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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01:27

숨겨진 감정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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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감정의 회복

*저자: 아치볼드 하트
*출판사: 두란노
*정성준 옮김


▣ 저자 아치볼드 하트
심리학 교수이며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의 풀러 신학교 심리학 대학원 학장을 역임하였다. 남아프리카 출신인 하트 박사는 훌륭한 저술가로서 스트레스와 당신의 자녀, 불안을 극복하기, 스트레스와 아드레날린, 남자들의 성을 비롯한 여덟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여 갈채를 받았다. 그와 아내인 캐서린 사이에 세 명의 딸이 있고 여섯 명의 손자가 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아케이디아에서 살고 있다.

▣ Short Summary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힘을 잃어버리고 고통과 혼란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나,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해서 감정이 발육부진 상태가 되어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냉담해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더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감정을 온전히 경험하면서도 통제력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기독교심리학자 아치볼드 하트 박사는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하트 박사는 독자들이 기대했던 균형감 있는 전문성과 성경적 통합, 철저한 실용주의와 함께,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감정에 지배 받지 않고 자유롭고 진실하게 표현하는 법
-분노, 자기혐오, 우울감, 죄책감, 질투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는 법
-진실한 사랑, 참된 기쁨, 건강한 자존감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법
-완벽해지려고 애쓰기보다 "참된 자신"을 찾는 법
-이 모든 과정에서 더욱 창조적이고, 자발적이고, 수용적이며, 유연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법

이 책은 가정에서, 소그룹에서, 전문적인 상담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보다 나은 정서적 건강을 위해 이 책을 사용하라!

▣ 차례
한국어판 서문
추천사
들어가는 글

제1부 숨겨진 감정의 문을 열어라
1장 풍성한 삶의 도구, 감정
2장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3장 생각은 감정의 신비를 푸는 열쇠이다

제2부 숨겨진 감정으로부터 자유하라
4장 잠재적인 죄악, 분노
5장 분노로부터의 자유 - 용서가 분노를 해결한다
6장 우울증으로부터의 자유 - 하나님의 관점으로 상실을 바라보라
7장 자기혐오로부터의 자유 -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여라
8장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 - 하나님, 죄, 용서에 대해 건강한 개념을 가져라

제3부 숨겨진 감정을 회복하라
9장 사랑의 회복 -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라
10장 기쁨의 회복 - 기쁨의 원천인 그리스도에 뿌리를 내려라
11장 참된 자신의 회복 - 나를 하나님께 버려라

에필로그



제1부. 숨겨진 감정의 문을 열어라

1장 풍성한 삶의 도구, 감정

감정을 겸험하는 데 있어 양 극단은 다음과 같다. 한쪽은 감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하면서 감정을 부인하거나 무시해야 하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감정을 회피하는 것이고, 다른 쪽은 감정에 굴복하여 감정의 흐름에 모든 것을 내어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회피하는 것은 삶을 회피하는 것이며, 감정을 지나치게 느끼는 것은 삶을 파괴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양극단에 빠지지 않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

감정에 대해 갈등을 겪는 크리스천의 경우 ‘크리스천이라면 감정을 항상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일반적으로도 감정을 내보이는 것을 장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감정적으로 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감정이 생길 때 감정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의 영적, 심리적, 신체적 건강을 해치게 된다.

또한 감정에 대해 패배주의적인 자세로 감정에 굴복하는 실수를 흔히 범한다. 그러나 감정은 종종 일련의 사고와 자기 대화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다스림으로써 나쁜 감정이 지속되지 못하게 하거나 좋은 감정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감정에 관련해 흔히 범하는 실수 중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 유발요인은 자기 내면에도 있지만, 신체기능에 문제가 있을 때도 감정을 느끼며, 외적인 유발요인도 있다.

감정의 속성에 대해 흔히 갖는 4가지 오해는 다음과 같다.

1. “감정에 굴복하면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 이것은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는 흔한 신념인데, 실제로 심각한 정신장애는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해서 생기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

2. “절대로 감정에 져서는 안 돼. 그렇게 하면 죄를 짓게 될 거야.” -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우울감이나 분노를 죄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니다. 죄가 되고 안되고는 그 감정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3. “크리스천이라면 극단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항상 평정을 잃지 않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에 걸맞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부족하다. 격렬한 경험에는 격렬한 감정이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4. “기도만 하면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없애버릴 수 있다.” - 감정은 기도로 다스리는 것이기 이전에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정직하게 알려주는 원천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을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인간은 복잡한 감정 조직체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그 감정에 대처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를 다른 창조물들과 다르게 구분 짓는 대표적인 것이다. 즐거운 감정이든 불편한 감정이든 감정은 우리에게 생동감을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을 끌어안고 이해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 정서적으로 자유롭게 되어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방법으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자원들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해내고, 실제로 적용함으로써 보다 즐거운 삶을 영위하게 되길 원한다.

2장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우리는 복잡한 정서적 조직체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이 있다. 성, 연령, 신체 건강, 성격, 그 외의 여러 요인들이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감정은 느끼는 각자가 독특하게 경험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도 없다. 이렇듯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 결과 감정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과학계에도 혼란스러운 영역이다. 우리 인간이 폭넓은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듯해 보여도 사실 그 모든 감정들은 비교적 몇 안되는 핵심 감정으로 유추될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라는 심리학자는 감정에는 기본적으로 두 차원이 있다고 하였다. 1차 감정은 굵직굵직하고 근원적인 감정을 말하는데, 비애, 두려움, 분노, 사랑의 네 감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2차 감정은 네 가지 근원 유형을 조합한데서 파생된, 세밀하고 미묘한 수준의 감정을 말한다. 이 이론이 맞다면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감정은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또한 감정과 감정 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합성된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을 경험할 수도 있다. 감정은 심리적 요인과 생리적 요인 사이에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동반하며 그 요인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감정의 속성에 대해 그릇된 개념들이 많으며 감정 자체보다도 그러한 개념들 때문에 문제가 더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정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emotion)은 느낌(feeling)과는 다른 개념이다. 느낌은 감정경험과 함께 동반되는 감각 또는 신체 상태를 말한다. 반면 감정은 우리가 알아차리든, 알아차리지 못하든 상관없이 우리를 동요시키는, 보다 근원적이고 심층적인 상태를 말한다. 즉 감정은 우리의 존재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감정의 연쇄반응은 하나의 감정이 생기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두 번째 감정이 생기는 것으로, 연쇄반응이 일어나면 원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처음에는 조금 나쁜 정도에서 악화되어 끔찍한 정도에 이른다. 이것은 혼란상태를 지속시킨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좋다, 나쁘다는 꼬리표를 붙이지 말아야 한다. 만약 어떤 감정이 느껴지면 그냥 그 감정을 느껴라. 감정을 있는 대로 느끼도록 허용하면 더 이상 분노, 우울감, 자기 정죄감으로 반응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을 제한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심리치료에서 행하는 것들은 감정에 대해 더 자유로워지고 감정을 더 많이 수용하는 법을 배워나가면서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는 좋은 모델이 된다.

1. 심리치료자들은 감정경험에 선행하는 사건을 탐색한다. 선행사건 탐색을 통해 감정의 진짜 원인을 찾도록 돕는다. 2. 심리치료자는 치료 장면마다 느껴지는 감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감정의 자각력을 증진시킨다. 그럼으로서 내담자는 용기를 갖게 되어 진짜 문제를 기꺼이 직시하는 자리에 이르게 된다. 3. 심리치료자들은 감정에 정확히 이름을 붙이고 묘사하도록 도움으로써 배후 문제를 이해하고 감정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교정단계를 명료화시켜준다. 4. 심리치료자들은 내담자가 감정을 경험하도록 촉진시킨다. 감정에 대한 과잉 통제는 모든 감정에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화내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면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허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감정을 깊이 경험하도록 돕는다. 5. 심리치료자들은 적절한 감정을 더 공개적으로 표현하도록 장려한다.

감정을 더 깊이 경험하기 위해 심리치료가 시사하는 바를 참고하여 개방적인 자세를 갖도록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

3장 생각은 감정의 신비를 푸는 열쇠이다

‘합리적 정서치료(Rational Emotive Therapy)’자들이 보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선천적으로 생각을 비뚤어지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 패턴과 감정 패턴을 쉽게 형성하고 유지시킨다고 한다. 즉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실인 것처럼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그 생각을 붙들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신경증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물론 합리적 정서치료를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인간들은 복음이 아닌 간접적인 출처에서 흘러들어온 신념들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여태껏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쳐온 왜곡된 생각들을 동화 흡수한 것은 사실이다.

생각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감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반면 생각은 신념, 태도, 기대, 전제, 지각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합리적 정서치료에서 말하는 감정의 원인이 되는 ‘촉발사건’과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을 ‘결과’라고 할 때, 그 사이에 자주 간과되는 변인인 ‘신념체계’가 자리한다. 내가 어떤 신념체계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결정된다. 그러므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신념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신념(beliefs)이란 어떤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신념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는 경험인데,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경험에 의해 서로 다른 신념을 형성한다. 반면 어떤 신념들은 경험한 것도 아닌데, 일말의 증거도 없이 우리 생각 속에 뿌리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증명할 수 있는 신념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해도 증명해 보일 수 없는 신념, 즉 비합리적인 신념의 경우 비합리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정서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

비합리적인 신념은 어린시절 습득된 경우가 많아서 어른이 되어도 계속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절대성에 기초해서 흑백논리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거나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비합리적 사고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에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직면하고 대항해야 한다.

태도(attitudes) 또한 사고와 감정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태도란 사람이나 대상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경향을 말한다. 태도는 주어진 상황에 대해 미리 프로그래밍 된 반응으로 신념의 영향을 받거나 학습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태도가 편견을 통해 학습된 것이라면 그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뭔가 기대(expectation)할 권리가 있다고 확신함으로서 우울이나 분노, 거절감, 패배감에 빠진다. 기대할 이유가 별로 없는데도 기대하고,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쉽게 실망에 빠진다. 특히 그 기대가 비합리적인 경우 실망과 함께 가장 불편한 감정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합리적 기대를 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assumption)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르거나 당연하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지각(perception)은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고와 개념의 영역에서 볼 때 우리의 지각은 왜곡될 수도 있다. 그릇된 지각이나 지각의 차이는 대화에 혼란을 야기하며,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각이 왜곡될 수 있음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이 지각하는 방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이 감정을 유발하든 감정이 생각을 불러일으키든 생각과 감정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그러므로 어지러운 감정 경험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자세히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생각의 흐름에 더 건강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덧붙임으로써 건강한 정서를 자유롭게 경험하도록 할 수 있다.

제2부. 숨겨진 감정으로부터 자유하라

4장 잠재적인 죄악, 분노

크리스천들은 분노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크리스천답지 못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서로 감정적 거리를 두고 표면적인 만남을 함으로써 이를 해결한다. 반면 현대 심리학에선 분노를 통제하지 말고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하며, 치료집단에서 잘 표출하는 사람만이 통합되고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으로 인해 대가를 치러야하는 사람은 불행히도 다른 사람이다. 분노를 억눌러야 하는데서 오는 좌절감보다는 쏟아놓는 게 더 좋을 수 있지만 화를 낸 후에 밀려오는 죄책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이 딜레마다.

분노란 “실제 혹은 가상의 상해로 인해 생기는 강렬한 불쾌감정 종종 복수를 하거나 가해자 쪽으로부터 만족을 얻고자하는 욕구가 동반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분노는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가해자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해준다. 반면 ‘감정, 상해, 복수’로 점철되는 분노는 언제나 관계를 파괴하며 종종 건강을 해친다.

분노의 원인은 좌절, 상처, 조건반응, 본능적 보호의 네 가지 기제에 있다. 욕구가 좌절됐을 때 장애물을 공격해서 그것을 극복하도록 분노가 생긴다.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경험할 때 상처를 되돌려 주고 싶은 강한 욕구가 생기는데 이것이 분노이다. 또한 생애 초기에 분노를 드러냄으로써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계속 학습함으로서 조건반응의 기제가 분노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억압, 책임전가, 환기’이다. 억압은 분노를 뒤로 두면서 자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그대로 억누르는 것이다. 억압은 관계를 가로막고 진짜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게 하므로 심리적,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힌다. 책임전가는 한쪽에 속해있는 분노를 다른 쪽에 퍼붓는 것이다. ‘책임전가’란 원래 ‘희생양을 삼다’는 뜻으로 상처의 진짜 원인을 보지 못하고 희생양을 삼음으로서 또다른 고통과 깨어진 관계를 양산해 낸다.

환기는 분노와 적대감을 언제든지 밖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많은 심리학자들이 분노해결의 최상책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공개적, 공격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면 일시적으로 감정적인 만족을 얻는 것 같지만 실제로 분노의 원인이 제거되거나 분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기기법은 분노에 대한 조절력을 떨어뜨리고 공격적인 행동을 더 자주 사용해서 분노 감정을 표출하도록 부추기는 역할만을 할 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기법은 경험이 많은 치료자의 감독 하에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치료효과를 높이는 보조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는 분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까? 성경은 분노와 분노행위를 구분한다.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분노 감정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분노 감정을 분노 행위로 바뀔 잠재성이 있기 때문에 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보복을 원하며, 화가 날 때 우리는 흔히 통제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분노는 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분노는 사랑하는 능력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분노 감정이 분노행동을 촉발하지 않도록 하면서 분노를 재빨리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5장 분노로부터의 자유 - 용서가 분노를 해결한다

분노는 가능한 촉발되는 순간에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분노를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 생각도 하기 전에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든 분노 요인은 촉발되는 시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초기에 촉발요인을 피하거나 차단하기 위해 생각과 태도를 다룰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첫째, 평소에 마음이 평온할 때 기도, 묵상, 경건의 시간 등을 통해 좌절과 타인의 불완전함을 견디는 내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어떤 사건에 대해 분노로 반응하기 직전에 분노가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기대화를 함으로써 분노를 차단할 수 있다.

셋째, 화가 났지만 분노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신이 화가 났음을 인식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중단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열어야 한다. 일단 복수의 사이클이 돌기 시작하면 우리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전쟁의 상황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복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처벌을 하나님께 맡기는 부탁을 한다.

로마서 12장에 바울은 용서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용서는 앙갚음할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용서하기는 어렵지만 어렵다고 해서 올바른 방법이 아닌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용서를 한 후에 우리는 비로소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 분노를 표현할 때는 분노와 상처를 쌓아두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다뤄야 한다. 또한 분노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여야 하며, 상대방도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이 사과한 경우는 어떤 설명이든 경청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쌍방 간에 의견일치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는 데 목표를 두라.

넷째, 분노가 적대행위로 바뀌었을 때는 정당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이미 죄의 행동으로 넘어갔음을 인정하고 가능한 신속히 뒤로 물러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상대의 잘못이 아무리 크더라도 분노행위를 한 이상 문제는 내게로 넘어온 것이기 때문에 행동을 중단함으로써 상황을 고쳐야 한다.

삶은 상처를 받을 가능성으로 가득하고,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상처로 인한 분노를 해결하지 않고 원망으로 끌어안으면,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모든 빚을 탕감해준 왕’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본질적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지은 죄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더 많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분노는 지금 여기에 있는 감정으로 만약 분노가 쌓여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저장하고 있는 것은 상처와 원망의 기억이다. 기억을 다루기 위해 우리는 기억에 직면하고, 주의 깊게 탐색함으로써 우리를 괴롭혔던 힘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분노하신 적이 있으시지만 보복의 욕구가 없으셨다. 죄를 미워하신 것이지 사람을 미워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타주의나 정의의 체계를 분노 위에 세우려 하면 안 된다. 우리의 권리가 침해당할 때 분노가 아닌 다른 합리적인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6장 우울증으로부터의 자유 - 하나님의 관점으로 상실을 바라보라

우울증은 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증상이며, 우리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경험이다. 경미한 우울감에서부터 입원을 요하는 심각한 정신장애까지 그 강도가 천차만별이어서 우울증은 복잡한 감정이다. 신체적 요인(수면부족, 식습관, 피로 등)에 기인한 우울증, 생화학적 장애나 유전적 요인에 기인한 우울증, 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우울증 등 유형에 따라 우울증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 다른데, 나는 본질적으로 심리적 우울증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에는 식욕 상실, 주변이나 활동에 대한 흥미 상실, 무기력감, 자기비판과 자기정죄, 감당할 수 없는 무가치감 등이 있다. 우울증은 이러한 증상인 동시에 반응이다. 삶에서 겪은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우울증을 반응성(reactive) 우울증이라고 한다. 반응성 우울증은 거의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상실에는 실제적 상실(사별, 실직, 특권 상실), 추상적인 상실(실연이나 이별 등 사랑의 상실, 비판과 질책을 받음으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 진학좌절로 인한 희망 상실, 은퇴나 자녀독립으로 인한 중요감의 상실), 상상 속의 상실, 위협감에 의한 상실이 있다.

반응성 우울증은 상실에 대한 반응이므로 이것을 치유하려면 애도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상실에 대해 애도하려면 우선 어떤 상실이 있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실이든 심리적 요인은 우울증의 유발과 지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가치관, 신념, 기대 측면에서 상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따라 우리의 반응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상실을 다루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적절한 분량의 우울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울증에 반응해서 발생하는 2차반응의 덫에 빠지지 말고 우울해진 자신을 정죄하지 않을 때 더 신속하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

우울증 해결을 위한 6단계는 다음과 같다. 1)우울증을 인식하라. 2)우울증에 맞서 싸우거나 저항하지 마라. 3)우울증을 일으킨 상실이 무엇인지 찾아내라. 4)상실의 현실을 직시하라. 5)상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라. 적절한 관점으로 상실을 바라보고 더 큰 맥락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을 기른다면 회복이 빨라질 것이다. 6)우울증에서 배울 것을 찾아라. 모든 우울증은 삶 속에서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어떤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에게는 우울증 치유를 위해 3대 자원이 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갈지 아니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자원을 사용하는데 실패할지는 우울증에 걸려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우울증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달려있다. 1)하나님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주신다. 하나님 안에 살면 하나님이 마련하신 더 큰 계획에 대한 청사진 속에서 상실을 평가하고 미래를 해석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2)하나님은 삶에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은 실망에서 우리를 구해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것에 대처할 능력은 언제나 부어주신다. 3)기도는 강력한 자원이 된다. 정직하고 진솔하게 하나님 앞에 선다면 하나님은 치료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부어주실 것이다.

7장 자기혐오로부터의 자유 -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성과 외모라고 하는 두 가지 주된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에 대해 부적절감을 갖고 있다. 지성과 외모는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에 만족하지 않기 시작하면 그 부적절감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러한 부적절감은 자기 가치감을 계속해서 좀먹고, 급기야 자기혐오로 발전하게 되면 이는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해 더도 덜도 아닌 적절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존엄한 존재이면서도 죄악된 존재이다. 적절한 자존감은 이러한 긴장에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에 달려있다. 자기사랑과 자기중심성은 다르다. 또한 자기사랑과 자기과장도 다르다. 우리는 자기 안의 강점을 인정하는 정직한 모습과 함께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정확한 자기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강점을 즐기고, 자신의 부적절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발성을 가질 때 건강한 자기사랑을 할 수 있다. 건강한 자기사랑은 자신에게 근본적으로 죄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는 자발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낮은 자존감은 우울증과 분노를 만들어내며, 생명력과 확신도 앗아간다. 자기혐오는 비판주의와 판단의식을 만들어내어 대인관계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친다. 자기혐오로 인한 가장 불행한 결과는 거짓된 겉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강점을 무시하거나 부인함으로써 자아상을 왜곡하거나, 강점을 드러내는데 온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려 한다. 또한 자신 안의 사소한 약점을 과장함으로써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게 된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대인관계를 기피하게 된다. 이러한 거짓된 모습은 우리를 영원한 속박에 묶어놓는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참자아가 아닌 거짓된 겉모습에 반응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칭찬과 찬사를 하잘 것 없게 느끼게 되거나 비평을 들을 때는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자존감의 기초를 세우려면 현실적인 자아상이 필요하다.

자존감의 기초는 생애 초기에 형성된다. 또한 대인관계는 자존감 발달에 주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를 긍정적인 태도와 사랑으로 수용하는 것이 높은 자존감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자녀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다. 높은 수준의 자존감을 가진 부모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수용을 일관성 있게 베푸는 분위기를 만든다.

부모의 자존감이 높을 때 자녀의 자존감이 잘 발달된다. 낮은 자존감의 원인이 되는 부모의 자존감과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는 부모들이 자기도 모르게 자녀에게 강요하는 가치관과 기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부모의 특정 가치관이 자녀들의 내면에 자기거절과 자기처벌의 시스템이 형성되게 한다.

기독교에서 낮은 자존감의 치유를 위한 배후 역동으로 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수용이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자존감의 기초가 되지만, 현실적인 자기인식을 증진하고, 자신을 완전히 수용하려면 적극적인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비합리적인 기대를 접고, 실패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8장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 - 하나님, 죄, 용서에 대해 건강한 개념을 가져라

모든 감정 중에서도 죄책감 또는 죄의식은 심리학과 신학 사이에서 가장 많이 중복되는 감정이다. 심리학적 죄책감은 느낌 또는 감정이고, 신학적 죄의식은 존재 상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죄가 있으면서도 전혀 죄책감은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또 죄책감은 느끼지만 죄를 지은 상태는 아닐 수도 있다.

영적인 죄의식은 용서를 경험하면 더 건설적인 것으로 고칠 수 있지만 심리적 죄책감은 신경증적인 죄책감이 되기 쉽다. 죄책감은 우리의 감정반응과 자주 자극을 주고받기 때문에 연쇄감정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우리의 감정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죄책감은 뭔가를 어겼다는 경고이기 때문에 내적인 긴장과 거절에 대한 위협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거절감에 맞서기 위해 분노를 일으킨다.

죄책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부모의 통제다. 양심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인데, 양심의 형성에 기여하는 사람이 바로 부모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훈육과 특권 뺏기, 언어적 훈육 등이 자녀의 양심을 훈련하는데 잘 사용되면 좋은데, 때로 부모들은 자식을 조종하거나 상처를 되돌려 주기 위해 죄책감을 자극하는데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발달한 양심은 도덕성을 뛰어넘어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에게 도덕적인 기준을 부과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면 거의 모든 일에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양심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기 때문에 비도덕적인 행동에 개의치 않는다.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양심결핍은 품행 장애로 불린다.

정상적인 양심은 4가지 특징이 있다. 1)정상적인 양심은 도덕주의(옳은 행동에 대한 몰입)가 아니라 도덕성(도덕적 태도를 갖게 하는 올바른 근원)과 연관되어 있다. 2)건강한 양심은 경직되지 않고 유연성이 있으며, 민감하면서도 분별력이 있다. 3)균형잡힌 양심은 지나친 자기비난이나 자기정죄, 자기비판에 빠지지 않는다. 4)정상적인 양심은 하나님, 타인, 자신 그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고 있다.

신경증적 죄책감을 유발하는 것은 지나치게 발달된 양심이다. 실제로 잘못이 없었는데 죄책감을 자주 느낀다거나, 설사 잘못이 있었어도 사소한 것 또는 내면화되거나 비합리적 원칙에 근거한 것일 때 신경증적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가혹하고, 처벌을 즐기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대체로 가혹하게 처벌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내면화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런 사람은 죄에 대해 부적절한 개념을 갖고 있다. 의외로 사회적 규범이나 관행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은 단지 하나의 문화에 관련된 것일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죄책감을 느낀다.

과연 우리가 죄라고 느끼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실제로 죄일지는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신경증적 죄책감을 갖는 사람은 용서에 대해 부적절한 개념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에 대해 용서하려는 큰 마음을 갖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꺼이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정죄와 처벌에 몰두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죄책감에 건강하게 반응하도록 하려면 내면화되어 있는 비합리적 신념에 직면하여 합리적이고 유연성 있는 양심, 실패에 대한 올바른 태도, 자신을 처벌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용기를 더 많이 배양해야 한다. 또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질 때 우리는 신경증적인 죄책감에서 자유케 될 것이다.

제3부. 숨겨진 감정을 회복하라

9장 사랑의 회복 -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라

상담실을 거쳐 가는 사람들의 굶주림은 결과적으로 사랑에 대한 굶주림이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모르며, 잘못된 이유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에 굶주릴 수밖에 없다. 관계의 문제는 어떻게 사랑하는지 아는 것으로 해결된다.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을 때 인간관계는 깊은 만족감과 지속적인 행복의 원천이 된다.

사랑에 대해 흔히 갖는 세 가지 잘못된 개념이 있다.

첫째, ‘사랑은 감정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낭만에 기초한 관계의 초기단계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관계를 지배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사랑에 대한 청사진의 일부일 뿐이다. 사랑은 감정 이외에 존중과 수용,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특정한 행동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더 갖고 있다. 존중과 수용은 열정적 감정을 다스린 후에 비로소 꽃피우는 참된 가치이다. 사랑의 행동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잘 나와 있다.

둘째,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한 가지로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성경에는 우리를 악용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라고 나와 있다. 좋아하는 것은 보너스이다. 우리의 부르심은 서로 좋아하는 것에 있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다.

셋째,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전혀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의 반대를 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오히려 사랑은 미움과 공존하는 것이며, 사랑의 반대는 두려움, 미움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움이 클수록 사실은 사랑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을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대로 미워하는 사람에게 마치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면 이런 행동이 감정에 기적을 불러일으켜서 실제로 사랑하는 사이로 회복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사랑은 두려움과 무관심을 내어쫓는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게 하는 것은 바로 ‘복음’이다. 기독교만의 독특한 특징 중의 하나는 거절과 박해를 직면해서도 사랑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모범을 보이셨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고, 참된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처럼 모든 사람(지금까지 우리의 원수였던 사람조차도)이 다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강령을 받들어 모든 사람과 관계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을 통해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서의 올바른 자아상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에 자신을 대한 것처럼 관계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자신을 파괴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10장 기쁨의 회복 - 기쁨의 원천인 그리스도에 뿌리를 내려라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참된 기쁨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쁨이란 단어의 저변에는 ‘rejoice(기뻐뛰다)’라는 개념이 있다. 즉 기쁨이 있다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해 기뻐 뛰거나 너무나 감사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기쁨은 성령의 열매라고 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는 갈라디아서 5장 25절 말씀에 의하면 기쁨은 실천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쁨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상태이기에 행복감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감정이다. 기쁨은 행복감보다 환경에 덜 좌우되기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조차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기쁨은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무지개 끝자락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쁨은 획득해야할 목표가 아니라 값없이 받아 누려야 할 선물이다.

우리는 기쁨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알고 피함으로써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세상적인 염려, 즉 현재 이 자리에 너무 몰두해서 이 땅에서의 위안과 개인의 야망의 실현에 사로잡혀 있다면 기쁨은 막히게 된다. 우리에게는 영원에 눈을 고정시킨 채 현재 속에 살아가는 균형이 필요하다.

또한 삶의 환경은 눈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삶에는 고통과 어려움의 씨앗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기쁨을 유지할지 아닐지를 결정한다. 성숙한 삶의 목표는 기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고린도후서의 말씀은 기쁨의 위대한 역설이다. 그 외에도 걱정과 불안, 서두르는 생활방식, 과도한 스트레스 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데 아주 큰 장애물이다.

기쁨은 크리스천의 모든 경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기쁨과 존재는 공존한다. 존재란 모든 기쁨의 원천이 되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반을 벗어나서는 깊고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11장 참된 자신의 회복 - 나를 하나님께 버려라

우리는 왜 가까운 관계에서 서로에게 진실 되기를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진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깊이 숨어있는 자신의 내적 자아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참된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서로 의존해야 한다. 칼 로저스의 입장처럼 관계 속에서 무조건적인 수용과 따스함, 공감적 이해, 일치성(진실성)을 경험할 때 우리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치료적 삼각대’라고 부른다. 서로를 진실하게 대하면서 예전에는 의식적으로 직면하지 못했던 감정과 욕구를 경험하고 이해하며 수용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행동과 감정 배후에 있는 원인들을 이해하게 되며, 비로소 참된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운다.

참된 자신이 되는 과정이 기독교 신앙생활이 추구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자신을 발견하고 특별히 진실해지고 참된 사람이 되는 과정이다. 갈라디아서 6장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한다.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동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만약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사랑과 돌봄의 공동체가 아니라 외롭고 버려진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솔선해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냉담함과 경솔함, 이기심을 변화시킬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변화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참된 자신이 될 때 공동체는 변화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참된 자신이 될 수 있을까? 참된 사람이 되려면 진실성, 고결성, 적응성이 필요하다. 진실성은 자신의 어떤 면도 스스로 숨기지 않고 실제 모습 그대로 있으면서 자신을 현실적으로 아는 결과로 생기는 특징이다. 고결성은 아무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없어도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온전하고 통합된 태도로서, 책임감 있고, 신뢰할 만하며, 의지할 만하다는 뜻이다. 적응성은 아무런 경고 없이 방향이 바뀌기도 하며 그러한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삶을 조절할 때 적응성이 길러진다.

참된 자신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다. 참된 자신이 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우리 삶을 완전히 다스리시도록 얼마나 허락하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관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아관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가면을 벗은 새사람이 되게 하신다. 우리는 참되고 진실한 사람, 열려 있고 투명한 사람, 잘 수용하고 견디는 사람, 위로하고 이해하는 사람, 공감적으로 반응하는 사람, 정직하고 고결한 사람, 유연성과 적응력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비현실적 기대와 목표를 꿈꾸며 실패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적인 기대와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무력함을 처리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용기와 책임감이 필요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이러한 책임감으로 이행할 때 우리는 조절력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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