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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8 17:45

한국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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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뿌리


1. 서문

만약 한국인의 역사를 반도에 사는 한국인의 역사로만 본다면 이는 역사에 대해 무지한 자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한 예를 들면 나의 시조이자 신라의 창시자인 박혁거세 할아버지의 본래 고향은 한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혁거세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동시대 500년간 공존했던 백제와 가야 그리고 신라를 각기 구성한 주요 세력이었던 초기 마한과 변한 진한의 세력을 구성한 사람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대륙과 서쪽대륙을 잇는 관문이었던 초원길의 동쪽종점 곧 발해연안을 중심으로 한 산동반도와 란하, 대릉하, 서요하, 요하, 요동, 송화강, 목단강, 흑룡강 등지에서 문명을 일구다 전쟁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유라시아대륙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이 수천년간 지속된 속에 인류의 문명은 크게 이동민과 정착민의 삶으로 대분되어 각자의 문명권을 형성해 왔다. 중앙아시아의 넓은 초원길을 이동하며 유목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해양을 통해 이동한 사람들 그리고 강을 중심으로 정착하여 농지를 일구어 땅을 파며 살아온 사람들의 문명으로 분화된 것이다. 오늘날 강을 중심으로 정착문명을 일구어온 사람들의 문명이 거의 일방적으로 각 문명권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까닭은 오늘날 실질적인 유목민족과 해양이동민족은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주변문명으로 또는 잊혀진 문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주요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은 정착과 함께 유목민족의 특성이 차츰 정착문명의 특성과 결합되어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방에서 이주해온 고대 인도를 지배했던 아리안족의 문명과 서쪽에서 이주해온 고대 수메르 문명을 일군 수메르인과 우르족, 북아프리카의 나일강 문명과 지중해의 에게해 문명, 북유럽의 도나우강 문명, 그리고 중원의 태백산과 삼위산을 중심으로 각기 문명의 터전을 자리한 태백산족과 삼위산족의 역사 또한 이러한 특성을 보인다.



기원전 1만 1천년부터 시작된 현생 인류의 역사는 현재까지 큰 강을 중심으로 하여 고대문명을 일구어 발달해왔다고 보여지는 문명권은 대략 25개 문명권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현재 주요 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4대강과 그외 각 대륙의 큰 강유역을 을 중심으로 한 문화권을 형성하며 발전해 왔다. 지금 살펴볼 것은 특히 태백산족 곧 동방족의 역사다.




2. 동방족의 역사

지구의 자궁 바이칼 호에서 시작된 태백산족의 역사.

동방족은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름은 동이(東夷)이다.

동이라는 이름에는 여러가지 설명이 뒤따라 붙는다. 이(夷)를 그 한자가 형성된 모양으로 살펴 본다면, 사람이 옳바르게 서 있는 모습이라는 견해부터, 큰 활을 쏘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해석과, 서방족의 오만한 시각에서 활을 쏘는 야만족이라는 이라는 설까지의 다양한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중국인들이 동방족을 지칭해온 말로 고대 갑골문이나 설문해자,후한서,동이전,역대신선통감,예기,논어등 초기 중국문헌에서 이(夷)의 뜻은 중원대륙에 진출하여 동아문명을 창시한 한민족에 대한 극존칭 곧 충효의 나라, 어진 군자의 나라,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 신선의 나라, 오직 큰 것을 따르는 대인의 나라, 금속문명을 창조한 민족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안경전, 개벽실제상황, 대원출판, 2006, 186쪽)



동방족 또는 동이족의 시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학설로 대분되고 있는데 첫째는 "모든 몽골인종의 근원지"(이르쿠츠크국립대 블라디미르 역사학 교수의 말(출처 : 정재승,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정신세계사, 2003. 11쪽.))로 불리는 지구의 자궁으로 찬양되는 지구 최대의 민물담수호 바이칼 연안이고 두번째는 황하강 하류와 지금의 북경, 산해관, 산둥반도, 서요하, 대릉하, 요하, 두만강, 압록강,옹진반도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발해 연안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 설에 모순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앞서 바이칼 문명 기원설은 1만 3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대략 오늘날의 한국인은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 연해주 등지에 살고 있는 여러 종족들, 즉 축치, 코랴크, 캄차달, 유카기르, 이텔만, 켓트, 길라크, 골디, 에벤키, 부리야트, 우에지, 사모예드 등의 퉁구스족으로 구성되는 몽골로이드 황인종들의 여러 갈래 - 중국 문헌상에 동호, 숙신, 말갈, 읍루, 거란, 여진족 등으로 표현됨 - 들이 구석기시대인 지금으로부터 약 1만 3천 년 전 대빙하가 녹은 후빙하시대 충적세의 따뜻한 기후와 함께 바이칼호를 떠나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최몽룡, 『한국문화의 시원을 찾아서』에서((출처 : 정재승,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정신세계사, 2003. 11쪽.))

발해연안 문명은 직접 청동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돌문명을 일군 신석기 시대로 발해연안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 내지 5000년 경에 시작된다(이형구,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 김영사, 2004,89쪽)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발해연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약 1만 3천년전에 바이칼 호를 떠나 약 7~8천년전에 지금의 황해 북쪽의 발해연안을 중심으로 황하 하류와 서요하, 대릉하, 요하, 두만강, 압록강, 흑룡강, 한강, 금강, 낙동강을 중심으로 점차 문명의 터전을 이동시켜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시루산 또는 백산(태백산, 백두산, 서방족이 붙인 이름 장백산)을 중심으로 문명을 일군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계속 주목해 나갈 것이다.



3. 북방족과의 관계

흉노(훈족), 투르크(돌궐), 선비, 거란, 몽고, 여진

우리가 앞으로 지속해서 탐사해야할 북방문명은 알타이산맥 지역, 투바 예니세이강 지역, 아무르강 유역, 연해주, 흥안령 산맥 지역 등이다. 우선은 바이칼호 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바이칼호 주변 일대의 문화적 토양이 우리의 토착 문화의 그것과 너무도 유사성이 많은데 특히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바이칼 알흔섬은 역사적으로 코리(Khori) 부리야트족(석가가 속한 종족)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고 이 코리족이라는 바이칼 원주민은 또한 고구려의 조상인 북부여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정재승 앞의 책 13쪽)



대략 오늘날의 한국인은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 연해주 등지에 살고 있는 여러 종족들, 즉 축치, 코랴크, 캄차달, 유카기르, 이텔만, 켓트, 길라크, 골디, 에벤키, 부리야트, 우에지, 사모예드 등의 퉁구스족으로 구성되는 몽골로이드 황인종들의 여러 갈래 - 중국 문헌상에 동호, 숙신, 말갈, 읍루, 거란, 여진족 등으로 표현됨 - 들이 구석기시대인 지금으로부터 약 1만 3천 년 전 대빙하가 녹은 후빙하시대 충적세의 따뜻한 기후와 함께 바이칼호를 떠나 한반도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최몽룡, 『한국문화의 시원을 찾아서』에서((출처 : 정재승, 앞의책,11쪽)



러시아과학원과 모스크바국립대 유전학과교수 자하로프 박사는 이홍규 박사와 주채혁 교수 등과의 협조로 완성한 『알타이-바이칼지역 원주민의 미토콘드리아와 DNA변형 : 북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나타나는 유전적 역사의 의미』를 통해서 1997~2001년의 4년간 알타이-바이칼 지역 8개 원주민 527명을 대상으로 DNA를 추출하여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여러 가지 괄목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아메리카대륙의 최초의 인류는 알타이, 바이칼 지역의 원주민들과 같은 유전학적 뿌리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이번 연구에서 밝혔다.



특히 바이칼호와 앙가라강, 사얀(Sayan)산맥의 남부 지역, 알타이산맥 자락의 한 종족이 아메리카 신세계에 Y염색체를 퍼뜨린 근원이었다는 점을 제기하였고 이중 바이칼호의 대표적 원주민 집단인 부리야트족과 남부시베리아의 소요트(Soyot)족이 한국인과 같은 줄기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www.bongwoo.org 자료실에 번역문이 실려 있음(출처 : 정재승,앞의 책 18쪽)



투로프 교수의 『퉁구스족과 에벤키족의 기원』을 읽으며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시원과 이동 경로를 추적하다 보면 원주민 종족들의 이름만 무성할 뿐 그 뿌리는 대개 고아시아족과 퉁구스족으로 귀착됨을 발견할 수 있고 여기서 고아시아족은 특별히 다른 종족이 아니라는 것이 현대에 와서 증명되었으므로 결국 퉁구스족 하나가 현재의 투르크 계열과 몽골계 시베리아 제 종족의 뿌리로 남는다. 러시아 학자들이 중시하는 에벤키족 역시 퉁구스족에 지나지 않고 아메리카로 이주한 종족 또한 바이칼과 알타이 지역의 투르크 종족이고 보면 시베리아 고대 문명의 주축은 퉁구스족 한 뿌리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재승, 앞의책, 19쪽)



한편 고구려의 주민이기도 했었던 말갈족은 만주 길림성 일대를 중심으로 연해주 방면에 흩어져 살던 종족으로 중국 사서에는 고대의 숙신, 후한시대의 읍루, 삼국시대의 물길, 수당제국 시대의 말갈, 금의 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이윤섭. 천하의 중심 고구려, 북스케이스, 2004, 121쪽)



오늘날 오스만 투르크(돌궐)의 후예인 터키인들이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듯이 대체로 고려시대까지는 북방민족과의 우호와 경쟁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병자호란기에 이르면 고대에 약 1500~2000년 전 무렵의 고구려때와 약 1300~1500년전인 대진국 시대에 까지 북방민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동등하거나 앞서있는 위치에서 역전되어 점차 군주의 관계에서 형제의 관계로, 아우의 관계로, 마침내 신하의 관계로 전락해 왔다고 할 수 있다..



4. 서방족과의 관계

삼위산족의 역사, 지나족, 한족

단재 신채호 선생에 따르면 「조선이나 만주, 몽고, 터키 등은 여러 천년 전에는 같은 혈족 이었으나 지나의 한족(漢族)을 조선족과 동족(同族)으로 보는 것은 어림도 없다. 몽고족은 조선족보다 아주 늦게 그곳에 침입한 사실(연대의 선후)로 보아 조선족이 몽고족에 속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말이다. 몽고족도 오랜 옛날, 같은 조상의 후손일수는 있다」(이병도,최태영 공저, 한국상고사입문, 1989, 18쪽.)고 한다.



지금의 중국민족을 지칭하는 차이나(China)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 영정의 국가, 진(秦)의 서양식 발음이다. 진을 뒤이은 유방의 한(漢)과 함께 중원의 통치체제의 기틀을 확립했기 때문에 지나족, 또는 한족이라고 불리운다. 또 초기에 삼위산을 중심으로 하여 세력기반을 닦아 주변부족을 통합하고 영역을 확장해 나갔기 때문에 삼위산족이라고도 불린다.




삼위산족은 치우천황과 73차례 싸웠으나 73번 패한 황제헌원을 민족의 시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방족이 황하 하류에 터를 잡았다면, 서방족은 황하 상류에 터를 잡아 각기 동쪽끝인 태백산과 서쪽끝인 삼위산에 터를 잡고 중원을 개척해 나갔다(안경전, 개벽실제상황, 대원출판, 2006,209쪽)



삼위산족과 함께 현재 중국 남부의 소수민족으로 남아 있는 묘족(인구 약 738만명, 소수민족중 인구수 4위, 三苗族)은 공통적으로 반고씨와 태호 복희씨와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섬긴다. 유대족의 창세신 여호와처럼 반고는 지나족의 창세신이다.



원동중의 『삼성기』에는 환웅이 환국으로 부터 동방 태백산으로 3천의 제세핵랑군을 이끌고 동방개척을 떠날 무렵, 십간십이지 신장과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의 부족장들과 백성들 그리고 많은 재물과 보화를 가지고 삼위산 납림(拉林) 동굴에 터를 잡았는데 이들을 일러 제견이라 하였고 우두머리인 반고는 반고가한(盤古可汗)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 있어서 지나족 또는 한족이 그들의 조상으로 섬기는 삼황오제로부터 고대 하상주 3왕조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통치했던 왕조나 그들의 문화를 보면, 단순히 동이족이 문화를 전수해 준 차원을 넘어서서 배달 조선민족이 직접 현지에서 나라를 건설한 창업의 역사이다. 또 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의 진나라, 5호16국의 혼란을 통일한 오환선비족인 양견(문제), 양광(양제)의 수(隋)나라, 이연(고조)과 이세민(태종)의 당(唐), 야율아보기의 요나라, 여진족인 아구타가 세운 금(金)나라와 황태극(皇太極)의 청(淸)나라, 몽골족 징기스칸, 쿠빌라이칸이 세운 원(元)나라, 고려 출신 주원장(朱元璋)이 세운 명(明)까지 피통치자그룹은 한족이었으나 통치자 그룹은 순수한 한족의 왕조가 아니었다(안경전, 앞의책,185쪽)



5. 남방족과의 관계

왜(倭)라고 불리던 사람들,일본민족

KBS와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된 〈일본 천황가는 백제인인가?〉 프로그램을 보면, 일본 아키히토(明仁)왕이 최근에“옛 칸무(환무: 781~806)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공식 발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에 백제왕족들이 건너가서 일본왕국을 세웠다는 것을, 일본왕 자신의 입으로 명확하게 확인시켜준 것이다.



아래는 진성조,백제왕족, 일본에 나라를 세우다,월간개벽 2006.08월호의 자료이다.

고대 일본(왜)열도는 조몬시대( ~BCE 3C)와 야요이시대(BCE 3C∼CE 3C)를 거치는 동안, 도왜(途倭)한 대륙인과 한반도인들이 정착생활을 하며 새끼줄무늬 질그릇·쌀농사·조개무덤 등의 흔적을 남겼다. 경남(옛가야 유역)과 한반도에 가까운 일본 서부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유물이 동일하다는 것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서 지리지』, 『후한서』에 ‘왜’라는 나라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소국(약 100여 개)이 난립한 일본열도 전역에, 3세기말 최초로 국가형태로 볼 수 있는 야마타이(邪馬臺)왕조3)(소국연합)가 세워지지만 이때의 역사는 의문투성이다.



강력한 권력체제를 갖춘 일본 최초국가는 4세기말 깅키(근기近畿: 지금 나라현)지방의 야마토정권이다. 야마토(대화)정권4)은 4∼7세기 까지 주변의 카와치(하내河內), 오사카(大阪/難波), 나라(奈良) 등을 통합하여 통일왕조를 열고 급성장 한다.



백제 근초고왕(재위 346∼375)은 백제귀족 ‘진모진’을 왜국에 파견하여 일본 최초의 백제조복(朝服)을 만들게 한다.

『부상략기』 기록에 따르면, 당시 15대 오오진(응신)왕이 일본왕 최초로 한복(백제조복)을 입었으며, 그 후에 대대로 일본왕들이 입었고, 33대 스이코(추고: ?∼628년)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18세기 고증학자 토우테이칸은, 고대논문 「일본결척」을 인용하여 “응신왕 시대에 백제왕이 봉녀(縫女) 2명을 보내주어 비로소 임금과 신하들이 한복을 입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서민들은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모양이었다”고 지적했다.



동경대 하니히라 교수는 “7세기말 당시까지 한반도 출신 이주민이 대부분이었고 원주민은 소수였으며, 이때까지 야마토(4C), 아스카(7C)시대 사람들은 한국 의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었으며, 건국신화 대부분이 한국형이고 한국어를 사용하였다”고 말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백제는 삼국 중에서 선진문화를 가장 많이 일본에 전해준다. 4세기경 통일국가(야마토) 이후, 일본은 한반도에서 선진문화를 전수받아 급속도로 문명이 발전한다. 백제는 일찍이 근초고왕(4C) 이후부터, 아직기·왕인 등을 통해 선진학문과 책(오경) 등을 전수해주고, 무령왕∼성왕 이후는 불경·예술·학문·불교문화와 궁·절 등의 건축기술, 소도 제천(신교)문화 등을 집중적으로 전해주어 일본 고대 정신문명의 꽃인 아스카문화를 열어준다.



660년 백제 멸망 후, 백제유민들은 혈연국인 왜국의 군사(수만명) 지원을 받아 백제부흥운동을 일으킨다. 당시에 일본 37대 제명여왕(의자왕 여동생)은 본국 백제를 되찾기 위해 군선을 건조하고 탐라국에 참전을 요구하고 왜병을 사비성에 파견하지만 지도층의 내분으로 결국 실패하고 만다.



부여용(의자왕 아들)은 망국의 깊은 한을 품고 유민을 거느리고 왜국에 건너가서 38대 텐치(천지: 661∼671)왕이 되고,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 해뜨는 본국)으로 고친다5)(『일본서기』 「천지왕조」 참조). 이것은 한국고대사(특히 백제역사)에 속한 왜(倭)국 역사에서 새로운 나라 일본(日本)이 탄생한 사건이다.(668∼670년)



일본 정사(正史)인 『고사기』, 『일본서기』는 서기 8세기 초기에, 『속일본기』는 8세기 후기에 편찬이 완료된다. 이때는 의자왕 후손들(38대 이후)이 일본왕으로서 통치하던 때로, 일본은 멸망한 본국(백제국)에 속한 왜국에서 벗어나 자주국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때였기에, 일본 정통역사서들을 대부분 이때 편찬해낸다. 그 목적은 일본의 초대왕 이후 모든 왕들을 하늘신의 아들로 묘사하여 일본왕에게 신성(神聖)함을 부여해서 국민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 이후 50대 칸무(환무: 781∼806)왕 때는, 일본과 한(韓)민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한일 동족론’이 적힌 고문서(옛 족보)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칸무는 본국(백제)과 단절하는 정책을 편다. 그러나 그는 백제인을 고관요직에 많이 등용하고 기존의 백제문화 토대 위에서 ‘새롭고 자주적인 나라, 일본을 만들어나가는’ 정책을 대부분 매듭짓는다.



일본열도의 역사는 조몬시대와 야오이시대 이후 야마토정권, 아스카시대(552~646), 나라시대(710~784), 헤이안시대(794~1185), 가마쿠라 막부시대(1192~1333), 무로마치 막부시대(1338~1573), 전국시대(1573~1603),에도막부시대(1603~1867), 유신시대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6. 결문(結文)

이상으로 동아시아의 동방족, 북방족, 서방족, 남방족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들 민족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지속해왔다.

특히 동방족과 서방족의 경쟁구도는 약 6천년간의 시간동안 처음 동방족의 우월적 우세에서 점차 서방족의 우월적 우세로 돌아서는 역사의 순환구도를 보여준다. 한편 동방족과 서방족간의 싸움에 있어 군주의 관계에서 형제의 관계, 아우의 관계, 신하의 관계로 들어서게 된 북방족과의 관계가 약 2천년간의 역사속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열도를 중심으로 동방족의 분파인 남방족의 대륙으로의 진출 움직임이 지난 1천 3백년간의 역사속에서 물론 전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로서 동방족은 약 1천 차례에 가까운 잦은 침략을 당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대체로 동방족은 바이칼호와 시베리아, 고원, 초원, 중원,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잇는 대이동의 장정은 대체로 약 1만3천년전 홍적세의 빙하기가 물러간때부터 시작되어 황하하류와 산둥반도 서요하, 대릉하, 요하, 압록강, 두만강, 옹진반도의 넓은 의미의 발해연안에 터잡은 것으로 보이며 이때가 약 7~8천년전의 일로 청동기로 넘어가기 직전의 다양한 돌문명을 일군 신석기문명군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발해연안 지역에서의 발굴자료는 이형구,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 김영사, 2004년도판을 참고하기 바란다.



동방족 또는 동이족, 대한의 역사는 이렇게 바이칼로 부터 시작하여 발해연안의 시루산(甑山) 또는 백산(白山)을 거쳐 한반도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약 1만 3천여년의 이주와 이동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서적]

-안경전, 개벽실제상황, 대원출판, 2006

-이병도,최태영, 한국상고사입문, 1989

-이윤섭, 천하의 중심 고구려, 코리아북케이스, 2004

-이형구,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 김영사,2004

-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 동아일보사, 2006

-정재승,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정신세계사, 2004

-진성조, 백제왕족, 일본에 나라를 세우다, 월간개벽 2006년8월호



글:피리부는 사람

출처- 부산상고 홈페이지 http://www1.worldlink.co.kr/ttboardpack/new_tt/board/ttboard.cgi?act=read&db=baekyang51_freeboard&page=1&idx=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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