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기다리는 도심 거리는 휘황찬란한 불빛과 신나는 캐럴송, 그리고 대중매체를 통한 성탄절 특수를 노린 각종 상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성탄전야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심의 유흥에 빠져 밤을 지새는 것이 낭만인 것처럼 여겨지고 그것이 성탄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 날에는 마치 서구의 할로윈데이 처럼 무슨 일을 하던지 용납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젊은이들의 욕구를 한층 더 자극한다. 그래서 성탄을 기다리는 12월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연말 분위기와 맞물려 욕구분출의 용수철의 탄성이 최고점에 달하는 듯 한 위태로운 계절이 되고 말았다. 그 어느 해보다도 경제가 호황이어서 기업체들이 보너스를 얼마나 줘야 할지 고민이라는 뉴스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연말 불우이웃을 돕는 지표를 상징하는 사랑의 온도계는 2.7도로 지난해에 비해 형편없다고 한다.
이렇게 소비문화를 위한 경제논리와 쾌락을 위한 욕구분출로만 대변되는 이 시대의 성탄문화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로 성탄을 기다려야 할까? 성경에도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시는 날을 고대하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 우리의 눈길이 가는 자들은 천사에게서 예수께서 오시는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 들었던 목자들이다. 왜 인류를 위한 위대한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전달해야 할 목격자요, 전달자로서 하나님은 당시 가장 천민 그룹에 속하던 목자들을 선택하셨을까?
전통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어왔다. 첫째,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먼저 임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목자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는 달리 순진한 마음으로 곧이곧대로 믿는 심령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이 일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온전하고 만족스런 대답 또한 되지 못한다. 목자들의 정체를 조금 더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추적해 보자.
예수님이 나시는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이 거주하던 곳은 베들레헴에서 멀지 않은 곳, 현대 지명으로 라못 라헬이라고 불리던 작은 동네였다. 그런데 라못 라헬의 옛 이름은 다름 아닌 ‘벧학게렘’이다. 벧학게렘은 느헤미야 3장 14절의 증언에 따르면, 레갑의 자손들이 다스리던 땅이었다. 정리하자면, 목자들은 벧학게렘 지역에서 오랜 역사의 풍파를 견뎌오며 거주해 오던 레갑의 후손들이란 결론이 된다.
레갑 자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잘 증거되고 있다. 예레미야가 고관대작들 앞에서 레갑 사람들을 불러 포도주를 마시라는 시험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요나답을 통하여 주어진 세 가지 금령 -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농사 짓지 말라, 장막에서 살아라 - 으로 인하여 포도주 마시기를 거절한다. 선조들을 통하여 주어진 금령으로 가문의 신앙적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풍요를 상징하던 바알과 아세라에 굴복하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의 표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삶을 살아오던 레갑 자손들에게 축복의 말씀,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가 주어진다. 하나님 앞에 설 사람, 농사 짓지 않고 장막에 거주하며 목자의 일을 하던 레갑의 후손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전파했던 사명을 감당하게 됐던 것이다.
레갑 자손들이 포도주를 거절했던 것은 단순히 금욕적인 삶을 선택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풍요의 신으로 군림하던 바알과 아세라를 통하여 복을 누리는 상징이 포도농사 풍년이 되어 포도주를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레갑 족속이 포도주를 거부한 것은 금주를 통한 절제를 보여주었다기보다는 주류의 시대정신이 하나님을 반역하던 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겠다는 신앙적 결단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순종과 희생을 당연한 삶의 축으로 지켜옴이 있었다. 목자들은 이런 레갑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가문대대로 순종하며 벧학게렘 지역에 거주하면서 그 신앙의 유산을 이어오던 중에 아기 예수가 오시는 소식을 가정 먼저 듣고, 전파하는 사명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또한 이러해야 할 것이다. 2010년은 그 어느 해 보다도 더 다사다난했던 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각종 사회지표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의 소문이 무성한 나라라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온갖 사건들로 내홍을 겪고 있다. 예레미야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레갑 사람들의 신앙이 이 시대,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풍요가 예상된 삶을 다 내려놓고 마이너의 인생을 선택해서 길고 험한 외로운 길을 긴 역사 속에서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갈 이 시대의 레갑 자손들이 등장해야 한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시대정신을 마주하여 이 땅의 주어진 삶의 과제를 믿음으로 풀어가야 한다.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라보고 기대해야 할 것들에서 레갑 사람들의 결단이 요구되고 있고, 그런 결단을 내린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초대하는 영광의 자리에 초대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탄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소비와 향락의 문화가 성탄을 어지럽히는 시대에 레갑신앙의 불빛은 더욱 환하게 비추게 될 것이다.
2010년 12월 14일 (화) 기독신문 www.kidok.com
이렇게 소비문화를 위한 경제논리와 쾌락을 위한 욕구분출로만 대변되는 이 시대의 성탄문화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로 성탄을 기다려야 할까? 성경에도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시는 날을 고대하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 우리의 눈길이 가는 자들은 천사에게서 예수께서 오시는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 들었던 목자들이다. 왜 인류를 위한 위대한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전달해야 할 목격자요, 전달자로서 하나님은 당시 가장 천민 그룹에 속하던 목자들을 선택하셨을까?
전통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어왔다. 첫째,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먼저 임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목자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는 달리 순진한 마음으로 곧이곧대로 믿는 심령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이 일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온전하고 만족스런 대답 또한 되지 못한다. 목자들의 정체를 조금 더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추적해 보자.
예수님이 나시는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이 거주하던 곳은 베들레헴에서 멀지 않은 곳, 현대 지명으로 라못 라헬이라고 불리던 작은 동네였다. 그런데 라못 라헬의 옛 이름은 다름 아닌 ‘벧학게렘’이다. 벧학게렘은 느헤미야 3장 14절의 증언에 따르면, 레갑의 자손들이 다스리던 땅이었다. 정리하자면, 목자들은 벧학게렘 지역에서 오랜 역사의 풍파를 견뎌오며 거주해 오던 레갑의 후손들이란 결론이 된다.
레갑 자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잘 증거되고 있다. 예레미야가 고관대작들 앞에서 레갑 사람들을 불러 포도주를 마시라는 시험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요나답을 통하여 주어진 세 가지 금령 -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농사 짓지 말라, 장막에서 살아라 - 으로 인하여 포도주 마시기를 거절한다. 선조들을 통하여 주어진 금령으로 가문의 신앙적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풍요를 상징하던 바알과 아세라에 굴복하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의 표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삶을 살아오던 레갑 자손들에게 축복의 말씀,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가 주어진다. 하나님 앞에 설 사람, 농사 짓지 않고 장막에 거주하며 목자의 일을 하던 레갑의 후손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전파했던 사명을 감당하게 됐던 것이다.
레갑 자손들이 포도주를 거절했던 것은 단순히 금욕적인 삶을 선택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풍요의 신으로 군림하던 바알과 아세라를 통하여 복을 누리는 상징이 포도농사 풍년이 되어 포도주를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레갑 족속이 포도주를 거부한 것은 금주를 통한 절제를 보여주었다기보다는 주류의 시대정신이 하나님을 반역하던 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겠다는 신앙적 결단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순종과 희생을 당연한 삶의 축으로 지켜옴이 있었다. 목자들은 이런 레갑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가문대대로 순종하며 벧학게렘 지역에 거주하면서 그 신앙의 유산을 이어오던 중에 아기 예수가 오시는 소식을 가정 먼저 듣고, 전파하는 사명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또한 이러해야 할 것이다. 2010년은 그 어느 해 보다도 더 다사다난했던 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각종 사회지표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의 소문이 무성한 나라라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온갖 사건들로 내홍을 겪고 있다. 예레미야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레갑 사람들의 신앙이 이 시대,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풍요가 예상된 삶을 다 내려놓고 마이너의 인생을 선택해서 길고 험한 외로운 길을 긴 역사 속에서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갈 이 시대의 레갑 자손들이 등장해야 한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시대정신을 마주하여 이 땅의 주어진 삶의 과제를 믿음으로 풀어가야 한다.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라보고 기대해야 할 것들에서 레갑 사람들의 결단이 요구되고 있고, 그런 결단을 내린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초대하는 영광의 자리에 초대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탄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소비와 향락의 문화가 성탄을 어지럽히는 시대에 레갑신앙의 불빛은 더욱 환하게 비추게 될 것이다.
2010년 12월 14일 (화) 기독신문 www.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