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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의 원고지(原稿紙)

신이 시(詩)로 글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은
시가 우리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파자(破字)해 보면, 시(詩)는 말(言)의 사원(寺院)을 뜻한다.
말의 성소(聖所)라는 뜻이다.
시에서 쉼을 얻고 정화(淨化)되어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시인은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눈물로 씨 뿌리는 시인이 우리 곁에 없었다면
우리의 가슴은 지금보다 훨씬 메마르고 차가워졌을지 모른다.
우리 민족은 시를 좋아한다. 노래를 좋아한다. 아름다운 민족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사람은 아름다움에 대해서만 사랑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아름다움이 있을 때라야만
아름다움을 보고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 우리는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다.
바이칼에 오면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우리 안의 아름다움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눈도 귀도 가슴도 마음도 회복된다.
다소 과장일지는 몰라도 억지는 아니다.

하지만 바이칼에 와 본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으리라...
겨울, 눈가루 하얗게 춤추는 얼음 위에
아침에, 해 떠오르기 전, 하루 중 가장 아름답게 밝은 때
따스한 고요 속에서
맑은 물로 쓰실 거라고
사랑을 쓰실 거라고
사랑 외에는 아름다운 것은 없으므로
사랑만큼 감동적인 것은 없으므로

나의 우유부단함이여
그래 아름다운 자연이라면 그 어느 곳에라도 시를 쓰신다고 치자.
그러나 시를 다 쓰고 난 후 신은 그 많은 시들을 어디에 보관할꼬.
혹시 서재 같은 창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곳이 있다면, 어디일꼬.
절대로 썩지 않는 곳, 하늘과 가까운 곳, 별빛이 가득한 곳…
그래, 얼음성(城)에 맡기지 않으실까.
바이칼 말이다, 시의 창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거룩한 곳, 바이칼에.
눕고 싶었다. 바다처럼 누웠다.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었으면…
나 자신이 신의 원고지(原稿紙)가 될 수 있다면…

(신영길의 ‘길따라 글따라’, 고도원의 아침편지)


사진-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 전경- 왼쪽에 난 길을 따라
걸어야 발쇼이 까띠에 온 묘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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