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탈출에의 놀라운 비밀
이은성의 작품, ‘소설 동의보감’에는 신분의 굴레가 얼마나 사람을 절망케 하는가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허준은 서자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명색이 고을 원님의 아들이었지만 천첩의 소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허준은 평생 천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고 허준의 후손 또한 영원토록 천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깨달은 허준의 허탈감은 절망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면 천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이 한가지 가느다란 희망 하나를 붙잡고 그는 엄청난 모험을 시작합니다. 평안도 용천에서 경남 산청에 이르는 무모한 신분탈출을 위한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그 것만으로 바로 신분이 상승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후에도 무수한 세월동안 온갖 고통, 눈물, 피곤, 가난, 수모, 오해, 배신,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에 마침내 우리가 아는 위대한 허준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신분은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위 신분의 인생의 꿈은 바로 신분 탈출입니다. 보다 나은 신분으로의 변신은 인생 모두의 오랜 꿈이요, 인류역사의 현장마다 시대마다 사건마다 묻어있는 인생의 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 ‘소설 동의보감’을 예로 들었지만 그야 말로 일례일 뿐입니다. 모든 소설, 모든 전쟁,모든 신화가 다 신분탈출을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신분과 소유와 사랑의 여부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낮은 신분의 사람은 소유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있는 것도 뺏기게 되어 있습니다. 노예들의 비극이 바로 그렇습니다. 낮은 신분의 사람은 상위 신분과의 사랑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람들을 그토록 울리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죄수의 신분은 움직일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신분이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분 아니라 이를 위해선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칩니다. 인생이 신분 상승의 변신을 위해 지불하는 댓가는 실로 눈물겹습니다. 사람들은 수고와 땀과 눈물과 희망과 끝없는 인내는 모두 현재의 신분에서 탈출코자 하는 눈물겨운 뭄부림의 소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쏟는 부모들의 전폭적인 희생은 물론 다함없는 부모의 사랑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는 보다 나은 내일에의 신분상승에의 기대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고시 합격자가 그토록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급작스런 신분의 수직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신분 상승은 전 민족적인 염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이 그러하며, 쿠르도 족의 슬픈 역사나, 체첸인의 비극이나, 유태인의 2천년에 이르는 방랑의 역사는 바로 이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토록 민족적인 자유독립된 신분을 획득하기 위해 치르는 댓가는 너무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원문제도 아니요, 환경 문제도 아니요, 핵문제도 아닙니다.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죄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온전한 평화도 노래할 수 없고, 완전한 자유도 맛볼 수 없고, 영원한 생명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나, 민족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는 전인류의 문제요, 인류 공통의 근본적 사건입니다.
이 인류의 죄는 창조주 나님을 배신한 죄요, 하나님을 떠난 죄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죄입니다. 그로인해 인생은 하나님과 동락하던 자리에서 버림받은 신분, 죄인의 신분, 죽음의 신분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인생이 그토록 괴로워 하고, 절망해 왔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고, 오랜세월의 인생의 간구도 바로 이 신분에의 탈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성경에는 신분 탈출에의 비밀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함은 하나님께서 전인류의 신분을 바꾸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 주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받을 신분이 구원받을 신분으로 바뀌고, 영원히 죽을 자의 신분이 영원히 산 자의 신분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자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신분으로 바뀌게 된 탓입니다. 이 엄청난 인생의 신분변화가 인생의 노력이나 공로와는 별개로 하나님이 친히 댓가를 치르시고 이루신 것에 우리는 놀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은 바로 이에 대한 확증인 것입니다.
남웅기 목사님 글 http://www.853.or.kr 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은성의 작품, ‘소설 동의보감’에는 신분의 굴레가 얼마나 사람을 절망케 하는가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허준은 서자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명색이 고을 원님의 아들이었지만 천첩의 소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허준은 평생 천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고 허준의 후손 또한 영원토록 천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깨달은 허준의 허탈감은 절망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면 천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이 한가지 가느다란 희망 하나를 붙잡고 그는 엄청난 모험을 시작합니다. 평안도 용천에서 경남 산청에 이르는 무모한 신분탈출을 위한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그 것만으로 바로 신분이 상승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후에도 무수한 세월동안 온갖 고통, 눈물, 피곤, 가난, 수모, 오해, 배신,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에 마침내 우리가 아는 위대한 허준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신분은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위 신분의 인생의 꿈은 바로 신분 탈출입니다. 보다 나은 신분으로의 변신은 인생 모두의 오랜 꿈이요, 인류역사의 현장마다 시대마다 사건마다 묻어있는 인생의 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 ‘소설 동의보감’을 예로 들었지만 그야 말로 일례일 뿐입니다. 모든 소설, 모든 전쟁,모든 신화가 다 신분탈출을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신분과 소유와 사랑의 여부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낮은 신분의 사람은 소유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있는 것도 뺏기게 되어 있습니다. 노예들의 비극이 바로 그렇습니다. 낮은 신분의 사람은 상위 신분과의 사랑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람들을 그토록 울리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죄수의 신분은 움직일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신분이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분 아니라 이를 위해선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칩니다. 인생이 신분 상승의 변신을 위해 지불하는 댓가는 실로 눈물겹습니다. 사람들은 수고와 땀과 눈물과 희망과 끝없는 인내는 모두 현재의 신분에서 탈출코자 하는 눈물겨운 뭄부림의 소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쏟는 부모들의 전폭적인 희생은 물론 다함없는 부모의 사랑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는 보다 나은 내일에의 신분상승에의 기대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고시 합격자가 그토록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급작스런 신분의 수직상승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신분 상승은 전 민족적인 염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이 그러하며, 쿠르도 족의 슬픈 역사나, 체첸인의 비극이나, 유태인의 2천년에 이르는 방랑의 역사는 바로 이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토록 민족적인 자유독립된 신분을 획득하기 위해 치르는 댓가는 너무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원문제도 아니요, 환경 문제도 아니요, 핵문제도 아닙니다.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죄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온전한 평화도 노래할 수 없고, 완전한 자유도 맛볼 수 없고, 영원한 생명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나, 민족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는 전인류의 문제요, 인류 공통의 근본적 사건입니다.
이 인류의 죄는 창조주 나님을 배신한 죄요, 하나님을 떠난 죄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죄입니다. 그로인해 인생은 하나님과 동락하던 자리에서 버림받은 신분, 죄인의 신분, 죽음의 신분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인생이 그토록 괴로워 하고, 절망해 왔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고, 오랜세월의 인생의 간구도 바로 이 신분에의 탈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성경에는 신분 탈출에의 비밀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함은 하나님께서 전인류의 신분을 바꾸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 주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받을 신분이 구원받을 신분으로 바뀌고, 영원히 죽을 자의 신분이 영원히 산 자의 신분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자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신분으로 바뀌게 된 탓입니다. 이 엄청난 인생의 신분변화가 인생의 노력이나 공로와는 별개로 하나님이 친히 댓가를 치르시고 이루신 것에 우리는 놀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은 바로 이에 대한 확증인 것입니다.
남웅기 목사님 글 http://www.853.or.kr 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