스코이의 부인은 모스크바에서 상당히 부자였는데 부모의 돈으로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 곳은 데카브리스트 난의 주역 중 처형당한 5명의 약력과 데카브리스크 난의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1층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귀향을 와서 고생을 많이 한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방과 페치카가 달린 낭만적인 거실에는 아름다운 가구, 스토브, 풍금과 서재, 그리고 파이프 담배를 물고 차창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설원을 바라보았던 흔들의자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나는 웃으면서 이한영 사장에게 말했다. 이 녀석들 말이 귀향이지 신선놀음 하고 있었다고... 어쨌든,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데카브리스트 영웅들이 삭막하기만 한 시베리아 중앙에 문화의 도시 이르쿠츠크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르쿠츠크는 5일 정도를 잡아야 바이칼 호수와 이르크추크 시내를 구경할 수 있다. 2박 3일이면 적당할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간사한 여행자는 무엇이 급한지 만 48시간만에 이르쿠츠크 시간으로 오후 1시 55분 발 가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http://www.russiago.com/siberia에서 퍼옴

사진설명-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가까운 바이칼 호수 입구 리스비얀까
작은 돌섬 위에 갈매가들이 앉아 있다. 바다에서 먼 민물에 웬 갈매기 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