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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5 15:41

기독교세계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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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선교사(A Concise History of the Christian World Mission)

By J. Herbert Kane

제 1 부
역사적 연구

I. 로마제국의 기독교
헬라문명은 B.C. 6-8세기경에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거주지를 건설한 후, 지중해 세계의 상업의 주인으로 등장하였다. 헬라어는 문화와 상업에 사용되는 언어일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에 많은 도움을 가져다준 언어였다. 그것은 로마제국에서 건설한 도로를 통하여 여행하며 전도하기에 매우 용이했으며,자치권을 부여하여 종교적으로 대단히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나 로마문화보다도 기독교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은 히브리 문화였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생각되어졌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권력의 보호를 받아왔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한 참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예배를 전달하였으며,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대와 보편 언어인 헬라어로 된 성경
을 전파하였다. 바울의 경우, 어디를 가든지 제일 먼저 유대인 공회를 찾아가서 유대인 동족과 개종자들을 만나고 멧세지를 전하였다.
사도행전에 보면, A.D.30년에 하나의 유대적 소수파로 시작한 것이 A.D.60년에 이르러서는 세계종교로 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제자들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으나, 예루살렘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였는지 예루살렘에서 계속해서 성전과 유대를 갖고 기도회와 예배에 참석하여, 얼마되지 않아 그들의 사역은 예루살렘에만 400개 이상의 공회에 확산되었다. 그 멧세지의 내용은 고난의 메시야, 회개의 촉구, 약속된 용서와 회복에 관한 것이었으며, 다분히 유대교적이었다. 그러나 A.D. 70년 예루살렘성이 함락하면서 교회는 현세적이기 보다는 영적이며, 지역적이기 보다는 우주적으로 성장하
기 시작한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대로와 강을 따라 계속해서 확장되어 갔는데, 동쪽으로는 메케도냐,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북쪽으로는 알마니아, 본도, 비두니아로 퍼져 나갔으며, 후에는 스페인, 아일렌드, 중국, 영국에 까지 전파되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부터 급속한 확장을 보았고, 따라서 기독교는 왕실의 보호와 국가적인 재정지원까지 받으면서 4세기까지 성장을 지속시켜 나갔다.
우리가 누룩의 비유(마 13:33)와 소금과 빛의 비유(마 5:13-16)에서 보았듯이 그리스도인은 소금으로서 이교도 사회에 스며들어가 부패를 방지하고 체제에 활력소를 불어 넣으며 새로운 힘과 맛을 첨가해야 함은 물론, 빛으로서 복음의 진리로 무지와 미신을 몰아 냄으로 이교도의 암흑을 밝혀 내야할 임무가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순전하고 포용력 있는 마음으로 자기들을 의식시키고 삶의 비밀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초기 기독교회의 특징은 사랑과 미덕이었다. 그리스도들은 주님의 사랑하라는 교훈부터 실천하였고,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베풀어졌다. 또한 주님께서 무죄한 성품으로 죽으신 것과 같이 정결한 삶을 살아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 가장 심각한 죄가 있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이었다. 이것은 에베소, 고린도까지 번져나갔으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사업운영에서나, 가정생활, 시민의 책임과 사회관계에서도 그리스도안의 생활을 영위하였다.
64년 네로황제에 의한 제 1차 박해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도시미안에 의한 제 2차 박해 때로부터 시작하여 2시기 동안에는 안디옥교회와 서마나 교회의 감독이 순교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칼타고에서 순교당하였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이 밀란 칙령을 발표함으로서 지속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감사했으며, 그들의 순교의 피가 오늘날 교회의 씨가 된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콘스탄틴은 밀란 칙령에서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고, 디오클레시안때에 몰수 당했던 교회 재산을 다시 환수 하도록 명하였다. 이때에 유세비우스에 의한 교회사가 완성되었고, 교회
연합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던 니케아 종교회의가 있었다. 콘스탄틴에 의한 기독교의 평화는 양적으로는 급성장을 가져 왔지만 선교에 대한 수고는 거의 필요치 않아도 되는 인식이 박히기 시작했다. 교권은 정치 세력과 결혼하여 영적인 면에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정권이 견고해지면서 감독은 교권뿐 아니라 법적 권한까지도 갖게 되었다.

II. 유럽의 기독교화
6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아일랜드는 야만족들의 침공을 받지 }았기 때문에교회는 빛을 발하였다. 아일랜드의 교회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는데, 패트릭시대부터 거룩한 열심을 가지고 외국인들에 대한 복음화에 힘썼으며, 스코틀랜드의 픽트족, 영국의 앵글족과 색슨족, 네덜란드의 프리시안족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영국의 기독교의 기원은 모호한 상태이나 6세기가 되어서야 기독교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콜럼바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는 다수의 교회와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가 설립한 아이오나의 수도원에서는 회원을 크게 셋으로 나누었는데, 성경을 복습하고 영적인 일에 치중하는 시니어(Seniors), 일반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형제(Working Brethren), 교육을 받는 초신자인 쥬니어(Juniors)등이 었다. 이 수도원은 200여년간 존속하여 영국도서와 유럽 각국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콜럼바의 후계자 아이단과 교황 그레고리에 의해 파송된 어거스틴, 윌프리드에 의해 영국의 회심은 완성되었다. 이후 영국은 200년
동안 계속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열정을 보였다.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수행하였는데, 아일랜드의 윌리브 로드가 네덜란드에서, 영국의 보니페이스가 독일에서, 안스카가 스칸디나비아에서, 안스카의 제자인 림버트가 덴마크에서 각각 어려움을 무릎쓰고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설립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 나갔다. 노르웨이, 스웨덴, 불가리아, 러시아, 폴란드등의 국가에서는 선교사에 의한 개종보다는 왕에 의한 개종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III. 이슬람교와의 대면
기독교교회가 가장 심각한 위협에 봉착한 것은 7세기에 갑작스럽게 생성되어 확산된 이스람교의 세력이었다. 이스람교는 전투적이며 선교적인 종교였다. 632년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가 죽고 난 후 그의 추종자들은 아라비아의 전투적인 부족을 통일하여 정복과 회심의 선교를 실현하였다. 그들은 다메섹(635),안디옥(636), 예루살렘(638), 가이샤라(640), 알렉산드리아(642), 페르샤 제국(650), 칼타고(697), 스페인(715) 등의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였다. 이슬람교는 이후 500년간의 정체기간을 지낸 후 13세기와 14세기에 오토만 터키족과 중앙 아시아의 몽고인들이 추종하게 되었고, 15세기에 오토만 터키족은 그리스와 발칸제
국, 콘스탄틴노플을 함락시켰다.
이슬람교도는 어느곳을 가든지 간에 피정복자들에게 코란경과 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다고는 하나, 기독교인들은 비쟌틴 통치하에서 보다도 더큰 자유를 만끽하였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은 고전적인 헬라문학을 아랍어로 번역해 주거나, 새로운 통치자들에게 헬라문학을 분여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자유는 없었다. 개종은 일방적인 것이어서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는 갈 수 있어도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할 수 는 없었는데,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개종한 이스람교인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북 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교에 대한 포교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양적인 부흥은 컷지만 영적인 면에서 나약했었기 때문이었고, 사실 권력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토착적으로 자리잡지 못하였고, 그 나라 고유의 언어로 된 성경이 존재치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사의 어두운 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1095년과 1272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십자군 원정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방교회측에서의 셀쥬크 터키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소망과, 로마 카톨릭 교회측에서의 콘스탄틴노플을 중심으로 한 비쟌틴제국을 지지하고 터키의 침공을 막고자 하는 열정, 로마측에서의 동방과 서방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여 다시한번 기독교의 통합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십자군은 실패했다. 기독교회가 팔레스틴이라는 성격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사실은 자신들의 신앙 자체를 거부한 것이었고, 십자군 원정대들의 극악성으
로 이슬람교도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때의 70,000명이라는 엄청안 모슬렘교도를 학살한 사건은 오늘날에도 중동의 이슬람교도들의 마음속에 처절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IV. 로마 카톨릭 선교
유럽의 개신교회가 대륙내에서 세력을 견고케 하는 동안 로마 카톨릭교회는 세계의 비기독교 지역에 나아가 정복을 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선교발전은 포루투칼과 스페인 제국의 해외확대와 시대를 같이 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왕들은 해외 영역에 신앙을 전파하고 불신자들을 회심시키는 일을 책임졌다. 교회의 임명권은 시민당국에 의해 주여졌으며 그 경비는 나라가 부담하도록 하는 파트로나토(Partonato)의 체제가 생겨났다. 초기에 가장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였던 이들
나라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가 배출되었다.
유럽 외지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선교는 몽테콜비노의 죤(John of MonteCorvino)가 1294년 중국에 도착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었고, 그는 북경에 교회를 설립하고 100,000명의 카톨릭 신자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1368년 명나라가 등장하면서 선교사들은 축출당하고 기독교는 소멸되고 말았다. 이후 마테오리치가 북경에 도착하여 250,000명의 개종자를 얻었으나 도미니크 교단 및 프란시스 교단에서는 예수회가 유교와 타협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에 봉착하였고, 1724년과 1736년에 기독교회에 대한 박해령으로 중국에서 다시한번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프란시스 자비엘이 1540년 예수회의 선교사업을 상륙시켜,
혼란한 정치상황과 기독교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세기가 바뀌면서 50만을 능가하였다. 그러나 1614년 반기독교령이 발표되면서 해외선교사들은 축출되었고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면키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의 나라들과는 달리 필립핀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선교사들은 반야만적인 섬사람들에게 기독교를 포함하여 문화기술을 가르쳐 여자들의 노예상태를 해방시켜 주는 등 전인구의 85%의 신자를 보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V. 개신교 유럽선교의
기원개신교 선교가 카톨릭 보다 더딘 이유는 종교개혁자들의신학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원 사도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보았으며, 복음이 세상끝까지 전파되었다고, 후세의 교회는 선교사를 보낼 권위도 책임도 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신교의 상황은 생존의 문제에 시달려야 했으며, 루터교와 개혁파 사이의 상살 전쟁으로 인한 분열이 선교사업 수행에 장애가 되었다.
또한 카톨릭 국가들의 식민지 확보로 인해 그 방향이 넓었었던 것에 비해 개신교는 그 어느곳에서도 고립을 면키 어려웠다. 따라서 개신교 선교는 대륙에서 시작하였고, 1664년 져스티안 폰 벧츠는 교회의 선교적 책임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그 기틀을 다졌다. 이후 1648년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며, 덴마크에서는 최초의 선교기구인 덴마크 할레 선교회가 생겨났고, 모라비안 선교회의 등장으로 실질적인 해외선교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 할레선교회와 모라비안 선교회가 18세기 전반에 걸쳐 선교무대의 중심부를 석권한 후 19세기에 와서 약 15개의 대륙적 선교회가 발족되었다. 요한 웨슬레는 죠지아 주에서 인디안들을 위한 선교사업을 하다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후, 회심의 역사를 통해 변화된 모습으로 40년간의 전도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그를 통하여 감리교회의 탄생과 종교적으로 파멸되어가던 영국을 건지고, 근대적 선교운둥의 기초를 놓았다.

VI. 영국과 미국
개신교 선교의 기원
개신교 선교는 윌리암 케리에 의해 시작된다. 그는 "이교도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관한 조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여 선교적 호소를 해 나갔으며,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기 위해 이교도 복음 선교를 위한 특별 침례교 연합회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를 통하여 윌리암 케리는 1793년 가족과 두 동료와 함께 인도로 가서 40년간을 선교사업에 힘썼고, 그의 노고와 편지를 통하여 많은 선교기관들이 창설되었다.
미국에서는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무엘 밀즈는 기독교선교의 준비를 위해 윌리암즈 대학에 입학하여 자신과 뜻이 같은 동료들과 함께 미국 최초의 선교사가 되겠다고 작정하고 메사추세츠 회중 목회자 총회에서 파송되었다. 이곳에서는 현재 개신교 세계 선교의 70%를 담당하고 있고, 선교재정의 80%를 맡게 되었다. 이 위원회에서는 선교활동을 위해서 고대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원시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고대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이슬람교에 속한 사람들로 그 영역을 세분화하고 이들 영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했다.

제 2 부
지역별 연구
VII. 19세기의 개신교 선교확장
18세기가 지나면서 여러 개신교 국가에서는 이교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기시작했다. 그들은 중앙 아프리카의 미지를 개척하고 죄악스러운 노예매매제도를 중단케 했으며, 지역을 초월하여 자신들의 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들 선교는 최초에는 초교파적으로 진행되어졌는데, 런던선교회, 미국해외 선교회 등의 회중위원회 형태의 선교와 제나나 의료선교회, 영국 시리아 선교회 등의 신앙선교회형태, 특정한 계층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선교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성서공회만큼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있는 선교회는 드물다. 이 선교회는 신학적 경향이나 지리적인 위치를 초월하여 성서발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전세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19세기의 선교사들은 상당한 사람들이 대학교육을 받은 인재들이었으나, 영국의 경우에는 기술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선교지에서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모든 환난을 감수하였고, 아프리카에서의 수많은 질병들과 싸워 이겨났으며, 그들이 가는 곳마다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로서 신앙을 증명해 나간것이다. 흔히 19세기를 위대한 세기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걸출한 선교사들이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암 케리는 인도와 동암 아시아의 35개 언어와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였고, 에도나이럼 져드슨은 버마-영어사전,
로버트 모리슨은 중국어 성경과 중국어 사전을 발간하여 문서 사역의 위대한 장을 열었다. 이들 선교사들은 당시의 수많은 사회폐습 즉, 아편중독, 성전간음, 일부다처제, 노예매매 등을 공격하였고, 학교와 병원, 의과대학, 고아원, 나환자촌 등을 세우고, 구호품과 양식을 제공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자유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었다.

VIII. 20세기 개신교
선교발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 선교사업에 있어서 세가지의 중요한 역할의 운동이 발전하였는데, 신앙선교운동, 상서학원운동, 학생지원자운동이 그것이다. 신앙선교운동은 모든 필요한 것의 공급을 주님께만 기대하는 선교형태로써, 신앙선교는 꾸준히 질을 높여왔고, 계속적으로 동적인 성장을 하고, 선교 방법에 대한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성서학원운동은 1880년대에 시작하였는데, 전도와 성경교육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해외선교지에 보낼 선교사들을 꾸준히 양성하여 배출하고 있다. 학생지원자운동은 "우리세대에서 세계복음화를"(The Evangeli- 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이라
는 슬로건으로 50년 동안 20,500명에 달하는 선교사를 배출하였다. 이 운동이 사라진 후 현재에는 I.V.F.로 계속되고 있다.
이 세기에는 식민지 붕괴로 인하여 기독교 선교에도 그 원인과 과정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되었고, 자국민 교회의 지위가 상승하였고, 선교사의 역할이 변화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공산주의의 발흥과 민족주의 태동으로 선교지에서의 선교사들은 퇴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속출하였지만, 현재 선교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의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있다. 단기 해외선교와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하계선교계획, 국경을 초월한 방송선교와 성경통신과정이 그것이다. 선교는 이제 서구 선교사들에 의존하는 형태의 것이 아니다. 제 3세계의 등장으로 한국, 필립핀 등의 아시아국가들이 주축이 된 선교사업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IX. 이슬람세계 선교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이슬람교는 동부와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크게 발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슬람교도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믿음을 갖게 하기에 가장 어려운 종교이다. 왜 그런가 ? 이슬람교에는 기독교와 같은점이 너무도 많이 있다. 즉, 예수의 복음서와 모세율법, 다윗의 시등을 인정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죽음과 부활을 부인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배교하는 자는 죽게하라고 코란에 명시하고 있다. 이들의 종교는 철저하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고, 대중적으로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종교이기도 하다. 십자군에 의한 아픔의 기억을 아직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전도하기가 무척이나 힘든 실정이지만 오늘날에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유엔의 인권선언에 모든 아랍국가가 서명하였으며, 많은 이슬람 청년들이 서구문명을 접하고 있다. 정치적 분위기도 바뀌어가고 있고, 기독교 방송이 많이 침투하였으며, 성경통신 강좌를 무료로 배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최근 많은 결신자들이 생겨났다.

X. 아시아 선교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대륙이다. 이 지역에는 흰두교와 불교의 탄생지이고, 사도 도마가 순교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270년의 개신교 역사속에서 3%내외의 신자들만이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아시아의 문명은 5천년 이상되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지긍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와 흰두교등의 종교와의 갈등은 물론, 인도의 계급제도와 같은 사회의 관습과 종교적 관습에 의한 충돌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나라가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들로서 지배국가에 대한 원한이 남아 있고, 당연히 서양의 기독교는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필립핀
을 제외하고는 중국과 일본 등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선교활동인것이 사실이다.

XI. 아프리카 선교
아프리카의 기독교 성장은 1900년부터 시작되어 50년동안 60배로 증가하였다. 전체 인구에 대한 기독교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남아프리카 지역이고, 가장 낮은 곳은 서부 아프리카이다. 사실 아프리카 교회는 아시아보다 그 성장속도가 빠르다. 검은 아프리카의 인구는 3억 5천만명이지만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인의 인구는 1억 7천만명이다. 모슬렘은 1억 정도이며, 나머지는 토속종교인들이다.
이렇듯 아프리카 교회가 성장하게 된 요인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선교사들의 노력에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식민주의가 심각한 장애요인이었으나 아프리카에서는 달라서 식민통치자들이 선교사업에 여러모로 혜택을 주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부족형태는 선교에 대단히 유익이 되어 족장이 개종을 하면 부족민들은 당연히 해야 했다. 또한 많은 재정을 교육사업에 투자하였고, 토착종교의 우호적인 면, 아프리카인들의 깊은 종교성은 기독교에 대한 신뢰성으로 연결되었다. 기독교는 아프리카에 근대화의 기초를 닦아 놓았으며, 교육을 통한 토착문화에 대한 유해방지, 사회의 경제, 정치, 사회적인 제반문제에 기독교의 원리
를 적용하는 노력등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XII. 남미의 선교
남미는 로마 카톨릭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대륙이다. 식민 통치 기간중의 교회와 국가는 하나였다. 개신교의 선교사가 처음 이곳에 발을 딛을때는 인구의 90% 이상이 교인화한 상황에 직면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다. 개신교와 카톨릭은 언제나 경쟁 상대였고, 격렬한 상황에 까지 가는 수도 있었다. 개신교선교사들은 명목상의 카톨릭인들을 찾아 선교하기 시작했다. 남미의 개신교도들은 유럽 이민에 의해 생성된 루터교와 월도파 교회, 과거에 개신교 선교사들의 수고로 인해 결실된 복음주의적 교회, 자생적으로 생겨난 오순절 교회등의 세부류가 있다. 현재 브라질, 멕시코 등의 국가에서는 기독교가 급성장을 보이고 있
지만 그외의 지역에서는 1%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는 자유주의신학의 경향을 따르는 사람이 보수적인 사람에 비해 9대 1로 압도적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간격이 너무 크게 벌어져 있지만, 모두가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그들의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색하고 있다.

XIII. 유럽선교
현재 유럽에는 급속하게 비기독교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독일의 합리주의와 고등비평사상으로 성경의 정확성과 권위가 손상되었고, 유럽의 공산당 정부 출현, 동양에서 발생한 신비주의와 불교나 힌두교에 대한 비상한 관심, 이슬람 인구의유럽이동으로 인한 이슬람 사원의 건축 현상들이 늘어가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인구 가운데 1억 6천만명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전 인구의 60%가 세례를 받았으나 3%만이 정기적으로 예배에 출석하고 있고, 그밖의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유럽 교회 지도자들은 개인의 회심보다는 종교교육에 더 관심이 크다는 사실이다. 개신교교회의 다수가 국교회로서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런 체제하에서는 모두가 교회를 지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동부 유럽권의 경우 기독교회는 가장 생동감이 넘친 곳이다. 동부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교회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고, 목회자들은 그 요구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XIV. 선교의 회고
선교사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의 선교사역의 과오를 뒤돌아 평한다면, 선교사들은 저소득층에 대하는데 있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고, 선교지의 토착종교에 대해 일방적으로 이단이라는 설교를 함으로써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기독교가 백인종교라는 닉네임을 얻도록 문화적 차이를 구분치 않았고, 선교지에서도 교파를 강조하고, 토착종교로 뿌리 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재정을 사용함에 현명치 못해 파송지의 비난을 받았고, 식민체제에 그동안 너무 밀접하여 선교지의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 놓였다는 이질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그 지역의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토착문화에 대한 진정한 애착심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현지인들을 대하기에 앞서 토착 언어를 배웠다. 이를 통해 성경을 번역해 주고, 자국민의 잠재력을 누구보다도 먼저 일개워 준 사람이었고, 의과대학은 물론, 병원을 개설하여 각종 이질과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고,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도입하여 사회적인 악습을 철폐시켜 나갔고, 동서양의 교량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쌍방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인도하였고, 거의 세계의 모든 나라에 교회를 세워 그 어디서든지 주님의 진리를 들을 수있게 그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

XV. 선교의 전망
세계 뿐 아니라 교회와 선교도 변화하고 있다. 현재에는 단기 해외 선교계획이 보편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이것을 통하여 예비 선교사들은 선교사의 목표와 목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뿐 아니라 상이한 문화에 대한 적응력, 기독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인식,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비전문적인 선교사(Tent-makers)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데,이들은 일반적인 사회의 협조로 나가서 상업을 하거나 자신들의 전문직을 통해 생활하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선교명령으로서 사회활동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자국민들은 어떻게 하면 기독교적이면서 동시에 토착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는가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데, 피선
교지의 자국민 교회들의 자치권이 인정되고 선교사들이 교회지도자와 더불어 그들의 지도하에서 봉사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조만간에 모든 교회들이 선교사 배척을 요구하게 될련지 모르는 상황이다. 따라서 교육 수준이 높은 선교사가 필요한 시대이다. 전에는 비기독교인들이라든지 혹은 타종교와의 대화를 기피해 온 상황이었으나 현재는 대화를 통하여 바울이 복음 전파를 효과적으로 수행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하나님과 인간과 죄 및 구원에 관한 유일한 진리가 있음을 믿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선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많은 난제들이 널려 있다. 전보다 선교사 지원에 대한 재정이 삭감되는 실정에다 민족주의의 고조와 확대, 정치적 불안 및 민주주의의 붕괴, 비기독교 종교의 위협, 아랍제국의 경제적 및 정치적인 충격, 공산주의의 호소력과 위협 등은 끊임없이 선교사역에 장액 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고무적인 현상들 즉, 국내교회의 영적 부흥,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의식의 증가, 전도와 교회성장에 대한 관심의 고조, 선교지의 현장 방문의 증가, 선교학의 등장 등으로 우리들에게는 전례없는 기회들이 제공되고 있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시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열려져 있고, 공립학교에서는 종교지식을 가르치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을 위한 선교사가 필요하게 되었고, 성경의 번역과 보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라
디오 방송망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문맹자들로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고 있으며, 국제 복음주의 학생연맹 같은 단체를 통하여 유럽의 많은 학생들에게 선교에 대한 참여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있다.


적 용
그동안 관념적으로 여겨져왔던 선교역사에 대한 시각이 이젠 하나의 틀안에 잡힌 것 같다. 여지껏 공부하고 암송하여 왔던 측면에서의 대면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묵상해 보며 세계를 향하신 주님의 구원의 복음의 손길을 이제는 누가 잡아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한 유대지역의 조그만 종교였던 기독교가 오늘날 전 세계로 확장되고, 유럽과 미국을 통한 선교사역의 퇴보가 한국과 같은 제 3세계에서 그 사역을 대신 해 나가고 있다는 데서 하나님의 살아서 역사하심을 알게 한다. 오랜동안 핍박과 쓰라림만을 경험해 왔던 민족들이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여 사랑의 복음의 사도로서 전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볼때 오늘날의 기독교 선교역사는 또다시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전세계 인구의 28%만이 주님을 영접한 사실, 아니 개신교만 따지고보면 10% 내외의 비율을 보면 아직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는 그리 가깝지만은 아닌것 같다. 유럽에서 발흥한 기독교의 열정이 미국으로, 이제는 한국으로 옮겨지는 시점에서 인도와 중국의 복음화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사명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공산주의도 무너진 상황에서 기독교의 방해의 벽은 더이상 존재하고 있지 않다. 모슬렘 1명을 개종시키는데 1년이 걸린다 할찌라도 그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잎술로 전한자는 우리지만 그 심장에 찌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며 또 다른 시대의 개막을 맞이하자 !

출처 :http://www.inbora.com/ez2k/ezboard.cgi?db=board3&action=read&dbf=1565&page=68&dept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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