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결혼과 이혼>(4)

by 이재섭 posted May 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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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의 재혼이 가능한가

마태복음 19장 9절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기억해보자. 사람들은 보통 9절을 “재혼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제시한다. 신약의 다른 어떤 복음도 전 배우자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재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단지 이 한 본문을 두고 일어난 대부분 토론은 재혼이 허용되느냐, 아니냐에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독자들은 본문이 재혼을 주로 다룬다는 전제하게 되고 이 관점을 가지고 본문을 대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본문 주제는 재혼이 아니라 이혼이다. 바리새인들이 제기한 질문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여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신다.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이다. 이것은 전체 본문 마지막인 9절에서도 기본적인 주제이다. 재혼이라는 주제는 단지 우연히 끼어들었을 뿐이다. 재혼이 전면에 나타나는 다른 본문들도 있지만 이 본문은 그렇지 않다. 이 본문 핵심 주제는 이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본문을 대할 때는 이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이혼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실 것인지 개대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마태복음 19장 9절과 본문 전체에서 예수님이 이혼을 아주 엄중히 금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마태복음 5장 31-32절에서 그러하였듯이 예수님이 이 금지 명령에 대한 예외 조항인 “음행의 연고 외에는”을 만들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으로 주님이 갖는 교훈, 즉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눈지 못할지니라”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이 본문에 끼어들어 이혼과 재혼에 e한 면허증을 따려고 한다는 것은 이 교훈에 담겨있는 에수님의 목적과 얼마나 상반되는가? 우리의 영은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나타난 예수님의 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혼인 제도를 경외하는 영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제도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무흠자”(lnnocent Party)는 재혼해도 되는가?
비록 우리가 본문의 중심 주제가 재혼이 아니라 이혼이라는 것을 인정할지라도, 우리는 마태복음 19장 9절이 “과연 재혼을 허용하는가?”하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왜야하면 본문이 재혼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예수님은 진정 무라 말씀하시는가? 음행의 연고 외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것은 간음이다. 그 남자의 아내는 간음죄를 짓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신실하였다. 그가 그녀를 버리는 이유는 아마도 “정신적인 잔인함”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 남자가 재혼을 한다면 그는 하나남이 내리신 제 7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는다. 그는 남은 여생을 끊임없이 간음하면서 살아간다.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침은 재혼을 정죄하며,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르침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내가 음행을 범하였을 경우에는 이혼뿐만이 아니라 재혼도 가능하다고 유추한다. 그들은 한 남자와 음행을 하였다면 주님이 그 남자에게 재혼을 허락했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음행으로 아내에게 범죄 하였을 때, 아내에게도 재혼이 허용된다. 이와 같은 경우, 전배우자가 여전히 살아 있더라도 다른 사람과 혼인하는 것은 음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누구든지 음행의 연고로 아내를 버리는 남자는 비록 다른 사람과 혼인하더라도 음행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본문이 재혼을 언급하고 재혼에 대한 말씀과 “음행의 연고 외에”라는 구절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재혼의 가능성을 언급하신다. “음행의 연고 외에” 그들은 “음행의 연고 외에”라는 구절이 재혼에 대한 말씀을 수식한다고 가정한다. 예수님이 “음행의 연고 외에”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분명히 이혼에 대한 한 근거를 제시하신다. 누구도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본문을 재혼을 허락하는 본문으로 보는 사람들은 “음행의 연고 외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른 데 장가드는” 말씀에도 적용되며, 따라서 예수님이 재혼에 대한 근거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것이 마태복음 19장 9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라면 성경은 이혼에 대한 한 근거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것이 마태복음 19장 9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라면 성경은 이혼에 대한 한 그거를 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혼에 대해서도 한 근거를 제시한다. 이 근거는 음행 즉 다른 사람과 성 관계를 통해 저지르는 남편이나 아내의 부정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성경은 오직 “무흠자”에게만 재혼을 허락한다. 다른 어떤 재혼도 본 배우자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금지된다. 그리고 이 다른 어떤 재혼도 죄다. 다른 사람과 혼인하는 모든 사람은, “무흠다”외에, 다 간음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것을 강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조차도 마태복음 19장 9절에 호소하여 재혼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마태복음 19장 9절을 중심으로 교회가 신자에게 내릴 수 있는 관대한 해석 범위까지 나아간다.
그들은 “잘못이 없는 자” 뿐만 아니라 잘못이 있는 자에게도 재혼을 허용한다. 그들은 예수님 당시 사악한 유대인들이 했던 것과 동일하게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이혼뿐만이 아니라 재혼도 허용한다. 바리새인들이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는 질문에 그들은 교회의 공식적인 결정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옳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서 자유로운 양심에 따른 다른 사람과 재혼해도 좋다>”라고 답변한다. 재혼을 지지하기 위하여 마태복음 19장 9절을 이용한 이들의 호소는 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9장 9절은 기껏해야 잘못이 없는 자에게만 재혼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음행의 연고 외에 어떤 이유로도 자기 본래 아내와 이혼한 후, 다시 다른 이와 재혼하는 것은 간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진리가 때로는 어던 본문 속에 함의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 살면서 실제적으로 겪을 재혼에 관한 무거운 교리를 단지 함의만 할 뿐인 본문에 얄퍅하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것은 또한 이 본문에서 나온 그 유추가 재혼 가능성에 대한 주제가 전면에 나서는 성경의 다른 명백한 증거와 상충하기 때문에 분명히 잘못이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다른 곳에서 성경은 전 남편이나 아내가 살아 있는 한, 재혼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금지되며, 전 배우자가 살아 있는 동안 재혼하는 것은 어떠한 사유에 관계없이 간음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누가복음16장 18절에 드러난 경고이다.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재혼 문제를 다루시고 재혼을 무조건적으로 금하신다.
고린도전서 7장 39절은 여자가 그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매여 있지만 오직 그 남편이 죽을 때에만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의식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남자나 여자가 다시 혼인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그가 내린 대답은 이러하다. “오직 한 조건만이 가능한 데 그것은 배우자의 죽음이다.”
분명한 가르침이 로마서 7장2-3절에도 나와 있다.
남편이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혼인은 끊어질 수 없는 평생의 끈이다. 오직 남편이나 아내가 죽었을 때에만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에 재혼하는 여자는 간부다. 마가복음 10장 11-12절은 예수님이 재혼을 절대적이며, 거의 모든 경우 예외 없이 정죄함을 보여준다. 이 구절이 나타나는 본문은 마태복음 19장과 평행을 이룬다. 마가복음 10장 11-12절에 따르면,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하고 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에게 보인 엄중한 교훈에 대해 예수님께는 좀더 사적으로 세밀하게 질문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P146-150

"잘못이 없는 자“도 재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마태복음 19장 9절 둘째 부분에서 예수님이 계속해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여기에서 주님은 비록 음해의 연고가 아니라 하더라도 남편에게 이혼 당한 여자의 재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본문 첫째 부분에 따르면 그녀는 부당하게 버림을 받았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다른 사람과 혼인하였다. 이 여자는 지금 음행 죄를 범한다. 불쌍한 여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과 혼인해도 되는가? 잘못이 없는 자가 재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견해가 맞다면, 그 대답은 분명히 “YES"일 것이다. 그녀 남편이 음행을 하였고 더구나 다른 여자와 혼인을 해 버렸기 때문에 화해는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이다. 잘못이 없는 자라도 재혼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재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교리다. 신약 본문의 다른 곳에서 나오는 사도들의 교리와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비록 이혼이 음행의 연고로 허용이 되었지만 재혼은 그 배우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항상 금지된다.

재혼이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로서의 혼인이 지니는 본질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혼인은 하나님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끈이다. 혼인은 오직 하나님만이 묶거나 풀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한 몸을 더 이상 하나가 아니라 둘로 만드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을 통하여 그렇게 하신다. 죽음은 혼인을 포함한 모든 지상의 끈을 풀어 버린다. 본질상 혼인은 평생 동안 유효하다. 본질상 혼인은 사람이 묶거나 풀 수 없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19:6).
심지어 음행도 이 혼인의 끈을 풀 수 없다. 음행은 한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때로는 두 사람이 따로 살아야만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조차 혼인에 대한 공격은 사람의 행위일 뿐이다. 이 행위가 이 끈을 끊고 다른 사람과 혼인을 가능하게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그에게 묶여 있다. P152-153